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진은 따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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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사진은 따로 없다
  • 최종규
  • 승인 2011.03.28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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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 읽는 사진책] 스티브 맥커리(Steve McCurry), 《Portrait》

 사진을 잘 찍는다 할 만한 사진쟁이는 따로 없습니다. 사진을 못 찍는다 할 만한 사진쟁이 또한 따로 없습니다. 사진쟁이는 저마다 다 다르게 사진을 찍기 때문에, 누가 더 잘 찍거나 누가 더 못 찍는다 이야기하거나 가르지 못합니다. 저마다 살아가는 대로 찍는 사진이기 때문에 ‘이 사진이 참 좋다’고 한다면, 나로서는 ‘이 사진쟁이가 살아가는 결이 참 좋다’고 느낀 셈입니다. ‘이 사진은 그닥 좋지 않다’고 느끼면, 나로서는 ‘이 사진쟁이가 나아가는 삶이 그닥 좋지 않다’고 느낀 셈이에요.

 사진쟁이는 누구나 사진쟁이 나름대로 선 자리에 알맞게 사진을 찍습니다. 사진즐김이는 누구나 사진즐김이 나름대로 선 자리에 걸맞게 사진을 읽습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이든 사진을 읽는 사람이든, 서로서로 선 자리에 따라 사진을 마주합니다. 저마다 살아가는 제 삶자리를 고이 맞아들이면서 사진을 껴안습니다.

 책을 읽든 일을 하든 말을 하든 글을 쓰든 똑같습니다. 누구나 살아가는 만큼 책을 읽거나 일을 하거나 말을 하거나 글을 씁니다. 아는 만큼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닙니다. 사는 만큼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아는 만큼 일을 하지 않고, 내가 살아가는 만큼 일을 해요. 아는 만큼 말을 하거나 글을 쓰지 않아요. 이제껏 살아온 만큼 말을 하거나 글을 씁니다.

 살아가는 눈이 사진하는 눈입니다. 살아가는 손길이 사진하는 손길입니다. 온누리를 따숩게 껴안고픈 꿈으로 사진을 하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온누리를 따숩게 껴안고픈 꿈이 사진으로 녹아듭니다. 다만, 사진길을 걸은 지 아직 얼마 안 된 이라면, 온누리를 따숩게 껴안고픈 꿈이 사진으로 깊이 녹아들지는 못합니다. 조금 어리숙하겠지요. 어느 모로 보면 좀 지나치거나 넘칠 수 있고, 때로는 모자라거나 엇나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내 삶길에 따라 내 사진길인 만큼, 사진으로 담는 솜씨가 모자라더라도 사진을 이루는 넋은 처음이나 끝이나 매한가지입니다.

 살아가는 매무새 그대로 사진을 합니다. 살아가며 사람을 사귀는 매무새 그대로 사진을 하면서 사람을 만납니다. 사람이든 자연이든 뭇목숨이든 사진으로 예쁘게 담으려는 꿈을 품으면, 언제나 예쁘게 담습니다. 다만, 이때에도 처음에는 손재주는 좀 어설프겠지요. 차근차근 손재주를 가다듬으면서 내 사진을 빛냅니다.

 먼저 어떻게 살아가려 하는가 하고 내 삶을 단단히 뿌리내리지 않고서는 사진을 하지 못합니다. 먼저 내 삶을 어떻게 일구려 하는가 하고 내 다짐을 굳세게 다스리지 않고서는 사진뿐 아니라 자전거라든지 달리기라든지 살림이라든지 사랑이라든지 배움이라든지, 어느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합니다.

 좋은 사진이 따로 없듯이 좋은 삶은 따로 없습니다. 좋은 사진이 따로 없는 만큼 좋은 사람이 따로 없습니다. 좋은 사진을 생각할 수 없듯이 좋은 사랑을 생각할 수 없습니다.

 더 돋보이는 사람을 찍었기 때문에 사진이 더 돋보일 까닭이 없습니다. 더 이름난 사람을 찍었으니까 사진이 더 이름날 까닭이 없습니다. 더 예쁘장한 사람을 찍었다 해서 더 예쁘장한 사진이 되지 않아요.

 사진은 그예 사진이고, 사람은 그예 사람이며, 사랑은 그예 사랑입니다.

 있는 그대로 사진을 맞아들이지 않는다면, 나한테든 남한테든 사진이란 사진이 아니라 껍데기이거나 겉치레에 그칩니다. 있는 그대로 사진을 가슴으로 삭여 내 삶 한 자락으로 살포시 녹일 때에 바야흐로 나한테든 남한테든 살가이 사진으로 젖어듭니다.

 스티브 맥커리(Steve McCurry) 님이 일군 사진책 《Portrait》(Phaidon,1999)를 들여다봅니다. 사진책 《Portrait》에 담긴 사람들 가운데 돋보인다거나 이름났다거나 한 사람도 틀림없이 있겠지요. 그러나 이렇게 사진책으로 담긴 사람들 바로 옆에 있었을 다른 사람을 사진으로 담았어도 《Portrait》는 똑같이 이루어집니다.

 누구를 찍었기에 《Portrait》가 되거나 누구를 못 찍거나 안 찍었대서 《Portrait》가 안 되지 않습니다.

 영어사전에서 ‘Portrait’를 찾아보면 ‘초상화’나 ‘인물 사진’이라고 풀이합니다. 아마 그림만 있던 지난날에는 ‘얼굴그림’을 ‘Portrait’라 했겠지요. 우리는 말뜻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아무 말이나 함부로 쓰며 살아가는데, ‘肖像畵’란 “초상 그림”이고, “초상 그림”에서 ‘肖像’이란 “얼굴을 그리는 일”입니다. 아득히 먼 옛날 이 나라에서 살아가던 사람들은 쉽거나 바른 한국말을 하기보다는 중국사람을 섬기며 중국말을 하거나 중국글을 쓰기를 즐겼습니다. 이러다 보니, 여느 사람은 알아들을 수 없는 ‘肖像’ 같은 한자말을 중국에서 받아들였으며, 이 중국말은 아직까지 이 땅에서 버젓이 살아숨쉽니다. 이제 우리 한국사람은 중국사람 중국말이 아닌 한국사람 한국말을 해야 할 테니, ‘초상화’가 아닌 ‘얼굴그림’이라 말해야 하며, ‘인물 사진’ 또한 아닌 ‘얼굴사진’이라 일컬어야 제대로 쓰는 말이 됩니다.

 곧, 《Portrait》는 ‘얼굴사진’이란 소리입니다. 그러나, 사진책을 내놓을 때에 《얼굴사진》처럼 쓰는 사람은 없으니, 그냥 《얼굴》이라 하겠지요. 또는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스티브 맥커리 님은 영어로 ‘human’이라 하지 않고 ‘portrait’라 했습니다. ‘사람’이라 할 때에는 사람 모습이나 얼굴 모습뿐 아니라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이나 ‘사람이 살아가는 터’까지 두루 담는 사진이요, ‘얼굴’이라 할 때에는 얼굴 모습이나 얼굴이 드러나는 사람 모습을 담는 사진이지, ‘사람이 살아가는 터전이나 보금자리까지 넓게 살피는’ 사진이 아닙니다. 애써 ‘사람’으로 하지 않고 ‘얼굴’로 하더라도 ‘사람삶’을 담을 수 있다는 뜻으로 《Portrait》이고, 이에 걸맞게 온누리 여러 나라 사람들을 만나면서 ‘얼굴을 물끄러미 들여다보는’ 사진을 책 하나로 도톰하게 엮습니다.

 《Portrait》에 담긴 얼굴사진을 살피면, 어린이 얼굴사진이 어른 얼굴사진보다 조금 많고, 계집아이 얼굴사진이 사내아이 얼굴사진보다 살짝 많으며, 아프가니스탄과 인도와 버마 사진이 거의 모두를 차지합니다. 사이사이 티벳과 미국 사진이 깃듭니다. 니제르나 말리나 인도네시아나 유고슬라비아나 네팔 사진도 드문드문 섞입니다.

 사진을 찍는 스티브 맥커리 님을 가만히 바라보는 눈빛이든, 사진쟁이가 사진을 찍는 줄 모르는 사이 찍힌 사람들 눈빛이든, 이 나라 사람들 눈빛이든 저 나라 사람들 눈빛이든, 《Portrait》에 얼굴이 실린 사람들 눈빛은 무척 말갛습니다. 미국사람이라서 게슴츠레하지 않습니다. 배고픈 어린이라서 뿌옇지 않습니다. 가난한 사람이라서 슬프지 않습니다. 돈있는 사람이라서 기쁘지 않습니다. 그저 사람삶 그대로 보여주는 눈빛입니다.

 사진으로 찍히는 사람들 가운데 몇몇은 두 손을 곱게 모아 무슨 이야기를 소곤소곤 들려줍니다. 사진으로 찍히면서 이렇게 두 손을 곱게 모을 수 있구나 하고 새삼 깨닫습니다. 사진쟁이가 사진을 잘 찍었으니 이와 같은 모습을 얻기도 할 테지만, 사진으로 찍히는 사람이 마음을 한껏 열어 ‘아무쪼록 사랑과 기쁨이 찾아드소서’ 하는 비손이 담기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여러 나라 여러 겨레 사람들을 이처럼 한 자리에 모아서 두루 돌아보면서 생각합니다. 몸피와 얼굴과 살결이 같은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같은 겨레 사람일지라도 옷차림이 똑같지는 않습니다. 한 사람이 물레를 잣고 베틀을 밟아 바느질을 하여 얻은 옷일지라도 두 사람이 입으면 두 가지 옷이 다릅니다. 얼핏 보면 똑같다 생각하겠으나, 다른 두 사람이 입은 옷인 만큼 다른 두 가지 옷입니다. 그러나, 다른 두 사람이지만, 두 사람 몸에 흐르는 기운과 넋이란 한동아리로 아름답습니다. 두 사람 모두 따순 피가 흐르며 따순 사랑이 감돕니다.

 흙땅을 맨발로 뒹굴든, 아스팔트바닥을 구두를 신으며 자가용을 모느라 밟을 일조차 없든, 두 사람 모두 몸에는 따순 피가 흐릅니다. 차가운 피가 흐르는 사람이란 없습니다. 더 거룩해 보이는 얼굴을 찾으려고 티벳이나 인도나 아프가니스탄을 찾아갈 까닭이 없습니다. 더 슬퍼 보이거나 가녀리다 싶은 얼굴을 찾으려고 미국이나 프랑스를 떠돌 까닭이 없습니다. 저마다 선 자리에서 돌보는 삶을 느끼면서 손을 잡을 수 있으면 됩니다. 누구나 제 나라 제 겨레 터전에 걸맞게 살아가는 결을 사랑할 수 있으면 됩니다.

 사진쟁이는 사진이기 때문에 글이나 그림이 이루지 못하는 이야기를 빚습니다. 글이나 그림으로는 온누리 여러 나라와 겨레 삶자락을 두루 찾아다니며 마주하는 동안 이렇게 숱한 빛깔 숱한 얼굴 이야기를 낳지 못합니다. 사진은 사진이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 다 다른 얼굴빛과 ‘얼굴에 서린 이야기’를 두루 느끼도록 돕습니다.

 좋은 사진은 따로 없습니다. 좋은 삶이라고 느끼며 즐거이 꾸리는 사람이 있다면, 좋은 사람으로서 좋은 삶이요, 이 좋은 사람 좋은 삶을 어깨동무하는 사진쟁이는 전문작가이든 다큐작가이든 풋내기이든 새내기이든 아무것 아닌 사람이라 하든, 사진기를 들 때에 누구나 다 다르게 좋은 사진을 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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