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학과에 사진교재는 부질없습니다
상태바
사진학과에 사진교재는 부질없습니다
  • 최종규
  • 승인 2011.03.30 14:2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찾아 읽는 사진책] 임영균, 《사진학교에서 배운 것들》

 중앙대학교 사진학과에서 사진을 가르치는 일을 하는 임영균 님이 사진학과 학생한테 들려주는 이야기를 그러모은 책 《사진학교에서 배운 것들》을 읽는다. 이 책은 사진책이라기보다 사진교재라 할 만하다. 글쓴이 스스로 머리말이나 꼬리말에서 밝히기도 하지만, 대학교 사진학과에 들어온 젊은이한테 ‘사진을 익히는 첫걸음’쯤으로 들려주는 이야기를 찬찬히 그러모은다.

 그런데 궁금하다. 이만 한 ‘사진 밑지식’조차 사진학과 학생들은 갖추지 못했는가 하고. 대학교 사진학과쯤 들어가려 하는 새내기 대학생들은 고등학생 때까지 이만 한 이야기조차 스스로 깨닫거나 헤아리지 못하는가 하고. 이리하여, 대학교 사진학과에서는 고작 이런 밑지식을 한 해에 걸쳐 가르쳐 주어야 하는가 하고.

 사진학과 교수 임영균 님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사진은 스스로 가장 고민하고 느꼈던 삶이 그대로 배어난 것이다(17쪽).” 하고 말한다. 이 말은 더없이 마땅하다. 다만, 더없이 마땅한 이 말을 끌어내기까지 너무 많은 길을 거쳐야 하는구나 싶다. 게다가 더없이 마땅한 이 말은 굳이 사진학교에서 가르칠 이야기가 아닐 텐데 하고 느낀다. “좋은 카메라를 선택하는 기준은 나를 가장 잘 아는, 내가 가장 잘 다룰 수 있는 카메라를 만나는 것이다(29쪽).” 같은 이야기를 읽으면서도 몹시 마땅한 대목이기는 하지만, 어쩐지 깊이가 얕다고 느낀다. 대학교 사진학과라면 누구나 사진기를 다룰 텐데, 사진기를 다루는 사람으로서 나 스스로 잘 다루지 못하는 장비를 다루려는 학생이 있을 수 있는가. 사진학과 교수이든 전문 사진쟁이이든 나 스스로 잘 다루지 못하는 사진기를 쓸 수 있는가.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내 몸에 안 맞는 자전거를 아무렇게나 타고 다닐 수 있는가. 밥을 먹는 사람이 내 손에 안 맞는 수저로 밥을 먹을 수 있는가.

 그러나, 내 몸에 안 맞는 수저일지라도 쓰다 보면 익숙해진다. 내 몸에 안 맞는 자전거라 하더라도 타다 보면 익숙해진다. 내 몸에 어울리지 않던 사진기라 하지만 오래오래 쓰다 보면 익숙해진다.

 임영균 님은 “사진학교에서 배운 것들”이라는 이름을 붙여 책 하나 내놓았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임영균 님 스스로 사진학교에서 이와 같은 이야기를 배웠기 때문에, 다시금 사진학교 젊은이한테 이와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리라. 임영균 님이 다른 사진을 배웠다면 다른 사진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 테지. 틀림없이 임영균 님도 ‘사진 = 삶’인 줄을 어느 만큼 헤아리기는 하지만, 아직 온몸으로 깊숙하게 느낀다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사진은 스스로 가장 고민하고 느꼈던 삶이 그대로 배어난 것이다”라는 말은 ‘내가 가장 좋아하거나 사랑할 사진이란 스스로 일구는 삶이 그대로 드러나는 사진’이라는 소리이고, 한 마디로 간추리면 ‘내가 좋아할 사진은 내가 좋아할 삶’이며, ‘내가 사랑하는 사진은 내가 사랑하는 삶’이라는 소리이다. 곧, 내가 사람을 사랑하는 삶이 그대로 내 사진이 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내 사진으로 담고, 내 사랑이 내 삶이 되며, 내 사랑하는 사람하고 내 삶을 함께 일구는데, 내 사진은 이러한 삶흐름을 고스란히 담는 이야기보따리인 셈이다.

 오늘날 고등학교 아이들을 생각해 본다. 오늘날 고등학교 아이들은 꿈이나 삶이나 넋을 품을 수 없다. 아이들은 오로지 대학바라기만 해야 한다. 대학교 사진학과에 들어가려 한다 해서 고등학생 때이든 중학생 때이든 초등학생 때이든 푸른 꿈이나 푸른 사랑이나 푸른 삶을 일구지 못한다. 아이들은 입시 성적에 따라 대학교에 들어간다. 아이들이 어떤 꿈과 삶과 사랑을 품느냐에 따라 ‘하고픈 공부’를 하든 ‘하고픈 일’을 할 수 없다.

 어쩔 수 없이, 대학교 사진학과에서는 아이들한테 ‘사진은 바로 네 삶이란다’ 하고 들려줄밖에 없다. 아이들 스스로 ‘사진은 바로 내 삶이야’ 하고 느끼면서 ‘내가 사진으로 담을 내 삶을 어떠한 이야기가 드러나도록 내 손길을 가다듬으면 좋을까’ 하고 돌이키도록 이끌지 못한다. 이럴 겨를이 없는 대학교 사진학과가 되고 만다. 아이들은 초·중·고등학교를 거치면서 너무도 슬픈 시험기계가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생각이 갇히고 마음이 닫히며 삶이 쪼그라들었으니까, 이 갇히고 닫히며 쪼그라든 넋을 천천히 풀어내야 할 테니, 《사진학교에서 배운 것들》에 담긴 아주 가벼운 밑지식을 대학교 사진학과에서 가르칠밖에 없다 하리라.

 그래도 이 책은 여러모로 아쉽다. 백 사람이면 백 사람 다 다른 삶을 일구면서 백 가지 다른 사진이 태어나야 할 텐데, 저마다 다 다른 사람들이 저마다 다 다른 사진길을 걷도록 얼마나 잘 타이르면서 북돋우는지는 모르겠다.

 임영균 님은 말한다. “미술의 역사가 서양미술사와 동양미술사로 확연하게 구분되는 지금, 서양사진사와 동양사진사의 구분은커녕 동양사진에 대한 아무런 언급도 없는 사진사 도서는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161쪽).”고. 그러면, 임영균 님 스스로 말하면 된다. 《사진학교에서 배운 것들》조차 서양 사진쟁이 이야기로 그득하다. 고작 일본 사진쟁이 한두 사람 이름이 얼핏 나올 뿐이다. 일본 사진밭조차 더 넓거나 깊게 다루지 못한다. 베트남 사진이라든지 버마 사진이라든지 인도네시아 사진은 아예 건드리지 못할 뿐 아니라, 중국 사진이나 대만 사진이나 재일조선인 사진은 조금도 다루지 못한다.

 조금 더 바지런히 아시아 여러 나라 사진책을 사서 모으고 읽히면서 임영균 님 사진넋과 사진학과 대학생 사진얼을 끌어올려야 하지 않느냐 생각한다. 말로만 ‘동양사진사’ 걱정을 하지 말고, 아름다우며 재미나고 즐거운 동양사진사 이야기를 들려주면 된다. 말로만 앞세우는 걱정을 넘어야 하고, 말부터 ‘임영균 님 스스로 사랑하며 아끼는 숱한 한국·일본·아시아 사진 이야기’를 《사진학교에서 배운 것들》에 담으면 된다. 이러한 이야기를 담지 못한다면 이 사진교재는 교재로서도 그리 아름다울 수 없다. 아니, 그저 교재로 그치고 만다.

 대학생한테 교재란 부질없다. 대학교 미술학과에 교재가 쓸모있을까. 대학교 문예창작학과에 교재가 쓸데있을까.

 문화를 말하건 예술을 다루건 교재가 있을 수 없다. 문화나 예술을 이야기하는 학과에서 ‘교재 = 삶’일 뿐이다. 문화쟁이나 예술쟁이가 되려는 학생은 학생 스스로 학생 삶을 교재로 삼아야 한다. 학생 스스로 학생 몸뚱아리와 마음밭을 교재로 삼아야 한다. 학생 스스로 부대끼거나 부딪히는 하루하루가 송두리째 교재가 되며 책이 되고 삶이 된다. 학생들이 만나거나 사귀는 모든 사람이나 짝꿍이나 이웃이 교재가 되고 책이 되며 삶이 된다.

 살림하는 사람한테는 요리책이나 육아책이란 부질없다. 살림하는 사람은 하루하루 맞아들이는 온갖 일거리가 곧바로 교재 노릇을 하고 책 구실을 한다. 그저 몸으로 부둥켜안는 삶이다. 아이랑 노는 법을 책을 읽어 배울 수 있겠는가. 그냥 아이 손을 잡고 돼지 멱따는 소리로 노래를 부르면 된다. 구슬치기를 할 때이든 고무줄놀이를 할 때이든 놀이책을 옆에 놓고 구슬을 치거나 고무줄을 넘겠는가.

 사진하는 사람 가운데 사진교재를 곁에 끼면서 사진을 찍는 바보란 없다. 사진하는 사람은 ‘늘 들고 다니기에 알맞을 사진기’를 하나 옆구리이든 어깨이든 손에 끼거나 쥐거나 걸치면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삶과 사랑’을 사진꽃으로 맺으면 된다. 굳이 교재가 있어야 한다면 이 나라가 교재이고 내 동네가 교재이며 내 어버이가 교재이다.

 교과서나 교재는 한 시간쯤 들여 가볍게 읽어서 치우는 심심풀이 땅콩일 뿐이다. 교과서나 교재 하나를 한 해나 들여 가르치려 한다면, 가르치는 사람이나 배우는 사람이나 슬프다. 굳이 어느 책 하나를 교재처럼 삼으려면 강의를 하는 한 시간에 사진책 두어 가지를 보여주면서 가르치고, 한 해를 통틀어 사진책 이삼백 권은 보여주면서 가르칠 때에 비로소 ‘교재를 써서 가르친다’고 말할 수 있다.

 사진을 배우거나 사진을 찍으려 한다면 대학교 사진학과 같은 데에는 들어갈 까닭이 없다. 그러나 이 나라에서 초·중·고등학교를 다니며 시험기계가 되고 만 아이들로서는 대학교밖에 갈 데가 없다고 잘못 안다. 이 어리숙한 철부지들한테 철이 들도록 할 몫이 대학교 교수한테 있다. 사진학과 교수라면 어리숙한 철부지한테 교재를 버리고 대학교 졸업장을 버리면서 ‘아이들아, 너희는 너희 삶을 찾아야지.’ 하고 가르칠 줄 알아야지 싶다. ‘교재 읽히기’가 아니라 ‘아이들이 저마다 스스로한테 가장 알맞을 수많은 교재가 어디에 있는지를 제힘으로 알아내도록 이끄는 길동무이자 이슬떨이 몫’을 할 수 있는 임영균 님으로 거듭나기를 바라 마지 않는다.
― 사진학교에서 배운 것들 (임영균 글·사진,토네이도미디어그룹,2010.1.5./18000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