경건한 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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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건한 식사
  • 이해존
  • 승인 2019.11.14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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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나의 시마을]
경건한 식사 - 이 해 존






경건한 식사
                                                  - 이 해 존


 
식탁과 티비가 시선을 주고받네요 밥을 넘기고 고개를
돌리고 누군가 옆에 있는 것처럼 나도 가끔씩 조잘거리
고, 늦은 저녁밥을 먹어요 비스듬히 티비를 보고 벽을 보
아요 골똘히 얼룩을 바라보면 얼굴과 닮았다는 생각, 모
든 얼룩에서 얼굴을 찾아요 오늘은 이목구비가 깊어져 표
정을 짓네요 숟가락이 내 몸을 다 떠낼 때까지 티비를 켜
요 관객이 웃고 미혼모가 울고 툰드라의 순록이 뛰어다니
고, 이야기가 밥알처럼 흘러내려요 지금은 사실과 농담이
필요한 식사 시간이에요 식탁에 앉아 티비와 인사해요 세
상으로부터 허구가 되어가는 아주 경건한 시간이에요
 



「경건한 식사」에 나오는 화자는 혼밥을 하는 이 시대 젊은이들의 모습을 디테일하게 보여준다. “밥을 넘기고 고개를 돌리고 누군가 옆에 있는 것처럼” “가끔씩 조잘거리”는 이것이 혼밥족의 풍경이다. 이 시에서 시인은 이러한 풍경을 사실적으로 그리면서 시적 화자의 심리를 터치하듯 살짝살짝 붓질한다.

‘혼밥’이나 ‘혼술’, ‘혼영’, ‘혼행’, ‘혼코노’ 같은 말은 이제 생소한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로 흔하게 사용되고 있다. ‘혼밥’이나 ‘혼술’은 혼자 먹는 밥이나 술을 말하고 ‘혼영’은 혼자 영화를 보는 일. ‘혼행’ 역시 혼자 여행을 가는 것이다

우리 동네 비어있던 상가에도 코인 노래방이 생겼는데 혼자 와서 부르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사람들을 가리켜 ‘혼코노’라고 하는데 이런 신조어들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새로운 언어들의 출현은 그래서 한 문화를 대변한다.
 
이 시에서 혼자 사는 사람의 풍경은 ‘식탁’과 ‘티비’, ‘가끔씩 조잘거리는 혼잣말’, ‘벽에 찍힌 얼룩’ 등으로 드러나고 있다. 화자는 밥을 먹으며 티비를 보고 벽을 보며 얼룩을 읽는다. 그 얼룩들에서 자신의 얼굴을 본다. 그리고 다른 모든 얼룩들에서도 자신의 얼굴을 찾는다. ‘본 바탕에 액체 따위가 스며들어 더러워진 자국’이 얼룩이라 한다면 화자는 왜 굳이 얼룩에서 자신의 이목구비를 찾고 있을까? 얼룩에서 깊어진 표정을 읽으려 하는가?
 
화자가 보는 그 얼룩은 화자 자신의 지나온 삶을 대변한다. “관객이 웃고 미혼모가 울고, 툰드라의 순록이 뛰어다니”는 티비 속의 이야기는 우여곡절의 복잡한 삶과 만화방창의 봄날이 뒤엉킨 입체적인 세상이야기다. 이러한 시간도 지나면 얼룩이라는 흔적으로 남게 된다. 홀로 앉아 “티비와 인사”하는 혼자만의 삶은 세상으로부터 동떨어진 허구 같다. 혼잣말을 하면서 “얼룩이 된” 자신의 “몸을 다 떠낼 때까지” 화자는 식사를 한다.
 
일본에서도 혼자 밥 먹는 일을 부담스러워 하는지 이런 증상을 일러 ‘런치 메이드 증후군’이라 한다. 이 시에서의 화자 역시 홀로 밥 먹는 행위 자체를 스스로 즐기는 분위기가 아님을 느낄 수 있다. 사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오래된 식사 전통은 대화를 하면서 함께 커뮤니케이션을 나누는 것이었다. 그러한 시절이 그리운 것일까? 화자는 “지금은 사실과 농담이 필요한 식사시간”이라고 명명한다.
 

시인 정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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