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놀이 아닌 총칼놀이 하면 진짜 사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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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놀이 아닌 총칼놀이 하면 진짜 사나이?
  • 최종규
  • 승인 2011.03.07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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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이 좋다] 마누엘라 올텐, 《진짜 사나이》

 그림책 《진짜 사나이》는 “여자 애들은 정말 지루해! 걔들은 하루 종일 인형이나 만지작거리며 놀잖아.” 하는 말로 첫머리를 엽니다. 우리 집 딸아이한테도 인형이 제법 있기는 한데, 우리 집 딸아이는 인형을 만지작거리며 놀지 않습니다. 하도 아무 데나 굴려서 “벼리야, 인형이 아야 하네. 머리도 다 헝클어지고. 예뻐해 주어야지.” 하고 말하면 그제서야 인형을 처음 보기라도 했다는 듯이 살며시 쥐어 “아이, 예뻐.” 하고 말합니다. 그렇지만 이내 다른 놀이에 빠진다든지 콩콩 총총 뛰며 놀기를 더 즐깁니다.

 그림책 《진짜 사나이》에 나오는 사내아이는 무엇을 하며 놀기에 ‘따분하지’ 않을까 궁금하지만, 막상 사내아이들 놀이는 나오지 않습니다. 사내아이 둘은 계집아이가 인형을 만지작거리는 모습을 비웃기만 할 뿐입니다.

 인형을 만지작거리지 않아야 따분하지 않을 놀이요, 어쩌면 개굴창에서 뒹군다든지 공을 차거나 던진다든지 나무로 총을 삼아 싸움놀이를 해야 재미있다고 여길 놀이가 될까요.

 싸움놀이라 하지만, 눈싸움은 싸움이라기보다 눈을 던지는 눈놀이, 곧 눈던지기입니다. 눈굴리기나 눈사람빚기도 눈놀이입니다. 서로 죽고 죽이려는 싸움, 이른바 전쟁놀이가 싸움놀이인데, 안타까운 노릇이지만 평화를 사랑하지 않는 나라나 겨레일 때에 이 싸움놀이를 즐기고 맙니다. 사냥을 해야 하기 때문에 사냥을 익히려는 틀에 따라 놀이를 한다거나, 거칠거나 메마른 깊은 멧자락이라든지 너른 바닷가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이 퍽 투박하게 부대끼는 놀이는 싸움놀이가 아닙니다. 이러할 때에는 삶놀이입니다. 살아가는 길을 찬찬히 몸으로 받아들이는 놀이가 되니까요.

 그림책 《진짜 사나이》 사내아이 둘은 “여자 애들은 곰인형을 끌어안고 잔대. 걔들은 겁이 많잖아!” 하고 놀립니다. 곰인형을 끌어안고 자든 어머니나 아버지를 끌어안고 자든, 따스한 사람 곁에서 따스함을 느끼며 잠드는 일은 하나도 나쁘지 않습니다. 고양이를 끌어안고 자든 개를 끌어안고 자든, 저마다 사랑하거나 아끼는 님하고 함께 잘 수 있는 일이란 얼마나 즐거울까요. 누군가는 곰인형을 끌어안고 자겠지만, 누군가는 베개라든지 대아가씨든 살뜰히 끌어안고 잘 수 있어요.

 그렇지만, 그림책에 나오는 두 사내아이는 놀림말을 그치지 않습니다. “걔들은 밤에 오줌도 싼다지?” 저런, 계집아이만 밤에 오줌을 싸고 사내아이는 밤에 오줌을 안 쌀까요. 글쎄요, 아이들은 제법 철이 들 무렵까지 밤에 이불에 오줌을 싸기 마련이잖아요. 이렇게 말하다가 나중에 저희들이 오줌을 싸면 벌개질 얼굴을 어찌하려고 그런담.

 이리하여 사내아이들은 “여자 애들은 귀신을 무서워해!” 하는 말을 나누다가 그만 저희들도 무섭다고 느낍니다. “에이, 귀신이 어딨냐?” 하고 “그럼, 없고 말고.” 하지만 무서움을 어찌하지 못합니다. 귀신이든 도깨비이든 마주치지 않았으나, 귀신이나 도깨비라는 이름을 꺼냈을 뿐이나 그만 질리고 맙니다.

 예부터 착하게 살아가는 사람은 귀신이 나오든 도깨비가 나오든 무서울 일이 없다 했습니다. 참답게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귀신한테든 도깨비한테든 홀리지 않는다 했어요. 아름다이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귀신이든 도깨비이든 아름다운 빛을 나누어 주면서 사랑과 믿음을 주고받을 수 있다 했지요.

 그러니까, 사내아이들이 계집아이를 착하게 마주하고 참다이 사귀며 아름다이 어울리려는 매무새라 한다면, 귀신이든 도깨비이든 무슨 대수이겠습니까. 아니, 누군가 무서워 한다면 씩씩하게 나서서 지키거나 보살피도록 해야지요. 남자라서 여자를 지키고, 여자가 더 씩씩하게 남자를 지키거나 보살펴야 하지 않습니다. 착하고 참다우며 고운 사람으로서 서로를 살뜰히 마주하면서 보듬을 노릇이에요. 사랑할 사람이고 사랑받을 사람이에요. 믿을 사람이며 믿음직한 사람이에요.

 곰곰이 생각해 보면, 계집아이들이 인형놀이를 한다고들 하지만, 놀이로 인형을 만지작거린다뿐이지, 인형이란 ‘아이보다 작은 사람’입니다. 저보다 작은 사람을 아끼는 마음이 인형놀이입니다. 아이들은 어른들보다 몸피도 작고 힘도 여립니다. 그런데 이 아이들은 저희랑 몸뚱이가 그닥 작지 않은 아기나 더 어린 아이를 업거나 안으며 달랜다든지 보살피는 착한 모습을 보이기도 해요. 애가 애를 업는다고도 하지만, 우리 겨레도 예부터 애가 애를 업으며 키우거나 돌보았습니다. 어른도 애를 업지만 애도 애를 업습니다. 나보다 몸피가 작으며 힘조차 여린데, 더 사랑하고 더 아끼며 더 돌보아야지, 모른 척하거나 놀리거나 비웃을 수 없어요.

 우리 누리에는 “진짜 사나이”란 없습니다. ‘진짜’에서 ‘眞’은 한자이니까 “참 사나이”라고도 할 만하지만, “진짜 사나이”이든 “참 사나이”이든 없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진짜 계집”이든 “참 계집”이든 없어요. 그저 ‘참사람’ 하나만 있습니다.

 나 스스로 참다운 사람인가 아닌가만 있습니다. 성별로 남자와 여자를 가르지만, 성별로 가르기 앞서 누구나 사람입니다. 또한, 목숨 갈래로 나누기 앞서 사람이 되든 나무가 되든 고양이가 되든, 한결같이 고운 목숨이에요.

 사람은 흙하고 같으며, 흙은 사람과 같습니다. 사람은 새와 같으며, 새는 사람과 같아요. 사람은 물하고 같으며, 물은 사람과 같아요. 사람은 시금치와 같고, 시금치는 사람과 같습니다.

 아이들은 “진짜 사나이”가 되고 싶으면 먼저 ‘참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참사람이 되어 옳고 바르게 사랑을 나누는 한편, 착하고 참다우며 고운 마음씨를 살가이  보듬어야 합니다. 그림책 《진짜 사나이》는 바보스럽지만 예쁜 아이들이 아직 예쁜 넋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모습을 제법 우스꽝스러우면서 재미나게 보여줍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아이들은 이런 그림책을 보면서 ‘내가 좀 바보스럽지?’ 하고 쑥쓰러워 하면서 깨닫기라도 한다지만, 우리 어른들은 어쩌지요? 군인이 되려 하거나, 총칼을 마음대로 휘두르며, 갖은 범죄를 저지를 뿐 아니라, 돈에 눈이 멀어 사람 목숨을 가벼이 여기는데다가, 애국충성 충군보국 같은 말을 주워섬기면서 옳고 바른 평화와 꿈과 삶을 잊거나 내동댕이치는 우리 어른들은 어쩌지요?

― 진짜 사나이 (마누엘라 올텐 글·그림,조국현 옮김,토마토하우스 펴냄,2005.4.15./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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