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 없는 신체, 변이와 생성을 추구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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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 없는 신체, 변이와 생성을 추구하는
  • 정민나
  • 승인 2020.01.16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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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금속 소년」 / 정우신

 

 비금속 소년」 

 

여름이 소년의 꿈을 꾸는 중에는 풀벌레 소리가 들리곤 했다 우리는 장작을 쌓으며 여름과 함께 증발하는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화산은 시력을 다한 신의 빈 눈동자 깜박이면 죽은 그림자가 흘러나와 눈먼 동물들의 밤이 되었다 스스로 녹이 된 소년, 꿈이 아니었으면 싶어 흐늘거리는 뼈를 만지며 줄기였으면 싶어 물의 텅 빈 눈을 들여다보았다 멀리,

 

숲이 호수로 걸어가고 있다 버드나무가 물의 눈동자를 찌르고 있다 지워진 얼굴 위로 돋아나는 여름, 신은 태양의 가면을 쓰고 용접을 했다 소년이 나의 꿈속으로 들어와 팔을 휘두르면

 

나는 나무에 가만히 기댄 채 넝쿨과 담장과 벌레를 그렸다 소년은 내가 그린 것에 명암을 넣었다 거대한 어둠이 필요해 우리는 불을 쬐면서 서로의 그림자를 바꿔 입었다 달궈진 돌을 쥐고 순례를 결심하곤 했다

 

소년은 그림자를 돌에 가둬 놓고 잠에서 깨어나지 않는

다 나의 무릎에 이어진 소년, 이음새를 교환할 때마다 새소리를 냈다

 

정우신, 비금속 소년전문

 

 

2019년 연말과 이번 년도 1월 중순까지 필자는 프랑스 여행을 하였다. 파리 퐁피두 센터 현대 미술관에서는 때마침 프란시스 베이컨(Francis Vacon)의 작품을 전시하였다. 베이컨의 작품은 인간 내면의 불안과 고통을 그로테스크하게 표현한다. 그는 보이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도록 한다는 들뢰즈의 감각론을 부각시킨다.

 

들뢰즈는 시공간을 초월한 유목민적 예술리좀모델을 제시한다. 또한 단순한 인간의 실체가 아닌 어떤 고정된 질서로부터 벗어나 무한한 변이와 생성을 추구하는 기관없는 신체이미지를 그린다. 이를 통해 인간의 본질을 표현하는 것이다. 이것은 베이컨 회화의 이론적 예술론이 되는데 정우신 시인의 이번 시집 비금속 소년을 읽는 방법적 도구가 되기도 한다.

 

비금속 소년에 나오는 소년은 하나의 동일성이 부여된 인격적 주체가 아니라 기관없는 신체혹은 배아 상태의 알로 치환하여 생각해 볼 수 있다. 소년은 그림자를 돌에 가둬 놓고 잠에서 깨어나지 않는다. ‘유기체화 되기 이전의 신체를 가리키는 그 그림자는 시적 화자가 소년과 바꿔 입은 그림자이다. “(화자)의 무릎에 이어진 소년은 이음새를 교환할 때마다 새소리를낸다. 이 시구에서 (화자)의 무릎에 이어진 소년은 접속이라는 리좀의 방식으로 읽어볼 수 있다. ‘리좀은 땅속 줄기 식물을 가리키는 식물학에서 온 개념이다. 땅콩이나 고구마 줄기처럼 수평으로 자라면서 덩굴을 뻗는데 그것은 새로운 식물로 자라나고 다시 새로운 줄기를 뻗는 방식으로 접속’, ‘이질성’, ‘다양성등의 의미를 갖는다. 그렇다면 소년이 이음새를 교환할 때마다 새소리를 냈다는 시구는 정말로 이 리좀의 의미부여와 동일한 것이 된다. 여기서 새소리는 날아다니는 새의 지저귐, 자유로움이 연상되는 새소리일 수 있고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소리의 준말인 새 소리로 읽을 수 있다.

 

지배적인 패턴에 갇힌 채로 글을 쓰는 것은 생명력을 좀 먹는 일이다. 이것을 지양하는 새로운 방법으로 프랙탈 인식 기법이 있다. 프랙탈(fractal)이라는 용어는 쪼개다라는 의미를 가진 라틴어 프랙투수(fractus)'에서 따온 것이다. 부분이 전체를 닮는 자기 유사성(self-similarity)과 소수 차원을 특징으로 갖는 형상을 일컫는다. 작은 구조가 전체 구조와 비슷한 형태로 끝없이 되풀이 되는 구조인데 인형 안에서 인형이 계속 나오는 러시아의 목재 인형 마트료시카(Matryoshka doll)를 떠올리면 쉽게 이해된다. 우리 주방에서 흔히 보는 주방 도구인 채반이나 찬합, 냄비도 일상생활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프랙탈 구조이다.

 

정우신의 시 비금속 소년역시 그런 구조를 갖고 있다. 여름은 소년의 꿈을 꾸고 소년은 다시 이 시를 쓰는 화자의 꿈속에 들어와 있다. 혹은 소년은 소년의 꿈을 꾸는 여름 안에 있고, 여름과 함께 증발하는 것들을 생각하는, 우리 안에 존재한다. 여기서 우리는 물론 화자를 포함한 우리이다. 그것을 점층적 크기를 나타내는 반각기호 를 사용하여 표시하면 소년 여름화자우리가 된다. 자신의 작은 부분에 자신과 닮은 모습이 나타나고 그 안의 작은 부분에 또 자신과 닮은 모습이 반복되는 현상이 드러난다.

 

자연의 모습 대부분은 대체로 프랙탈 구조를 지니는데 나무껍질이나 눈송이’, ‘고사리’, ‘공작의 깃털무늬’, ‘구름’, ‘은 모두 작은 부분의 모습이 전체 모습과 비슷하다. 이 시에서는 비유적으로 화산이라는 전체 구조를 신의 빈 눈동자’, ‘죽은 그림자’, ‘눈먼 동물들의 밤이라는 작은 구조로 쪼개고 소년비금속’, ‘흐늘거리는 뼈’, ‘넝쿨과 담장과 벌레를 그리는 나로 쪼개어 묘사하고 있다. 실재로 시인은 이 시집 62쪽에서 프랙탈이라는 제목으로 시를 상재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시인은 왜 이런 시를 쓰는 것일까? 그것은 폐쇄된 공간 속에 매몰된 화자가 스스로 프랙탈 인식을 시화함으로써 억압 속에 매몰되지 않고 전환의 계기를 모색하는 방법이 되기 때문이다. 들뢰즈의 감각론이나 베이컨의 예술론에서 제시하는 리좀이나 기관없는 신체유목민적 예술도 마찬가지다. 정우신이 쓴 프랙탈에서 원하는 것을 선택하고 새끼를 던지연못을 넘나들고 자신을 먹는 생물이 어떻게 변이하는지 보는일은 모두 자신의 몸으로 세계를 품는 일이 된다.

 

이 자기상사(相似)의 무한한 연쇄라 할 수 있는 프랙탈 방식의 시 쓰기는 시라는 기존 장르의 형식을 파괴하지만 그것을 통해 오히려 깊이 숨어있는 현실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이어지는 그의 시 프랙탈에서 나는 진화를 앞두고 있다그것은 곧 패턴이 되겠지만/일기를 쓰며/돋은 날개를 흔들어 본다에서 그러한 진실이 확인된다. 실존적 한계 속에서 주체의 고통을 낫게 하고자 하는 잠재적 욕망이 작용하여 치유의 새로운 가능성을 타전한다.

시인 정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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