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만 가는 '조손가정'…대책은 별로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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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어만 가는 '조손가정'…대책은 별로 없고
  • 이혜정
  • 승인 2011.03.22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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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어려움 심각'…한 달 평균 생활비 59만원 정부지원에 의존


하모(75) 할머니가 손주들의 옷을 정리하고 있다.
 

취재 : 이혜정 기자

자식에 대한 아들의 무관심으로 20년 전부터 세 명의 손자를 돌보고 있는 하모(75·동구 송림동) 할머니. 20년 전 아들이 며느리와 7개월 된 대영 군(19·가명)을 데리고 집으로 들어왔다. 들어오자마자 아들과 며느리는 아이를 맡겨놓고 떠났다.

그러고 몇 년 뒤 100일된 소영이(16·가명)를 데리고 다시 들어왔다. 결국 소영이마저 할머니가 키우게 됐다. 할머니는 42살 때 간경화로 '살 수 없다'는 진단을 받고 몇 년간 투병생활을 하다가 합병증으로 식도암에 걸려 몇 차례 수술을 했다. 살지 못한다고 했으나, 3년 동안의 노력으로 기적같이 살아났다. 그때 이후로 할머니는 몸이 편하지 못해 다리를 절뚝거린다.

하 할머니는 병든 몸을 이끌고 어린 손주들을 씻기고, 먹이고, 입히며 키웠다. 

1998년에는 아들 사업이 망해 2살 난 막내 소희(13·가명)마저 키우게 됐다. 그리고 몇 년을 키우다가 점점 병이 악화한 할머니는 수소문해 찾은 아들 집으로 아이들을 돌려 보냈다.

그런데 어느 날 "할머니 집에서 조금만 있으면 데리러 온다"고 했다며 손자 3명이 할머니를 찾아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할머니는 뇌종양으로 3개월밖에 못 산다는 진단을 받고, 세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 고민스러웠다. 그 뒤 아들과 며느리는 연락이 두절됐다.

"아이들을 키우는 것보다는 병 때문에 오래 못 살면 우리 손주들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을 많이 했는데, 감사하게도 기적같이 오래 살고 있어요. 힘은 들었지만 손주들 크는 맛에 살아난 거 같습니다." 할머니는 끝내 눈시울을 붉힌다.


하 할머니는 "지난 세월 손주 3명을 기른 생각을 하면
가슴이 아프다"며 눈물을 흘렸다.

하 할머니와 손자 세 명의 한 달 생활비는 어림잡아 100여만원. 아이들의 수급비 80만원과 막내 딸이 한 달에 주는 20만원으로 생활하고 있다. 생활비, 집세, 병원비 등으로 네 식구가 생활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어려워도 호적상 아들이 있어서 난 수급자 대상도 안 됩니다. 그나마 막내 딸이 돈을 좀 주니까 아이들과 근근이 살지요."

하 할머니는 공부 가르치기, 학교 행사참여, 현장학습교육 등 다른 일반가정 아이들처럼 챙겨주지 못하는 걸 지역아동센터 선생님들이 도와줘 걱정을 한시름 놓았다고 한다.

"내가 배운것도 없고 몸도 성치 않아서 아이들을 잘 챙겨주지 못하는 걸 지역아동센터 선생님이 대신해줘 걱정이 덜 하지요. 우리  손주들에게는 지역아동센터 선생님이 친엄마보다 더 낫습니다."

최근 하 할머니는 대영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고 했다. 서울에 있는 4년제 대학에 합격한 대영군은 항상 학업성적이 상위권이었다. 부모와 함께 생활하지 않았지만 바르게 자랐다. 그러나 대영이는 4년 동안 학비를 대줄 여력이 없고, 노동을 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되는 할머니 대신 집안을 이끌어야 하기 때문에 대학을 포기하려고 했다. 하지만 딱한 사정을 접한 어린이재단에서 등록금 400만원을 지원해 4년제 대학은 포기하고 전문대학에 진학했다.

할머니는 "대영이가 어쩔 수 없이 기술을 배울 수 있는 2년제 전문대학을 선택했다"면서 "다행히 어린이재단에서 장학금을 줘서 등록금을 마련했다"라고 말했다.

할머니의 걱정은 이뿐만 아니다. 집주인이 지난해부터 전세를 월세로 돌려 한 달에 30만원을 내라고 했다. 할머니는 주인에게 사정해 대영이가 학교를 졸업하고 군대에 갈 때까지만 봐달라고 사정해 1년을 버틴 상태이다.

4월이면 계약이 만료돼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할머니는 한숨을 내쉬었다.


한모씨가 손자 사진을 꺼내 보여주고 있다.

지난 14일 오후 남동구 간석동에서 세윤(6·가명)이를 키우고 있는 한모(54)씨를 만났다.

한씨 집 문을 열고 들어가자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찔렀다. 문을 열면 부엌 겸 욕실이 있고, 한 발짝 들어서면 방문이 있다. 

방안에는 한씨와 세윤이가 함께 자는 매트 위에 겹겹이 쌓인 이불이 놓여 있다. 옆에는 한씨와 세윤이 빨래들이 널려 있고, 바닥 한켠에는 세윤이가 놀 수 있도록 아기자기한 그림이 그려진 매트가 깔려 있다. 방안 천정에는 구석구석 곰팡이가 피어 까맣게 물들어 있다.

한씨는 세윤이가 100일 됐을 때부터 키우기 시작했다. 아들이 21살 되던 해 덜컥 아이를 데리고 들어와 한씨에게 맡기고 집을 나갔다.

그 당시 한씨와 아내는 이혼을 한 상태. 17년 전 사업이 망해 빚 7억을 지고, 인천으로 쫓기듯 왔다. 일을 할 때마다 버는 수입이 모두 차압을 당해 어쩔 수 없이 부인과 법적으로 이혼을 하고 따로 살았다.

그런데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윌슨씨병'이라는 불치병을 앓게 되면서 경제 사정이 더 어려워졌다. 한씨 역시 '본태성 떨림'이라는 병을 얻으면서 경제활동을 할 수 없다.

한씨는 아내가 한 달에 보내주는 30만원으로 살았다. 100일된 세윤이를 키우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하는 한씨 부인은 한씨에게 맡겼다. 한씨 부인은 일을 해 한 달 30만~40만원의 돈을 한씨에게 보내줬다. 그리고 한씨는 세윤이를 양육하면서 근근이 생활을 하고 지냈다.

7년 전 위암수술을 받은 한씨 아내는 갑자기 위암이 재발하면서 1년여 동안 투병생활을 하다가 지난해 2월 세상을 떠났다. 한씨는 슬퍼할 겨를도 없이 세윤이를 어떻게 양육해야 할지 막막했다고 한다.

"일자리를 구해 보겠다고 나서도 떨림증상이 심해 채용을 해주지 않습디다. 그렇다고 어린 저 아이를 두고 나갈 수 없으니 막막했지요. 결국 300만원에 월 25만원짜리 방을 빼서 월세만 내는 곳으로 이사를 다녔습니다."

그는 지인 소개로 보증금 없이 월 25만원만 내는 반지하 방에서 세윤이와 함께 살았다. 방이 습해 천정에는 곰팡이로 뒤덮여 있고, 추위를 달래기 위해 집안에서도 두터운 점퍼는 필수다. 그래서 세윤이는 1년 내내 감기를 달고 살았고, 심지어 폐렴을 앓기도 했다.

한씨는 지난 12월부터 '본태성 떨림'이라는 병명으로 경제활동을 할 수 없다는 걸 정부로부터 인정받아 수급자로 된 상태다. 그는 한 달에 받는 수급비 70만원으로 생활한다.

그러나 한씨에겐 걱정이 태산이다. 지금은 무상으로 유치원을 다니고 있어 비용이 많이 들진 않지만, 세윤이가 자라면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막막하다.

그는 "혼자 키우다 보니 엄마처럼 세심하게 챙겨주지도 못해 앞으로 아이가 자라는 동안 무엇을 해줘야 할지 걱정"이라며 "단지 세윤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만 건강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조손가족 생활 애로사항(복수응답, 단위: %, 응답자 n=12,750),
자료제공 : 여성가족부. 

최근 이혼율 증가로 조(祖)부모와 만 18세 이하 손(孫)자녀로 구성된 조손가정도 점점 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대개 최저생계비 이하의 생활로 어려움을 겪는다. 이들에게 경제적 지원 등 종합적인 대책이 시급한 이유다.

여성가족부가 지난해 7월부터 11월까지 인천지역 638가구를 포함한 전국 1만2750가구를 대상으로 실시한 '2010년 조손가족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최대 애로사항으로 '경제적 어려움(76.0%·복수응답)을 우선으로 꼽았고, 손자녀의 학업 및 장래 57.9%, 나와 배우자의 건강 42.6% 등으로 조사됐다.

손자녀 양육 애로사항으로는 아이 양육 및 교육에 따른 경제적 문제가 64.5%로 가장 많았고, 아이의 장래를 준비해주는 문제 15.3%, 아이의 생활 및 학습지도 문제 11.5% 순으로 나타났다. 이는 조부모 평균나이가 72.6세(조부 73.1세·조모 72.5세)인데다 월 평균 가구소득도 57만원(전국 59만7천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조손가정의 월 평균 생활비는 59만4천원. 월 80민원 이상 소득이 있는 가구는 10가구 중 2가구 미만으로 전체 조손가구의 3분의 2에 달하는 가정이 최저생계비 이하의 생활을 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가족 생계 책임자는 '정부나 공공기관의 지원금에만 의존한다'(57.4%)가 가장 많았고, '나 혹은 배우자'가 37.7%로 조사됐다.

특히 손자녀 친부의 양육비 제공에 대해 '보태주지 않는다'가 79.8%로 가장 많았다. 그다음으로 '부정기적으로 보내준다' 10.1%, '정기적으로 보내준다' 5.0%, '생일이나 명절에 가끔 보내준다' 5.0% 등의 순으로 조사됐다. 또 친모의 경우 '보태주지 않는다'가 92.2%에 달했다.

조부모들은 '성인이 될 때까지 키우겠다'(73.2%)는 응답이 가장 많았고, '부모가 찾으러 올 때까지 내가 키우겠다'(22.4%) 등 90% 이상이 현 가족구조를 유지하려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부모 중 92.9%는 배우자와 동거를 하지 않고 '나홀로 양육'을 맡고 있으며, '6개월 이상 앓고 있는 만성질환이 있다'(45.9%), '크고 작은 잔병이 많다'(25.1) 등 건강상태도 좋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손자녀 양육 이유로는 부모의 이혼 및 재혼이 56.3%로 가장 많았고, 부모의 가출 및 실종 18.6%, 부모의 질병 및 사망 11.5%, 부모의 실직 및 파산 6.6% 등 순으로 꼽혔다.

아이들의 친부모 생사 여부 중 '살아 있다'는 질문에 친부와 친모가 각각 65%, 56.3%로 집계됐고, '알지 못한다'(친부 25.1%, 친모 38.3%), '사망했다'(친부 9.8%, 친모 5.5%)로 나타났다.
다.

이와 함께 조부모와 함께 사는 조손가정 중·고생들은 진로 교육에 대한 욕구가 높은 것으로 나타나 구체적인 인생설계 지원대책이 요구된다.

졸업 후 계획에 대한 질문에 중·고등학생들은 '상급학교에 진학학고 싶다'가 53.2%로 절반이상을 차지했고, '일반 직장에 취직하고 싶다'(15.6%), '직업교육이나 특기교육을 받고 싶다'(5.8) 등 순으로 응답했다.

중·고등학생들은 장래 희망 실현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가능할 것이다'에 92.9%가 응답해 대부분 자신들의 꿈을 어른이 되면 이룰 수 있다는 긍정적인 사고를 갖고 있었다.

장래 꿈을 이루기 위해 정부에서 도와주길 바라는 것은 '경제적 안정을 위한 생활비 지원'(51.3%), '상급학교 진학을 위한 장학금 지원'(29.2) 등 순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조사 결과는 학습 향상을 위한 학업지원, 정서적 지원 및 취업과 진로지도 등을 통해 빈곤이 되물림되지 않고 사회적 약자로 소외당하지 않도록 복지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또 초등학생들은 학교생활을 하는 동안 '공부를 도와줄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33.2%), '수업 후 특기 교육을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25.5%) 등 학습의욕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초등학생들은 조부무와의 생활을 위한 지원 요구로 '가족들이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가 49.0%로 가장 많았고 '필요한 물건을 살 수 있으면 좋겠다' 35.3%, '조부모가 돈을 많이 벌었으면 좋겠다' 23.5%, '내 마음을 알아주면 좋겠다' 15.7%, '차별받지 말았으면 좋겠다' 13.7% 순으로 응답했다.

인천시는 기초수급자이면서 조손가정 아동들에게 양육비(월 7만원), 조손가정 부양자 1명과 아동 1명에게 상해보험 지급, 0~17세까지 아동(보호자, 후원자 등)이 일정액을 적립할 경우 최대 3만원 내에서 정부가 1:1 매칭펀드 등을 지원하고 있다.

또 학습이 부진한 조손가정 아동들을 위해 최대 초등학교 10만원, 중학교 15만원, 고등학교 20만원의 학원비를 지원하고, 수학여행비(상·하반기) 18만원 지원, 영양급식비 월 3만원 등을 지원한다. 여기에 만 19세 아동들에게 사회적응 자립지원비 100만원을 지급하고, 대학에 진학할 경우 300만원의 입학금을 함께 지원한다.

시 관계자는 "인천시는 타 도시에 비해 적은 예산으로 조손가정 아동들에 대한 지원이 다양하다"면서 "조손가정 아이들의 자립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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