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장례행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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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장례행렬
  • 김선
  • 승인 2019.12.03 06: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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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당과 고전읽기 도전하기]
(2) 이방인 - ⑤무더위 속 장례행렬의 기억

 

인천in이 송도국제도시에 있는 복합문화공간 서유당과 함께 어렵게만 느껴지던 동·서양의 고전 읽기에 도전합니다. ‘서유당의 고전읽기모임인 하이델베르크모임Jacob 김선(춤추는 철학자), 김현(사회복지사), 최윤지(도서편집자), 서정혜(의류디자이너), 소순길(목사)’ 등이 원서와 함께 번역본을 읽어 내려가며 삶의 경험을 나누고 있습니다.

 

두 번째 고전읽기- 알베르 카뮈(김화영 역), 이방인 L’Etranger, 민음사.

: Jacob 김 선

 

Le soir, dans ce pays, devait être comme une trêve mélancolique.

이 고장에서 저녁은 서글픈 휴식 시간과도 같았을 것이다.”

 

방안에는 검은 옷을 입은 네 명의 인부들와 사제와 복사들, 원장과 뫼르소가 있다. 모든 일이 신속히 진행된다. 인부들이 큰 보자기를 들고 관 앞으로 나선다. 그 뒤를 모두들 따라 나선다. 문 앞에는 담당 간호사가 서 있다. 영구차도 기다리고 있다. 영구차는 뫼르소에게 기다란데 니스 칠을 해서 필통을 연상케 했다. 이 와중에도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음이 뫼르소답다. 영구차 앞에는 키 작은 진행자가 있고 거동이 불편한 노인 한 사람이 있다. 페레스라고 하는데 널찍한 중절모에 커다란 흰 칼라의 셔츠, 작은 검정 넥타이를 하고 있다. 진행자는 자리를 정해준다. 사제, 영구차, 인부 네 사람, 원장과 뫼르소, 담당 간호사와 페레스 순이다. 간소한 장례행렬에도 순서를 정해 주는 것을 보니 왕실에서 거행되는 장례행렬은 어떠했을 지가 문득 궁금해진다. 우리에게는 슬픈 과거인 병인양요(1866)때 프랑스 군대에게 약탈당한 외규장각 의궤(外奎章閣儀軌)’ 라는 것이 있다.

 

 

기서 의궤란 의식(儀式)의 궤범(軌範)으로 의식의 모범이 되는 책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 책에는 왕실의 장례행렬의 모습이 아주 세세히 그림으로 기록되어 있어서 관련 기관과 인물들의 배치와 순서를 확인 할 수 있다. 그런데 규모의 차이는 있겠지만 장례행렬의 순서라는 형식을 통해서 죽음을 애도하는 마음의 크기는 같음을 보여 주고 있는 것 같다.

햇빛이 무겁게 내리쬐기 시작한다. 모두는 길을 떠나기 전에 상당히 오랫동안 기다린다. 검은 상복을 입은 뫼르소는 몹시 더웠다. 뫼르소의 성격상 검은 상복보다는 평상복을 입을 법 한데 그래도 형식을 차린 것이 놀랍다. 페레스 노인도 더워한다. 원장은 어머니와 페레스 씨가 담당 간호사와 함께 마을까지 산책을 하곤 했다는 얘기를 뫼르소에게 들려준다. 원장의 말을 건성으로 듣지는 않았는지 뫼르소는 주위의 벌판을 바라본다. 실편백나무들의 윤곽이며 적갈색과 초록색의 대지, 드문드문 흩어진 집들을 보면서 뫼르소는 엄마를 이해할 수 있었다. 이 고장의 저녁은 서글픈 휴식 시간과도 같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엄마를 이해하려는 마음이 풍경을 통해 생긴 것을 보니 뫼르소에게 자연의 풍경은 그를 움직이게 하는 무엇인 것 같다. 사람의 마음은 그가 어떤 상황에 있는지, 무엇을 보고 있는지에 따라 변한다고들 한다. 마르크 샤갈(Marc Chagall1887~1985)에게도 그랬다.

이 그림은 죽은 남자(1908)’라는 제목인데 어느 날 적막한 고향 거리에서 기묘한 장례행렬을 만났고 거기서 영감을 얻어 이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샤갈의 산책(1917~8)’이라는 작품의 행복한 모습에 익숙한 우리들에게 9년전 그의 그림은 낯설다. ‘죽은 남자를 보고 있는 샤갈은 러시아 혁명의 소용돌이 안에 있는 상황이기에 이런 그림을 그릴 수 밖에 없다고 한다면 산책속의 샤갈은 사랑하는 연인 벨라와 함께 있기에 암울한 시대에도 밝고 따듯하며 행복이 넘치는 그림을 그릴 수 밖에 없는 것이라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뫼르소에게 자연풍경은 그를 변하게 하는 마법일 수도 있겠다.

모두들 걷기 시작한다. 영구차는 점점 빨라진다. 인부 한 사람은 뒤처져 뫼르소와 함께 가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한다. 뫼르소는 더워서 대충 답한다.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뫼르소다.페레스 영감은 한참 뒤에서 따라온다. 원장은 맺힌 땀방울도 닦지 않고 점잖게 걷고 있다. 원장도 뫼르소 못지 않은 느낌이 든다. 행렬이 좀 더 빨라진다. 주위에는 한결같이 햇빛이 넘쳐나 견디기 힘들 정도가 된다. 뜨거운 햇볕은 새로 포장한 아스팔트를 녹여 갈라지게 한다. 푸르고 흰 하늘과 갈라진 아스팔트의 검은색, 걸친 상복들의 흐릿한 검은색, 니스 칠한 영구차의 검은색 등 단조로운 색깔들 가운데서 뫼르소는 정신이 어리둥절해 한다. 햇빛, 영구차의 말똥냄새, 니스 칠 냄새, 잠자지 못한 하룻밤의 피로, 그러한 모든 것이 뫼르소의 눈과 머리를 어지럽게 만들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누구라도 그럴 것 같다. 그런 상황에서 뒤를 돌아보니 무더운 공기 속으로 페레스 영감은 멀리 보이더니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그는 벌판을 가로질러 가고 있었다. 구부러진 길을 알고 있었던 그는 그렇게 여러 차례 되풀이 해서 벌판을 가로질러 갔다. 정말 페레스는 뫼르소의 엄마를 끝까지 좋아하고 안타까워 하고 있음을 몸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 애잔하면서도 감동적이다.

그다음 모든 것이 신속하고 자연스럽게 진행되어 뫼르소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게 된다. 다만 담담 간호사의 말과 광경들 몇 가지만 기억하게 된다. 간호사는 뫼르소에게 천천히 가면 더위를 먹을 염려가 있고 너무 빨리 가면 땀이 나서 성당 안에서 들어가면 으슬으슬 춥다고 말한다. 간호사의 두 조건을 맞출 수 있는 사람은 이 장례행렬에는 없을 것 같다. 힘들게 따라온 페레스의 얼굴은 신경질과 힘겨움의 굵은 눈물 방울이 그의 뺨 위에 번득인다. 진실함이 온전히 담긴 눈물 방울이리라. 그 눈물은 주름살 때문에 더 이상 흐르지 않아 일그러진 그의 얼굴은 니스 칠을 해 놓은 듯 번들거릴 수 밖에 없었다. 페레스의 얼굴만은 기억해야 할 뫼르소였던 것이다. 나머지는 사람들, 목소리들, 어떤 카페 앞에서의 기다림, 엔진소리, 버스가 알제에 도착해서 실컷 잘 수 있다는 기쁨이 뫼르소에게 남은 몇 가지 광경들이었다. 일상으로 돌아오기까지 꽤나 긴 시간을 보낸 느낌이다. 긴 잠에서 깨어난 뫼르소. 그의 발걸음이 향하는 곳을 계속 바라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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