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하고 예쁘게 살아가고픈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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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하고 예쁘게 살아가고픈 꿈
  • 최종규
  • 승인 2011.04.11 10: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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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사노 미오코, 《네가 없는 낙원 (1∼2)》

 사진을 찍는 사람이 모두 똑같이 사진을 찍는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진을 찍는 사람 가운데에는 나 스스로 예쁘게 바라보는 모습을 예쁘게 담고 싶다는 꿈을 꾸는 사람이 어김없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 또한 나 스스로 바라보는 아름다운 모습을 아름다운 그림으로 종이에 옮기고파 하는 사람이 꼭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글을 쓰는 사람 또한 나 스스로 어여쁘다 느끼는 삶을 어여쁘다 느낄 글로 갈무리하여 적바림한다고 생각합니다.

 반드시 멋지구려 사진기나 비싸구려 사진기가 있어야만 내가 예쁘게 바라보는 모습을 예쁘게 사진으로 담지는 않습니다. 언제나 좋은 종이에 좋다는 물감이나 붓을 써야만 아름다운 그림을 그릴 수 있지 않습니다. 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나온다든지 다른 걱정 하나 없이 글만 쓸 수 있대서 어여쁘다 느낀 삶을 글로 쓸 수 있지 않습니다.

 밥을 맛있게 지을 때에 꼭 비싼 살림살이가 있어야 하지 않습니다. 쓸 만한 살림살이가 있으면 될 뿐입니다. 쓸 만한 살림살이를 알맞게 쓰거나 즐거이 다룰 수 있을 때에 밥을 맛있게 짓습니다.

 멋있다는 비싸거나 큰 자동차를 타야 더 잘 돌아다닐 수 있지 않습니다. 멋져 보인다는 비싸거나 이름난 자전거를 몰아야 자전거마실이 한결 즐겁지 않습니다. 더 큰 집이어야 하지 않습니다. 더 많은 책이어야 하지 않아요.

- “살아 있었구나.” “그래. 죽지 않을 정도로 살아 있었지.” “선물 줘! 석 달치.” “내가 선물이야.” “바-보!” (1권 4∼5쪽)
- “그래, 토모에 속에 있는 달시계가 움직이기 시작한 거야. 이제부터 토모에가 점점 더 빛이 나도록 움직이기 시작한 거야.” (1권 135쪽)
- “있잖아, 토모에. 이 사진 안에는 토모에가 있단다. 엄마 뱃속에.” (1권 146쪽)
- ‘토모에는 이기고 지는 승부가 없는 이벤트를 더 좋아하는 것 같다.’ (2권 112쪽)
- “아빠 손은 커다랗고 포근했어. 토모에가 감기에 걸리면 이렇게 머리를 감겨 줬어. 그러면 토모에는 기분이 좋아서 언제나 잠들었지.” (2권 157쪽)

 만화책 《네가 없는 낙원》에 나오는 ‘토모에’라는 아이는 제 아버지가 사진작가였습니다. 토모에는 사진작가였던 아버지를 몹시 좋아하지만 정작 토모에는 사진기를 들거나 사진찍기를 하지 않습니다. 다만, 토모에는 아버지를 닮아 사진찍기 놀이를 할 때가 있는데, 토모에는 두 눈을 사진기 눈으로 여겨 살며시 감았다 뜨면 제 마음 깊이 사진으로 남는다고 생각합니다.

 토모에는 제 아버지가 ‘사진을 찍는 마음’ 하나를 물려받았을 뿐입니다. 제 아버지 사진기도 사진장비도 사진작품도 물려받지 않은 토모에입니다. 제 아버지 이름값이라든지 제 아버지 돈을 물려받지 않았어요.

 토모에는 ‘사진에 담는 마음’ 하나를 물려받았습니다. 사진쟁이는 사진기를 들 때에 착하며 사랑스러운 마음이어야 하는데, 사진쟁이 스스로 착하며 사랑스러운 마음이어야 비로소 사진에 착하며 사랑스러운 마음을 담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토모에는 저 스스로 좋아하는 삶을 돌보면서 저하고 마주하거나 만나는 사람들한테마다 예쁘거나 기쁜 넋을 베풉니다.

 이리하여, 토모에는 제 아버지한테서 ‘사진을 찍는 마음’을 비롯해 ‘사진에 담는 마음’에다가 ‘사진을 나누는 마음’을 곱다시 물려받은 셈입니다.

- “이 말괄량이 녀석이! 니시나 선생님이, 아빠가 저 세상에서 우실 거다.” “아빠는 예쁜 꽃이랑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랑 비 냄새를 좋아했어. 카즈야도 알잖아!” (1권 21쪽)
- “카즈야는 카즈야야. 그리고 아빠 편지랑 엽서는 안 빌려 줄 거야. 절대로 안 돼.” (1권 86쪽)
- “제복을 입어 보니까 갑갑한걸. 주름스커트는 옷감 낭비라고 생각하지 않아? 반바지로 하면 좋을 텐데.” (1권 117쪽)
- “토모에라면 눈 깜짝 할 사이에 백 장이든 천 장이든 써 버릴 텐데. 아빠 얘기라면.” (2권 15쪽)
- “이상해. 네모난 수조 속에서 선을 따라 수영하는 게 뭐가 재밌을까? 토모에는 물고기랑 게랑 다시마랑, 함께 헤엄치는 게 좋아.” (2권 17쪽)

 만화영화 〈플란다스의 개〉를 보면, ‘네로’라는 아이는 돈이 없어 종이나 물감이나 붓을 사지 못합니다. 빈 집 옥상 바닥에다가 벽돌조각으로 해오라기를 그리고,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까만 하늘을 그림판으로 삼아 온갖 그림을 마음속으로 그립니다. 나무판자에 목탄으로 그림을 그리기도 하지만, 목판에 지우고 다시 그리기는 만만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네로는 제 눈에 아름다이 보이는 모습을 즐겁게 그리고, 사랑스레 그립니다.

 네로라는 아이는 제 어버이와 할아버지한테서 무엇을 물려받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네로라는 아이도 토모에라는 아이와 매한가지로 착한 마음과 예쁜 손길을 물려받았을까 궁금합니다. 착한 마음과 예쁜 손길을 물려받았기에 ‘제 이름값을 높이려는 그림’이 아니라 ‘제 삶을 가꾸려는 그림’을 좋아하고, ‘제 돈벌이가 될 그림’이 아니라 ‘제 꿈을 이루려는 그림’을 사랑할까요.

 《네가 없는 낙원》에 나오는 토모에는 도시내기입니다. 도시내기이면서 꽃내음이나 바람소리를 느끼거나 좋아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도시내기이더라도 꽃내음을 얼마든지 맡을 수 있고 바람소리 또한 얼마든지 들을 수 있어요. 다만, 좋아한대서 살아내기까지는 못하기 일쑤입니다. 좋아할지라도 머리로 좋아할 뿐, 마음으로 깊이 좋아하거나 온몸으로 기쁘게 껴안으며 좋아하기는 힘들기 마련입니다.

 토모에는 갑갑한 틀만 받아들이지 않는 아이일까 헤아려 봅니다. 토모에는 그저 멋모르거나 철없으니까 여느 도시내기하고 똑같이 살아가고픈 꿈을 안 꾸는지 곱씹어 봅니다. 토모에가 시골 아이라면, 또 토모에네 어머니가 아예 시골로 살림집을 옮겨 스스로 흙을 일구면서 살아간다면, 토모에며 토모에네 어머니이며 어떠한 넋으로 어떠한 삶을 꾸릴는지 궁금합니다. 어쩌면, 토모에네 아버지 또한 도시에서 살아가며 ‘아름다움을 느끼고 아름다움을 즐기며 아름다움을 나누는 사진을 찍기’까지는 했으나, 막상 스스로 아름답게 살아가며 아름다운 삶꽃과 삶사진을 일구는 데에까지는 나아가지 못한 셈 아닌가 싶습니다. 토모에는 제 아버지가 하지 못한 꿈이자 삶이자 일이자 놀이인, 스스로 착하면서 예쁜 삶을 일구고픈 마음으로 도시에서 하루하루 힘겨이 버티지 않느냐 싶어요.

- “죽으면 사람은 어떻게 되는 걸까.” (1권 26쪽)
- “어쩐지 나, 이상한 기분이 들었어. (토끼) 우사치키는 죽어서 가엾다는 소릴 하는데, 음식이 되는 동물한테는 그런 말 안 해. 토모에는 이제 고기는 안 먹을 거야.” (1권 74∼75쪽)
- “엄마로서는 자식의 배를 부르게 해 주고 싶을 뿐인데. 숭고한 사랑까진 아니지만. 사자도 사람도 마찬가지야.” (1권 92쪽)
- “토모에는 지구상의 모든 동물을 ‘우사키치’라고 부르고 있어. 마음속에서 우사치키 우사키치. 사랑하는 우사키치.” (1권 101쪽)

 아버지는 아버지이고, 어머니는 어머니이며, 토모에는 토모에일 테지요. 토모에는 태어날 때부터 토모에였고, 아버지와 어머니 또한 처음 태어날 때부터 ‘아버지와 어머니’라는 이름이 아니라 ‘아버지 아무개와 어머니 아무개’라는 이름이었을 테고요.

 토모에네 아버지는 사진을 찍으러 지구별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딸 토모에한테 편지나 엽서를 자주 보냈다는데, 편지나 엽서 끄트머리에는 늘 ‘네가 없는 낙원에서’라고 적바림합니다. 네(딸 토모에)가 없지만 하늘나라와 같은 아름다운 터전에 있다는 뜻이었을 텐데, 얼굴을 마주보는 자리에는 틀림없이 없지만, 마음이 만나는 자리에서는 늘 ‘네(딸 토모에)가 함께 있는 하늘나라’로 느꼈으리라 생각합니다. 토모에네 아버지이든 토모에이든 마찬가지였겠지요.

- “토모에는 태어나기 전부터 토모에였구나.” (1권 168쪽)
- “토모에는 이미 정해 놨어. 결혼할 사람.” (2권 52쪽)
- “잘은 모르겠지만, 짝사랑이다 이 말이지?” “그런 셈이지!” “그럼 말이야. 토모에도 빨리 앞으로 나아가서 퀸이 되어 버려.” (2권 178쪽)

 토모에는 토모에대로 아름다운 목숨입니다. 토모에 곁에서 토모에 사진을 찍어 주는 카즈야는 카즈야대로 아름다운 목숨입니다. 토모에 아버지와 어머니는 두 분대로 아름다운 목숨이고, 토모에와 같은 학교를 다니는 야나기라든지 카즈야 여자친구인 미카코도 저마다 아름다운 목숨이에요.

 누구나 제 목숨 그대로 아름다우면서 ‘체스 말판 퀸’에서 퀸이라 할 만합니다. 그러나 장기 말판에서 왕이든 말이든 졸이든 모두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럽습니다. 졸이라 덜 아름답거나 상이라 더 아름답지 않습니다. 한 발자국씩 천천히 내디디든 한거번에 훌쩍 뛰어넘든 모두 사랑스럽습니다.

 내 길을 나대로 걸어갈 수 있는 이야기를 누구나 제 깜냥껏 일굽니다. 더 잘난 이야기가 아니고, 더 못난 이야기가 아닙니다. 만화책 《네가 없는 낙원》에서는 서로서로 따사로운 마음길과 손길로 어우러지는 하루하루를 좋은 이야기르 길어올리려는 사람들 삶을 차근차근 보여줍니다.

― 네가 없는 낙원 1∼2 (사노 미오코 글·그림,서현영 옮김,학산문화사 펴냄,2002/3500·3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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