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귀한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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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귀한 존재
  • 최원영
  • 승인 2020.02.17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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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나에게서 너에게로

 

풍경 #134. 세상에 쓸모없는 것은 없습니다

 

효율성을 판단의 가장 큰 척도로 여기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일상이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효율성이란 군더더기가 없는, 즉 꼭 필요한 것’ ‘쓸모 있는 것만이 존재하게 하는 데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려면 모든 일을 쓸모 있음없음으로 분류하게 되고, 이 분류에 따라 쓸모없는 것들은 배제하기 마련입니다.

이런 기준이 몸에 배게 되면, 일뿐만이 아니라 사람의 가치마저도 쓸모의 여부로 나누는 우를 범하기가 쉽습니다. CEO 경영우언이라는 책에 낙타 엄마와 새끼가 나누는 대화가 나옵니다.

 

엄마, 우리 속눈썹은 왜 이렇게 길어요?”라고 새끼 낙타가 묻자 엄마 낙타가 이렇게 답해줍니다.

사막에 모래폭풍이 올 때, 이 속눈썹은 방향을 쉽게 찾게 돕는단다.”

 

엄마, 우리 등은 왜 이렇게 튀어나왔어요? 보기 싫어요.”

이것은 낙타봉이란다. 여기에 물과 영양분을 저장해두었다가 사막에서 먹을 것, 마실 것이 없을 때도 오래 길을 갈 수 있도록 돕는 거란다.”

 

왜 우리 발바닥은 이렇게 넓고 두꺼워요?”

우리의 무거운 체중 때문에 발이 사막 모래 속으로 빠지는 걸 막아주고, 먼 길을 갈 때 발을 보호해준단다.“

 

우리가 원래 이렇게 장점이 많은 동물이었는지 몰랐어요.”

 

이렇게 모든 것은 다 쓰임이 있습니다. ‘의 기준으로 보았을 때는 필요 없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존재하는 것 모두는 나름의 역할을 다 하고 있었던 거지요. 다만 그것을 보지 못하게 가리고 있는 의 시선과 기준 때문에 형성된 나의 편견이 나의 눈을 가렸던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내가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해서 쓸모없는존재로 여긴 것은 아닐까요?

새끼 낙타의 질문은 곧 우리의 편견과도 같을 겁니다. 그러나 엄마 낙타의 대답에서도 알 수 있듯이, 존재하는 모든 것은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 있습니다.

 

인간관계에서도 가 귀한 것만큼이나 도 귀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행복의 열쇠를 손에 쥔 것과 같습니다. 이런 마음이 있을 때 비로소 자연스럽게 너를 배려하는 태도가 나오고, 겸손한 자세로 상대를 대할 수 있습니다.

 

 

풍경 #135. 시선의 확장: 나에게서 너에게로

 

인문학은 곧 삶을 탐구하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철학이나 문학, 예술, 역사 등등의 학문을 모두 묶어서 인문학이라고 부르곤 합니다. 인문학이 주는 선물 가운데 하나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확장시킨다는 점입니다. ‘만을 바라보던 시선에서 까지도 헤아릴 수 있는 여유를 줍니다. 그래서 서로 간의 차이를 너그럽게 안아줄 수 있게 하고, 상대의 실수까지도 품어줄 수 있습니다. ‘의 기쁨을 함께 기뻐하고, ‘의 슬픔을 함께 슬퍼하게 합니다.

내가 행복해야 하고 나의 슬픔과 아픔이 조금 더 줄어들었으면 하는 소망에서 그치는 삶이 아니라, 너 역시도 나와 똑같은 소망을 하고 있다는 점을 헤아리는 것이 곧 시선을 에게서 에게까지 확장하는 것입니다. 이런 관계가 이루어질 때 비로소 한 사람의 행복이 두 사람의 행복으로 확장됩니다.

 

CEO, 책에서 성공을 훔치다에는 고객의 실수까지도 고객에게 돌리지 않아야 한다는 지혜를 배울 수 있는 글이 있습니다.

 

개장한 지 얼마 안 된 슈퍼마켓에서 어떤 여성 고객이 울상을 짓고 정육코너로 뛰어가는 것을 슈퍼마켓 사장이 보았습니다. 여성 고객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 시간 전에 이 갈비를 샀는데, 집에 갖고 가보니 이상한 냄새가 났어요.”

정육코너 책임자인 짐 맥그래스가 말했습니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잠시만요. 밖으로 나가 냄새를 맡아보겠습니다.”

냄새가 나지 않았습니다. 맥그래스는 돌아와 고객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다른 고기로 바꿔 드리겠습니다. 불편을 끼쳐 죄송합니다. 대신 등심을 조금 더 드리겠습니다.”

이 말을 들은 여성은 만족했습니다. 잠시 기다리는 동안 그녀는 슈퍼마켓 사장에게 말했습니다.

저분이 냄새를 맡으셨다니 안심이네요. 제 남편은 아들이 부엌에 갖다 놓은 접착제 때문에 나는 냄새라고 했거든요.”

이 말을 들은 사장은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그렇습니까? 사실, 아무 냄새도 맡지 못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다른 고기로 바꿔 드리고 등심을 더 드려도 아무 문제는 없습니다.”

그 순간, 그녀는 눈물을 터뜨리더니 뛰쳐나갔습니다.

잠시 후 맥그래스가 사장에게 오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장님, 지금 제정신입니까? 그녀가 잘못했다는 말을 할 필요가 있습니까? 그런 말씀은 절대로 해선 안 됩니다. 분명히 말씀드리는데, 그 손님은 우리 매장에 다시는 오지 않을 겁니다.”

 

일어났던 사실을 말하는 것이 잘못은 아니겠지요. 그러나 그 말이 상대에게 상처를 준다면, 그 말이 상대의 실수를 지적하는 말이라면 한 번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내 말이 상대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는 말인지 아닌지를 말입니다.

효율성만을 중시하는 사회에서는 무엇이 옳고 그르냐는 것으로 다투게 됩니다. 다툴 때마다 감정의 상처는 깊어만 가겠지요. 그러나 효율성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가 함께 행복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인간관계의 본질입니다. 이 점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사실 인간관계에서는 옳고 그름을 따지는 일보다 훨씬 더 소중한 것이 기쁨과 슬픔을 마주하는 태도입니다. ‘게 일어난 기쁜 일을 가 기뻐해 주고, ‘에게 일어난 기쁜 일에 가 박수와 환호를 보내는 관계, ‘가 마주하고 있는 슬픈 일에 가 함께 울어주고, ‘가 마주하고 있는 슬픔에 가 네 곁을 지켜주는 관계, 이런 관계가 행복의 마중물이 아닐까요?

이런 행복을 모두가 누릴 수 있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그러려면 시선을 확장할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행복해야 하고 나의 슬픔과 아픔이 조금 더 줄어들었으면 하는 소망에서 한발 더 나아가, 당신 역시도 행복해야 하고 슬픔이나 아픔이 더 줄어들기를 소망하고 있음을 헤아리는 것이 곧 시선을 에게서 에게까지 확장하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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