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녹색 빛을 찾아, 녹청자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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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녹색 빛을 찾아, 녹청자박물관
  • 유광식
  • 승인 2019.12.13 14: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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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유람일기]
(19) 서구 경서동 / 유광식

 

서구 경서동에 있는 녹청자박물관, 2019ⓒ유광식
서구 경서동에 있는 녹청자박물관, 2019ⓒ유광식

 

얼마 전 서구에서 ‘청라시티타워’ 기공식이 열렸다. 그 모습은 서구의 모든 중심이 이 타워로 모여야 하는 것처럼, 온라인게임 ‘리니지’의 새 광고를 연상시켰다. 그 방향이 아니면 안 되는 것들처럼 다소 먹먹한 기분이었다. 내게는 높은 건물이 필요 없다. 그저 20도 안팎으로 실내온도를 유지해줄 수 있는 평평한 작은 공간과 깨끗한 물이 있으면 된다.

이전부터 서구 녹청자 도요지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언제 한번 가보고 싶었다. 주말을 맞아 길을 나섰는데 가까운 곳이라 여겼지만 직접 실행에 옮기기까진 오랜 시간이 흐른 뒤였다. 사실 도요지에 가봤다기보다는 요약정리 본으로 박물관을 찾아간 것이렷다. 가까이 살면서도 경서동이 어디인지도 가늠하기 힘들었고 진입도 자동차가 아니면 쉽게 닿기 어려운 은밀한 공간이었다. 도착해 보니 볕 좋은 구릉에 자리 잡은 명당이긴 했지만 말이다. ‘경서동 도요지로’ 자체가 어떤 시간 터널을 말해 주는 것 같다. 네비게이션조차 입구 근처에서 빙글빙글 돌면서 마을 뒤 구릉에 자리 잡은 골프장을 동서로 가르는, 비행기 버전 루트로 안내했기 때문이다. 한편 박물관 앞은 넘말공원이었는데, 공원 어디선가 낯익은 김광석 노래가 자꾸만 들려왔다. 놀이터엔 아이들만 뛰놀고 있었고 그냥 지나치려다 음원 장소가 궁금해 넘말공원을 한 바퀴 돌았는데, 어느 연립주택 3층 창문에서 스피커를 통해 라이브 음악을 선보이고 있었다. 노래 이상으로 민원성 소음으로 읽히기 딱 좋은 경우였다. 자제와 존중이 필요한 시대가 아닌지 소리 없는 역정을 내며 박물관으로 들어섰다.

 

박물관 앞 넘말공원 어린이 놀이터(누가 불시착했을까?), 2019ⓒ김주혜
박물관 앞 넘말공원 어린이 놀이터(누가 불시착했을까?), 2019ⓒ김주혜
넘말공원에서 올려다본 녹청자박물관, 2019ⓒ김주혜
넘말공원에서 올려다본 녹청자박물관, 2019ⓒ김주혜

 

서구 경서동 도요지54. 녹청자박물관은 한·일 월드컵이 끝난 2002년 가을, 사료관으로 시작했다가 방문객이 늘고 장소가 협소해 맞은편에 새로 신축한 공립박물관이다. 전통가마터와 녹청자 사료 전시, 도예 교육, 체험 프로그램 등으로 빚어져 있다. 박물관 1층은 상설과 기획전시실이고, 2층은 체험실과 휴게실, 사무 공간으로 꾸며졌다. 가장 흥미로운 점이라면 과거 상류계급에서 애용된 청자나 백자가 아니라 서민계층의 생활자기로서 녹청자에 마음이 끌린 것이었다. 녹갈색과 암녹색은 개인적인 취향이기도 했고 일반 가정의 생활의 발견과도 같은 빛깔임에 관심이 컸다. 표면도 조금은 투박한 듯 거친 것이 마음에 부담이 없다. 서구 경서동 지역이 국가사적 녹청자도요지로서 그 명성이 작지 않아 보였다. 서민들의 삶을 이어가는 도구로 활용되었을 자기는 그 형태도 대접과 접시, 병류가 대다수였다. 지금의 나 또한 가장 많이 이용하는 형태이고 인간의 삶에서 필수요소로 자리할 것들이다. 대체로 관상용이 아닌 실용을 우선시했던 당시 자기 대량생산공장이 경서동이었던 부분에서 가까운 현장을 모르고 지냈던 지난날에 머쓱해지기도 한다.

 

도자기를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는 모형 중에서(성형 과정), 2019ⓒ유광식
도자기를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는 모형 중에서(성형 과정), 2019ⓒ유광식
1F 역사전시실 전시 관람 중, 2019ⓒ김주혜
1F 역사전시실 전시 관람 중, 2019ⓒ김주혜


박물관은 건물 자체가 녹청 빛을 띠는 외벽 마감에 구릉 위 북서 방향으로 지어졌다. 자동출입문이 열고 닫힐 적에 “삐이익이기긱끄~!” 하는 쇳소리가 상당히 거슬렸는데 서둘러 조치가 이뤄지길 기대한다. 2층에는 휴게실 겸 양심도서관이 무인 운영되고 있으나 공간 분위기가 다소 엄숙했다. 무역회사의 검고 묵직한 소파, 전시작품 구획으로 제한된 동선, 책보단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싶었다. 휴게실 출입문은 대문을 형상화한 것 같은데 안을 들여다볼 수 없어 안쪽(휴게실)으로 들어서기가 다소 망설여져 개방되었다고 생각되지 않았다. 좁고 기다란 1층 로비 창가에 자리한 좌대 위 수상 작품들은 너무 거대하고 높아 아이들 눈높이도 아니고 조금은 오갈 데 없이 방치된 인상이었다. 통로가 좁기도 하거니와 창밖 전망을 막고 녹청자 본연의 수수함이 거대 스케일에 눌리는 느낌을 떨쳐내기 힘들었다. 집안 대청소 겸 가구 정리하듯 크게 한 번 정리하면 끝날 일이다.

 

2F 휴게실 겸 양심도서관 입구(안쪽을 살필 수 없어서 거부감이 든다.), 2019ⓒ유광식
2F 휴게실 겸 양심도서관 입구(안쪽을 살필 수 없어서 거부감이 든다.), 2019ⓒ유광식
1F 역사전시실 입구(녹청색 타일로 장식되어 있다.), 2019ⓒ유광식
1F 역사전시실 입구(녹청색 타일로 장식되어 있다.), 2019ⓒ유광식


무엇보다도 녹청자의 의미를 낮게 묻지 않고 꾸준히 지켜나가는 것이 소중한 작업 같았다. 지금의 트렌드는 기존의 상위문화 개념보다는 개인과 마을의 삶의 공간, 디테일의 조명이다. 작지만 필수적인 우리 곁의 가치가 모여 큰 그릇을 빚을 수 있는 것 말이다. 녹청자의 의미가 기존의 위대함과 세련미, 희소성에 주눅 들지 않고 볕 쪼개어 사는 시민들의 따뜻한 이야기로 돌돌 말아졌으면 좋겠다.

 

역사전시실 내 전시품 중에서(토우 가족! 이 정겹다.), 2019ⓒ김주혜
역사전시실 내 전시품 중에서(토우 가족! 이 정겹다.), 2019ⓒ김주혜
도요지에서 주로 출토된 대접 모양의 녹청자, 2019ⓒ유광식
도요지에서 주로 출토된 대접 모양의 녹청자, 2019ⓒ유광식

 

기울기 있는 가마터처럼 완만한 경사에 자리 잡은 경서동 주택지. 볕 쬐기 좋은 곳이다. 그 뒤로는 국제 CC 골프장이 자리한다. 이 일대에 비치는 녹청색 생활이 바래지 않고 좀 더 선명하게 빛났으면 하는, 기도까지는 아니지만 자꾸만 중얼거리게 된다. 나중에는 도자 체험도 하고 마을을 찬찬히 산책하며 녹청의 빛깔을 새기고 싶다. 경서동도 추운 겨울 잘 지탱하길 바란다.

 

박물관 야외 전시장에서, 2019ⓒ유광식
박물관 야외 전시장에서, 2019ⓒ유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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