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봉도 마당난로와 군고구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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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봉도 마당난로와 군고구마
  • 문미정
  • 승인 2020.01.03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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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마흔 넘어 알아버린 불장난의 재미

도시에서 나고 자란 젊은 부부가 인천 앞바다 장봉도로 이사하여 두 아이를 키웁니다. 이들 가족이 작은 섬에서 만나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인천in]에 솔직하게 풀어 놓습니다. 섬마을 이야기와 섬에서 일어나는 아이들의 일상을 이야기로 만들어 갑니다. 아내 문미정은 장봉도에서 사회복지사로 근무하며 가끔 글을 쓰고, 남편 송석영은 사진을 찍습니다.

 

장봉도의 겨울 준비는 창문 틀 사이를 테이프나 문풍지로 틀어막고, 난방용 비닐을 창문에 붙이며 시작한다. 오래된 집들이라 요즘 주택처럼 단열이 잘 되어 있지 않아 겨울 대비는 필수다.

우리 집은 특별히 하나 더 준비하는 것이 있으니 바로 미니 난로 설치와 군고구마다.

고구마도 우리손으로 직접 심고 가꾼 것이라 그런지 맛이 더 좋다. 겨울까지 잘 저장된 고구마는 수분이 다 빠져서 더욱 쫀득하고 맛이 좋다. 백령도 고구마는 저리갈 정도로 맛이 일품이다.

난로는 집안에 설치하는 것은 아니고 마당에 설치하는데 겨울 내내 요 난로에서 하는 불장난이 여간 재밌는 일이 아니다.

불을 지펴 현관 입구를 따뜻하게 하기도 하지만 여기에 주전자를 올려 봉지 커피를 타 마시거나 군고구마를 구워먹으면 그렇게 꿀맛일 수가 없다.

왜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불장난을 하지 말라고 하셨는지를 깨달으며, 마흔 넘어 뒤 늦게 불장난의 재미를 알아버린 나는 틈만나면 불을 지핀다. 그러면서 여전히 아이들에게는 불장난을 하면 안된다고 가르친다.

 

올해는 집 옆으로 모닥불 지피는 공간도 꾸며보았다. 집 주변에 널려있는 있는 크고 작은 돌을 모아 둥그렇게 만들었다. 처음 여기에 모닥불을 지피던 날,

둘째 지유는 불을 지피는 나를 보더니 갑자기 후다닥 방으로 들어가 장난감 기타를 들고 나온다.

이럴 땐 음악이 있어야지!

6살짜리 입에서 나올만한 말이 아니라 깜짝 놀랐다.

하나 더해서 노래까지 해주신단다.

나는 분위기를 더욱 무르익게 하려고 조용하고 감미로운 노래를 골라 부르자고 했다. 첫째 지인이가 요베겟의 노래를 부르자고 한다.

요베겟의 노래는 눈물이 날 정도로 애절하고 감미로운 노래다. 8살짜리의 감성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그런데 막상 노래를 부르려니 가사가 잘 생각이 나질 않는다. 핸드폰으로 영상을 틀어 가사를 보면서 따라 부르기로 했다. 하지만 이게 문제였다. 영상을 틀기 전에는 너무나 평화롭고 감격스럽기까지 했던 분위기가 영상을 틀자 두 녀석이 서로 자기가 보겠다면서 싸우기 시작이다.

아이고~ 됐어. 됐어!  그냥 다같이 아는 노래 부르자!

 

결국 그 밤은 기타와 나무 두드리는 소리에 댄스파티가 되면서 마무리 되었다.

 

시골의 삶 중에 제일 재미없는 파트가 겨울이다. 봄에는 새와 꽃으로, 여름엔 물놀이로, 가을엔 수확으로 재미나지만 겨울엔 정말 할 일이 없다.

하지만 우리집 마당에서 저지르는 안전한 불장난은 우리의 겨울에 재미를 더하여 준다.

 

올 겨울은 작년보다 비가 많이 오고 포근하다. 그래서 난로를 피울 일이 생각보다 적다. 그래도 긴긴 겨울 난로와 모닥불이 만들어 주는 따스함과 군고구마는 봄에 온갖 꽃들과 새들이 찾아오기 전까지 우리의 겨울에 달콤한 쉼을 가져다줄 것이다. 오늘도 나는 바람에 떨어진 잔가지를 주워 퇴근길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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