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은 없고 슈퍼우먼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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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맘은 없고 슈퍼우먼만 있다"
  • 이성은
  • 승인 2011.03.01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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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칼럼] 이성은 경인여대 교수 / 간호과

- 아이를 가진, 일하는 여성의 하루 -

과거 박사과정 중 강의 시간에 연세 지긋하신 여교수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석사와 박사를 하는 것만이 학위(degree)가 아니라 엄마가 되어 아이를 키워내는 과정을 거친 사람에게도 학위를 주어야 한다던 말씀을 당시 미혼이었던 나는 큰 의미 없이 그냥 그렇게 농담처럼 흘려들었다.


그러나 늦은 나이에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  늦잠이 그리운 겨울에도 어김없이 6시면 일어나야 한다. 29개월과 5살의 두 아이에게는 따뜻한 밥과 국이 필요하다. 서둘러 가벼운 식사를 준비하고 두 아이를 깨운다. 씻기고 아침을 먹이는 일이 글로는 이토록 간단하건만 출근시간을 맞추어야 하는 엄마와 아이의 '아침전쟁'이 시작된다. 짜증과 재촉, 그리고 아이의 앙탈과 울음은 일상이다. 화장하고 옷이라도 챙겨 입으려면 아침밥을 먹는 호사(豪奢)는 고스란히 반납해야 한다. 작은 아이를 베이비시터에게 맡기고 큰아이는 유치원에 보내며 빠르게 차를 몰아 출근한다. 유달리 감기를 달고 사는 큰아이 데리고 아침에 병원에라도 가야 하는 날에는 더욱 바쁘다. 진료가 밀리는 날에는 애간장이 탄다. 아직은 어린 두 아이를 베이비시터 손에 함께 맡기기가 불안하여 친정 근처에 살아 도움을 받다 보니 서울과 인천을 매일 출퇴근한다. 차라도 막히는 날에는 안타까움에 발을 동동 구르게 된다. 운전하는 차안에서도 이어폰을 끼고 여러 가지 업무를 해결한다. 학과 조교, 그리고 학생과 통화하고 건강이 안 좋으신 친가와 외가 어르신들께도 안부전화를 한다. 그밖에도 잡단한 집안 일은 전화로 해결한다. 드디어 학교에 도착! 연구실에 들어오며 커피 한 잔을 뽑아 채 마시기도 전에 강의가 시작된다. 점심시간! 그러나 직장의 공식적인 회식 외에는 사사롭게 여유로운 식사시간을 가지기는 힘들다. 점심에는 김밥과 컵라면을 먹으면서 이메일을 체크한다. 오후에도 해결해야 할 업무가 쌓여 있다. 때로는 외부 현장으로 실습지도를 나가야 해서 차 안에서 샌드위치로 끼니를 해결한다. 일이 끝나면 바삐 친정집에 있는 큰아이를 태우고 베이비시터 퇴근시간에 맞추어 아슬아슬하게 집에 도착한다. 안도감도 잠시, 이제 두 아이는 온전히 내 차지이다. 하루 종일 엄마를 보지 못한 욕구 불만족을 해결하려는 두 아이의 틈바귀 속에서 내 몸이 녹초가 되어갈 무렵 아이들은 잠이 든다. 그 평화롭고 순수한 얼굴을 보면서 행복감을 느끼며 하루의 고단함은 밀려오고 아이와 함께하고 놀아주지 못한 미안함에 마음이 아프기도 하다. 강의준비와 마치지 못한 업무와 잡다한 일들이 끊임 없이 머릿속을 맴돌며 또 내일을 준비한다.

비교적 탄력적인 근무시간과 업무에 대한 자율성을 유지할 수 있는 필자의 일상은 규칙적인 출근을 해야 하는 대부분의 워킹맘에 비하면 상당히 좋은 조건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그런데도 대한민국에 사는 워킹맘 치고 사회적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편안함과 여유로움을 누릴 수 있는 자가 누가 있겠는가? 워킹맘, 아니 슈퍼우먼이 되어야 가정의 평화가 유지되고, 직장에서 한몫을 해낼 수가 있는 게 여성들의 정확한 현실이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걱정하며 정부에서는 저출산 대책의 시급함을 강조하고 있다. 각종 출산장려정책과 보육관련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워킹맘의 짐은 별로 가벼워지지 않는 것 같다. 사교육비 증가의 현실, 전세대란 등 어려운 경제 현실 속에서 사랑을 쏟는 엄마 역할에만 최고의 가치를 부여할 수 없는 게 우리시대의 모순이다.

얼마 전 아이 한명을 양육하는 데 드는 비용이 2억이 넘는다는 기사를 접하며 한숨을 내쉰 부모가 많을 것이다. 증가하는 양육비용과 마음대로 되지 않는 끊임 없는 육아문제 갈등, 그리고  다양한 직장업무의 스트레스 속에서 오늘도 워킹맘들은 선택의 여지 없이 슈퍼우먼으로 되어야 한다. '엄따'(육아정보 등 엄마들 사이에서 소외되는 직장여성을 이르는 말)는 이미 각오한 일이지만, 혹여 아이라도 아프게 되는 경우에는 온전한 직장생활은 불가능하다. "그 집 아이는 왜 이리 자주 아퍼?"라는 말은 비수와 같이 워킹맘의 가슴을 찌르니, 직장에서 마음으로 울어보지 않은 엄마가 어디 있겠는가?


실제 주변의 많은 우수한 여성들이 직무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육아의 부담을 견뎌내지 못해서 직장생활을 그만두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것은 결국 엄청난 사회적 가치와 경쟁력 손실로 이어진다. 더욱이 개인 삶의 여유를  중요시하는 풍조 속에서 육아와 직장생활을 같이 하며 슈퍼우먼이 되기가 두려운 미혼여성들은 아예 결혼을 기피하고, 또 늦은 결혼 후에도 출산을 뒤로 미루어 고령출산 문제도 점차 심각해지고 있다. 저출산의 심각함도 이미 알려져 있는 사실이지만, 고령출산의 문제 역시 모성은 물론 장차 신생아 건강에도 커다란 위해 요인으로 될 수 있다. 이로 인한 사회적, 경제적 손실의 규모도 적지 않다. 이러한 일련의 현상들이 일부 개인과 가족의 문제라고만 볼 수는 없지 않은가?

과거에 비해서는 다양한 출산, 보육관련 정책들이 시행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워킹맘들이 현실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혜택들은 상당히 제한적이며 그 내용도 만족스럽지 않다. 좀더 다양화하고 개별적인 상황에 맞추어 적용될 수 있는 장기적인 대안들이 제시되지 않는 한, 큰 도움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관련 정책을 계획하고 시행하는 기관에서는 조금 더 자세를 낮추어 워킹맘의 목소리를 들어주었으면 한다. 직장에서 아이를 걱정하며 불안한 마음으로 일하지 않도록 지원할 수 있는 보육정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또한 심심치 않게 보도되는 부적절한 보육시설의 안전사고나 아동학대 사례를 보면서 워킹맘들은 또 다시 마음의 갈등과  내 아이에게 닥칠지도 모르는 일이라는 불안감을 씻을 수 없다. 보육기관과 육아시설에 대한 부모의 불신을 없앨 수 있는 제도적 뒷받침과 질적 향상을 이룰 수 있는 관리 방안이 구체화하여야 할 것이다.

워킹맘을 수퍼우먼이 아닌 진정한 워킹맘으로 지낼 수 있기 위해서는 그들이 숨을 쉴 수 있도록 하는 도움의 손길과 설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워킹맘 입장에서는 가정에서는 '엄마'로 직장에서는 '일하는 여성'으로서의 자부심과 노력, 그리고 자기 자리를 찾아가려는 현명함을 통해 또 다른 '자아성숙'을 이루게 될 수 있을 것이다. 또 남편과 가족들의 도움이 필요하겠지만, 워킹맘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확대되고 질적으로 향상되기를 기대한다.

왜냐하면 워킹맘의 아이들도 우리의 소중한 미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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