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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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 유은하
  • 승인 2011.01.31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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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칼럼] 유은하 / 강화 화도마리공부방·사회복지사


2011년을 맞이하자마자 한 사람이 떠났다. 나를 세상에 태어나게 했으며 나를 키웠으며 나를 위해 언제든지 목숨을 내어줄 수 있는 사람, 아버지다. 아버지는 6개월간 투병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우리가 죽으면 어떻게 될까?  썩는다. 몸의 세포는 돌고 돌아 다시 사람으로 구성될 터이다. 내 안에는 부모님의 유전자가 있다. 이뿐만 아니라 수많은 옛 조상들의 유전자도 들어 있다. 인류에게 존경을 받는 성인(聖人)의 유전자도 있고, 희대의 살인마였던 흉악범들의 유전자도 있을 것이다. 그것이 어떻게 발현되느냐는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이 이렇게 저렇게 살아가는 데 대해 신경을 많이 쓴다. 나만 잘 들여다보아도 세상의 모든 걸 알 수 있다. 내가 어떻게 사는지 잘 들여다보는 게 중요하다. 

아버지는 나에게 무엇이었나?  이정표였다. 삶에 문제가 생기고, 공부에 문제가 생길 때 아버지를 떠올렸고, 아버지를 찾았다. 특별히 아버지가 내게 어떤 비답을 주지는 않았다. 말없이 또는 완강하게 내 앞에 서 있었음에도 더 큰 스승에게 접속시켜 주었다.

부모의 최고 미덕은 무엇일까? 자식을 훌륭한 스승에게 연결시켜주는 것이었다. 옛날에 라이벌인 학자 둘이 있었는데, 이들은 각자 아들들을 라이벌에게 가서 배우라고 했다. 내 아버지가 그처럼 훌륭한 학자나 고매한 인품을 가진 사람은 아니었다. 특별히 어떤 스승에게 찾아가라고 일러준 적도 없었다. 그러나 중요한 건, 아버지는 내가 세상에 나아가 고단하고 흔들릴 때마다 스스로 헤쳐나갈 수 있는 힘을 길러주었다.

그런데 아버지가 세상에 없다는 그 사실 하나가 내 마음을 먹먹하게 하고, 허전하고, 끈 떨어진 연 같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어찌할 수 없는 눈물이 가슴 안에 흘러내린다.

누군가를 위해 목숨을 내어줄 수 있다는 그 사랑은 어떤 것일까? 나도 자식을 키우는 부모이다. 물론 나도 내 자식을 위해 목숨을 버릴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런데 의문이 드는 건 내가 도저히 포기할 수 없는 내 삶이 존재한다는 일이다. 그걸 포기하면서 자식을 위해 목숨을 던질 수 있을까? 과연.

그런데 우리네 부모들은 다르다. 거의 헌신적으로 자식을 위해 일평생을 바쳤다. 목숨까지 담보로 하면서. 하지만 오늘날 부모들의 모습도 다 그럴지 자신할 수는 없다.

누군가를 위해 목숨을 내어줄 수 있는 신체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까지 내 안에서 어떤 존재를 만들어 내는 건 쉽지 않다.

‘너는 그런 사랑을 하고 있니?’라고 묻는다면 ‘아마 그럴걸…. 글쎄….’

우리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감정에 대해 확신이 없으면 살 수 없는 세계에 살고 있다. 내 존재를 다 걸고 사랑해본 사람은 세상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 마음의 강도나 크기를 보아야 한다. 진정하게 사랑하면 내 몸의 세포들이 다 조정된다.

들뢰즈는 “우리가 사랑한다는 것은 저 사람이 와서 내 몸을 관통해서 나가는 것이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골목에서 오더라도 그 사람만 보인다.”고 하였다.

기억은 세포 하나하나가 다 한다. 세포는 모든 기능을 할 수 있는데, 지금은 하나의 역할만 하고 있다. 위급한 상황이면 엄청난 에너지가 나온다. 오늘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 죽음이 없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러면 죽는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서 산다.

그래서 내 안 모든 세포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 아버지가 물려주고 심어주고 키워준, 도저히 끊을 수 없는 정이라는 걸 끝까지 품고, 지켜나가야 할 터이다. 삶은 오로지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얼마나 진지하게 지켜나가느냐밖에 없다. 위대하다 찌질하다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한 번도 기득권을 가져보지 못했던 아버지. 자식이 기득권층이 되길 바랐던 아버지. 그런데 나는 언제나 소수자였다.

다수는 욕망이 똑같은 사람들끼리 모여 있는 것이다. 똑같은 욕망에 포획되지 않는 자들. 소수자. 소수자로 산다는 건 모든 사람들이 다 자기 욕망을 갖고 살아간다는 것. 어떤 것도 다 할 수 있는 사람. 자기 욕망, 자신이 꿈꾼 세상을 실현해낼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나는 여성으로 태어났다. 여성이라는 존재는 소수자이다. 극심한 상황에 몰려있으면서도 자신의 존재를 무너뜨리지 않고 남성들보다 더 삶에 생명력을 갖고 살아가는 존재이다. 존재가 세계와 부딪치는 지점이 어딘 줄 알고 나아가는 게 소수자인 여성이다.

아버지가 생전에 한 마디 하셨다.

‘나 스스로를 뛰어넘어야 한다는 게 뭔지 아니?’

나를 뛰어넘으면 어떤 세계가 열릴까?

백척간두진일보란 말이 있다. 낭떠러지에 서는 것도 자신이 하는 것이며, 한 걸음 나아가는 것도 자신이 하는 것이다. 그 앞에 어떤 세계가 열릴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내가 쉬고 있는 이 숨 한 번이다. 아버지를 딛고 우뚝 일어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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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군 2011-01-31 10:08:48
어려운 일을 겪으셨군요. 하늘의 위로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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