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시력'을 높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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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시력'을 높이자!
  • master
  • 승인 2010.02.08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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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하게 삽시다 ④


사회지능(social intelligence)이라는 말이 있다. 사회지능이란 언어지능, 논리수학지능, 음악지능, 공간지능, 운동지능 같은 지능의 하나로 사회성을 이루어가는 능력을 말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교감 능력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이웃과 관계를 맺어가는 방법을 가리키기도 한다. 낯선 사람을 친구로 만드는 힘이기도 하다.

사람은 혼자 살기보다는 더불어 살도록 창조되었다. 더불어 살면서 맺어가는 관계는 일종의 자본이다. 자산이다. 개인이든, 회사든, 가정이든, 교회든 관계 맺기는 소중하다. 사회지능을 높이기 위해서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소통을 잘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웃을 '너'로 대해야 한다. '그것'으로 대해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세상에서 가장 확실하게 검증된 너와 너의 관계는 부부관계이다. 부부는 말 그대로 둘이 하나 되어 일을 이루어감으로써 수는 반으로 줄어들고 성과는 배로 내게 되는 시스템이라고 말할 수 있다. 내 삶의 시간을 비옥하게 하려면 사람들과의 관계를 잘 경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시간을 보내면, "아,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네" 라고 말하지 않는가?

사회지능을 높이려면 상대방을 설득하려고 하기보다는 상대방과 교감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소통하려면 먼저 교감해야 한다. 공감이란 마음과 마음의 파장이 만나 서로에게 조응하는 상태다. 좋은 음악을 함께 듣거나, 좋은 영화를 함께 감상할 때 나와 너 사이에 감정이입이 쉽게 이루어지는 이치를 깨달아야 한다. 소통의 본질은 공감이다. 공감의 바탕은 이해이다. 공감의 열매는 감동이다.

마음의 시력을 높이자. 다른 사람의 마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헤아리려고 애써보자. 건강한 공동체를 이루어갈 수 있다.

요즈음처럼 사회적으로 힘들고,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일수록 마음의 시력을 높여야 하지 않겠는가!



외국에서 오래 살다가 우리나라에 온 사람들 가운데에는 안경을 쓴 사람들이 너무 많아 놀란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불과 몇 십 년 전만 하더라도 안경 쓴 사람은 소수였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성인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초등학생 때부터 시력 이상을 보이는 경우가 너무 많다. 

실험 결과 우리는 점점 자연과 멀어져 근거리만을 주시하며 살아가고 있다. 매일 대부분의 시간을 TV, 컴퓨터, 휴대폰, 책 등 근거리의 시각 매체에만 매달리고 있으니 시력 이상이 늘지 않을 수가 없으리라. 

우리는 흔히 마음에도 눈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신체의 눈을 육안(肉眼)이라 한다면 마음의 눈을 심안(心眼)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우리는 눈이라는 신체기관을 통해 세상을 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떤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 관찰과 해석이 달라지는 것이라면 눈이 보는 것인지 마음이 보는 것인지 생각처럼 간단하지 않을 수가 있다. 아무튼 우리 마음도 하나의 눈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시력은 어떨까? 점점 더 밝아지고 있는 것일까?

어쩌면 긍정적인 대답이 쉽게 나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과도한 자극과 근거리 생활환경 자체가 신체의 눈을 계속 약화시켰다면, 타고난 정신력만으로는 버티기 힘든 과도한 스트레스가 마음의 눈 역시 계속 약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흔히 시력 이상을 이야기하면 근시, 원시, 난시 등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이는 마음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먼저 정신적 근시를 꼽을 수 있다. 정신적 근시란 말 그대로 장기적인 안목이 없이 바로 눈앞의 고통이나 즐거움, 안전에만 신경을 쓰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눈앞의 고통을 피하거나 눈앞의 즐거움을 누리느라 삶의 방향과 발전을 놓치기 쉽다. 즉, 오늘만 있고 내일이 없는 사람들이다. 공부하는 것이 귀찮아서 게임에만 몰두하는 학생, 매달 주는 월급의 유혹을 벗어나지 못해 원하는 일이 있음에도 도전하지 못하는 직장인, 장기보유보다는 단타매매에 급급한 주식투자자 등이 그 예이다.

두 번째로는 정신적 원시를 꼽을 수 있다. 정신적 원시란 정신적 근시와 정반대이다. 즉, 미래만을 중시하고 현재를 외면하는 사람들이다. 두 발을 허공에 둔 채 꿈만을 쫓아다니는 이상주의자이거나 내일의 성공을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쥐어짜는 성공강박증인 사람들을 들 수 있다. 이들의 삶에는 내일만이 중요하기에 오늘은 내일을 위한 희생의 시간에 불과하기 쉽다.

세 번째는 정신적 난시이다. 정신적 난시란 초점조절이 잘 되지 않아 대상이나 사물을 정확히 볼 수 없는 것처럼 마음의 틀이나 고정관념으로 인해 세상과 타인을 잘 볼 수 없거나 왜곡해서 바라보는 사람들이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모두 나를 이용하려 한다'는 마음의 틀 때문에 사람들과 가까이 가지 않으려 하거나 선의의 행동 마저도 불신의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을 들 수 있다. 이들은 자신의 부정적 과거경험을 일반화하고 절대화하여 자신의 틀을 통해 세상을 본다. 호주의 한 연구진에 따르면 야외 활동을 많이 하는 아이들이 그렇지 않은 아이보다 시력 이상이 적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이다. 자연의 일부인 인간은 자연과 연결될수록 건강해지고 자연과 단절될수록 병이 생기는 것이 자연의 이치일 것이다.
 

그렇다면 마음의 시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먼저 마음의 시력을 향상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부터 간단히 짚어보고 넘어가자. 그것은 한 마디로 지혜로워지는 것을 말한다. 즉, 오늘의 즐거움과 내일의 희망을 연결시키고, 자신의 색안경에서 벗어나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을 말한다. 이를 위해 몇 가지 조언을 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마음의 눈에 줌 기능을 장착하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먼 것도 잘 보고 가까운 것도 잘 볼 수 있는 마음의 눈이다. 다시 말해 새처럼 멀리보고 개미처럼 가깝게 볼 수 있는 줌 렌즈같은 마음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선택이나 결정을 할 때 숲을 보고 나무를 보려고 노력하고, 단기적 전망과 아울러 중장기적 전망이 어떨지를 함께 떠올리는 습관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눈 하나는 개미의 눈, 다른 눈은 새의 눈이라 생각하고 바라보자.

둘째, 자신의 전제를 살펴보고 의심하라. 특히 남들보다 부정적인 감정이 느껴질 때는 자신의 강한 전제가 어긋났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이를 잘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아이가 일찍 잠이 들지않아 크게 스트레스를 받는 엄마가 있었다. 그녀가 심하게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은 '아이는 일찍 자야만 잘 발육할 수 있다'는 강한 전제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이런 자신의 전제를 알아차리고 이에 대해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아이가 일찍 자는 것이 좋지만 나는 이를 왜 예외없이 적용하고 있는가? 아이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충분한 잠인가? 일찍 자는 것인가?" 그리고 이는 전제에 틈을 주고 융통성을 불어넣어주었다. 아이도 엄마도 밤이 한결 편해진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변화와 성장은 당신의 전제 밖에서 존재함을 상기하라.

셋째, 몰입의 대상을 찾아 그 경험을 늘려라.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오늘의 즐거움과 내일의 희망을 연결하는 것이다. 오늘과 내일이 유리되지 않고 만나는 영역이 바로 몰입의 경험과 순간이다. 몰입의 경험을 늘리려면 다음 세 가지 질문의 공통영역을 잘 찾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나에게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은 무엇인가?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다. 물론 처음에는 막연하고 잘 떠오르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계속 물으면 답을 찾는 것이 우리의 뇌이고 삶이다. 계속 묻자. 

도움말:국민건겅보험공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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