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찍기는 아주 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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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찍기는 아주 쉽습니다
  • 최종규
  • 승인 2011.03.03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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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 읽는 사진책] 권영호, 《권영호의 카메라》

 사진찍기로 돈을 벌면서 살아가는 사람이든, 사진찍기를 할 뿐 돈벌이는 아랑곳하지 않으며 살아가는 사람이든, 언제나 사진을 좋아할 수 있으며 사진을 사랑할 수 있지만 사진하고 동떨어지거나 사진을 모를 수 있습니다. 사진을 배우려고 무던히 애쓴다 해서 사진을 알 수는 없습니다. 사랑을 배우려고 힘들여 애쓴다 해서 사랑을 알 수 없고, 밥이나 농사나 하늘이나 흙이나 사람을 배우려고 용쓴다 해서 밥이든 농사이든 하늘이든 흙이든 사람이든 속속들이 알 수 없는 흐름하고 매한가지입니다.

 사진찍기로 여러 가지 일을 많이 하는 권영호 님이 《권영호의 카메라》라는 조그마한 사진수필 하나 내놓습니다. 이 조그마한 사진수필에 담은 권영호 님 사진은 ‘돈 받고 팔 생각’으로 찍은 사진이라거나 ‘사진잔치 열어 사람들한테 내보이려는 마음’으로 찍은 사진이라 여기기 힘듭니다. 그저 권영호 님 스스로 좋아하는 대로 찍은 사진이로구나 싶습니다. 사진길을 걷거나 사진길을 걷고 싶은 사람들한테 ‘사진을 찍는 마음’이 어떠할 때에 참으로 즐거울까 하고 이야기를 건네려고 스스로 기쁘게 찍어 스스로 신나게 엮은 사진이리라 생각합니다.

 권영호 님은 《권영호의 카메라》에서 말합니다. “내 스타일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나는 내가 찍은 사진에서 내가 보였으면 좋겠다. 그저 잘 찍었다는 느낌을 주는 것을 넘어서 내 생각, 내 기분이 드러나는 사진을 찍고 그것을 본 사람들이 사진에서 생동감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31쪽).”고. 그런데 권영호 님은 ‘권영호 님 삶에서 어떠한 모습’이 보이도록 하고 싶은지까지 말하지는 못합니다. 어떤 사진이든 찍은 사람 모습이 나타나기 마련이고, 잘 찍든 못 찍든 찍은 사람 느낌이 묻어나기 마련입니다. 그러니까, 사진을 찍었다고 말하는 사람은 스스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며 어떤 느낌을 사랑하면서 살아가는가를 먼저 잘 알아채야 합니다. 스스로 먼저 잘 알아챌 때에 나 스스로 어떠한 사진을 찍으면서 나누는가를 말할 수 있습니다.

 사진쟁이 스스로 ‘생동감 있게’ 살아가면, 이이가 찍은 정물사진을 보면서도 ‘생동감을 느낍’니다. 사진쟁이 스스로 ‘슬픈 마음에 푹 젖은 채’ 살아가면, 이이가 찍은 노래꾼 이효리 님이 활짝 웃는 사진을 보면서도 ‘슬픈 마음에 푹 젖은 채’ 보내는 나날을 느끼거나 읽습니다.

 사진쟁이는 기계가 아닌 사람입니다. 단추를 누르는 일은 사람 아닌 기계를 시켜서도 한다지만, 어떠한 모습을 어떠한 크기와 질감과 빛그림으로 담으려 하는가는 ‘기계 아닌 사람’이 ‘쇠붙이 아닌 따뜻한 가슴’에 따라 담기 마련입니다. 사진을 주문한 사람이 바라는 모습을 찍어 준달지라도, 사진쟁이 스스로 아주 기쁜 나날이라면 ‘슬픈 모습’을 찍어 달라 했는데, 막상 하나도 안 슬픈 모습이 되어 버립니다. 기쁜 모습을 찍어 달라 했으나 사진쟁이가 더없이 슬픈 나날을 보낸다면 하나도 안 기쁜 모습만 찍고 말아요.

 연기를 하는 사람들은 연속극에서든 영화에서든 나 스스로 연기를 하는 배역에 맞추어 내 삶을 바꿉니다. 내 삶을 내 배역에 맞추어 바꾸지 않고서야 연기를 하지 못합니다. 연기를 잘 하는 사람은 내 배역에 따라 삶이 바뀌기 때문에, 자칫 마음이 크게 다칠 수 있습니다. 나쁜 짓 하는 배역을 맡으면 참말 내 삶에서도 나쁜 짓이 저절로 튀어나옵니다. 착한 일 하는 배역을 맡으면 참으로 내 삶에서도 착한 몸가짐이 스스럼없이 배어듭니다.

 상업사진을 하면서 주문자 입맛에 맞추는 일이란, 언제나 내 삶을 바꾸어야 하는 사진쟁이가 되어야 한다는 소리입니다. 마치 영화배우처럼 영화 배역에 따라 늘 내 삶을 바꾸어야 한다는 소리입니다. 살아숨쉬는 내가 아니라 ‘이웃 삶에 오롯이 내 모두를 맞추어 살아내는 내’가 되어야 해요. 권영호 님이 하는 사진찍기란 ‘나를 드러내는 사진찍기’가 아닌 ‘다른 사람이 바라는 모습을 드러내야 하는 사진찍기’이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권영호 님 당신은 “나는 내가 찍은 사진에서 내가 보였으면 좋겠다”고 말하는구나 싶습니다. 숱하디숱한 사진을 찍는 동안 정작 권영호 님 당신을 즐거이 찍을 길은 없으니까요.

 이리하여, 《권영호의 카메라》를 들여다보면 그리 대단하지 않을 뿐더러, ‘잘 찍지 못한’ 사진이 수두룩합니다. 어설프다든지 ‘하얀 옷 입은 어린 아이’한테 지나치게 환상을 품는 모습마저 드러납니다.

 그러나, 권영호 님이 이제껏 권영호 님 삶과 모습과 꿈을 즐거이 나누는 삶사진을 찍을 수 없었던 흐름을 돌아본다면 더없이 자연스럽거나 마땅한 노릇입니다.

 누구든 빈틈없는 사람이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꽉 짜인 채 어수룩한 데 없이 살아가는 사람이란 없기 때문입니다. 글을 쓰면서 띄어쓰기를 틀리기도 하고, 말을 하면서 앞뒤가 안 맞기도 하며, 물을 쏟거나 밥을 태우거나 약속을 깜빡 잊기도 하는 사람입니다. 《권영호의 카메라》에 담긴 권영호 님 사진은 이렇듯 ‘깜빡깜빡 하기도 하고 어설프기도 한’ 여느 사람 내음이 살며시 묻어납니다. 그러나, 여느 사람 내음이 살며시 묻어나려 하다가 자꾸만 ‘주문자 입맛에 맞추어 사진을 찍던 버릇’이 톡톡 튀어나옵니다. 더 수수하게 더 투박하게 더 조촐하게 당신 사진길을 좋아하는 이야기를 펼칠 듯하다가도 자꾸 겉멋을 부립니다.

 겉멋 부리기가 잘못이라는 소리가 아닙니다. ‘주문자 입맛에 맞추’는 일은 멋을 부리고 맛을 내야 하는데, “나는 내가 찍은 사진에서 내가 보였으면 좋겠다”고 한다면 내 사진맛이란 굳이 더 멋부리거나 맛내는 조미료를 쓴다 해서 좋아지지 않습니다.

 이를테면, “그 소녀를 카메라에 담으며 나는 상상을 자유롭게 펼친다. 사진 속 소녀는 지금 봐도 참 어여쁘다. 아마도 그건 내가 소녀를 어여쁘게 바라보고 있었다는 뜻이 아닐까(96쪽).” 하고 이야기합니다. 곧, 돈을 받고 사진을 찍어야 할 때에는 사진쟁이로서는 돈을 찍을밖에 없습니다. 사진을 찍고 돈을 받으면, 나는 사진을 찍겠지요. 그저 어여쁘게 바라보며 사진을 찍을 때에는 언제나 어여쁘구나 싶은 사진을 얻습니다. 어여쁘구나 하고 느낄 때에 어여쁘다고 느끼도록 사진을 찍어요.

 사진쟁이란, 사진찍기로 돈을 벌든 사진찍기를 그저 즐기든, ‘내 생각에 맞추어 찍는 사진’인지 ‘사진에 맞추어 생각을 하는 삶’인지를 살펴야 합니다. ‘삶에 따라 찍는 사진’인지 ‘사진에 따라 보내는 삶’인지 곰곰이 돌아보아야 합니다.

 어느 결을 사랑하면서 아끼느냐에 따라 삶도 사람도 사랑도 사진도 달라집니다.

 권영호 님은 “사람들이 어떤 상황에서 만들어 낼 수밖에 없는 아주 솔직한 순간, 솔직한 눈빛. 마치 무성영화를 볼 때 스크린 속의 배우들이 웃고 있는지 다투고 있는지 슬퍼하는지 화가 나 있는지 굳이 소리가 없어도 저절로 알게 되는 것처럼 감정을 그대로 드러낸 얼굴은 그것 자체로 모든 것을 다 말해 준다. 그런 얼굴을 만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111쪽).” 하고 말합니다만, 권영호 님이 살아가는 틀에서는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을는지 모르나, 이 말은 올바르지 않습니다. ‘그런 얼굴을 만나기란 쉽습’니다. 그런 얼굴을 만나 사진으로 찍기도 쉽습니다.

 중국에서 만난 흰옷 입은 아이를 찍은 사진은 무슨 사진이었을까요. 이 사진은 사진으로 모두를 다 말해 주지 않던가요. 권영호 님 스스로 ‘모든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들려주는 사람을 만나 사진을 찍는 일’을 겪으면서도, 이러한 일이 쉬운지 어려운지를 가누지 못한다면 큰일입니다. 스스로 겪는다 해서 누구나 다 알아채지는 않는다지만, 스스로 바라는 대로 살고, 스스로 생각하는 대로 살아가는 나날인 줄을 잘 깨달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든 바라는 대로 사진을 찍습니다. 더 멋스러이 찍고픈 사람은 참말 더 멋스러이 찍습니다. 더 아름다이 찍으려 하는 사람은 더 아름다이 찍어요. 더 가난해 보이도록 찍으려면 더 가난해 보이도록 찍습니다. 더 구질구질하게 보이도록 찍자니 참말 더 구질구질하게 보이도록 찍고 말아요.

 골목동네 사진을 찍는 이들은 으레 골목동네를 ‘골목집 = 달동네 집 = 가난’이라고 공식을 짜맞추어 사진을 만듭니다. 골목동네를 살가이 사귀면서 사진을 못 찍기 일쑤입니다. 골목동네를 사귀는 일이 어렵기에 이렇게 사진을 찍을까요? 골목동네를 사귀는 일이 어렵지 않으나, 사진쟁이 스스로 내 삶을 바치고 품을 들이면서 짬을 내어 가까이 다가서며 만나지 않으니까, 늘 판에 박히거나 틀에 박힌 사진만 찍고 맙니다.

 상업사진이든 패션사진이든, 주문한 사람한테 보내 줄 사진을 찍자면, 주문한 사람이 어떠한 마음이거나 뜻이요 어디에 어떻게 쓰며 모델은 어떤 느낌이 나야 하는가를 골고루 살펴야 합니다. 사진은 스튜디오에서 찍을는지 밖에서 찍을는지, 한국에서 찍을는지 나라밖에서 찍을는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하나하나 따지고 재야 합니다. 곧, ‘깊이 사귀는 삶’이라는 매무새로 주문을 받아 사진을 만들어야 합니다. 깊이 사귀는 삶이라는 매무새로 다가설 때에 상업사진이든 패션사진이든 훌륭하다 싶은 작품 하나 태어납니다.

 다큐사진이라 해서 다르지 않습니다. 집에서 아이를 돌보며 아이를 사진으로 찍을 때에도 똑같습니다. 영정사진을 찍는다 해서 다를 까닭이 없어요. 언제나 똑같습니다. 그저 기계처럼 후다닥 영정사진을 찍는다면, 영정사진으로 찍히는 할머니 할아버지부터 마음이 무겁습니다. 한 분 한 분 당신 삶을 기리고 아끼면서 고맙게 찍는 매무새일 때에는 할머니 할아버지부터 사진으로 찍히는 때에 웃고 울면서 좋아합니다.

 사진찍기는 아주 쉽습니다. 사진찍기는 내 삶대로 찍으니까 아주 쉽습니다. 내 삶이 어떠한가를 헤아리면서 하는 사진찍기인 만큼 어려울 까닭이 없습니다. 내가 찍고픈 사진감에 따라 내 삶을 맞추거나 고치거나 가다듬으면 하나도 어려울 일이 없습니다.

 사진찍기가 어렵다면, 나 스스로 내가 사진으로 담으려는 사진감으로 깊이 스며들거나 파고들거나 어깨동무하거나 손잡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살가이 사귀거나 가까이 다가서지 않고서야 무슨 사진을 찍겠습니까. 내 삶에 따라 달라지는 사진인 줄 느끼고, 내 삶을 담아서 나누는 사진이라고 헤아리며, 내 삶과 이웃 삶을 서로 사랑하는 길을 찾는 사진이구나 하고 돌아본다면 내 마음밭도 우리네 사진밭도 무럭무럭 자라납니다.

― 권영호의 카메라 (권영호 글·사진,앨리스 펴냄,2010.7.7./1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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