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하게 살면서 아름다이 마주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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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하게 살면서 아름다이 마주하기
  • 최종규
  • 승인 2011.01.25 20: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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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가운 만화] 이두호, 《두손이》

― 두손이 (이두호 글·그림,GenaSona 펴냄,2003.11.15./8500원)

 우리가 날마다 꾸리는 삶을 담는 길은 여럿입니다. 첫째로는, 몸뚱이입니다. 살붙이랑 동무랑 이웃이랑 복닥이는 그대로 내 삶을 담습니다. 이야기꽃을 피우고 살림을 꾸리는 결 그대로 내 삶을 보여줍니다.

 둘째로, 노래와 춤입니다. 구성진 노래도 부르고 해맑은 노래도 부릅니다. 신나게 춤을 추고 구슬핀 몸짓을 실어 손짓 발짓 몸짓을 합니다.

 셋째로, 그림입니다. 흙땅에 나뭇가지로 그리든 종이에 먹을 찍거나 연필을 들든 그림을 그립니다. 넷째가 글이고, 다섯째가 오늘날 사진입니다. 영화와 연속극도 내 삶을 담는 길이 됩니다.

 생각해 보면, 그림은 아주 오래되었습니다. 종이에 남아 오늘까지 이어진 작품으로 쳐도 오래되었으나, 작품으로 남지 않고 동굴그림이나 벽그림으로 남은 그림도 몹시 오래되었습니다. 흙땅이나 모래밭에 그리던 그림이라면 참으로 헤일 길 없이 오래되었다 할 만합니다.

 만화는 그림 갈래에서 비롯한 새삼스러운 길입니다. 그림하고 글이 어우러지면서 남다른 길이 되었습니다. 만화는 여섯째나 일곱째쯤으로 ‘사람 삶을 나타내는 길’이라 할 수 있습니다. 흔히 아이들이나 좋아하는 만화라고 깎아내리지만, 아이들이 몹시 좋아한다는 소리란, 아이들이 쉽게 알아듣거나 받아들인다는 소리입니다. 아이들한테 쉽게 눈높이를 맞출 뿐더러, 학교 문턱을 오래도록 많이 밟지 않은 사람들 누구나 수월하게 마주할 만한 문화이자 예술이라는 소리입니다. 어린이부터 즐길 만한 길이요, 어린이와 함께 즐기면서 흐뭇한 삶이라는 뜻입니다.

.. “지금 달 떠 있지?” “아니, 달 안 떴어.” “하늘에 검은 구름이 잔뜩 끼었어.” “거짓말 마라! 달 떴다. 내 마음의 눈으로 다 보인다.” “너 점쟁이냐?” “아니다. 거짓말하지 않는 올바른 마음은 보이지 않는 것도 다 볼 수 있는 법이다.” ..  (56∼57쪽)

 만화를 만화 그대로 살피지 못하는 어른들은 만화를 얕잡습니다. 만화가 얼마나 사랑스러우면서 그윽한 삶자락 하나인지 읽지 못하는 어른들은 만화를 멀리합니다. 만화에 담는 삶에 어떠한 멋과 맛이 깃드는지를 껴안지 않는 어른들은 만화를 비웃거나 까맣게 모를 뿐더러, 더 너른 삶밭을 만나지 못합니다.

 만화는 아주 쉽습니다. 만화는 머리를 지끈지끈 앓도록 하지 않습니다. 만화는 억지스레 꾸미지 못합니다. 만화는 그림 하나와 말 하나로 모든 삶을 나타냅니다. 만화는 우리 삶을 고스란히 담을 뿐 아니라 우리 꿈을 남김없이 보여줍니다. 만화로 들려주는 이야기에는 울타리가 없습니다. 글을 몰라도 즐기는 만화요, 글 없이도 좋아할 수 있는 만화입니다. 만화는 신나는 이야기꽃입니다. 만화는 고운 삶꽃입니다.

 쉬우면서 고운 이야기꽃인 만화인 터라, 만화는 푸대접받거나 따돌림받습니다. 먼 옛날, 여느 사람 누구나 쉽게 배워 쉽게 쓰며 쉽게 생각을 나누도록 도와줄 글인 한글(훈민정음)이 막대접을 받거나 따돌림을 받았듯, 만화처럼 울타리 없고 스스럼없는 문화요 예술은 제 대접을 못 받습니다.

 만화에는 권력이 없고, 만화쟁이는 권력모임을 꾸릴 수 없습니다. 만화가 벗하는 사람이란 이 땅 가장 낮은 자리에서 숨죽이는 사람입니다. 어린이하고 사귀며, 글을 잘 모르는 사람하고 사귑니다. 경제도 사상도 철학도 역사도 정치도 문학도, 만화하고 어우러지거나 만화로 다시금 빚으면 놀랍도록 사랑스러운 이야기꽃으로 거듭납니다.

 권력자는 만화를 깎아내릴밖에 없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만화 맛과 멋을 즐긴다면, 권력자 꿍꿍이는 금세 까밝혀지기 때문입니다. 교사는 만화를 손사래칠밖에 없습니다. 만화는 아주 쉽고 재미나며 주먹다짐 없이 가르치는데, 교사는 딱딱한 지식을 무시무시한 몽둥이를 한손에 들고는 머리속에 쑤셔넣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 “그리고 또 나는 노인을 공경할 줄 알고 어린 것을 귀여워할 줄 알며, 나보다 약한 자를 건드린 적이 없고, 나보다 강한 자에게 비겁해 본 적이 없다. 남의 물건을 훔친 적이 없고 아무 데서나 침 뱉고 오줌 눈 적도 없다. 난 길에 더러운 게 떨어져 있으면 치울 줄 알고, 밭이나 들에 난 어린 싹을 밟지 않고, 산짐승을 만나도 새끼를 잡지 않지. 특히 난 욕심이 없어 마음이 늘 푸르지. 이만하면 되었느냐? 이만하면 내가 양반인 이유가 충분하냐고?” “그럼 네가 나와 같은 양반이다, 그거냐?” “뭐? 내가 언제 너보고 양반이라고 했느냐? 내가 보기엔 너나 이 사람들이나 마찬가지다. 너의 선조들은 똑똑했고 이 사람들의 선조는 똑똑하지 못해서 지금 처지가 달라졌을 뿐이지.” ..  (109∼111쪽)

 만화쟁이 이두호 님 작품 《두손이》를 읽습니다. 혼자서도 읽고 옆지기하고도 읽다가는 요사이에는 아이하고도 읽습니다. 읽을 때마다 새로운 맛이고, 다시 읽을 때마다 시원시원한 그림칸 요 구석 조 구석 다시 돌아봅니다. 처음 볼 때에 느끼던 맛을 다시 볼 때 거듭 느끼기도 하지만, 처음 보던 때에 지나치던 대목을 다시 보면서 새삼스레 깨닫기도 합니다.

 혼자 볼 때랑 둘셋이서 볼 때랑 다릅니다. 말없이 책장을 넘길 때하고 아이한테 한 대목씩 짚으며 이야기 살을 붙일 때하고 다릅니다.

 만화는 만화 그대로 좋기 때문에, 어른 혼자 읽든 아이 혼자 즐기든 좋습니다. 한 걸음 나아가, 나와 내 아이가 함께 즐긴다든지, 나와 옆지기가 나란히 즐길 만화를 생각한다면, 숱한 만화책 모두 장만할 수는 없습니다. 이 가운데 우리 삶을 착하면서 아름다이 돌보는 데에 길동무가 될 작품을 추립니다. 두고두고 읽을 만화를 고릅니다. 길이길이 사랑할 만화를 살림집 책꽂이에 꽂습니다. 오래오래 아낄 만화를 집식구 모두 보드라운 손길로 어루만집니다.

.. 우리 나라는 신문물을 죄악시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신문물에 지고 말아 반만 년 역사의 나라를 빼앗기기까지 했습니다. 그런 때도 조상들은 조국 사랑은 바로 우리 마을 사랑이고, 우리 자신을 아끼는 것이 나라를 아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느껴집니다 ..  (그린이 말)

 《두손이》는 서양사람이 조선땅에 막 쳐들어오던 무렵 바닷가 여느 마을 사람들 살림살이를 다룹니다. 이 조선땅은 강화섬이나 인천 앞바다일 수 있고, 목포나 군산 둘레일 수 있습니다. 바닷마을 생김새로 보아서는, 또 서양(러시아) 군함이 쳐들어오는 흐름을 보아서는 거문도는 아니고, 강화섬이나 인천, 또는 북녘땅 황해도 께로 여길 만하지만, 한양 들머리인 강화섬이나 인천 영종섬 즈음을 무대로 삼았으리라 생각합니다.

 뭐, 무대야 어디이든 좋습니다. 나오는 사람들이 백정이든 중인이든 농사꾼이든 양반이든 임금님이든 좋습니다. 무엇을 다루고 어떻게 보여주며 누구하고 말벗을 삼으려는 이야기인가를 살필 노릇입니다. 만화를 그린 이두호 님이 어느 자리에서 어떤 사람하고 이웃하는가를 느낄 노릇입니다.

 한 권으로 끝맺지 말고, ‘두손이’가 ‘방실이’하고 서양으로 떠나며 ‘배워서 돌아와 이 나라를 살찌우겠다’고 다짐하는 이야기를 2권으로 그린다든지, 3권째에는 조선으로 돌아와 복닥이는 삶을 그린다든지, 4권째에는 식민지살이를 그린다든지, 5권째에는 해방과 한국전쟁을 그린다든지, 6권째에는 이동안 아이를 낳아 함께 키우는 나날을 그린다든지, 7권째에는 어둡지만 빛을 보는 가난한 사람들 살림자락을 그린다든지, 8권째에는 고향을 잃거나 잊어야 하는 농사꾼 살림살이를 그린다든지, 9권째에는 눈부신 경제개발 그늘에 드리운 사람들 땀방울과 한숨을 그린다든지, 10권째에는 오늘을 새롭게 살아가는 손자나 증손자를 바라보며 조용히 숨을 거두는 마지막 숨결을 그린다든지 할 수 있어요.

 짧은만화는 짧은만화대로 내 나름대로 생각날개를 펼칠 수 있어 좋습니다. 길게 내다보면서 온삶을 두루 담는 긴만화는 긴만화대로 좋습니다. 이두호 님이 다른 걱정을 하지 않고 만화그리기에만 온마음 바칠 수 있다면, 《두손이》는 1권으로 끝이 아닌 10부작 만화쯤 될 수 있으리라 봅니다. 그러나, 우리 나라 터전에서는 《두손이》라는 만화책 하나 태어난 일로도 반가우며 기쁩니다.

 ‘두손이’는 힘과 이름과 돈 하나 없지만 착한 마음과 슬기로운 넋과 아름다운 생각으로 살아갑니다. 힘보다 사랑이 좋고, 이름보다 믿음이 좋으며, 돈보다 아름다움을 찾습니다.

 착하게 살아야 착한 만화를 알아보며 즐깁니다. 아름다이 살려고 힘쓸 때에 아름다이 어우러지는 만화를 살포시 껴안습니다. 나부터 오늘 하루 새롭게 착하고 아름다이 아이랑 옆지기랑 어깨동무하자고 다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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