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칼럼] 자유공원의 집회를 곱씹어보며
상태바
[인천칼럼] 자유공원의 집회를 곱씹어보며
  • 고재봉
  • 승인 2019.12.11 05:45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고재봉 / 자유기고가

 

동인천 언덕마루에 자리 잡은 자유공원은 우리나라 근대사의 질곡이 그대로 묻어난 장소이다. 한국 최초의 근대식 공원이라는 수식어가 붙었지만 만국공원이라는 원래 이름의 의미는 곱씹어보아야겠다. 일본을 비롯한 외세가 들어와 이 자리에서 조선을 두고 자웅을 다퉜으니, ‘만국이 우리를 식민지로 넘보던 장소가 이곳이었다.

한편 만국공원에서 자유공원으로 개명한 사연 역시 퍽 아리다. 한국전쟁 시기 전세를 뒤바꾼 인천상륙작전을 기념하여 맥아더 장군 동상을 세우고 자유공원이라고 부르고 있지만, 결국은 이것도 전쟁이라는 비극이 낳은 이름인 셈이다. 즉 만국공원이나 자유공원이라는 발랄한 이름뒤에는 한국의 가장 아픈 근대사가 숨어있다.

그렇기에 이 지역에서 벌어지는 사소한 일들은 우리 사회가 떠안은 모순을 보여주기도 하여 생각보다 그 의미가 무거울 수밖에 없다. 가령 몇 년째 맥아더 장군 동상을 두고 벌어지는 시비가 그렇다. 진보 단체에서는 철거를 해야한다는 주장을 하고, 보수 단체에서는 이를 끝까지 보존해야한다고 강변한다. 하지만 이 글을 쓰는 필자의 눈에는 보수집회가 더 우세한 것처럼 보인다. 벌써 몇 년째 해마다 자유공원에서 보수집회가 열리고 이 지역에서 자리를 틀고 오랫동안 살아오신 분들이 꽤 많이 참석하시는 것을 보아서이다.

생각해보건대 대한민국이 지금 겪고 있는 세대 간의 정치적 · 이념적 갈등을 자유공원은 하나의 작은 그림으로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다만 나는 여기서 어느 쪽을 문제 삼아 시비를 걸고 싶은 마음은 없다. 오히려 이러한 이념대립을 곰곰 따져보고 서로가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면 좋지 않을까라는 작은 바람이 있을 뿐이다.

자유공원 근처를 다니다 보면, ‘연백이나 연천과 같은 북한 황해도 지명을 상호로 건 가게들을 왕왕 마주치게 된다. 한국전쟁 이전에는 황해도 땅의 일부가 남한 땅이었고, 또한 황해도 실향민들에게는 언제고 다시 볼 수 있을지도 모르는 고향이 여기와 지척이었다. 그래서 이곳에 터전을 잡게 된 흔적이 바로 저렇게 가게들의 상호에 고스란히 남아있는 것이다.

하지만 북한에서 넘어왔다는 다소 억울한 딱지가 따라붙어서 이곳 사람들을 알게 모르게 압박한 사연도 우리는 알 필요가 있다. 실향민들은 고향을 잃은 설움도 겪었지만 늘 이념적으로 의심받았기에 자신이 남한 사람이라는 점을 더욱 극렬하게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까닭에 실향민들의 마음속에는 자기도 모르는 이념적 검열이 자리 잡기도 하였으니 이들은 이중의 아픔을 겪으며 살아온 것이다.

물론 반세기를 이곳에서 자리 잡아 사신 분들이 그 삶의 경륜으로 이념을 선택한 것을 당연히 존중해야 한다. 하지만 해마다 맥아더 장군 동상 앞에서 열리는 보수집회에 유난히 많은 사람들이 몰리는 것은 단순한 우리사회의 이념적 대립, 그 이상을 보여주기에 의미심장하다. 출신 지역에 따라 사람을 가리고 차별하였던 과거의 관행들과 국가에 대한 과도한 충성을 경쟁해야 했던 관성을 읽을 필요가 있다. 결국 차별 받지 않고 살고 싶다는 인간다운 요구와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정받으며 성실하게 살고 싶다는 선량한 마음이 그 기저에 깔려있다는 사실도 우리는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자유공원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대립은 한국의 근대사가 겪은 부침과 그 맥이 고스란히 맞닿아 있다. 서로를 헐뜯고 비난할 일이 아니라, 세대가 지나며 감추어진 켜켜이 쌓인 묵은 상처로 보듬고 돌봐야 할 사안인 셈이다. 필자의 할머니 역시 고향을 그리워하다가 돌아가신 실향민이었다. 인천에 유난히 많은 황해도식 냉면가게를 차려 평생의 업으로 삼으셨던 분이다. 때로는 나이 어린 손주와 생각이나 뜻이 벗나갈 때도 있었지만 그것으로 미움을 가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설사 서로 아픈 곳을 헤집겠다고 하여도 돌아가신 할머니처럼, 시간이란 사람을 도무지 기다려주지 않아서 더욱 절박할 따름이기 때문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허장범 2019-12-11 12:47:15
좋은 칼럼 잘보고 갑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