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설명서' 안 읽고 자전거 타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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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설명서' 안 읽고 자전거 타는 사람들
  • 최종규
  • 승인 2011.03.21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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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니와 타카시, 《자전거 정비법》

 일본사람 ‘니와 타카시’ 님이 쓴 작은 책 《자전거 정비법》은 자전거를 집에서 나 스스로 손질하는 길을 글이랑 사진으로 찬찬히 보여줍니다. 좋은 길잡이책입니다. 다만 한 가지 생각해야 합니다. 자전거를 이제 막 타기로 하는 사람들이 이 책을 읽으면서 ‘자전거 손질을 아주 훌륭히’ 해낼 수 있지는 않습니다. 이 책을 늘 가방에 넣고 다니면서 꾸준히 읽는다면, 한 해쯤 지날 무렵에 비로소 ‘내 손으로 내 자전거 손질하기’를 제법 잘 해낼 수 있습니다.

 아는 사람이 거의 드물지만, 새 자전거를 사면, 종이로 된 상자에 자전거가 따로따로 부속으로 나뉜 채 들었고, 이렇게 나뉜 자전거를 하나하나 붙여야 합니다. 자전거집에서 파는 자전거는, 자전거집 일꾼이 하나하나 붙인 자전거입니다. 자전거를 새로 장만하는 이들은 ‘처음 상자에 담긴 자전거’란 ‘몸통이 다 붙은 자전거’가 아니라 ‘부속으로 이루어진 자전거’인 줄을 모릅니다.

 더욱이, 상자에 ‘자전거 설명서’가 함께 든 줄을 모릅니다. 손전화 기계를 사든 사진기를 사든, 새 물건을 담은 상자에는 ‘제품을 어떻게 써야 하는가’를 밝히는 설명서가 듭니다. 가스렌지를 장만해도 ‘가스렌지 설명서’가 들었어요. 텔레비전을 새로 살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약을 사도 작은 약상자에 깨알같은 글씨로 박힌 설명서가 들었어요.

 웬만한 사람들은 설명서를 그냥 버립니다. 설명서를 차근차근 읽는 사람은 매우 드뭅니다. 손전화를 새로 장만하면서 손전화 설명서를 꼼꼼히 읽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요. 사진기를 새로 사들이면서 사진기 설명서를 낱낱이 살펴 스스로 ‘내 사진기 잘 다루기’를 해내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사람들이 더 모르는 대목입니다만, 디지털사진기뿐 아니라 옛날 필름사진기를 담은 상자에도 ‘사진기 설명서’가 들었습니다. 수동사진기를 어떻게 다루고, 필름을 어떻게 넣으며, 빛은 어떻게 맞추는지를 차근차근 알려주는 설명서가 들었어요.

 사진을 처음 찍는다는 분들은 으레 사진교실에 나가거나 사진강좌를 듣는다거나 하는데, 이렇게 할 까닭이 없습니다. 사진기를 사면 따라오는 설명서를 혼자서 한두 시간쯤 읽으면서 스스로 사진기를 만지작거리면 됩니다. 어르신들은 당신 아이나 둘레 젊은이한테 설명서를 한 장씩 읽어 주면서 당신 스스로 만질 수 있도록 도와 달라 하면 됩니다. 사진기를 잘 다루는 젊은이여야 설명서대로 따를 수 있지 않습니다. 설명서에 적힌 글을 잘 읽을 줄 알면 됩니다. 어르신 가운데에는 눈이 나쁘다든지, ‘요즈음 사람들이 쓰는 글’을 잘 모르는 분이 많은 만큼, 젊은 사람한테 하루치 일삯을 주면서 설명서대로 도와 달라고 하면 됩니다.

 자전거를 살 때에 자전거집에 찾아가서 산다면, 자전거집 일꾼이 자전거를 ‘완제품’으로 다 맞추어 줄 뿐 아니라, 안장높이를 맞추어 주고, 페달을 살펴 주며, 손잡이가 흔들리거나 어긋나지 않도록 다스립니다. 뒷거울을 달아 준다든지 안전등을 붙여 주기도 해요. 그러나, 이보다 ‘자전거를 걱정없이 잘 타는 길’을 이야기해 줍니다. 페달을 어떻게 밟으며, 안장에 앉을 때에 허리나 머리나 손이나 팔은 어떠해야 하는가를 이야기합니다.

 단골 자전거집에 들러 여러 시간 죽치며 얘기꽃을 피우다 보면, 자전거를 새로 산다든지 고치러 오는 손님을 만나곤 합니다. 자전거를 새로 사는 분들 가운데 ‘자전거집 일꾼이 하나하나 알려주는 대로’ 잘 삭이거나 배우는 분은 좀처럼 없습니다. 자전거집에서는 고개를 끄덕끄덕하지만, 자전거집을 나오면 다들 금세 잊는 듯합니다. 자전거를 손질하러 오는 분들도 매한가지입니다. 스스로 할 줄 아는 ‘손질법’이란 한 가지도 없는 듯해요. 게다가, 자전거를 사면서 ‘바람넣이’조차 안 사는 사람이 참 많습니다. 자전거를 타다가 ‘바람이 빠지면’ 자전거집으로 가져와서 넣으면 된다고 여기는 분이 아주 많아요.

 바람 빠진 자전거를 함부로 타다가는 자전거 바퀴 튜브가 눌리며 조금씩 금이 가거나 찢어질 수 있습니다. 바람이 많이 빠졌다면 바큇살이 다칠 수 있어요. 이런 대목을 곰곰이 생각하면서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란 얼마 안 되는 듯합니다. 수백만 원에 이르는 자전거에다가 수십만 원에 이르는 자전거옷을 갖추었으면서 ‘바람넣이’ 하나 장만하여 자전거에 붙이고 다녀도 ‘무겁다’고 여기면서 바람넣이를 안 챙기는 자전거꾼마저 있습니다. 바람넣이조차 안 챙기며 자전거를 타고 먼길을 달린다면, 자전거 체인이 끊어지거나 못이나 뾰족한 뭔가를 밟아 튜브에 구멍이 났을 때에 손질할 만한 연장이란 아예 안 챙기겠지요. 자전거 나사를 조이는 연장 하나 무게가 1킬로그램이 되겠습니까, 100그램이 되겠습니다. 요즈음 나오는 자전거 나사는 ‘드라이버로 조이거나 푸는 나사’가 아닙니다. 몇 그램 안 되는 조그마한 연장으로 조이거나 풉니다. 이런 막대연장 하나쯤 지갑에 넣어 다니면, 꽤 알뜰히 쓸 수 있습니다.

 단골 자전거집 일꾼은 이야기합니다. “자전거 설명서요? 아무도 안 가져가서 다 버리지. 처음에는 안 버리고 모아 뒀는데, 너무 많이 쌓여서 버려야 해요. 아무도 안 읽어요.”

 자전거를 사면서 자전거 설명서를 챙기지 않는 사람들이니, 자전거 설명서를 읽을 까닭이란 없는지 모릅니다. 자전거 설명서를 읽지 않으니, 자전거 페달을 어떻게 밟아야 하고, 내 허리와 손을 어떻게 두어야 하며, 자전거로 찻길을 달릴 때라든지 거님길이나 자전거길을 달릴 때 어떻게 해야 좋은지를 모릅니다. 한 마디로 갈무리하자면, ‘자전거를 타는 기본 예의’조차 익히지 않으면서 자전거를 타는 셈입니다.

 자전거를 걱정없이 타는 길이란 ‘안전장구 갖추기’가 아닙니다. 안전장구를 아무리 잘 갖추었어도, 서울 한강 자전거길 같은 데에서 30∼40킬로미터로 싱싱 내달린다면, 앞 자전거하고 부딪히거나 자칫 미끄러져 나동그라질 때에 목숨을 잃을 수 있습니다. 자전거 헬멧은 ‘시속 30킬로미터 넘게 달리는 자전거꾼 머리’를 지켜 주지 않습니다. 아니, 25킬로미터를 넘게 달리는 자전거꾼 머리도 지켜 주지 않아요. 100만 원짜리 헬멧이든 1000만 원짜리 헬멧이든 똑같습니다. 걱정없이 타자면, 자전거를 달리는 기본 예의를 먼저 갖추어야 하고, 자전거란 ‘더 빨리 싱싱 내달리려고 하는 탈거리’가 아닌 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자전거대회에 나갈 선수가 되려고 자전거를 타지 않습니다. 우리는 자동차대회에 나갈 선수가 되려고 자동차를 몰지 않아요.

 좋은 탈거리이며 고마운 탈거리라고 깨달아야 합니다. 나를 사랑하고 내 동무와 이웃을 사랑하면서 자전거를 타는 길을 살펴야 합니다. 내 자전거를 내 몸과 같이 여기면서 아끼는 사람이라면 ‘자전거 설명서’를 즐거이 읽으면서 삭이리라 봅니다. 다만, 자전거 설명서는 한두 번 읽는대서 다 외우거나 알 수 없습니다. 오래도록 꾸준히 들여다보면서 가다듬어야 비로소 내 몸으로 스며듭니다.

 《자전거 정비법》이라는 작은 책은 자전거 설명서에 나온 이야기를 고스란히 되풀이합니다. 자전거를 새로 살 때에 설명서를 알뜰히 챙긴 분이라면, 이 책에 깃든 이야기란 설명서에 나온 이야기를 ‘조금 더 많이 넣은 사진’으로 보여줄 뿐인 줄 알아채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자전거 설명서를 차근차근 읽으면, 나 스스로 자전거 부품을 하나하나 맞출 수 있습니다. 그러나, 거의 모든 분들은 자전거를 사면서 설명서를 챙기지 않으니까 《자전거 정비법》 같은 책을 따로 사서 읽어야 합니다. 그나마, 이런 책까지 챙겨 읽으려는 자전거꾼은 몹시 드물 텐데, 아마, 일본사람 ‘니와 타카시’ 님은 ‘자전거를 사면서 설명서를 버리는 바보’들이 너무 많다고 느끼면서 이런 책을 썼겠지요.

 그런데, 설명서를 챙기지 않는 자전거꾼이 《자전거 정비법》 같은 책은 제대로 읽거나 알뜰히 받아들일까요. 참 궁금합니다.

 뭐, 설명서를 안 읽어도 손전화 기계로 전화 못 거는 사람은 없습니다. 설명서를 안 읽는다고 사진기 단추를 못 누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설명서를 안 읽었기에 자전거에 못 올라타는 사람은 없습니다. 아무렴, 그렇습니다.

― 자전거 정비법 (니와 타카시 글,최종호 옮김,진선books 펴냄,2007.11.10./7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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