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팅(hurting)이 있다면 힐링(healing)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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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팅(hurting)이 있다면 힐링(healing)이 있다
  • 정민나
  • 승인 2020.01.23 17: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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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비 / 김희중

 

겨울비

                 ⸺ 김희중

 

 

빛바랜 은행잎 떨어져 구르는 나뭇잎을 쓸어모아

 

솔바람에 떠는 감나무 밑동에 쌓았다

 

발이 시려울까봐 덮어주냐고 속모르는 갈까마귀가

 

까악까악 참견을 한다

 

이 친구야 벌거벗은 감나무도 안쓰럽지만

 

수북히 쌓인 한 해의 기억들이 아쉬워서라네

 

소름끼치게 차거운 빗방울 느린 승용차들의 행렬

 

비오는 겨울은 을씨년스럽다

 

온 동네가 내려다보이는 통 유리창에 호~오 입김을 분다

 

서린 김 위에 당신의 이름을 쓴다

 

 

알록달록 아름답던 나무들 겨울이면 옷가지들 홀홀 떨구고 단조로이 서있다. 그 밑에 수북이 깔려있는 낙엽들. 아파트 관리소에서 사람들이 나와 마대자루에 긁어모은다. 얼마 후면 누런 자루가 꼭꼭 채워져 입구가 매어진 채 여기저기 나뒹군다.

 

예쁜 빛깔도 시간이 지나면 시신을 염습(殮襲)하듯, 아름다운 계절의 관문(棺門) 앞에 대기하듯 을씨년스럽기만 하다. 거기에 겨울비라도 내리면 마음은 더욱 춥다. 이러할 때 시인은 차가운 빗방울이 돋는 창문 앞에 선다.

 

떨어져 구르는 나뭇잎을 쓸어 모아 / 솔바람에 떠는 감나무 밑동에 쌓았지만 내려다보이는 세상은 여전히 가슴 시리다. 시인이 통 유리창에 호~오 입김을부는 행위, “서린 김 위에 당신의 이름을쓰는 행위는 수북히 쌓인 한 해의 기억들이 아쉬워서라기보다 차갑게 식어가는 마음을 저어하는 행위가 아닐까? 그것은 소름끼치게 차거운 빗방울 느린 승용차들의 행렬이란 시구에서 엿볼 수 있다. 자신의 마음을 객관적으로 묘사하는 이런 시구에서 독자들은 사랑의 온기에 닿고 싶어하는 화자의 마음을 읽게 된다. “서린 김 위에 당신의 이름을 쓴다

 

어느 시인은 말한다. 사람에겐 누구나 힐링(healing)이 있다고, 힐링이 있다면 허팅(hurting)도 있다고 허팅힐링이 두 개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서로가 서로를 베어 물고 있다고…… 추운 겨울에 비까지 오는 이런 날, 사람들은 대체로 꺼져가는 불씨를 살려 따뜻함을 유지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시인 정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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