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추와 장독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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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추와 장독대
  • 정민나
  • 승인 2019.12.19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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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추와 장독대 - 신중서

 

 

상추와 장독대

                            - 신중서

 

장독대는 집에서 좀 떨어진 곳에 만들었다

 

어머님이 장을 뜨러 가면

뱀이 똬리를 틀고 앉아 있는데

섬짓 놀래곤 했다

 

뱀은 허물을 벗기 위해

찝찔한 맛 소금기를 먹으로 온 것인데

저놈을 쫓을 방법이 없을까?

 

어머니는 장독대 주변에 상추를 심기 시작했다

상추에서 나오는 진액

뱀의 눈에 들어가면 눈이 멀었다

 

이 진액이 우리가 말하는 아편기인데

옛날 상추를 먹으면 잠이 왔지

지금은 어떤가?

 

요사이 상추는 개량종에

또 개량종이라

 

선조들의 지혜가 모아진

장독대

뱀이 와도 쫓아버릴

방도가 없다

 

어렸을 때 간장을 쏟은 적이 있다. 어머니가 큰 항아리에 붓고 남은 간장을 작은 항아리에 담아 햇볕 좋은 날 뚜껑을 열어 발효시키는 중이었는데 웬일인지 항아리 속 간장에 비친 오묘한 무늬에 홀려 이리저리 돌려보다 그만 간장을 쏟은 것이다. 혼이 난 며칠 후 장독대 근처에서 뱀을 본 경험이 있다. 뱀은 허물을 벗기 위해 염분이 필요하다고 한다. 신중서 시인의 시를 읽다 보니 찝찔한 간장이 장독대 근방의 흙에 배여 뱀을 부른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우리는 지금도 고택의 장독대 근처에 심어진 상추를 종종 보게 된다. 상큼한 상추에 된장 고추장을 얹어 밥이나 삼겹살을 쌈 싸 먹는 우리의 식생활을 떠올리면 자연스러운 일이어서 지나치기 쉬운데 뱀이 나타나지 못하도록 하는 방편이었다니 그 야들야들한 방어벽을 다시 한 번 쳐다보게 된다.

 

상추는 예로부터 천금채라고도 불렸다. 중국의 수나라 사람들이 비싸게 값을 치르고 상추 종자를 구한 것으로부터 유래된다. 밥맛이 없을 때 상추쌈은 상큼한 맛을 살아나게 하지만 상갓집에 가면 상추는 나오지 않는다. 사람이 돌아가 슬픈 상황인데 입을 크게 벌리고 왕성하게 쌈을 싸 먹는 일은 상상만 해도 눈치 없고 불경스러워 보인다.

 

하지만 가을 상추는 문 걸어 잠그고 먹는다.’라는 말이 있다. 단맛 쓴맛이 잘 섞여 있는 상추는 가을에 제일 맛이 있다고 해서 전해지는 말이다. 우리나라는 일찍이 향악구급방(鄕樂救急方)(1236)과 동의보감(東醫寶鑑)에서 상추에 대한 효용을 말하고 있다. ()나라 시인 양윤부 역시 해홍(海紅 아그배)은 화홍(花紅 능금)만 같지 못하고, 행자(杏子 살구)는 파람(巴欖 아몬드)만 같지 못하다. 다시 고려(高麗) 생채(生菜)맛은 산 뒤쪽 향기로운 마고(蔴菰 표고)를 모두 옮겨 놓은 것 같다고 읊었다.

 

상추를 통해 이렇게 생활 속에서 지혜를 실천해 왔는데 요사이 상추는 개량종에 / 또 개량종이라” “뱀이 와도 쫓아낼 방도가 없다니 이 또한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정민나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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