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의 풍경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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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의 풍경들
  • 김선
  • 승인 2020.01.0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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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방인 -⑦달라진 것 없는 하루

인천in이 송도국제도시에 있는 복합문화공간 서유당과 함께 어렵게만 느껴지던 동·서양의 고전 읽기에 도전합니다. ‘서유당의 고전읽기모임인 하이델베르크모임Jacob 김선(춤추는 철학자), 김현(사회복지사), 최윤지(도서편집자), 서정혜(의류디자이너), 소순길(목사), 이광남(명상활동가)’ 등이 원서와 함께 번역본을 읽어 내려가며 삶의 경험을 나누고 있습니다.

 

두 번째 고전읽기- 알베르 카뮈(김화영 역), 이방인 L’Etranger, 민음사.

: Jacob 김 선

 

J’ai pensé que c’était toujours un dimanche de tiré, que maman était maintenant enterrée, que j’allais reprendre mon travail et que, somme toute, il n’y avait rien de changé.

나는, 일요일이 또 하루 지나갔고, 엄마의 장례식도 이제는 끝났고, 내일은 다시 일을 시작해야 하겠고, 그러니 결국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을 했다.

 

발코니의 남자, 구스타브 카이보트(Gustave Caillebotte 1848 - 1894, The Man on the Balcony)
발코니의 남자, 구스타브 카이보트(Gustave Caillebotte 1848 - 1894, The Man on the Balcony)

 

  구스타브 카이보트 '발코니의 남자'처럼 뫼르소가 발코니에서 본 첫 풍경은 지나가는 가족들이다. 해군복 차림의 두 소년, 에나멜 구두를 신은 소녀, 밤색 비단옷을 입은 뚱뚱한 어머니, 키가 작고 비쩍 마른 뫼르소도 아는 아버지가 지나간다. 아내와 나란히 있는 아버지를 동네 사람들이 왜 점잖은 사람이라고 하는지 뫼르소는 알 수 있었다. 아내를 보면 남편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아내가 보통은 아닌 듯 싶다. 그런 아내와 사는 것만으로도 남편은 점잖은 사람으로 평가된다는 사실이 재미난다.  

  다음 풍경은 변두리 젊은이들이다. 머리에는 기름을 반지르르하게 바르고 붉은 넥타이에 허리가 잘록한 양복저고리에 수놓은 장식손수건을 꽂고 코가 네모진 구두를 신은 차림이다. 70~80년대 흑백영화에서 볼 수 있는 모습 같다. 서양이나 동양이나 젊은이들은 뭔가 비슷한 외양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만드는 것 같다. 그들의 모습 속에서 그들을 읽어낸다. 뫼르소는 그들은 분명 영화구경을 가는 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큰 소리로 웃어 대면서 전차를 타러 서둘러 가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무리지음과 큰 웃음, 뭔가 빠른 움직임들이 젊은이들의 DNA인가 모르겠다. 요즘은 그런 모습을 보기가 힘들다. 파편적이고 웃음기 없는 창백한 얼굴, 뭔가 멈춰있는 듯한 그들이 젊은이인지 늙은이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두 풍경이 지나가고 나니 인적이 드물어진다. 길에는 가게를 보는 주인과 고양이들뿐이다. 요즘 불경기라 대로변 가게들도 그렇다. 고양이 대신 휴대폰만 보고 있다. 길가에 늘어선 무화과나무들 위로 보이는 뫼르소의 하늘은 맑았으나 광채가 없어 보였다. 지금 가게 주인들의 시선에도 광채가 보이지 않는다. 미세먼지 때문에 거리를 걸어 다니는 지금 사람들도 마스크 위로 눈만 보이는데 그 눈빛들이 어둡다. 어디를 가고 있는지 방향키가 없어 보인다. 그래서 불안한 눈빛이 애처롭게 보인다. 지금은 서글픈 시대인 것 같다.

  시대도 또 다른 시대에게 자리를 양보해야 하기에 흘러가리라. 풍경도 흘러가리라. 어느덧 뫼르소가 봤던 터질 듯이 들어찼던 전차들은 거의 비어 있다. 뫼르소는 분명히 일요일인 것을 인식한다. 일요일에 사람들은 무엇을 하는가? 늦은 잠, 여행, 운동, 신앙활동 등 일요일에는 일요일만의 나름의 의식들이 있는 것 같다. 맹목적이고 철저하게 하든지 안하든지 말이다. 뫼르소는 안하는 쪽인 것 같다.

  뫼르소는 발코니에 의자를 놓고 담배를 피우고 초콜릿을 먹는다. 가장 편하고 한가로움을 마음껏 누리는 모습이다. 일요일이라 풍경을 눈에 담고 몸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이리라. 얼마 안 있어 하늘이 어두워진다. 소나기가 올 것 같았지만 다시 하늘은 벗겨진다. 그래도 구름이 지나가면서 비의 전조와도 같은 흐릿한 빛을 남겨 놓아 거리는 한층 더 어둑해 진다. 뫼르소는 오랫동안 하늘을 바라본다. 오래전부터 하늘을 바라볼 마음의 여유가 없는 우리네와 비교되는 장면이다.

  5시에 전차들이 소리를 내며 도착한다. 시선이 이동한다. 교외 경기장으로부터 구경꾼들을 잔뜩 싣고 오는 것이다. 그 다음 전차들은 보스턴백을 멘 선수들을 싣고 온다. 지금은 패션 아이템 중 하나이지만 예전에는 운동선수들의 전유물 같은 보스턴백을 멘 것만으로 경쾌해 보이고 발랄한 느낌이 든다. 지금 그 가방을 멘다면 좀 더 생동감 있고 젊어질 것만 같다. 그 후로 버스들이 몰려 온다. 해는 조금 더 기울어진다. 땅거미가 지면서 길거리는 활기를 띤다. 산보객들도 차츰 돌아오고 있다. 동네 영화관들이 구경꾼들의 물결을 길에 쏟아 놓는다. 시내 영화관으로부터 돌아오는 사람들은 조금 뒤에 오기 시작한다. 동네 젊은 아가씨들은 머리에 아무것도 쓰지 않은 채 서로 팔을 끼고 서 있고 청년들은 그녀들에게 농을 걸자 여자들은 고개를 돌리고 웃어 댄다. 그때 갑자기 가로등이 커지며 어둠 속에 떠오르던 첫 별빛들이 희미해진다. 거리의 활기는 순식간에 활활하다. 온갖 사람들과 빛이 가득한 보도를 보면서 뫼르소는 눈이 피로해지는 것을 느낀다. 오래 풍경을 보고 있었으니 당연하다. 그런데 조금 지나자 전차들이 점점 뜸해지고 거리는 인기척이 없어지고 마침내 다시 쓸쓸해진다. 지친 시각 외 다른 본능에 충실할 시점이다. 그때에야 뫼르소는 저녁을 먹어야겠다고 생각한다. 빵과 밀가루 식료품을 사 가지고 올라와 선 채로 요리를 해서 먹는다. 심플한 본능대처법이다. 창가에서 담배를 한 대 피우려 했으나 공기가 서늘해 창문을 닫고 방안으로 돌아오다가 거울 속에 알코올램프와 빵 조각이 놓여 있는 테이블 한끝이 비친 것을 본다.

유리구슬을 든 손, 마우리츠 코르넬리스 에셔( Maurits Cornelis Escher1898-1972, Hand with Reflecting Sphere)
유리구슬을 든 손, 마우리츠 코르넬리스 에셔( Maurits Cornelis Escher1898-1972, Hand with Reflecting Sphere)

 

  거울 속에 비친 테이블 한끝을 보며 무슨 생각이 들었던 걸까? 거울은 현실에 있지만 거울 속 대상은 진짜 현실은 아니지 않는가?  에셔의 유리구슬 속 자화상처럼 뫼르소는 현실에 있지만 거울 속 대상처럼 진짜 현실은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뫼르소는 일요일이 또 하루 지나갔고 엄마의 장례식도 이제는 끝났고 내일은 다시 일을 시작해야 하고 그러니 결국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정말 달라지지 않았을까?  

  뫼르소는 거울 속에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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