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닫는 자영업자 '신빈곤층'으로 전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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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닫는 자영업자 '신빈곤층'으로 전락
  • 이혜정
  • 승인 2011.03.29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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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 '비상탈출구' 이젠 힘들어 … 유명 프랜차이즈도 치열한 경쟁


한복가게가 몰려 있는 부평시장 인근 상가.
5개 점포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한복가게 문들이 닫혀 있다.

취재 : 이혜정기자

부평시장에서 한복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윤모(57)씨는 어떻게 생업을 이어가야 할지 고민을 한다. 윤씨는 결혼을 하면서 직장을 그만두고 지난 1988년부터 시어머니가 운영하던 한복가게를 물려받았다. 그동안 일손이 부족할 정도여서 시어머니와 함께 운영을 했다. 그러나 8년 전부터 한복가게를 찾는 손님이 부쩍 줄어들었다. 

김씨는 "보통 4~6월까지 결혼을 많이 하기 때문에 지금쯤 손님들을 응대하느라 정신없을 텐데, 지나가는 사람조차 보기 힘드니 하루 종일 맥을 놓고 있다"면서 "하루에 5만원 팔기도 어렵다"라고 말했다.

그는 "더군다나 이 앞쪽으로 나가면 한복관련 큰 가맹점 서너 곳에서 맞춤과 대여사업을 같이 하고 있어 찾는 손님이 거의 없다"면서 "그나마 건물임대료를 내지 않고 장사를 하고 있어 적자가 나더라도 버티고 있다"라고 했다.

김씨 앞가게는 지난 4년여간 문을 닫아 장사를 하지 않다가 주인이 두 번 바뀐 후 간신히 문을 열어 장사를 하고 있다. 주변 곳곳이 가게 문을 닫아 시장 골목이 더욱 한산하게 느껴진다.

최모(54)씨는 2008년 6월 다양한 가게들과 최대 상권이 몰려 있는 부평 번화가에 부인과 함께 여성복 가게를 열었다. 그는 김포에 살면서 도정업과 임대업 등을 하다가 '글로벌 금융위기'로 사업이 어려워져 정리를 하고 인천으로 올라왔다. 유동인구가 많은 번화가에 30~40대 여성을 겨냥한 브랜드여성복 가게를 운영하면 장사가 잘될 것으로 여겨 무턱대고 장사를 시작했다.

그러나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인근에 여성복을 파는 곳이 4개나 되니 경쟁도 만만치 았았다. 이런 상황에 한 달 가게임대료 400만원, 인건비, 전기세, 회사 담보금, 창고 임대료 등을 감당하기에는 매출이 너무 저조했다.

그는 "경기가 안 좋다 보니 매출은 점점 떨어지고, 한 달에 나가는 비용을 감당하기 힘들었다"면서 "더욱이 본사와 3년 계약으로 브랜드를 달고 장사를 하기로 했기 때문에 위약금이 비싸 마음 편히 그만두지도 못할 상황이었다"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최씨는 2년여 동안 가게를 유지하기 위해 2억원의 빚을 안게 됐다. 어쩔 수 없이 대출을 받아 간신히 버티다가 28개월만에 여성복 가게를 포기했다. 결국 3년간 계약기간을 지키지 못한 그는 여성복 브랜드 본사에 7천 만원의 위약금을 내야 했다.

그는 "이 나이 먹고 취직을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그렇다고 빚은 쌓여가는데 손을 놓고 있을 수 없어 위약금 7천 만원을 지급하고 등산복으로 업종을 변경했다"면서 "차라리 가게를 유지하면서 빚을 지는 것보다는 다른 방안을 찾아 돈을 버는 게 낫다"라고 말했다.

현재 최씨는 같은 장소에 등산복 매장을 차려 그동안 쌓아온 빚을 갚으려고 한다.

비교적 '안정적인 자영업'인 유명 프랜차이즈 음식점이나 편의점도 이젠 안전지대가 아니다.

부평구 산곡동 치킨가게 주인 김모(50)씨는 3년 전부터 장사를 하고 있다. 20여년 동안 건설업에 종사하던 그가 치킨가게를 운영하게  된 건 건설업 하향세 탓이었다.

"일을 나가는 일수도 적어지고, 나이도 많이 차자 회사에서 나가라고 눈치를 줘 어쩔 수 없이 나와 가게를 운영하게 됐죠. 뭐하고 먹고 살까 고민하다가 음식장사가 남을 듯해 퇴직금과 대출받은 돈으로 가게를 냈습니다."

그러나 몇년 전부터 대형 프랜차이즈 치킨업체들이 도로마다 배달전문점을 열면서 매출이 급격하게 줄어들어 경쟁에 밀려나고 있다.

김씨는 "프랜차이즈를 차리면 안정적으로 가게를 운영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우후죽순으로 인근에 프랜차이즈 치킨가게가 생겨 배달 인건비도 안 나온다"면서 "어쩔 수 없이 몇달 전부터 아내가 주방과 홀을 맡고 내가 배달을 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폐업을 하고 싶어도 본사와 5년 계약 조건을 어기면 2000만원의 위약금을 내야 하기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라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지난 1998년 외환위기가 발생했을 때 퇴출된 직장인들의 탈출구였던 자영업자가 최근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다. 고정사업장이 없는 보따리상이나 노점상 등까지 포함하는 통계청 분류상 자영업자 수가 2005년 617만명 정점을 찍고 줄어들기 시작해 2009년 말 571만 명까지 떨어졌다. 4년 만에 46만1000명의 자영업자가 사라진 셈이다. 이들 중 34.9%(16만1000명)가 도·소매업 자영업자다.

특별한 기술이 없는 퇴직자들이 '제2의 인생'을 위해 '마지막 보루'로 찾는 것이 자영업. 그러나 경기침체와 대기업 진출에 이마저도 자리를 잡기가 힘들어졌다.

이런 와중에 대형마트들은 성장을 계속하고 있다. 2008년 이후 할인점 매출 정체에 따라 기업형 슈퍼마켓인 SSM이 들어서면서 동네 상점들이 반발했고, 대형유통업체들이 피자, 치킨 등 품목으로 보폭을 넓힐 때마다 논란은 서민 상권으로 옮겨붙었다.

이 같은 현상은 SSM 문제로 주목받는 슈퍼마켓 사장들만 해당되는 게 아니다. 대형마트 내 서점, 화장품 등을 비롯해 임대형 매장으로 운영하고 있는 세탁소, 커피전문점, 안경점, 금은방 등이 독점적 지위로 인근상권을 못 살게 군다.

정재식 소상공인살리기 인천대책위 사무국장은 "대기업들이 동네상권까지 침범을 하면서 직장인들이 퇴직 후 쉽게 차렸던 자영업계는 더 이상 비상구가 될 수 없게 됐다"면서 "퇴출된 자영업자와 그 가족 대부분은 바로 신빈곤층으로 전략하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영업자가 망하면 당장 심각한 생활고에 직면하는 현실을 개선해야 한다"면서 "영세 자영업자를 위한 사회안정망 구축 문제를 진지하게 논의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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