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침략에 강화 천도, 도피인가? 항쟁인가?
상태바
몽골 침략에 강화 천도, 도피인가? 항쟁인가?
  • 이한수
  • 승인 2019.11.29 08: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이한수의 팩션 인천사 ]
(11) 유현종 소설 [무인시대와 삼별초], 김종록 소설 [붓다의 십자가]

몽골이 유럽까지 제압하며 제국으로 성장하면서 고려가 몽골 제국의 지배 아래 들게 되는 13세기 무렵은 세계사적 격변기였다. 당시 동아시아는 송나라와 요나라가 패권 다툼을 하고 있었는데 요나라는 거란족이 세운 나라로 야율아보기라는 영웅이 여러 부족을 통합하여 이룩한 거대 국가였다. 동쪽으로는 발해를 멸망시켜 차지하고 서쪽으로는 외몽고까지 진출했다. 중국 본토의 새로운 통일 제국 송나라 또한 요나라에 밀려 황하 이남으로 위축되었다. 이후 한동안 동아시아는 고려, , , 3국의 세력 균형이 유지되었다.

 

몽골이 성장하면서 고려와 연합하여 요동지역의 요나라(거란족)을 정벌하고 난 뒤, 몽골은 고려에 공물을 요구했는데 최씨 정권은 이에 응하지 않아 몽골과 고려는 사이가 틀어진다. 여진족의 나라 동진은 몽골과 고려를 이간질하면서 정세는 복잡하게 돌아가고 고려에서 몽골 사신이 피살되는 사건이 일어난다. 거란족의 요나라가 몽골에 의해 망해갈 때 여진족은 금나라를 세워 몽골에 맞섰고 금나라 음모에 의해 몽골 사신 저고여가 피살되었던 것이다. 몽골은 금나라를 치기 위해 준비하고 있던 터라 고려를 먼저 제압하기 위해 저고여피살이 고려의 책임이라 몰아붙여 고려 정벌에 나섰다.

 

고려궁지
고려궁지

 

몽골의 1차 침입 때 고려는 김경손 장군 등의 활약으로 몽골군을 잘 막아냈지만 결국 수도 개경이 포위되고 무신정권 최고 권력자 최우는 몽골군과 강화를 맺게 된다. 몽골은 철군을 하고 점령지 총독 다루가치를 파견하여 고려는 몽골의 식민지가 된다. 최우는 대몽 항쟁을 위해 강화 천도를 추진하고 몽골은 고려의 항복이 속임수임을 알게 되자 다시 침략해 들어와 이후 30여 년간의 전쟁이 지속된다.

반도의 작은 나라 고려가 유라시아 전체를 제패할 만큼 강성해진 몽골의 침략을 맞아 강화도로 천도한 일에 대한 역사적 평가들이 서로 너무 달라 참 혼란스럽다. 제 권력 유지에만 혈안이 되어 백성을 버리고 도피했다고 평하는가 하면, 외적의 침략에 굴복하지 않고 민족혼을 지켜낸 항쟁이었다고 평하기도 한다. 최씨 무신정권의 강화 천도를 그려낸 픽션물도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찬주 소설 <단군의 아들>은 독립운동가 나철이 강화도의 대몽항쟁에 대해 이렇게 말하는 것으로 그렸다.

 

압록강을 건너온 몽골군이 강화도 바다를 건너오지 못헌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허네. 최우가 강화도 들어온 것은 단군 대황조 님을 의지해서 배수의 진을 친 거라 마시. 제천단에 올라 천제를 지내 불고 난 뒤 몽고 대군과 40여 년 동안 맞서 싸와부렀는디

 

나철서일과 함께 청산리 전투, 봉오동 전투에서 대승을 거둔 독립군의 지휘관이자 민족 종교 대종교를 다시 일으켜 일제에 맞서 싸운 독립투사들의 정신적 지주이기도 했다. 나철은 고려시대의 대몽항쟁 또한 단군조선에 대한 민족적 자부심 때문에 가능했다고 본 것이다. 드라마 [무신]에서도 강화 천도를 항쟁으로 그렸다. 무신정권 수장 최우가 몽고와 화친하는 것은 항복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 말하고 강화도 천도를 반대하는 신하들을 처단하고 원나라의 식민지 관리였던 다루가치를 암살하도록 지시한다. 임금(고종) 또한 처음에는 강화 천도를 반대했지만 천도 한 달 뒤에 최우를 따라 강화도로 가게 된다.

 

김포 문수산에서 내려다본 강화읍내
김포 문수산에서 내려다본 강화읍내

 

몽골의 침략을 맞아 굴복하지 않고 수도를 옮기고, 조정의 환도에 불복하여 반란을 일으켜 끝까지 싸운 삼별초 항쟁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 집권 세력이었던 최씨 무신정권이 어떻게 형성되었으며 피지배 집단과의 갈등 양상을 면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뿐만 아니라 당대 인민들의 정신 세계와 사회 문화의 기초라고 할 수 있는 불교 전래의 파급 효과에 대해서도 들여다봐야 한다. 무신정권의 성립과 삼별초 항쟁의 통시적 고찰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작품으로는 유현종 장편소설 [무인시대와 삼별초], 몽골 침략으로 전국토가 유린되고 있는 마당에 대장경 조판이라는 대규모 국책 사업을 벌이게 된 당시 상황을 거시적으로 그린 작품으로는 김종록 장편소설 [붓다의 십자가]를 추천한다. 먼저 [무인시대와 삼별초] 이야기 대강을 살펴보자.

 

소설은 도입부에서 무신 정변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시대 상황을 아주 리얼하게 그리고 있다. 묘청의 난을 진압하는 데 큰 공을 세운 김부식은 무신 정변 직전의 최강 실세였다. 소설은 김부식의 아들 김돈중이 경호부대 군졸의 아내를 왕의 후궁으로 갖다 바치고 남편이 소속되어 있던 부대를 해체시키는 등 만행을 저지르는 것으로 그렸다. 당시 문관들의 만행이 얼마나 심했는지는 실제로 일어난 정중부 수염 사건으로도 충분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소설은 문관들끼리 무관의 수염을 불태우는 내기를 걸고 김돈중이 정중부의 수염에 불을 지른 일을 아주 실감 나게 그리고 있는데, 이 사건처럼 소설이 그리고 있는 문관들의 만행들은 단순 허구로 치부할 수 없을 듯하다.

 

정중부를 수장으로 이의방과 이고가 반정을 성사시키고 이의방은 큰딸을 태자비로 들여보내며 정권을 장악한다. 정중부는 아들 정균을 시켜 이의방을 살해하고 권력을 잡았으나 얼마 가지 못하고 경대승에게 살해된다. 경대승은 심장이 안 좋아 급사하고 이의민과 최충헌의 권력 다툼이 첨예해진다. 최충헌 최충수 형제가 이의민을 제거하고 권력을 잡게 되지만 형제간의 권력 다툼이 일어나 최충헌이 동생 최충수를 죽이고 권력을 독점하면서 최씨 무신정권 시대가 열린다. 최씨 무신정권은 4대에 걸쳐 60년간 권세를 누린다. 이렇게 무신정권의 계보를 추려보기만 해도 이 권력이 얼마나 누추했는지 알 수 있다. 이러니 최충헌의 자식 최우 집권기에 몽골 침략을 맞아 단행한 강화도 천도를 좋게만 볼 수 없는 것이다.

 

최우의 강화 천도를 어떻게 볼 것인가. 자주 독립성을 지키기 위해 최후의 일인까지 몽골군과 싸워 조국을 지키겠다는 결의로 볼 것인가, 몽골군의 지배 아래에 들면 최씨 정권의 독재권이 약화될 것을 우려한 이기심에 불과한가. 최씨 정권의 사병이었던 삼별초의 반란과 항쟁은 또 어떻게 봐야 할까. 최우가 타락하여 민심이 돌아서고 향락으로 몸이 망가져 사망하고 난 뒤 그의 아들 최항이 권력을 물려받았지만 사병 집단이었던 삼별초, 마별초가 정변을 일으켜 최항을 제거한다. 삼별초(신의군)의 장군 김인준(김준, 드라마 무신주인공), 배중손과 마별초의 장군 김통정이 주도했다.

 

드라마 [무신]에서는 삼별초 반란의 주도자 중 한 명인 김인준을, 노비 신세였다가 최고 권력자로 변신한 고려의 스파르타쿠스로 그렸다. 그러나 소설에서는 김인준 또한 이전 무신정권 권력자와 다를 바 없는 부정적 인물로 그렸다. 김인준이 최항의 서자 최의를 허수아비로 세워놓고 실질적으로 최고 권력자가 되지만 그 또한 이전 최씨 권력자와 다를 바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김인준의 부하 임연에 의해 살해된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소설은 몽골과의 화친협약과 개경 환도에 반발하여 일으킨 배중손과 김통정의 반란부터는 삼별초를 상당히 긍정적으로 그려냈다. 노비 출신이라 역사적 기록이 없는 김통정이 몽골군에 끌려갔다가 탈출하여 대표적인 대몽 민중항쟁 전투였던 처인성 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으며 삼별초 항쟁의 마지막 지도자로 제주도에서 최후를 맞는 파란만장한 일생을 디테일하게 그려냄으로써 삼별초의 대몽 항쟁이 가진 역사적 의미를 새롭게 환기시키고 있다.

 

처인성 전투에서 스님 장군 김윤후가 적장 살례탑을 사살했다는 기록이 전해 내려오기는 하지만 평민 의병에 의해 살해되었다는 이설異說이 있기도 하는데 소설은 이설에 의거하여 그려냄으로써 민중 항쟁에 주목하고 있다. 그리고 이 소설에서는 구체적으로 그려내지 않았지만 대몽항쟁에 불교가 차지하는 위상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 전국 각처의 승병이 대몽항쟁에 자발적으로 나섰을 뿐만 아니라 강화도 조정에서도 몽골에 대항하기 위해 대장경 조판이라는 거대한 국책사업을 추진한 데에서 고려시대 불교의 영향력을 짐작할 수 있다.

 

강화 선원면 선원사지
강화 선원면 선원사지

 

김종록의 장편소설 [붓다의 십자가]는 강화도 팔만대장경 조판 과정을 그린 사극으로 대표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최충헌이 집권하고부터 정규군은 무신정권 최씨 집안을 호위하는 사병으로 전락한다. 외적이 쳐들어와도 정규군을 경호대로 잡아두고 승병을 새로 조직하여 전선으로 내보냈고 이런 부당한 처사는 불교계의 반발을 사게 된다. 승병들을 최충헌을 타도하기 위해 거병했다가 무참하게 살해되고 불교계는 최씨 무신정권과 원수지간이 된다. 몽고군 또한 고려의 승려 집단을 가혹하게 제거하려고 했다. 승병은 몽고군의 진군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집단이기 때문이다. 최씨 정권은 불교계의 반발을 제어하기 위해 큰 불사佛事를 일으켜 대장경 조판이라는 국책 사업을 추진하게 된다.

 

소설은 고려초 거란과의 전쟁 때 처음 만들어진 초조대장경이 소장되어 있던 부인사의 스님 지밀 대사를 주인공으로 강화 천도 이후 대장경 조판 사업에 얽힌 사연을 흥미롭게 풀어내고 있다. 몽골군에 의해 부인사 대장경 소실되자 조정은 수도 강화도 선원사에 대장도감을 세우고 전국 각처의 대장경 관련 자료를 모아들이게 된다. 주인공 지밀은 선원사의 대장도감 수장首長 수기 스님 밑으로 들어가 대장경 직조를 위한 연구 작업을 하면서 이상한 자료를 발견하게 된다. 부처상을 조각한 판각판에서 십자가를 발견한 것이다.

 

지밀은 십자가 경판을 보낸 김승이라는 스님을 찾아 나서게 되고 결국 경교(기독교)의 세계를 접하게 된다. 김승은 지밀에게 놀라운 사실을 털어놓는다. 부인사 초조대장경은 몽골군이 불태운 것이 아니라 몽골군으로 가장한 최우 정권 사병 야별초군의 소행이고, 대장경의 판각사업은 정권의 유지를 위해서 처음부터 날조된 꼭두각시놀음이라는 것이다. 놀라운 세계를 접한 지밀은 무신정권을 몰아내고 불교를 개혁하기 위해 노력하는 김승의 활동에 공감하게 되고 경교의 활동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 중국을 다녀와 고려에서 경교도가 무참하게 살해된 것을 확인한다.

 

소설에서 들려주는 이야기가 단순 허구라고만 할 수도 없다. 대구 팔공산의 부인사에 보관되어 있던 초조대장경이 1232년 몽골군의 2차 침입 때 소실되었다고 알려져 있으나 그 당시 몽골군은 소백산맥을 넘지 않았다는 게 고증되었으니 몽골군의 소행인지 명확하지 않다. 그리고 우리는 보통 기독교가 한반도에 전파된 시기가 임진왜란 무렵이라고 알고 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닐 것으로 추정된다. 이미 삼국시대 때 당나라에서 기독교가 크게 유행했으며 남북국시대에 발해에도 기독교가 이미 전파된 것으로 확인된다. 뿐만 아니라 불교는 기독교와 교리상 유사한 점이 많고 기독교 탄생 설화는 티벳 불교와 연관되는 점이 많아 불교가 크게 번성했던 고려 때 기독교도 함께 전파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때 팔만대장경 라마가경의 한 구절로 논란이 벌어진 적이 있다. “석가모니 가라사대 何時耶蘇來 吾道之無油燈也 언젠가 야소(예수) 오시면 나의 깨달은 도는 기름 없는 등불과 같다. 爺蘇再臨 吾道中興 예수가 재림하니 나의 도는 부흥할 것이다. 汝等覺了 爺蘇之主 若佛也 너희들은 깨달아야 한다. 예수가 말하는 주님은 바로 부처이니라이를 두고 기독교의 아전인수 격 아집이라는 비난이 쏟아지기도 했는데 소설이 그리고 있는 것처럼 기독교가 고려시대에 전파되어 자리잡았을 가능성이 크고 몽골에도 티벳불교가 전파되어 라마교로 자리잡은 만큼 고려와 몽골은 하나의 문화권으로 친근했을 것이니 13세기 여몽전쟁은 당시 몽골의 서방 정복전쟁과는 본질적으로 다를 것으로 봐야 한다. 조선 초에 창제된 한글이 몽골 파스파 문자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점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 여말선초 동북아시아 세계사가 재구성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