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이 일구는 내 보금자리에서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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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이 일구는 내 보금자리에서 놀자
  • 최종규
  • 승인 2011.02.17 18: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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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이 좋다] 사토미 이치카와, 《우리 함께 날자》

 프랑스 파리에서 살아가면서 그림을 그리는 사토미 이치카와 님은 당신이 뿌리를 내리며 그림을 그리는 터전 프랑스 파리를 사랑합니다.

 프랑스 파리가 온누리에 손꼽히거나 잘 알려진 곳이라서 프랑스 파리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저 그림쟁이 사토미 이치카와 님한테 사랑스럽다는 느낌과 생각이 어우러지면서 이곳을 사랑합니다.

 많은 사람이 드나든다든지 찾아간다든지 해서 이러한 곳이 더 사랑스러울 수 없습니다. 일본과 중국 관광객이 끝없이 몰려다니는 서울 인사동이 더 사랑스러울 수 없어요. 사랑스러움이란 마음속에서 절로 우러나오는 기운입니다. 스스로 샘솟고 가만히 솟구쳐야 비로소 사랑이에요. 억지로 심을 수 없으며, 애써 붙잡을 수 없는 사랑입니다.

 사토미 이치카와 님은 프랑스 파리에서 즐겁게 살아갑니다. 몹시 즐겁게 살아가는 터라, 나무 비행기랑 곰 인형이랑 서로 동무가 되어 하늘을 싱싱 날면서 프랑스 파리를 죽 구경합니다. 언제나 집에서만 머물던 두 동무는 ‘나도 비행기이니까’ 못 날 까닭이 없다며 참말 창밖으로 휭 날아갑니다. 즐거이 날다가 비구름을 만나 그만 어느 집 지붕에 토옥 떨어지지만, 비가 갠 하늘을 다시금 신나게 날아다닙니다.

 아마, 그림쟁이 사토미 이치카와 님 마음이 이들 나무 비행기랑 곰 인형 마음이 아닐까 싶은데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엉덩이가 무거워야 합니다. 글을 쓰는 사람도 엉덩이가 무거워야 할 테지요. 한 자리에 진득하게 앉아서 그림과 글을 여미어야 하니까요. 마음으로는 더없이 사랑하는 터전에 보금자리를 틀었으나, 막상 더없이 사랑하는 터전을 홀가분하게 돌아다니면서 둘러보지는 못할 수 있습니다. 아니, 언제나 기쁘게 이리 뛰고 저리 달리며 구경하지 못하겠지요. 창턱에 턱을 기대고 앉았다가 문득 마음속으로 요리 날고 저리 춤추며 하늘을 걸어다니는 꿈을 꾸겠지요.

.. 코스모스는 나무 비행기예요. 지금까지 한 번도 집 밖으로 나간 적이 없어요. 하루는 코스모스가 소리를 빽 질렀지요. “너무 답답해!” 강아지 인형 우기가 깜짝 놀라 물었어요. “무슨 일이야?” “저 넓은 하늘 위로 씽씽 날고 싶어.” 코스모스와 우기는 베란다 너머 바깥세상을 바라보았어요 ..  (3쪽)

 사토미 이치카와 님 《우리 함께 날자》는 놀잇감인 비행기와 인형이 프랑스 파리 시내를 휭휭 싱싱 살랑살랑 한들한들 날아다니는 이야기를 담습니다. 프랑스 파리 시내인 까닭에 에펠탑이 살짝 나오지만, 에펠탑보다는 여느 프랑스사람들 살림집 모습이 처음부터 끝까지 가득합니다. 프랑스 파리에는 에펠탑도 있으나, 에펠탑이 있기 앞서 여느 사람들 살림집이 있었고, 에펠탑이 선 뒤에도 여느 사람들 살림집이 있으며, 바로 이들 여느 사람들 살림집이 있기 때문에 에펠탑이 돋보이는 한편, 파리가 아름답습니다.

 프랑스요 파리이니 에펠탑도 보여줍니다. 그런데, 《우리 함께 날자》에 나오는 에펠탑은 홀로 우뚝 솟아 우람하게 뽐내며 둘레 키낮은 집을 내려다보는 에펠탑이 아닙니다. 키낮은 여느 살림집이랑 올망졸망 어깨동무하는 수수한 에펠탑입니다. 골고루 섞이는 탑이고 집이며 성당입니다. 집 사이사이 푸른빛 잎사귀를 내보이는 나무요 이들 나무와 지붕 사이를 오가는 새랑 골목고양이입니다. 할아버지도 살고 어린이도 살며 아주머니도 살아가는 시내입니다. 예술이니 문화이니 무엇이니에 앞서, 사람이 살아가는 터전인 파리예요.

 그림책 《우리 함께 날자》는 내가 사랑하는 터전을 한껏 즐거이 껴안으면서 기쁘게 나누는 마음을 보여줍니다. 프랑스이니까, 파리이니까, 이름난 관광지이니까, 이런저런 까닭을 들면서 내세우는 그림이 아니라, 그저 내가 사랑하며 좋아하고 아끼는 보금자리를 조촐히 나누고 싶은 그림입니다.

 추억이 어리는 골목이 아니고, 잊혀져 가는 골목이 아니며, 아파트에 밀려 사라지는 골목이 아니에요. 예나 이제나 가난하면서 아름다이 삶을 일구는 사람들이 복닥이는 골목입니다. 언제나 꽃내음 물씬 나는 터전으로 흐드러지는 골목입니다. 스스로 뽐내지 않으나 스스로 깎아내리지도 않는 호젓한 삶터인 골목입니다.

.. 두 친구는 둥근 지붕 아래 나란히 앉았어요. “우아, 정말 멋있다! 여기 오기를 잘했어.” 코스모스가 웃으며 말했어요. “응, 하지만 너랑 와서 더 좋아!” 우기도 함께 웃으며 말했지요 ..  (29쪽)

 누군가는 주문진 보금자리를 좋아하겠지요. 누군가는 서귀포 보금자리를 기뻐하겠지요. 누군가는 괴산 보금자리를 즐기겠지요. 누군가는 전주 보금자리를 아끼겠지요. 누군가는 인천 보금자리를 사랑하겠지요. 누군가는 상주 보금자리를 보듬겠지요.

 어디이든 내 사랑을 깃들일 수 있어야 아름답습니다. 어느 곳에서건 나 스스로 아름다운 꿈과 넋으로 살아가야 아름답습니다. 나부터 내 살림살이와 내 몸가짐이 아름다울 때라야 비로소 내가 선 땅이 아름답도록 일굽니다. 나부터 아름답게 살아가지 않는다면, 아름답게 일굴 터전을 알아보지 못할 뿐 아니라, ‘아름다이 일구기’를 깨닫지 못해요.

 지식으로 할 수 있는 ‘아름다이 일구기’가 아니라, 내가 살아가는 결 그대로 아름다이 일구기를 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한테서 배워야 아름다이 일구기를 할 수 있지 않습니다. 나 스스로 깨닫고 깨우치며 알아채야 바야흐로 아름다이 일구기를 합니다.

 돈이 더 많아야 아름다워지지 않습니다. 이름값이 더 높아야 아름다워지지 않습니다. 겉보기로 예쁘장하다든가 줄이 잘 맞는다거나 놀랍다거나 새삼스러워야 아름답다 하지 않습니다. 따스한 사랑과 넉넉한 믿음이 얼크러질 때에 아름답습니다. 낡았다고 안 아름답거나 새롭다고 아름다울 수 없습니다. 오래되었을 때에는 오래된 대로 아름답고, 새로울 때에는 새로운 대로 아름다워요. 푸르고 파라며 하얀 빛깔 곱게 어우러진 그림책 하나를 들추면 즐겁습니다.

― 우리 함께 날자 (사토미 이치카와 글·그림,강도은 옮김,파랑새 펴냄,2010.10.5./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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