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책 백 권보다 즐거운 땀 한 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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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책 백 권보다 즐거운 땀 한 줄기
  • 최종규
  • 승인 2011.01.24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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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헬렌 니어링 엮음, 《하루에 한 줄, 일상의 즐거움》

― 하루에 한 줄, 일상의 즐거움 (헬렌 니어링 엮음,권도희 옮김,씨앗을뿌리는사람,2010.12.20./1만 원)

 하루에 책 한 줄 읽기 벅찬 사람이 있습니다. 하루에 책 한 줄은커녕 집에 책 몇 권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집안에 책 몇 권조차 아닌 한 권도 없이 지내는 사람도 있을 테지요. 흔하다는 텔레비전마저 없는 사람이 있을 테고요.

 집에 책이며 텔레비전이며 있으나, 거의 들여다볼 겨를이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집에 책이 조금 있으나 들추지는 못하고, 텔레비전만 멀거니 바라볼 사람이 있습니다.

 음력설을 보름쯤 앞둔 보름달은 몹시 밝습니다. 음력설을 코앞에 둔 반달도 무척 밝습니다. 음력설을 지나고 난 초승달도 꽤 밝습니다. 시골마을에서 사는 동안 새벽과 밤마다 하늘을 으레 올려다봅니다. 낮에도 하늘을 올려다보고 저녁에도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따로 시계를 들여다보기보다는 하늘을 바라보며 때를 헤아립니다. 하늘만 한 시계는 시골에 없습니다. 살갗으로 와닿는 바람만 한 시계 또한 멧골자락에 없습니다. 시골마을 일이란 시계 숫자에 따라 하지 않습니다. 하늘 움직임과 바람결에 따라 하는 멧골자락 일입니다.

 저녁 아홉 시에 잠들어 아침 일곱 시나 새벽 여섯 시에 일어난다는 틀이란 없습니다. 어두울 때 잠들어 어스름이 물러날 즈음 일어나면 넉넉합니다. 동이 틀 때에도 깨어도 좋고, 어둠이 깔릴 무렵 잠자리에 들어도 좋습니다. 봄부터 가을까지는 바지런히 일한 다음, 겨울 동안 겨울잠 자는 멧짐승처럼 사람도 옹크리면서 더 쉬고 더 자며 더 놀아도 즐겁습니다.

 그러고 보면, 온누리 아름다운 빛을 담은 책이란 하늘바라기 책이고 바다바라기 책이며 흙바라기 책이거나 꽃바라기 책입니다. 들풀 하나와 열매나무 하나를 사랑하는 넋을 싣는 책입니다. 사람이 서로 사랑하는 결이란 머리에 쌓는 지식이 아니라, 날마다 받아들거나 마련하는 밥상에 깃드는 고운 손길입니다. 고운 손길을 사랑하는 사람이지, 예쁘장한 얼굴이나 잘 빠진 몸매를 사랑할 사람이 아닙니다. 따스한 마음씨를 사랑할 사람이지, 엄청난 돈이나 잘난 이름값을 사랑할 사람이 아니에요. 좋은 사람, 좋은 삶, 좋은 꿈, 좋은 보금자리, 좋은 흙과 햇볕을 사랑할 사람입니다.

- 어딜 가나 사람들로 가득하고 돌림병 퍼뜨리는 불결한 공기가 짓누르는 도시에서 먼지와 매연을 들이마시면서 자기 영혼을 질식시키느니 장미와 재스민 꽃밭에서 살지 않겠는가? (19쪽 - 1666년/에이브러햄 카울리)
- 시골의 농민들은 거친 빵과 간소한 음식밖에 먹지 못해도, 자연이 줄 수 있는 가장 값비싸고 기름진 먹을 것이 아니면 만족하지 못하는 짐승 같은 식욕을 가지고 있는 도시의 대식가들보다 훨씬 몸이 가볍고 몸놀림이 활발하다. 최고급 음식과 음료에만 익숙한 이들은 세계에서 가장 건강하지 못한 사람들임에 틀림없다. (48쪽 - 1683년/토머스 트라이언)

 헬렌 니어링 님이 엮은 《하루에 한 줄, 일상의 즐거움》을 읽습니다. 지난 2004년에 《헬렌 니어링의 지혜의 말들》로 나왔던 책이 앙증맞다 싶은 판으로 새로 나왔습니다. 새판으로 읽든 옛판으로 읽든 슬기로운 말은 슬기로운 말입니다. 백 해 앞선 때 글이 있고 오백 해 앞선 때 글이 있는데, 어느 때 글이든 오늘날 읽으면서 오늘 내 삶을 밝히기에 즐거우면서 슬기로운 말마디입니다.

 다만, 새판이나 옛판이나 번역은 반갑지 않습니다. 새판으로 내놓으면서 번역글을 한결 다숩게 손질하지 못한 대목이 아쉽습니다. 새판이란, 껍데기만 새로 꾸미는 책이 아니라, 옛판에서 어설프거나 어리숙하게 선보였던 글월을 차근차근 북돋우거나 어루만지면서 아름다이 내놓는 새로운 선물이 되어야 하지 않느냐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이제는 현재의 내 삶의 방식에 대해 만족을 느끼게 되었다(33쪽)”는 도무지 말이 안 됩니다. ‘이제’를 한자말로 옮기면 ‘현재(現在)’입니다. “이제는 현재의”란 “현재는 현재의” 꼴이거나 “이제는 이제의” 꼴입니다. “이제는 내가 살아가는 하루를 즐겁게 느낀다”라든지 “이제는 오늘 내 하루를 흐뭇하게 느낀다”로 손질해야 알맞습니다. “나는 결코 박한 생활 방식을 권하는 것이 아니다(98쪽)”는 “나는 일부러 가난하게 살라고 말하지 않는다”로 손질해야겠다고 느낍니다. ‘박한 생활 방식’이란 무엇을 가리킬는지요. “그들은 생활에 필요한 많은 물건들을 자신의 농장에서 얻을 수 있고, 그렇게 해서 얻지 못하는 것이 있으면 잉여 작물을 판매해서 구하면 된다(224쪽)”는 “시골사람들은 살면서 쓸 모든 물건을 논밭에서 얻을 수 있고, 논밭에서 얻을 수 없으면 곡식이나 푸성귀를 팔아 사면 된다”로 손질해야겠구나 싶습니다. ‘얻다’를 두 차례 쓰다가 ‘구(求)하다’를 쓰는 모양새는 어설픕니다. 더욱이, 시골사람이 일하는 논밭이나 들판을 가리켜 자꾸 ‘농장(農場)’이라 하는데, 농장이란 “농사짓는 땅”을 가리키는 낱말일 뿐입니다. 농사짓는 땅이란 논밭이고, 짐승을 풀어서 기른다면 들판입니다. 더군다나, 시골사람들 삶을 말하는 글이라면 시골사람들 삶하고 잇닿은 말마디로 적바림해야 옳으리라 생각합니다. 시골사람들은 알아듣기 힘들거나 시골사람들은 안 쓰는 도시사람 말마디로 시골사람 삶을 이야기한다면 얼마나 부질없으랴 싶습니다. “수백만의 사람들에게 삶이란 고된 노동과 궁핍이라는 역경이요(270쪽)”는 “수많은 사람들한테 삶이란 고된 일과 가난이라는 가시밭길이요”쯤으로 손질하면 참 좋겠다고 느낍니다. 좋은 뜻을 품은 이야기를 적바림하는 책이라면 좋은 말로 옮기고, 사랑스러운 마음을 북돋우는 이야기를 담는다는 책이라면 사랑스러운 말로 쓸 수 있을 때에 즐겁습니다.

- 농부의 삶은 계절에 지배당했을지는 몰라도 도시 사람의 삶처럼 시계에 지배되지는 않았다. (86쪽 - 1951년/A.G.스트리드)
- 안락한 피서지를 찾아 이 지역에 오는 사람들은 그 너른 11월의 하늘이 펼치는 장관을 보지 못한다. (134쪽 - 1852년/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헬렌 니어링 님이 ‘옛책’을 뒤적여 ‘새책’을 엮은 까닭을 생각해 봅니다. 할 일이 없거나 말미가 남아돌아 옛글을 오늘날 새로 읽히려 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늘로 이어지는 슬기로운 옛사람 옛삶을 사랑하고픈 마음이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지식으로 삼을 말이 아니라, 내 하루 삶으로 받아들일 말이라고 느낍니다. 머리에 담을 이야기가 아니라, 몸으로 옮길 이야기라고 느낍니다. 좋은 책으로 삼아 머리맡에 놓기보다는, 좋은 깨우침으로 삼아 하루에 한 가지씩 몸소 즐기자고 여기며 이렇게 하나하나 옮겨적었다고 느낍니다.

 백 가지 지식이나 백 가지 멋진 말이 아닌, 한 가지 수수한 삶과 한 가지 사랑스러운 이야기를 갈무리하면서 당신을 돌보려 했다고 느낍니다.

- 채소든 과일이든 밭에서 난 것은 모두, 자기가 직접 재배한 것을 먹는 가난한 이가 그렇지 않은 부자보다 더 좋은 것을 먹는다. (262쪽 - 1826년/J.C.루던)
- 재산과 지위에 따르는 허울 좋은 불편함은 바보들이나 원하고, 사악한 사람들이나 갖는 것. 그의 단잠을 어지럽히지 않는다. (330쪽 - 1668년/에이브러햄 카울리)

 내 아이를 남이 맡아 줄 때에 내 아이가 한결 사랑스러우면서 아름다이 자랄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못난 어버이나 잘난 어버이는 따로 없습니다. 그저 아이 어버이입니다.

 더 이름높은 대학교를 마쳤다 해서 더 훌륭한 사람으로 거듭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대학교를 아예 안 다녔거나 중학교나 초등학교만 마쳤더라도 내 삶을 내 손으로 일구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누구나 훌륭하면서 아름답다고 느낍니다.

 더 많은 돈을 들여 더 값진 먹을거리를 사다 먹는다 해서 더 맛나게 즐길 만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 집 식구들이 다 함께 일하고 마련한 밥과 푸성귀로 차리는 수수한 밥상이 맛나면서 좋다고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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