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람과 즐거운 나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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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과 즐거운 나날을
  • 최종규
  • 승인 2011.04.05 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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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오자와 마리, 《이치고다 씨 이야기 (3)》

 아이가 밥자리에서 어머니나 아버지가 다 앉지 않았는데 먼저 젓가락이나 숟가락을 들곤 합니다. 아이로서는 배고프니까 저절로 손이 움직였겠지요. 아직 아이가 많이 어리니까 이렇게 먼저 수저를 쥘 때에 “그래, 배 많이 고팠지? 얼른 먹어라.” 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이렇게 얼른 먹으라고 해야 옳은지 모릅니다.

 아이로서는 그다지 배가 고프지 않을 때에 밥을 차리면, 밥때라서 밥을 먹어야 한다고 하더라도 그닥 맛나게 먹는 듯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배가 고파야 비로소 허둥지둥 밥을 먹습니다. 아직 많이 어려서 몸이 가는 대로 밥을 마주할 테니까, 어른이라면 이런 모습을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는지 모릅니다.

 아이한테 밥자리에서 식구들이 다 앉을 때까지 기다리라 말하는 일은 지나치게 힘든 일인지 모릅니다. 좀 섣부른지 모릅니다. 너무 일찍부터 다그치거나 나무라거나 가르치려 하는 일은 안 좋을 수 있습니다. 다만, 아이한테 늘 말을 건네면서 밥자리 삶자락을 몸으로 느끼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배고프니까 얼른 먹으라 하면서도, 밥먹는 자리에서는 밥을 차리는 사람이 밥을 나르고 숟가락을 놓고 밥그릇을 챙기고 하는 일을 다 마쳐서 자리에 앉을 때까지 배가 고프더라도 조금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나긋나긋 들려주어야지 싶어요.

 그러나 이렇게 말은 하지만, 막상 밥상을 차려 아이를 부를 때에는 잘 안 되기 일쑤입니다. 어버이 된 사람 스스로 제 마음을 조금 더 넉넉하거나 너그럽거나 느긋하게 추스르지 못하는 탓이겠지요. 조금 더 사랑하고, 한 번 더 사랑하면서, 아니 늘 사랑이 감도는 삶을 보듬지 못한 탓일 테지요.

- ‘내 이름은 야마노베 유미. 구립 제3초등학교 3학년. 경비원으로 일하는 할아버지와 이 메종 니시무라에서 둘이 살고 있다. 아니, 이 인형 코코로와 셋이 살고 있다.’ (3쪽)
- “이름은 이치고다 안이야.” “안?” “그래.” “왜 하필 이치고다(딸기밭)예요?” “딸기 찹쌀떡을 좋아하거든요.” “그런 설정이구나.” “그냥 내가 좋아하는 것뿐이지만.” (18∼19쪽)
- ‘무려 나와 (인형) 코코의 커플룩이. 빙글 돌면 스커트에 그려진 집이랑 꽃도 빙글빙글 돌아. 엄마가 집을 나간 후로 계속 할아버지가 옷을 사 주셔서 이런 예쁜 치마는 진짜 오랜만이야. 너무 기뻐서 눈물이 날 것 같아. 선반 위의 (인형) 안이 잘됐다는 표정으로 보네. 그때 내가 커플룩을 부러워했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40∼41쪽)

 사랑 없는 삶이란 얼마나 메마른지 몸으로 느꼈다면 사랑 있는 삶을 좋아하겠지요. 사랑하고 동떨어진 삶이란 얼마나 끔찍한지 일찍부터 살갗으로 느꼈으면 사랑하고 살가이 사귀면서 살아가겠지요. 사랑 없는 삶을 보내야 하던 지난 어느 날, 나부터 내 동무와 이웃과 살붙이를 어떻게 사랑해야 좋을까를 잘 모르기도 했다면, 이제부터 씩씩하게 사랑길을 걸을 테지요. 나 스스로를 사랑하는 길을 못 보기도 했으며 참말 사랑이란 어떠한 삶일는지를 종잡지 못했다면, 차근차근 사랑길을 걸어가며 사람삶을 일구려고 온힘을 쏟을 수 있겠지요.

 사랑하고 동떨어진 삶이라면 얼마나 재미없는지요. 사랑하고 등진 삶이라면 얼마나 차가웁던지요. 사랑이 싹트지 못하는 삶이라면 얼마나 외롭던지요. 사랑이 스미지 못하는 삶이라면 얼마나 슬프던지요.

 좋은 짝꿍하고 살아가든 어여쁜 아이하고 살아가든, 살붙이 사이에 사랑이 없다면 한식구라 하기 어렵습니다. 돈이 있어 큰집에서 살아간다거나 먹고사는 걱정이 없대서 한식구라 할 수는 없습니다. 아이한테 좋다는 밥을 먹인다거나 아이한테 좋다는 어린이집이나 학원이나 학교에서 보낸다 해서 아이사랑을 이룬다 할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이가 예쁘장한 옷을 입으며 공주나 왕자라도 되는 듯 뽐낸다 할 때에 참말 아이사랑을 이룬다 할는지 모르겠습니다.

 적잖은 사람들은 짝꿍을 고르거나 사귈 때에 내 짝꿍한테 돈이 얼마나 있는가를 따진다 하는데, 이 돈이 사라지거나 줄면 사랑 또한 사라지거나 줄까요. 아니, 처음부터 사람을 볼 때에 사랑이란 없는 셈 아니었을까요.

 적잖은 사람들은 일자리를 찾거나 고를 때에 돈을 얼마나 받는가를 살핀다 하는데, 애써 얻은 일자리에서 받는 일삯이 줄어든다면 이 일을 더는 할 만한 값이나 뜻이 없을까요. 아니, 처음부터 내가 아끼거나 사랑할 일이란 없는 셈이었을까요.

- “무슨 일 있었어?” “왜?” “산타 보고 온 후로 기분이 안 좋아졌잖아.” ‘그야, 이온이 그 언니랑 너무 사이좋게 이야기해서 그런 거겠지, 라는 건 그냥 말하지 말자.’ (37쪽)
- “이럴 줄 알았어.” “과, 과자는?” “맛김이 있다는 게 생각나서.” “뭐? 손님한테 맛김을 내놓겠다고?” “하지만 울고 있는 애를 내버려 둘 순 없으니까. 보리차에 맛김. 분위기 좋잖아. 요즘 좀 이상해. 무슨 일 있었어?” “사라졌어.” “뭐가?” “고향별이. 사라져 버렸어. 이제 난 갈 곳이 없어.” (104∼106쪽)

 사랑하는 사람하고 있으면서 돈이 있으면 돈이 있는 대로 즐겁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살면서 돈이 없으면 없는 대로 허리띠를 조이며 살림을 꾸립니다. 돈이 있대서 헤프게 쓸 까닭이 없고, 돈이 없대서 꺼이꺼이 울기만 할 까닭이 없습니다. 있을 때에는 알뜰살뜰 쓰고, 없을 때에는 돈 아닌 손과 몸으로 일구는 살림을 꾸립니다.

 내가 사랑할 만한 일을 찾는다면, 언제까지나 즐겁게 일을 합니다. 정년퇴직을 맞이한대서 그만둘 일이란 없습니다. 내가 사랑할 일이란 정년퇴직이 없습니다. 예순이든 일흔이든 여든이든 조금씩 찬찬히 할 때에 비로소 일이지, 예순 살이나 예순다섯 살에는 손을 탈탈 털어야 한다면 일이라 할 수 없습니다.

 나는 어버이로서 내 아이가 사랑을 물려받아 사랑스레 살면서 사랑스러이 즐길 일을 스스로 찾고 사랑으로 마주할 좋은 짝꿍을 스스로 사귈 수 있기를 꿈꿉니다. 나는 어버이로서 내 아이와 살아가면서 나부터 사랑스러운 나날을 맞이하면서 좋은 옆지기와 좋은 사랑을 맺을 수 있기를 꿈꿉니다.

 만화책 《이치고다 씨 이야기》 셋째 권을 읽는 동안, 이와 같은 사랑을 가만히 헤아립니다. 한 사람이 한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힘을 어디에서 얻을까를 곰곰이 생각합니다. 한 사람이 어버이한테서 목숨을 선물받아 고마이 살아가다가 흙으로 돌아갈 어느 날 무엇을 남길 수 있을까를 차분히 돌아봅니다.

 하루하루 보내는 나날을 떠올립니다. 날마다 먹는 밥을 되새깁니다. 아침저녁으로 주고받는 말마디를 곱씹습니다.

 따순 봄바람은 해마다 다시 찾아올 때마다 반갑고, 추운 겨울바람은 새해에 새로 찾아들 때마다 오슬오슬 떨립니다. 언제나 따순 바람이기만 하다면 한결 나을는지 모르나, 추운 겨울바람이 부는 철이 지나가기에 모기나 파리가 잠들고, 이 벌레 저 벌레 숨을 거두어 흙이 새힘을 얻습니다.

- “싫어! 난 태어난 별로 돌아갈 거야!” “못 돌아가. 우리 별은 이미 소멸했으니까. 댐 밑에 잠긴 마을처럼 산산조각이 나서 우주 바닥에 잠기고 말았어.” (66∼67쪽)
- “다행이다. 이치고다 씨. 몇 번을 불러도 대답을 안 하니까, 이번에는 속에 내용물만 어디 가 버린 줄 알고 엄청 놀랐잖아.” “설마, 그럴 리 없잖아. 내가 이온에게 말도 없이 갈 리 없잖아. 그런…….” “왜 울어?” “아무것도 아냐.” (74∼75쪽)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만화로든 사진으로든 그림으로든 글로든 나누는 이야기란 모두 사랑에서 비롯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정치이든 교육이든 사회이든 경제이든 과학이든 운동이든, 모두 사랑에서 샘솟지 않느냐 싶어요.

 사랑이 있을 때에는 사랑스러이 나누는 이야기입니다. 사랑이 없을 때에는 차갑거나 딱딱하거나 메마른 채 오가는 이야기입니다.

 그저 죽이고 죽는 이야기만 판치는 소설이나 영화라 한다면 사랑이 없는 삶 이야기입니다. 권력이니 명예니 재산이니 따지는 연속극이나 정치나 사회라 한다면, 이때에도 사랑이 없는 삶 이야기입니다.

 남녀가 서로 애틋하게 느끼는 마음도 사랑이고, 남자끼리이든 여자끼리이든 애틋하게 느끼는 마음도 사랑이며, 어린이와 어른이 서로를 아끼는 마음도 사랑인 한편, 어린이가 동무끼리 알뜰살뜰 아끼며 돌보는 마음 또한 사랑입니다.

 집식구를 사랑하듯이 집개와 집고양이를 사랑합니다. 텃밭 푸성귀를 사랑하듯이 멧자락 나무와 풀을 사랑합니다. 파란하늘을 사랑하고 보리밭과 나락논을 사랑합니다. 파란바다와 숱한 멧새를 사랑하고 참새와 골목길을 사랑합니다.

 만화책 《이치고다 씨 이야기》에 나오는 ‘지구별 바깥에서 찾아와 인형에 깃든 목숨’은 지구별 사람 눈으로 보자면 ‘외계 생명’일 테지만, ‘지구별 바깥에서 찾아와 인형에 깃든 목숨’이 지구별 사람을 바라보자면 지구별 사람이 ‘외계 생명’이 되겠지요. 곧, 서로 같은 목숨이고 같은 사랑이며 같은 삶이자 삶은 사람입니다.

- ‘유미, 여전히 착하구나.’ (22쪽)
- “이치고다 씨한테는 이곳이 있잖아. 얼마 전에 길을 잃어버렸을 때도 여기로 돌아왔고, 아무리 무서운 꿈을 꿔도 내가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게.” (107∼108쪽)
- ‘이온 외의 다른 지구인 친구가 생겼다. 바로 단발머리에 핑크색 마시멜로 같은 뺨을 가진 작고 귀여운 소녀.’ (116쪽)
- ‘유미가 기뻐하고 있어. 아카리도 들떴고. 이온은 어쩌면 대단한 사람일지도.’ (146∼147쪽)
- “유미, 유미.” “응?” “저기 전화 밑에 있는 세이요 종이봉투.” “모자다.” “할아버지가 오시자마자 네 머리맡에 그 모자를 두었는데, 책상 위에 모자를 보고 한참 망설이다가 다시 그 봉투에 넣어 버리시더라고. 할아버지도 화이트데이를 알고 계셨나 봐. 팥앙금도 물론 좋아하시겠지만, 분명 유미를 훨씬 더 좋아하시는 거야.” (152∼154쪽)

 첫째 책에서는 따뜻한 마음으로 따뜻하게 살고픈 넋을 담고, 둘째 책에서는 아픔을 먹고 눈물을 마시는 어여쁜 삶을 담으며, 셋째 책에서는 사랑하는 사람과 즐거운 나날을 보내는 꿈을 담은 만화책 《이치고다 씨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살아가는 이야기를 꾸밈없이 담는 만화책 《이치고다 씨 이야기》라고 하겠습니다. 더 잘나지 않으나 더 못나지 않습니다. 몹시 예쁘지 않지만 몹시 밉지 않습니다. 있는 그대로 좋고, 있는 그대로 아쉬우며, 있는 그대로 반가우면서, 있는 그대로 서운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웃으면서 웁니다. 울다가 웃습니다. 배부르다가 배고프고, 졸립다가 멀쩡합니다. 멀쩡하다가 졸음이 쏟아지고, 배고프다가 배가 부르며, 주머니가 두둑하다가는 주머니가 탈탈 비어요.

 일을 하기에 놀이를 즐기고, 놀이를 즐기기에 일 또한 바지런히 합니다. 맛나게 차린 밥을 만나게 즐긴 뒤에는, 한 가득 쌓인 설거지감을 땀 뻘뻘 흘리며 씻고 부십니다. 어여삐 차려입으며 뽐낸 옷은 다시금 신나게 빨래해야 하며, 따숩게 덮고 잔 이불은 이듬날 먼지를 팡팡 털어 줍니다.

 ‘딸기밭’ 동무는 자그마한 딸기씨가 흙에 뿌리를 내려 수많은 딸기를 내놓듯이, 자그마한 삶씨를 조그마한 보금자리에 고이 흩뿌리면서, 서로서로 애틋하게 어우러지는 삶길을 조용히 찾습니다.

― 이치고다 씨 이야기 3 (오자와 마리 그림·글,정효진 옮김,학산문화사 펴냄/42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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