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응원과 마케팅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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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응원과 마케팅 사이에서
  • 임병구
  • 승인 2019.11.20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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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랑말랑 애덜이야기]
제79화 - 임병구 / 인천석남중학교 교장

마라톤이 자신의 그림자만 달고 뛰는 고독한 운동이라고 믿었다. 인생은 혼자서 진을 빼야 하는 마라톤 같은 것이라며 수험생들을 채근했다. 공부 또한 고독하게 달려 수험장에 도달하는 과정이라며 수능시험 준비를 독려하기도 했다. 학교에서 갈고닦은 공부 중에서 인생에 쓸모 있는 진짜 실력은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목적지에 이르러 보는 것이라고 가르쳤다. 일등만 실력이 아니라 혼자 힘으로 전 구간을 주파하는 경험이 더 의미 있다고도 했다. 다리 부상을 이기고 무릎걸음으로 기다시피 결승점에 다다른 선수를 향한 관중들의 갈채를 예로 들었다. 수능시험으로 자신과 싸워 보는 경험을 쌓은 학생들이 제각기 탄탄한 인생길에서 박수받기를 빌었다.

마라톤 주자 옆에 함께 뛰어주는 페이스메이커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문학 수업 시간에 시나리오를 공부하게 되었고 영화로 만든 ‘페이스메이커’를 보았다. 영화는 자신의 그림자와 싸우는 게 마라톤이 아니라 그늘에 가려진 도움이들을 볼 수 있도록 시야를 넓혀주었다. 마라톤 중계방송은 혼자 뛰는 모습만 비춰주지만 영화는 여럿이 함께 우승자를 만들어 가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삶은 얼핏 혼자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곁에 누군가가 뛰고 있어 페이스를 유지할 수 있다는 교훈을 얻었다. 학생들에게 인생이 마라톤이라 할지라도 혼자 힘으로 견디기보다 함께 뛰어 줄 동료를 살피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수능을 앞두고 들러리만 서게 될 거라고 불안과 자조를 반복하는 학생들에게 페이스메이커는 현실성 없는 조합이다. 하지만 결승점까지 혼자 뛰어 본들 이미 앞서 간 주자들 등 뒤에서 다시 내 등 뒤를 돌아보는 일 외에 위안이 없을 때 페이스메이커를 떠올리기를 바랄 수는 있겠다. 애초부터 들러리가 아니라 페이스메이커로 뛰어 왔다면 다른 가능성에 도전해 볼 여지는 남는다. 인생이 길고 길어서 이번에는 페이스메이커였고 다음 구간은 누군가 나와 함께 페이스를 맞춰 주리라 기대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죽을힘을 다해 뛰면서도 누군가와 함께 할 수 있는 조합은 수능에만 없지 인생길 도처에 있다. ‘우리는 나보다 똑똑하다’가 진리가 된 시대에 수능은 ‘나보다도 못한 나’를 확인하게 하는 잔인한 ‘홀로마라톤’을 고수하고 있다.

올 해도 수능시험이 국가 행사로 치러졌다. ‘수능대박’ 같은 현수막 응원이 ‘공정한 입시 제도를 만들겠다’ 는 약속으로 바뀌었지만 인생 역주를 격려하는 각종 문구에 페이스메이커가 등장 할 자리는 없다. 학생들은 오롯이 혼자 뛰어 왔고 앞으로의 인생 여정이 수능길처럼 이어질 것이라 여긴다. ‘최선을 다한 학생과 학부모들의 노력만큼 좋은 성과가 있기를 빈다’ 는 덕담이 모든 학생들에게 성과를 보장해 주지 않는다. 모두 다 뜻을 이루기를 바라는 축원이지만 모두를 위한 수능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수능은 이런 살풍경마저 교사들에게 들이민다. 수능 고사장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이다. 독감에 걸린 학생이 기침을 멈추지 못 할 때 다른 수험생은 감독교사를 호출하고야 만다. “저 기침소리가 나의 집중을 방해하니 멈추도록 해 주세요.” 아픈 환자를 배려할 수 없는 교실에서 감독교사는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 해 쓰러지기도 한다. 승부를 건 비정한 독주 외에 페이스메이커의 온정을 품을 수 없게 설계된 길 위에서 교육자들이 쓰러지는 건 체력 탓만이 아니다. 평소에는 협력을 가르치다가 결과는 경쟁시켜 측정하고, 우정을 말하면서 승리를 쟁취하기를 바라야 한다. 수험생들은 긴장하다보니 예민해 지고 불안하다보니 절제 없이 감정을 뿜어낸다. 수험장이 고독한 독기로 차오를 때 수험생들처럼 감독 교사들도 뾰족해 진다. 수험생과 수험생, 그들과 교사 사이가 서로 가까워 질 수 없이 날이 서 간다. 학생이건 교사건 아프다면 몸이 다친 게 아니라 마음을 앓는 것이다.

수능을 마치면 수능독을 빼 준다는 응원이 이어진다. 사방에서 수능생 우대 상품들이 수험생을 자극한다. ‘고생했으니 일단 즐겨라’는 격려 행사가 매장마다, 식당에서, 성형외과까지 사고, 먹고, 고치라고 불러댄다. 먹어도 배부르지 못했고 잠을 많이 자거나 덜 자거나 스트레스였으므로 물건으로 자신을 채우고 얼굴과 몸매를 다듬어 자신감을 채우란다. 이제는 거꾸로 수능마케팅에 참가하기 위해 수험표만 받는 수능생이 늘고 있단다. 근데 공정하기 때문에 홀로 뛰는 수능을 바꿀 수 없다면 모두에게 주어진 마케팅 기회가 있으므로 수능마케팅은 공정한가? 수능마케팅에 엄카(엄마 카드)를 쓸 수 있는 학생은 수능 준비 과정에서도 엄마의 힘을 쓸 것이다. 수능 외의 선발 제도가 엄마찬스를 써서 문제라면 학생 혼자 뛰는 수능은 그 날 하루만 공정하게 보이는 것이다. 기회만 공정한 것으로야 수능마케팅도 외양으로는 매우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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