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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24시
  • 김도연
  • 승인 2009.12.22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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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일과 속에 허탈해지는 이유는?

 오전 7시, 지난 밤에 마신 술기운이 아직도 남아 있지만 A 신문사 사회부 5년차 L 기자는 눈을 비비며 몸을 겨우 일으킨다. 사무실에 들렀다가 어제 잡은 취재원과의 오전 약속을 지키려면 서둘러야 한다.

 오랜 생활 습관에서 온 아침 거르기는 오늘도 계속되지만 사무실에서 마실 진한 커피 한잔으로 해장 아닌 해장(?)을 할 생각에 대충 씻고 옷을 추려 입은 뒤, 차의 시동키를 돌린다.
 
 될 수 있으면 출근도장을 찍으려 애쓰지만 집에서 사무실까지 30분 남짓한 거리는 멀게만 느껴진다.
 
 오전 8시 30분,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먼저 나온 선배가 인사를 건넨다. 속으로 '대단한 체력이야'라는 생각을 하며 선배의 인사에 답한다.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펼치고 오전 회의 시간에 이야기할 출고 기사를 생각해본다.
 
 같은 시각, 9시까지 출입처로 출근해야 하는 B 신문사 4년차 기자 Y는 신호대기로 정차해 있는 차 안에서 오늘 일정을 생각한다. 오후 2시에 있는 기자회견과 어제 하다만 취재를 마무리해야 한다는 생각에 '오늘도 바쁜 하루가 되겠구나' 생각한다.
 
 오전 9시 5분 출입처 기자실 문을 열고 들어서서 습관적으로 노트북을 먼저 펼치고 초기 화면이 들어오는 것을 본 뒤, 한 편에 놓인 종이컵에 커피를 탄다.
 
 오늘은 1주일에 한두 번 먹을까 말까 하는 아침을 먹고 나왔다. 몇 개월 전에 결혼한 아내는 매일 아침을 차려주려 애쓰지만 매번 바쁘다는 핑계로 못 먹었는데 오늘은 조금 일찍 일어나 먹고 나왔다. 뿌듯하다.
 
 커피를 들고 노트북에 안자 오전에 출고할 기사를 정리해 본다. 어제 기초 취재를 해 놓았던 기사와 오전 중에 들어올 보도자료 가운데 기삿거리가 될 만한 것을 추리면 대충 오늘 오전 기사는 마감할 수 있을 것 같다.

 취재수첩을 들고 담당 공무원을 만나러 일어선다.

 오전 10시, 기자 L은 오전 약속을 핑계로 회의를 마치고 출입처로 향한다. 선배를 대신해 오후 2시에 있는 기자회견을 챙겨야 한다. 스케줄을 다시 조정해야 할 판이다.
 
 10시 20분, 어제 약속한 취재원과의 만남에 조금 늦었다. 노트북은 차에 버려두고 취재수첩과 펜만 챙겨서 급하게 엘리베이터에 오른다. 약속장소로 들어서기 전 대충 물어봐야 할 것들을 머릿속으로 정리한다.
 
 5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취재원과의 만남은 항상 긴장된다. 취재원한테서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정보를 끌어낼까라는 생각이 가시질 않기 때문이다.
 
 10시 25분, 기자 Y는 담당 공무원한테 오늘 쓰려 했던 기사의 관련 자료를 받아 들고 경찰서로 향한다. 지난해까지 만해도 매일 오전 업무회의 전에 경찰서에 들러 간밤의 사건 사고를 챙겼지만 4년차에 접어들면서 게을러졌다. 지금은 다른 신문사 기자들에게 물 먹지 않으려는 생각뿐이다.
 
 당직 사건일지를 대충 훑어보고 이 사무실 저 사무실을 돌며 안면이 깊은 경찰들에게서 정보를 캐내려 애쓴다. 이럴 때면 스스로가 마치 기삿거리에 굶주린 늑대 같다는 느낌이다.
 
 30분 넘게 여럿을 만났지만 별 소득은 없다. 다시 기자실로 발길을 돌린다.
 
 기자실에 들어와 오전에 들어온 메일을 확인한다. 오전에 출고할 기사를 1개는 더 만들어야 해서다. 다행히 여러 출입처에서 들어온 보도자료 중에 쓸 만한 것이 눈에 띄었다. 전화기를 붙잡고 다이얼을 누른다. 오늘 오전 마감은 받아온 자료와 이거면 충분할 듯하다.
 
 낮 12시, 취재원과의 대화를 마치고 출입처 기자실로 향하는 L. 발걸음이 무겁다. 당초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취재원과의 만남에서 생각만큼의 소득이 없다. 기삿거리가 될지 아리송하다. 일단 보강 취재를 해보고 결정하기로 했다.
 
 기자실에 들어서니 먼저 온 타사 기자들 노트북 두 대 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고 아무도 없다. 노트북을 보니 아는 선배 거다. 전화해서 식당을 알아낸 뒤 발길을 돌린다.
 
 오후 1시 5분, Y는 오전 마감을 위해 전화통을 붙잡고 취재를 하다 조금 늦게 점심을 먹고 다시 기자실로 들어왔다. 기자회견에 맞추려면 적어도 45분 안에 기사 두 꼭지를 송고해야 해 서둘러 책상 앞에 앉아 타이핑을 시작한다.
 
 2시 5분, 오전 마감을 끝내고 기자회견장에 도착했다. 타사 선후배 기자들 대여섯이 보이지만 다행히 기자회견은 시작하지 않았다. 회사는 다르지만 비슷한 나이여서 가깝게 지내는 A 신문사 기자 L을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잠시 동안 이야기를 나눈다.
 
30분 넘게 이어진 기자회견을 마치고 주최측 관계자와 10분 정도 인터뷰를 마친 뒤 다시 출입처 기자실로 향한다. 오늘의 주요 기사를 송고해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어서다.
 
 같은 시각 L 역시 선배를 대신해 기자회견을 챙기고 기자실로 들어왔다. 기자회견문을 던져놓고 오늘 송고할 주요 기사 목록부터 작성한 뒤 다시 담당 공무원을 만나러 나간다.
 
 공무원들과의 대화는 항상 어렵다. 자칫 전문용어라도 나오는 날이면 난감하기 그지없고, 자료 주기를 거부하거나 질문에 답변조차 하지 않는 공무원을 만나면 싸울 수도 달랠 수도 없어 고민이다.

 오후 4시, 취재를 마치고 들어와 송고목록을 보낸다. 대충 정리해 보니 기사는 될 듯하다.
 
 이제부터는 시간과의 싸움이다. 여기 저기 전화를 돌리며 취재원들에게 안부를 묻는다. 이전에 기사를 썼던 내용의 후일담을 묻기도 하며, 이 얘기 저 얘기 하지만 실상은 기삿거리가 없나 물어보는 작업이다. 얘기 도중에 귀가 솔깃한 이야기 거리가 걸렸다. 그 자리에서 내일 오전에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나누자며 약속을 잡는다. 내일 기삿거리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4시 30분, Y도 데스크가 출고 목록을 보내래서 기자회견 취재한 것과 조금 전에 취재했던 기사의 제목을 대충 적어 송고한다.
 
 자료 주기를 거부하는 공무원을 만나 생고생을 했다. 덕분에 시간이 늦어져 내일 쓸 기삿거리 찾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일단 오늘 보낼 기사가 먼저다.
 
 오후 6시 30분, L은 기사를 송고하고 전화를 기다린다. 데스크의 지시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매일 이 시간이 가장 긴장된다. 보강취재 지시가 내려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재수 없는 날은 "기사를 이따위로 썼냐"고 욕을 먹기 쉬워서다. 커피를 마시며 시간을 죽인다.
 
 전화가 울리고 데스크가 말한다. 기사 내용에 대한 질문이다. 쉽게 설명하고 전화를 끊는다. 다행이다.
 
 비슷한 시각, Y도 기사를 송고한다. 그나마 타사에 비해 기자 수가 적어 사회부 기자들의 업무 강도가 심한 것을 알기에 데스크가 닦달하지는 않는다.
 
 오후 7시, 오늘 일정이 끝났다. 내일 취재할 일정을 정리한다. 다음날 쓸 기삿거리를 찾지 못해 내일은 고생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피곤함이 밀려온다. 아까 취재 때문에 공무원과 싸운 기억이 자꾸 머리에 스친다.
 
 저녁을 먹어야 하는데 저녁보다는 술이 댕긴다. 타사 동료 L에게 전화한다. 마침 L도 마감을 쳤단다. 둘은 L의 출입처 근처에서 만나 술 한 잔 하기로 했다.
 
 오후 8시 30분, 30분 동안 오늘 있었던 일, 출입처 주변 돌아가는 이야기 등을 나눈다. 둘은 같은 출입처가 아니어도 서로 출입처 이야기에 관심을 보인다.
 
 9시 30분, 자리를 옮겨 2차 술자리를 갖는데 이야기 주제가 회사 이야기로 옮겨갔다. 기자 L이나 Y 모두 어려운 회사 사정으로 보너스가 삭감된 것과 월급이 줄어든 것에 한숨만 나온다. 둘은 술자리가 길어지면 질수록 신세한탄이 커진다.
 
 오후 11시, 둘은 다음에 보자며 헤어진다.
 
 기자 Y는 대리기사가 운전하는 차 안에서 요즘 경기가 어떤지 넌지시 묻는다. 자신의 월급의 2배 가까운 벌이를 한다는 대리기사 말에 한숨이 절로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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