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밝히는 선물이 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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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밝히는 선물이 되는 책
  • 최종규
  • 승인 2011.04.16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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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 나들이 5] 서울 천호동 <강동헌책방>


 ― 서울 천호동 <강동헌책방> / 02) 471-0272

 (1) 서울 천호동 헌책방

 서울 강동구 천호동 쪽에도 예전에는 헌책방이 꽤 많았다고 하지만, 이제는 천호2동 280-15번지에 자리한 <강동헌책방> 말고는 살아남은 헌책방이 없다고 합니다. 헌책방이라는 곳은 일제강점기부터 조금씩 퍼지며 자리잡았고, 해방 뒤 한국전쟁 앞뒤로 숱하게 태어났습니다. 일제강점기에는 조그마한 가게라도 얻는 헌책방이었다 하나, 한국전쟁 앞뒤로는 가게를 얻은 헌책방이 아닌 길바닥에 자리를 깔고 책을 올려놓은 ‘길장사 헌책팔이’이곤 했습니다. 한국전쟁 앞뒤 즈음해서 ‘길장사 헌책팔이’를 하거나 ‘손수레 헌책팔이’를 하는 분들이란 모두 가난한 살림이었을 테고, 당신과 마찬가지로 가난한 사람들한테 헌책을 값싸게 팔았겠지요. 때때로 돈있는 사람도 헌책을 사 주었을 테지만, 헌책방이 가게로 자리잡아 오늘날처럼 이어오는 흐름을 살피면, 으레 ‘가난한 사람이 복닥복닥 어우러져 살아가는 동네 한켠’에 고즈넉하게 깃들곤 합니다.

 서울 천호동을 돌아보면, 이곳 또한 그닥 잘산다 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퍽 많이 올망졸망 몰려서 살았습니다. 이제는 하루하루 높직하며 비싸구려 아파트로 바뀝니다만, 없는 사람끼리 없는 대로 나누거나 어우러지는 저잣거리가 길쭉하게 이어지기도 해요.

 생각해 보면, 천호동 또한 높직하며 비싸구려 아파트로 동네가 바뀌는 흐름과 맞물리면서 헌책방이 하나둘 자취를 감출밖에 없지 싶습니다. 서울 시내이든 다른 도시이든 비슷한데, 골목집이 아파트로 바뀌며 땅값이 오르느니 무어니 하는 곳에서는 헌책방이 하나둘 문을 닫거나 다른 곳으로 옮기기 일쑤입니다.

 천호동 언저리에 다른 헌책방이 한 군데도 안 남았는지, 한두 군데라도 살아남아 조그맣게 책살림을 꾸리는지는 잘 모릅니다. 다만, 강동역 2번 나들목에서 나와 동신중학교와 두산위브아파트 사이 두찻길로 접어들어 천호현대아파트와 119소방소와 삼광교회를 지나 태영아파트 맞은편 쪽으로 걸어가면 〈현대헌책방〉(02-488-6387)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강동헌책방〉부터 길을 어림하자면, 〈강동헌책방〉에서 길을 건너 천호동성당을 조금 지나 성당 옆골목으로 들어선 다음, 천호동 소방서 쪽으로 나가는 골목으로 접어들어 버스가 오가는 두찻길 쪽으로 빠져나와 태영아파트 맞은편으로 걸어가면 〈현대헌책방〉을 만납니다.

 이 두 곳 말고 다른 ‘천호동 둘레 헌책방’이 더 있는지는 잘 모릅니다. 더 짬을 내어 천호동 골목을 두루두루 걸어다니면 다른 헌책방을 고맙게 더 만날 수 있을는지 모릅니다. 다만, 충청북도 멧자락에 살아가며 서울마실을 자주 하기는 벅찰 뿐더러, 집에서 아이 돌보며 살림을 꾸려야 하는 나날이니까, 천호동 골목마실을 하기란 만만하지 않습니다. 누군가 천호동 골목을 샅샅이 누빈다든지, 천호동에서 살아가는 분 스스로 천호동 둘레를 두루 누비며 헤아린다면, 참말 천호동에 이 두 곳 말고 헌책방이 더 없는지, 또는 널리 알려지지 않았으나 씩씩하며 튼튼히 헌책방살림을 잇는 곳이 더 있는지 알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강동헌책방>은 서울 시내버스 ‘13, 13-1, 15-3, 16, 30, 30-1, 13-2’번이 서는 ‘고분다리’ 옆 골목 모퉁이에 자리합니다.


 (2) 책과 헌책방과 삶과

 어느 라디오방송국에서 헌책방 이야기를 들려주기 바라기에 서울마실을 합니다. 텔레비전이든 라디오이든 취재를 받아들이지 않으며 살다가, 무슨 마음에선지 한 번 라디오방송 헌책방 이야기에 나가서 몇 마디 말을 섞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나도 잘 모르겠습니다. 신문이나 잡지에서 헌책방을 취재한다며 다루든, 텔레비전이나 라디오에서 헌책방 이야기를 들려준다 한들, 헌책방 참모습을 비추는 일이란 없습니다. ‘있을 수도 있다’가 아니라 없습니다.

 여느 때에 헌책방을 꾸준히 찾아다니면서 책맛과 헌책방 삶자락을 느끼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헌책방 이야기를 취재하거나 찍을 수 없습니다. 여느 때에 헌책방을 가까이 드나들면서 아끼거나 사랑하는 마음이 아니라면 헌책방이 어떠한 곳이며, 이들 헌책방에서 어떠한 책을 마주하며 내 마음을 살찌울 수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인천에서 태어나 살다가 인천을 떠나 열 몇 해를 다른 곳에서 보내다가 인천으로 돌아오던 2007년, 나는 내 살림집을 인천 배다리 헌책방거리 한켠 옥탑집을 얻었습니다. 어차피 고향 인천으로 돌아와서 살자면 다른 곳은 내키지 않았습니다. 날마다 헌책방을 가까이 드나들며 아침저녁으로 느낄 만한 헌책방거리 아니고는 살림집을 찾을 마음이 없었습니다. 새벽에 눈을 뜨면 희뿌윰히 밝아오는 헌책방거리를 가만히 내려다보면서 어느 집부터 문을 여나 내려다보고, 저녁에 어스름이 깔리며 거리마다 등불이 켜지면 어느 집부터 문을 닫나 내려다봅니다. 코앞에 몇 걸음 걸어가면 헌책방이 줄지었으니, 날마다 한 곳씩 갈마들며 찾아갑니다. 날마다 골목마실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헌책방에 들릅니다.

 누군가는 물을 테지요. ‘날마다 헌책방에 가 본들 날마다 새로운 책을 만나겠느냐?’ 하고. 그러면 싱긋 웃으며 대꾸합니다. “날마다 헌책방에 찾아가 보셔요. 그럼 알 테니까요.”

 인천으로 돌아와 세 해 반을 지내며 헌책방거리를 사귀는 동안 둘레 사람들을 바라봅니다. 나라안에 헌책방거리나 헌책방골목이 있다는 일이란 더없는 선물이요 놀라운 기쁨이지만, 막상 더없는 선물이나 놀라운 기쁨을 가슴 깊이 받아안으며 누리는 사람은 뜻밖에 그닥 많지 않습니다. 인천 배다리 헌책방거리를 찾아드는 인천사람은 고작 참고서붙이나 수험서붙이를 찾을 뿐이고, 때때로 어린이책을 전집으로 장만하려는 손길입니다. 내 마음을 다스리거나 북돋우는 ‘책’을 찾으려는 발길은 인천보다 인천 아닌 곳에서 꽤나 많다고 느낍니다. 가까이에 있는 좋은 선물을 느끼지 못하면서 너무 빠듯하게 살아간다 할 수 있고, 하루하루 먹고사는 데에 바쁘니까 책 따위야 거들떠볼 겨를이 없다 할 수 있습니다.

 텔레비전 들여다보는 삶을 나무랄 수 없습니다만, 텔레비전을 들여다보는 나날이 길어지는 만큼 가까운 헌책방거리뿐 아니라 가까운 이웃하고 사귀는 겨를 또한 몹시 줄어들거나 거의 없어집니다. 술자리에서 수다를 떠는 삶을 탓할 수 없습니다만, 술자리에서 밤새 붓거나 마시는 나날이 길어지는 만큼 가까운 헌책방거리뿐 아니라 내 살림집 깃든 골목동네를 살갗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기 마련입니다. 더군다나, 배다리 둘레에서 문화나 예술을 한다는 이들조차 배다리 헌책방거리마다 다 다른 모양새로 다 다른 책살림을 꾸리는 넋을 마음으로 받아안지 못합니다. 아니, 인천에서 문화나 예술이나 교육이나 학문이나 봉사나 운동을 한다는 이들 스스로 ‘내가 문화나 예술이나 교육이나 학문이나 봉사나 운동을 하는 데에 밑힘이 되거나 밑마음을 다스리는 길동무가 되는 책’ 하나 내 삶터에서 가까이 마주하며 곰삭이는 길을 느끼려 하지 않습니다.

 오늘날은 틀림없이 인터넷 누리입니다. 셈틀을 켜서 몇 분 스윽 둘러보고 주문장을 넣으며 카드를 긁으면 집까지 거저로 책을 날라다 줍니다. 애써 새책방이든 헌책방이든 다리품을 팔아 찾아가지 않아도 된다 할 만합니다. 웬만한 책은 인터넷 찾기창에서 찾아보면 다 뜬다 합니다.

 책을 읽으려면 내 손으로 쥐어 읽어야 하지만, 밥을 먹으려면 내 손으로 수저를 쥐어 밥을 퍼야 하지만, 마지막 책읽기와 마지막 밥먹기만 나 스스로 할 뿐, 책을 장만하는 길이나 밥을 차리는 길이 내 손에서 멀리멀리 떠납니다. 삶 흐름을 놓아 버리듯 책 흐름을 놓아 버립니다.


 (3) 책 찾아 읽기

 멧골집에서 길을 나섭니다. 시골버스를 타고 생극 면내로 나갑니다. 버스 때를 기다려 시외버스를 탑니다. 오늘은 성남으로 가는 시외버스를 탑니다. 성남에서 시외버스를 내린 다음 지하철을 타고 천호역으로 갑니다. 천호역부터 천천히 거닐며 골목을 누벼 〈강동헌책방〉에 이릅니다.

 자가용 있는 이라면 길찾기기계에 주소를 넣으면 어렵잖이 찾아갈 테지만, 나는 내 다리와 머리와 가슴을 믿습니다. 곧바로 찾아가면 곧바로 찾아가는 대로 좋고, 좀 헤매면 헤매는 대로 좋습니다. 나로서는 헤맨다 할 테지만, 헤매는 길이란 어디나 사람 사는 골목동네를 천천히 두 다리로 누비며 내 갈 곳으로 가는 길입니다.

 헌책방 앞에 닿습니다. 사람들이 꽤 많이 오갑니다. 다만, 사람들은 길거리를 많이 오가지, 헌책방 안으로 고개를 들이밀어 본다든지 들어가 보지는 않습니다.

 헌책방으로 들어가서 가방을 내려놓고 인사를 합니다. 천천히 책을 살핍니다. 맨 먼저 《죠반니노 과레스끼/김명곤 옮김-신부님 우리들의 신부님》(백제,1979)이랑 《죠반니노 과레스끼/차미례 옮김-돈 까밀로와 빼뽀네》(백제,1980)가 보입니다. 아주 깨끗한 책입니다. 서른 해 남짓 묵었는데 이렇게 깨끗하게 살아남아 오늘 이 헌책방 책시렁 한켠에 꽂힐 수 있다니 놀랍습니다.

 누구였을까요. 이 책을 1970∼80년대에 처음 장만해서 읽던 분은. 이 책을 처음 장만해서 읽던 분은 이 책을 얼마나 알뜰히 아꼈기에 이토록 정갈하게 살아남도록 해 주었고, 이 책을 무슨 까닭에 내놓았을까요.

 모두들 까닭이 있기에 책을 사고, 까닭이 있어 헌책방에 내놓습니다. 헌책방이란 곳이 없었다면 도서관에 책을 내놓았을까요. 우리 나라 도서관은 책을 받아들일 만한 곳이 되는가요.

 아마 둘레에 책을 물려받을 만한 이웃이나 벗을 알아보며 건네줄는지 모릅니다. 마땅한 책이웃이나 책벗이 없으면 그예 길바닥에 내다 버릴는지 모르고, 폐휴지로 섞어서 내놓을는지 모르지요.

 《미우라 아야코-두드리라, 그러면 열릴 것이요》(풍림출판사,1984)라는 산문책을 들춥니다. 나라밖 글쟁이 책 가운데 우리 말로 가장 많이 옮겨진 글쟁이가 미우라 아야코 님이라 합니다. 백서른 가지가 넘는다고 했는데, 백서른 가지가 넘는다는 책은 다 다른 책일는지 얼추 비슷할 책일는지 이래저래 뒤섞인 책일는지 궁금합니다. 참말 많은 사람들한테 사랑받을 만하니 이렇게 많이 옮겨졌다 할 텐데, 요즈음에도 미우라 아야코 님 산문책이나 소설책을 찾아 읽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궁금합니다.

.. 사람 하나를 키운다는 것은 결코 간단한 일은 아니다. 화분의 꽃조차도 아름답게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그 얼마나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한지 모른다. 하물며 상대방은 몸도, 마음도 나날이 성장해 가는 인간이다 … 모친이 된다는 것은 그 얼마나 무거운 것인가. 그리고 또 그 얼마나 영광된 일인가. 한 사람의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성을 쌓는 것보다도 위대한 일이다 ..  (94쪽)

 《두드리라, 그러면 열릴 것이요》를 가만히 읽습니다. 책장을 찬찬히 넘기며 읽는데, 예전에 읽은 듯합니다. 아마, 다른 책으로 읽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다른 이름이 붙은 다른 책으로 읽었던 지난날에는 다른 넋과 다른 꿈으로 살던 다른 내 삶입니다. 오늘은 오늘대로 오늘만큼 새로 일구는 내 삶이기에, 예전에 읽었건 안 읽었건 새로 맞아들이는 책이요 이야기라고 여기며 더 읽습니다.

.. 나는 어렸을 때부터 부모에게 무엇 하나 졸라대지를 않았다. 뿐만 아니라 국민학교 4학년 때부터 가게를 돕기 위해 자진해서 우유배달을 해 가며 자랐다 … 그런 만큼 부모가 자식을 소중하게 대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한 그녀의 심정을 아직도 잘 모른다. 그것은 어떻든, 익숙해지면 부모의 고마움 같은 것은 전혀 없어져 버리는 모양이다 … 나는 어느새 아름다운 밤하늘에도, 사랑스러운 꽃이나 풀에도 익숙해져 있다.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에도 놀라지 않는다 … 하지만 그것은 인간 본래의 모습은 아니다. 어떻게 하면 그 갓난아기 같은 싱싱한 인간성을 되찾을 수가 있는 것일까? ..  (152∼154쪽)

 미우라 아야코 님은 당신 삶을 남한테 억지로 내보이지 않습니다. 자랑한다거나 추켜세우지 않습니다. 깎아내리지 않고 부끄러이 여기지 않습니다. 그예 수수하게 사랑합니다.

 당신 아픈 몸을 고마이 여기고, 당신한테 주어진 나날을 기쁘게 맞아들입니다. 미우라 아야코 님이 하느님을 믿는대서 하루하루를 고마이 여긴다고는 느끼기 어렵습니다. 참으로 사랑하는 내 삶이 무엇인지를 읽거나 깨달았기에 모든 당신 삶과 이웃과 살붙이를 아름답게 바라보거나 느낄 수 있다고 여깁니다.

 《업튼 싱클레어/황용성 옮김-정글》(언어문화사,1986)을 만납니다. 몇 번 이 책을 만나서 장만했다가 아는 분들한테 빌려주고는 돌려받지 못했습니다. 이 소설책을 새로운 판으로 다시 낸다는 이야기를 얼핏 들었으나 새 판은 아직 안 나옵니다. 내 책꽂이에 다시금 이 책을 꽂아야지 하고 생각하며 집어듭니다.

.. 이것이 바로 그들이 항상 일을 저지르는 방식이었다! 단 30분 전에 예고도 없이 공장의 문은 닫혀 버렸다. 노동자들은 전에도 이런 식으로 당해 왔고, 앞으로도 그러한 운명이었다. 그들은 세계에서 필요로 하는 모든 수확기를 제조했으나 이제는 그 일부가 낡아서 못 쓰게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신세가 됐다. 누구의 잘못도 아닌데 수천 명의 남녀가 한겨울에 해고당한 것이었다. 이제 그들은 저축해 놓은 돈이 있다면 그것으로 살아가야 했고, 그렇지 않으면 굶어죽어야 할 판이었다. 도시에는 수만 명이 집도 없이 일자리를 찾아 헤매고 있었는데, 이제 거기에 수천 명이 더 추가된 셈이었다 ..  (222쪽)

 시모음 《최승자-내 무덤, 푸르고》(문학과지성사,1993)를 들여다봅니다. 《박신의-멀티미디어 아트스트, 라즐로 모홀리나기》(디자인하우스,2002)하고 《이정선-새로운 편집디자인의 개척자, 알렉세이 브로도비치》(디자인하우스,2000)를 넘깁니다. 디자인하우스에서 내놓은 책은 한국사람이 한국사람 눈길로 바라본 서양 사진쟁이나 디자인쟁이 삶이라 합니다. 이제는 우리 나름대로 우리 눈길로 사진 역사라든지 디자인 발자취를 읽거나 말할 만합니다. 뜻도 좋고 기획도 좋구나 싶습니다. 그러나 ‘한국 글쟁이가 브로도비치나 모홀리나기를 만나서 나눈 이야기’란 있을 수 없는데, 없는 이야기를 꾸며서 엮은 모습이 그리 달갑지 않습니다. 애써 ‘이야기 나눈 틀’을 짜맞추기보다는, 브로도비치나 모홀리나기가 했던 말을 ‘한국 글쟁이 마음대로 아무렇게나 붙이지’ 말고 꾸밈없이 보여준 다음, 이 말마디를 한국 글쟁이 나름대로 읽거나 살핀 느낌을 달았어야 옳지 않나 싶습니다.

 다른 사람 글을 따오는 일이란 무척 두렵습니다. 그이가 한 말을 따옴표를 써서 옮긴다 하더라도 앞말과 뒷말을 나란히 보여주지 않는다면, 또 이러한 말을 어느 자리에서 누구 앞에서 했는가를 살피지 않는다면, 또 이러한 말을 어떠한 나이와 삶일 때에 했고, 예전과 뒷날에는 또 어떠한 말을 했는가를 나란히 보여주지 않는다면, 잘못 읽히거나 엉터리로 읽히기 마련입니다.

 《알렉산더 볼프/설영환 옮김-선생님 지옥이나 가세요》(우경,1988)를 고릅니다. 또다른 미우라 아야코 님 책이 보여 《미우라 아야꼬/박태문 옮김-울리지 않는 바이올린》(자유문학사,1986)을 고릅니다. 《생활과학》(과학기술처,1981)이라는 책은 정부에서 어마어마하게 찍어 집집마다 나누어 주던 책이 아닌가 싶습니다. 내 어린 날 우리 집에서도 이 책을 보았다고 떠오릅니다.

 정부에서 내놓아 집집마다 돌렸음직한 책에는, ‘발육에 알맞은 아기옷’, ‘얼룩의 응급처치’, ‘다리미바닥은 소금으로’, ‘편식을 고치려면’, ‘조리를 할 때의 에너지 절약’, ‘기와지붕을 수리할 때’, ‘가구의 칠이 벗겨진 곳은 크레용으로’, ‘재털이에 커피 찌꺼기를’, ‘잇몸에서 피날 때는 감귤로’, ‘젖을 줄 때는 한쪽부터’, ‘비닐하우스용 대나무 방수처리’, ‘닭의 점등관리’, ‘농약 사용법’, ‘에어컨의 공기여과망 청소’, ‘텔레비젼 위치와 절약방법’, ‘세탁기 사용과 절약방법’, ‘상호신용금고란’ 따위 이야기가 담깁니다. 생각해 보면 ‘살림을 꾸리는 슬기’를 보여준다 할 만하지만, 곰곰이 돌아보면 ‘여느 사람들 살림을 억지로 틀에 짜맞추려는’ 모습, 그러니까 꽉 막힌 통제 사회 독재 정치 찌꺼기를 느낄 만합니다.


 (4) 책이란 어떤 삶일까

 소설책 《소노 아야코/홍완기 옮김-신의 더럽혀진 손 (상·하)》(문학예술사,1980)를 만납니다. 《다지마 신지/최시림 옮김-가우디의 바다》(정신세계사,1991)는 몇 번씩 읽은 책이지만, 또다시 보여 한 번 꺼내어 봅니다. 책을 펼치니 안쪽에 ‘강우현’ 님이 “田島 伸二 님을 대신하여”라고 적은 글월이 보입니다. 정신세계사에서 나온 《가우디의 바다》는 1991년에서 얼마 지나지 않아 판이 끊어졌고, 나중에 이 책 《가우디의 바다》 가운데 〈가우디의 바다〉 하나만 따로 강우현 님 번역으로 다시 나온 적이 있습니다. 책 하나가 이러저러하게 이어집니다.

 《슈테파니 츠바이크/안영란 옮김-나를 사랑한 고양이 시시》(베텔스만,2003)를 봅니다. 책 겉그림이 퍽 낯익다 싶어 떠올리니, ‘안니 M.G.슈미트’라는 사람이 쓴 어린이문학 《미노스》(바람의아이들,2004)하고 겉그림이나 꾸밈새가 많이 닮았습니다. 둘 다 고양이 이야기를 다루는 책이요, 시시 이야기가 2003년에 나왔으니 2004년에 나온 책이 겉그림 꾸밈새를 조금 베낀 셈일까 궁금합니다. 고양이 이야기를 다루는 책을 만드는 사람은 다 ‘마음이 만나’ 이렇게 비슷해 보이는 겉그림이 태어날 만한지 궁금합니다.

 《박정희-나의 수채화 인생》(미다스북스,2005)을 봅니다. 인천 화평동에서 수채그림을 그리는 박정희 할머님 삶을 할머님 스스로 적바림한 책입니다. 2005년에 나온 책이지만 벌써부터 판이 끊어져서 새책방에서는 만날 수 없습니다. 둘레에 박정희 할머님 책을 한번 읽어 보라고 이야기를 했더니, 판이 끊어져서 살 수 없더라는 이야기를 듣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래, 헌책방에서 이 책이 보이면 그때그때 장만합니다. 찾아 읽으라 말할 수 없으니, 제가 더 사 놓고 선물을 해야 합니다. 인천문화재단 같은 곳에서 《나의 수채화 인생》이나 《박정희 할머니의 육아일기》 같은 책을 되살려서 언제라도 어느 곳에서나 손쉽게 장만하여 읽도록 도와줄 노릇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만, 글쎄, 잘 모르겠습니다. 인천시나 인천문화재단에서는 박정희 할머님이나 박두성 님을 기리는 일을 곧잘 하지만, 정작 박정희 할머님이 애써 내놓은 책 하나 건사하지 못하니까요.

.. 넷째 딸 순애는 학교 갈 나이가 되어도 사촌들끼리 소꿉놀이 하는 것만 좋아하였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나는 순애에게 물어 보았다. “순애야, 너 학교 안 가련?” “엄마 맘은요?” “네가 학교에 가겠다고 하면, 예쁜 옷을 지어 주고 싶어.” “예쁜 옷? 그럼 나 학교 갈래!” 나는 약속대로 예쁜 병아리 수가 놓인 옷을 지어 입혔다. ‘병아리 옷’을 입히고 나니 순애가 기뻐해 나도 기분이 좋았다. “어디, 열까지 셀 수 있나 보자.”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아홉, 열!” 순애의 하는 양을 보고 있던 식구들은 모두 박장대소 했다. 초등학교에 근무한 경험이 있던 나는, 선생님 말씀에 집중하지 않는 어린이가 질색이었다. 그래서 아이를 한글도 모른 채 선생님께 맡기고 싶었다 ..  (76쪽)

 책 하나 되살리는 돈은 얼마 들지 않습니다. 책 하나 되살리는 돈은 얼마 안 들지만, 이 얼마 안 되는 돈을 들이면 수많은 사람들한테 아름다운 넋을 선물할 수 있습니다. 건물 껍데기 새로 붙이거나 길바닥 돌을 새로 까는 데가 아니라, 참다이 삶을 북돋우거나 가꿀 밑거름을 다스리는 데에 돈을 써야 옳습니다.

 《큐우도꾸 시게모리/잼잼 편집부 옮김-좋은 엄마 똑똑한 엄마》(매거진하우스,1990)라는 책을 펼칩니다. “더구나 어머니는 그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는 것이다. 최근 이와 같은 부모가 확실히 늘고 있다. 어린이가 학교에서 짓궂은 장난을 했다고 해도, ‘몰랐습니다’라고만 하는 부모는 드물지 않다(199쪽).” 같은 대목을 읽으며 고개를 갸웃갸웃합니다. 이 책은 ‘어머니’ 탓만 합니다. 아이 키우는 몫은 오로지 어머니한테만 있는 듯 이야기합니다.

 하기는, 2010년대 대한민국이든 2000년대 대한민국이든 1990년대 대한민국이든 무엇이 바뀌었겠습니까. 진보나 개혁을 말하는 사람들조차 집에서 집일과 집살림과 아이키우기 몫을 누가 도맡는가 돌아보면 슬프기만 합니다.

 만화잡지 《issue》 69호(1999.2.)를 보고, 《안철수-바이러스뉴스》(성안당) 2호(1991)를 봅니다. 《바이러스뉴스》라는 잡지도 있었군요.

 《에릭 바누/이상모,도성희 옮김-다큐멘터리》(다락방,1992)라는 책을 봅니다. 대학교재로 쓰던 책일까요. 레니 리펜슈탈 님을 이야기하는 대목이 하나 보여 이 책을 장만하기로 합니다.

.. 나찌 선전가라고 그녀가 받는 비난은 영화에 대한 천부적인 재능과 순진한 정치의식의 산물인 것이다. 어쨌든 그녀의 대표작 〈의지의 승리〉와 〈올림피아〉는 한 시대를 묘사한 가치있는 기록이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  (130쪽)


 (5) 시인 한 사람을 만나는 헌책방

 시모음 《랑승만-억새풀의 땅》(문학사상사,1988)을 봅니다. 시쓰는 랑승만 님 자그마한 책 하나입니다. 랑승만이라는 이름을 예전에는 몰랐습니다. 랑승만 님 이름은 지난 2007년 11월 24일에 비로소 알았습니다.

 지난 2007년 11월 24일, 인천 배다리 헌책방거리 한켠에 마련된 ‘배다리, 작은 책, 시가 있는 길(시다락방)’에서 ‘제1회 시낭송회’가 열렸습니다. ‘시다락방’은 배다리 헌책방거리 〈아벨서점〉 곽현숙 님이 손수 나무질을 해서 일군 시를 나누는 조그마한 책쉼터이자 사랑방이고, 이 시다락방에서 첫 번째 시읽기잔치를 열 때에 바로 랑승만 님을 모셨습니다.

.. 세상살이 눈 따가와 / 눈망울이 쑤셔대면 / 주먹으로 눈알 부비고 / 더 멀고 먼 세상을 보네. / 세상살이 시끄러워 귀가 막히면 / 구름결에 마음 한 자락 씻고 / 더 멀고 먼 청정의 물소리를 듣네. / 내가 누구인가. / 그리운 이들이여 / 그대들에게 나는 누구인가 ..  (20∼21쪽)

 인천으로 돌아가 살면서 배다리 헌책방거리에서 살지 않았다면, 또 배다리 헌책방거리에서 살더라도 이웃한 시다락방 마실을 하지 않았다면, 또 시다락방 마실을 하면서 랑승만 님 시를 함께 듣고 읽으며 나누지 않았다면, 몇 해가 흐른 어느 날 서울 천호동 조그마한 헌책방에서 《억새풀의 땅》을 만날 일은 없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책은 책이고, 책에는 이야기를 담는데, 책에 담는 이야기란 머리로 끄집어 내거나 애써 만드는 지식조각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저마다 다 다른 자리에서 다른 예쁜 모양새로 일구는 삶을 담는 책입니다.

.. 달은 가난한 이들 / 그대들 마음속에 / 찰찰 넘치는 빛이 되고 사랑이 되느니 … 달은 떠서 / 그대들 눈망울 속에 하나씩 빠져 있고 / 달은 그대들 가슴안에 하나 가득 서려 있고 / 달은 그대들 손바닥에 하나씩 흘러가고 있느니 ..  (24∼25쪽)

 랑승만 님은 시모음 머리말에  “적어도 시는 내게 있어 버팀나무가 되어 주었고, 생명이요 구원이요 축복이 되어 주었다” 하고 적습니다. 랑승만 님한테는 시가 버팀나무였다면, 랑승만 님이 시읽기잔치를 하도록 자리를 마련한 헌책방 아주머니한테는 책이 바로 버팀나무였겠지요. 책을 버팀나무로 삼아 살아온 아주머니가 마련한 시다락방에 찾아와서 시를 함께 들으며 이야기열매를 얻은 사람들은 저마다 무엇을 버팀나무로 삼으면서 하루하루를 맞아들일까 헤아려 봅니다. 나부터 나한테는 무엇이 버팀나무요 무엇이 목숨이며 무엇이 선물인가를 곱씹어 봅니다.

 삶을 밝히는 선물을 책으로 여기는 헌책방 일꾼을 어디에서나 반가이 만나거나 사귀니, 나한테는 헌책방이라는 곳이 내 삶에서 버팀나무일까 하고 가만히 헤아립니다. 사랑스러운 옆지기가 나한테 버팀나무일는지, 사랑스러운 옆지기하고 빚은 새 목숨 딸아이가 버팀나무일는지 돌아봅니다. 나와 옆지기를 낳은 어버이가 버팀나무일는지, 내가 먹는 밥 한 그릇이 버팀나무일는지 생각합니다.


2007년 11월 24일, 배다리 '아벨서점 시다락방'에서 1회로 열린 시읽기잔치 때, 시다락방 들머리에 붙은 걸개천.'시다락방'을 연 <아벨서점> 곽현숙 님이 랑승만 님을 소개합니다.랑승만 님 소개를 마친 다음, 랑승만 님 시 하나를 읽습니다.시 함께 읽기를 한 다음, 당신 시 이야기를 들려주는 랑승만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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