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식 후, 주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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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 후, 주말
  • 김선
  • 승인 2019.12.17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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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방인 -⑥너무나 평범함 일상

 

인천in이 송도국제도시에 있는 복합문화공간 서유당과 함께 어렵게만 느껴지던 동·서양의 고전 읽기에 도전합니다. ‘서유당의 고전읽기모임인 하이델베르크모임Jacob 김선(춤추는 철학자), 김현(사회복지사), 최윤지(도서편집자), 서정혜(의류디자이너), 소순길(목사)’ , 브엔까미노(명상활동가) 등이 원서와 함께 번역본을 읽어 내려가며 삶의 경험을 나누고 있습니다.

 

두 번째 고전읽기- 알베르 카뮈(김화영 역), 이방인 L’Etranger, 민음사.

: Jacob 김 선

 

De toute façon, on est toujours un peu fautif.

어차피 사람이란 조금은 잘못이 있게 마련이니까.

 

  집으로 돌아온 뫼르소는 깊은 잠을 자고 일어나 이틀 동안의 휴가를 청했을 때 못마땅한 기색을 보였던 사장을 생각한다. 오늘은 토요일. 그러니까 나흘을 쉬는 꼴인 것이다. 사장의 심정을 이해할 수 없는 바는 아니지만 엄마의 장례식을 치른 날은 자신의 탓이 아니다. 그러므로 나흘 쉬는 것에 미안해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직장 생활에서 상사의 눈치를 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엄마의 장례식도 예외는 아닌가 보다.

  드라마 미생에서 아직 살아있지 않는자로써의 미생들은 조직이라는 생태계 속에서 상사의 논리와 비논리 사이에 놓인 외줄을 타는 어름사니처럼 한발은 저승을 딛고 또 한발은 이승을 딛고 살아가야 하는 서글픈 존재인 것이다.

 

다음 웹툰으로 바둑을 소재로 직장인의 삶을 빗댄 작품
다음 웹툰으로 바둑을 소재로 직장인의 삶을 빗댄 작품

 

뫼르소도 미생인가?

 어제 하루의 피로를 풀기위해 뫼르소는 수영을 하러 간다. 전차를 타고 항구 해수욕장으로 가서 바닷물 속으로 뛰어 든다. 물속에서 전에 사무실에서 함께 근무했던 마리 카르도나를 만난다. 예전에 서로 마음은 있었지만 상황이 맞지 않아 만날 기회가 없었다. 그런데 지금 물속에서 만난 것이다. 뜬금없지만 묘하다. 마음에 두고 있던 사람을 우연히 그것도 물속에서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그런데 그 뒤가 더 놀랍다. 그녀가 부표 위로 기어오르는 것을 거들어 주고 뫼르소도 기어올라가 그녀의 배를 베고 눕게 된다. 사귀는 사이도 아닌데 이럴 수 있을까? 그녀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아서 뫼르소도 그냥 그렇게 하고 있다. 두 사람은 오랫동안 그렇게 부표 위에서 어렴풋이 잠이 든다. 이 장면만 보면 두 사람은 분명 서로를 연인으로 생각한 것 같다. 연인들의 물놀이 오후 한 때인 것이다. 낯설고 신기하다.

햇볕이 너무 뜨거워 마리와 뫼르소는 물속으로 뛰어 든다. 함께 헤엄을 치고 나서 둑 위로 올라가서 몸을 말리는 동안 뫼르소는 그녀에게 저녁에 영화 구경 가자고 말한다. 그녀는 페르낭델(Fernandel, 1903~1971)이 나오는 영화를 보고 싶다고 말한다.

프랑스의 희극배우이다.
프랑스의 희극배우이다.

  천상 희극배우의 얼굴이다. 큰 입과 서글서글한 눈매가 어떤 영화를 찍었을지 짐작케 한다. 이 배우가 나오는 영화를 뫼르소가 좋아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래도 영화 보러 가자고 말하는 것 자체는 평범한 연인들의 자연스러운 대화다.

  그런데 두 사람이 옷을 다 입었을 때 뫼르소가 검은 넥타이를 맨 것을 보고 그녀는 매우 놀라는 표정을 한다. 그녀는 주관적이다. 엄마가 죽었다고 뫼르소는 말한다. 뫼르소는 객관적이다. 두 사람은 보이지 않는 간극이 있어 보인다. 언제인지를 알고 싶어하는 그녀에게 어제라고 뫼르소는 대답한다. 그의 대답에 흠칫 놀라면서도 아무런 나무람도 하지 않는다. 간극이 더 벌어진 것이리라. 뫼르소는 뭐라 변명하고 싶었으나 무의미한 일이라 생각하고 어차피 사람이란 조금은 잘못이 있게 마련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저녁때가 되자 마리는 모든 일을 다 잊어버린다. 뫼르소와 함께 시시한 영화를 보고 뫼르소의 집까지 간다. 다음날 마리는 가고 없다. 그녀는 뭔지 모르게 심풀하다. 뫼르소와 조금은 닮은 구석이 있어 보인다. 뫼르소는 일요일이 따분해서 싫어한다. 그래서 마리가 베개에 남긴 머리카락의 소금기 냄새를 더듬다가 10시까지 자 버린다. 누군가의 체취가 묻어 있는 대상은 그 누군가를 지속적으로 그리워하게 만든다. 그래서 옛 애인의 물건들을 쉽게 버리지 못할 때가 있는 것이다. 머리 속 추억이 충만 하더라도 몸의 갈증은 별개인 것이기에 뫼르소는 일어나 계란 프라이를 해서 점심을 먹는다. 점심을 먹고 나니 심심해서 아파트 안을 어정거린다. 백수같다.

  엄마가 살아 있을 때 알맞은 아파트가 이제는 너무 크게 느꺼져 필요한 것만 뫼르소 자신의 방에 두고 나머지는 모두 버려둔 채로 산다. 장례식 때 이미 엄마를 마음으로 정리한 뫼르소가 현재를 다시 깔금하게 재정리 한 것으로 보인다. 잠시 후 무엇인가 해야겠기에 신문을 한 장 들고 읽는다. 크뤼셴 소금 광고를 오려서 신문에 난 재미있는 것들을 모아 두는 낡은 공책에다 붙인다. 예전에 정보가 가장 풍부했던 신문을 통해 만들었던 스크랩북이 생각난다. 그 때는 신문으로 별걸 다 했는데 지금은 종이신문 보기가 힘든 세상이다. 진짜 세상풍경을 보고 싶었는지 뫼르소는 마침내 발코니에 나가 앉아 밖을 내다본다.

  무엇을 보고 있는지 나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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