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스타 성공스토리'일 수 없는 '여민지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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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스타 성공스토리'일 수 없는 '여민지 일기'
  • 최종규
  • 승인 2011.02.07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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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여민지, 《일기가 나를 키웠어요》

― 일기가 나를 키웠어요 (여민지 글,이혜경 구성,이지후 그림,명진출판 펴냄,2011.1.15./12000원)

 축구선수 여민지 님은 발등으로 공을 톡톡 차는 훈련이 있는지조차 모르면서 그저 공차기를 좋아하며 무럭무럭 컸습니다. 공차기를 하도 좋아하다 보니 축구선수가 되는 길을 걷고, 초등학생 때부터 ‘합숙 훈련’을 하면서 지냅니다. 공을 차는 선수는 하루라도 공 느낌을 잃으면 안 되기 때문에 날마다 삼천 번쯤 ‘발등으로 공 튕기기’를 한다는데, 여민지 님은 이를 악물며 오천 번을 했다고 합니다. 성장통에다가 경기를 하다가 다치는 바람에 수술을 여러 차례 했으나, 꿋꿋하게 다시 일어서면서 오늘날처럼 한국에서 널리 이름난 선수로 우뚝 섭니다.

 이제 여민지 선수 움직임은 마치 연예인 움직임마냥 ‘실시간 인터넷 중계’가 되는 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이제 막 열여덟 살이 된 여민지 님인데, ‘고향 방문 기사’가 뜨고, ‘연예인과 커플댄스 추는 방송’에 나오며, ‘청와대에서 불러 여러 운동선수와 함께 대통령을 만나’는 한편, 요즈막에 새로 펴낸 책 ‘출판기념 사인회’를 하기까지 합니다.

.. 일 주일 동안 훈련하면서 느낀 점 : 먼저 이론 공부. 많은 지식. 경게 대한 것을 많이 알게 되었고, 많은 도움이 된 것 같다. 패스의 질과 테크닉 등 모든 훈련이 머리와 몸에 조금씩 터득한 것 같고, 원래 하던 운동과 달리, 다른 새로운 운동을 해서 재미있었고, 새로운 것도 많이 배웠다. 그래서 기분이 좋다. 앞으로 하루하루가 아주 소중할 것이다. 감독 선생님께서 계속 계속 훈련시킬 것을 연구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나는 많이 배워서 하나하나씩 더 알고 배우는 자세를 가져야겠다. 지적해 주시는 점을 고치려고 노력하고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말아야 되겠다. 그리고 운동 시간에 집중력을 갖고 집중해야겠다 ..  (20쪽)

 여민지 님은 퍽 일찍부터 ‘축구일기’를 썼다고 합니다. 여민지 님한테 축구를 제대로 가르친 초등학교 축구감독이 그날그날 훈련하며 익힌 여러 가지를 ‘잘 한 대목과 잘 못한 대목’을 살피어 일기로 적어 보라고 시켰다고 합니다.

 축구를 하는 사람이니 아주 마땅히 축구일기를 써야 합니다. 야구를 하는 사람이라면 야구일기를 써야 할 테지요. 책을 읽는 사람은 책일기를 씁니다. 운동선수 아닌 여느 초등학생이라면 ‘생활일기’를 씁니다. 곧, 하루하루 살아가는 이야기를 쓰는 일기예요. 운동선수로서는 날마다 운동 경기나 훈련을 하니까 ‘운동일기’가 됩니다.

 어떤 사람은 글쓰기가 익숙하지 않아 일기를 안 씁니다. 일기를 안 쓰더라도 머리와 손과 몸과 마음으로 잘 갈무리할 수 있으면 좋습니다. 머리와 손과 몸과 마음으로 잘 갈무리하기 힘들기 때문에 글과 종이를 빌어 일기를 씁니다.

 지난날부터 이 땅에서 집살림을 도맡던 어머님들 가운데 ‘살림일기’를 쓴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여자한테 글을 가르치지 않았을 뿐더러, 글을 배운 여자는 살림을 하지 않았으니까요. 그런데 예나 이제나 온갖 집살림은 몸에서 몸으로 고이 이어집니다. 어디 종이나 책에 적어 놓은 이야기는 없는데, 손맛에서 손맛으로 손길에서 손길로 손품에서 손품으로 고스란히 이어옵니다.

 밥을 할 때에 쌀 몇 그램에 물 몇 그램을 넣어 불을 얼마만 한 크기가 되도록 장작을 얼마만큼 넣어 몇 분 동안 끓여서 뜸은 몇 분을 들이는가 같은 잣대가 적힌 일은 한 차례도 없습니다. 밥솥은 크기가 어떠해야 하고, 밭솥은 어떻게 닦아서 건사해야 한다는 이야기 또한 한 차례조차 적힌 일이 없습니다. 걸레질은 어떻게 하고, 힘은 어떻게 주며, 바닥에 어떻게 꿇어앉아 어디부터 어디를 닦아야 하느냐 또한 ‘살림일기’ 같은 데에 적힌 적이 없고, 양반이나 지식인이 살림살이를 눈여겨보며 적바림해 준 적 또한 없어요.

 생각해 보면, 가장 훌륭한 일기란 ‘글일기’ 아닌 ‘몸일기’라 할 만합니다. 몸에 아로새겨서 몸으로 곧장 움직이도록 이끄는 일기야말로 가장 아름답다 할 만합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저녁에 잠들기까지 축구만 생각하는 선수라면, 아주 마땅히, 모든 축구 훈련과 경기를 머리와 몸에 아로새기겠지요. 꼭 축구일기를 써야 축구를 잘하는 선수가 되지 않고, 축구일기를 안 쓰면 축구를 못하는 바보가 되지 않습니다.

 여느 자리에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어린이나 어른도 마찬가지입니다. 일기를 꼬박꼬박 쓴대서 하루를 슬기롭게 돌아보거나 가만히 뉘우치지 않습니다. 일기를 건너뛰거나 거른다 해서 하루를 엉터리로 보내거나 하나도 못 떠올리지 않습니다.

 삶을 읽을 줄 아는 눈매가 맨 먼저입니다. 삶을 사랑하는 매무새를 가다듬고, 내 삶을 아끼듯 내 이웃 삶을 아끼는 몸가짐으로 이어가도록 되새기자며 일기를 씁니다.

 《일기가 나를 키웠어요》를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여민지 님이 이름난 선수가 되었기에 이 일기책이 사랑받을 만하지 않습니다. 여민지 님이 뜻을 이루지 못했다든지 그닥 이름없는 선수로 마무리했다면, 이 일기책을 누가 눈여겨보거나 값있거나 뜻있다 했으려나요.

 되레, 여민지 선수한테는, 치르는 경기마다 족족 잘못투성이에다가 골은 못 넣으며 지기만 했다면, 이러는 가운데 일기를 참으로 꼬박꼬박 쓰면서 스물을 넘기고 서른을 맞이하며 마흔까지 나아갔다면, 한결 값있으면서 멋있는데다가 뜻있다 할 수 있다고 느낍니다.

 일기는 자서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일기는 성공담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일기는 자랑이나 광고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일기는 그저 일기입니다. “일기가 나를 키웠어요”가 아니라, “나 스스로 내 삶을 돌아보면서 사랑하도록 가르치고 돌본 어버이와 동무와 선생님들이 나를 키웠어요”라 말해야 올바릅니다.

- 낙하지점 찾아가서 점프헤딩으로 높게 멀리 클리어하고, 그 동작까지 연결한다. 킥타이밍에 물러났다가 볼이 짧으니깐 다시 올라서면서 heading 클리어. (29쪽)
- pude up 후 발목을 이용해서 in side, out side로 강약을 조절하면서 tuch. pude up 후 v자 형식으로 방향 바꿔 가면서 sole 으로 drak back. (32쪽)
- 오늘 내 play는 전혀 마음에 드는 play를 하지 못했다. 볼소유도 못하고 자꾸 뺏기고, 상대에게 걸리고 잘 풀리지 못했다. (34쪽)

 여민지 님 일기를 보면, 온통 영어투성이입니다. 나중에 나라밖 여자축구단에서 뛰고픈 꿈으로 영어를 배우려고 영어를 썼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낱말만 영어로 적는다 해서 영어 공부가 되지 않아요. 참말 영어 공부를 하자면 ‘문장을 송두리째 영어로 적어야’ 합니다. 영어 공부 아닌 ‘축구일기’ 쓰기라 한다면, 일기에 섣불리 영어를 드러내어 적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일기야, 남한테 보여주는 글이 아니라 혼자서 돌아보는 글이니, 이렇게 쓰든 저렇게 쓰든 여민지 님 마음입니다. 그런데, 축구란 어떻게 하는 경기인가요. 이 일기책에도 나오지만, 축구는 혼자서 펼치는 운동일까요, 운동장에서 뛰는 열한 사람과 뒤쪽에 물러나 앉은 감독들하고 후보선수가 함께 펼치는 운동일까요. 일기를 어떠한 글로 적어야 아름다운가를 여민지 선수 스스로 슬기롭게 깨달으면 좋겠습니다.

 그렇지만, 다시금 생각하면, 여민지 선수 둘레에서 축구를 가르치거나 삶을 나누는 어른들이 모조리 영어를 아무 데에서나 함부로 쓰니까, 여민지 선수처럼 어린 사람은 이런 어른들 말투를 그대로 받아들일밖에 없습니다. 어른들이 ‘play’를 말하니까, 여민지 선수도 따라서 익숙해집니다.

 《일기가 나를 키웠어요》를 덮으며 한 가지를 더 생각합니다. 이 일기책은 여민지 선수가 쓴 일기로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앞쪽에는 여민지 선수 일기 가운데 몇 쪽을 통째로 옮겨서 사진으로 붙였고, 뒤쪽 5/6는 ‘중앙대 문예창작학과를 나와 신춘문예에 소설이 뽑힌’ 분이 ‘구성·정리’를 했습니다. 뒤쪽 5/6 또한 여민지 선수가 쓴 일기에 담긴 줄거리라 하지만, 뒤쪽 이야기는 여민지 선수 목소리나 숨결이 아닙니다. 뒤쪽 5/6은 ‘일기 아닌 성공담’을 보여주는 위인전이 되고 맙니다.

 여민지 선수 일기를 책으로 묶은 명진출판사는 “제2의 반기문, 제2의 오바마를 키웁니다”라는 목표를 내걸며 어린이책과 청소년책을 만든다고 책 앞머리에서 밝힙니다. 곧, 이 일기책 《일기가 나를 키웠어요》는 “제2의 박지성” 뜻을 이룬 ‘축구스타 여민지’를 다룬 책이요, “제2의 여민지”가 태어나도록 하겠다는 책이라 하겠습니다.

 앞으로 여민지 님처럼 공을 잘 차면서, 공차기 하나로 좋은 뜻을 이루는 어린이와 푸름이가 하나둘 태어나는 일은 반갑습니다. 그런데 하나 궁금합니다. 여민지 님을 축구선수로 키워 온 감독님이나 코치님들은 여민지 님한테 ‘공만 잘 차면 된다’고 했던가요. 김은정 코치님이 여민지 선수한테 했던 이야기(110∼111쪽)를 떠올린다면, 《일기가 나를 키웠어요》라는 책은 짜임새나 얼거리나 만듦새 모두 슬프며 안타깝습니다. 여민지 선수는 ‘잘난’ 축구선수가 아니라 ‘씩씩한’ 축구선수요, ‘이름난’ 대표선수가 아니라 ‘축구를 하며 즐겁게 놀 줄 아는’ 푸름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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