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바이러스와 언론혐오에 대한 단상
상태바
코로나바이러스와 언론혐오에 대한 단상
  • 고민정
  • 승인 2020.02.25 08: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고민정 / 자유기고가

 

리원양
리원양(SBS 화면 캡처)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네덜란드 동화가 있다. 추운 겨울 제방에 구멍이 난 사실을 안 소년이 밤새 손가락으로 구멍을 막다가 마을 사람들을 구하고 죽었다는 이야기이다. 같은 동네 사람은 아니지만 우리도 그런 소년을 하나 알고 있다. 바로 중국인 의사 리원양씨이다. 중국발 코로나바이러스의 위험을 최초로 알리고 그는 사람들을 치료하다 유명을 달리하였다. 다만 네덜란드 소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소년의 마을은 제방이 터지지 않았고, 중국은 그 제방이 터져버린 것이다. 이처럼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사태였을지 시간을 돌이켜보는 일이 부질없지만 그의 희생을 생각하면 더욱 안타까울 따름이다.

 

하지만 우리가 이번 일로 배울 것이 있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언로(言路)가 차단되거나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사실을 말한 의사가 거짓 선동자로 몰려 처벌을 받는 어처구니없는 일만 없었어도 이것을 인재(人災)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단지 이 사태는 코로나바이러스의 높은 전염력 때문만은 결코 아니라는 것을 이제 우리는 모두 알게 되었다. 바이러스보다 더욱 무서운 것은 사실이 호도되거나 매도되어버리는 일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교훈 앞에서 과연 떳떳할 수 있을까? 어떤 사람들은 언론의 자유를 운운하며 한국은 중국과는 다르다느니,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었기에 이런 일은 한국에서는 결코 벌어질 수 없는 일이라느니 하며 자임하는 것 같다. 언론이 운신할 수 있는 폭을 생각해보면 과연 이런 말들은 맞는 것 같다. 하지만 당장 인터넷의 포털 사이트 뉴스란을 들어가보면 실상은 그렇게 녹록지 못해 보인다. 코로나바이러스와 관련하여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어려운 일들을 보도할 때마다 뉴스 자체를 공격하는 댓글들이 즐비하다. 바야흐로 선거 정국과 맞물려 언론혐오가 절정에 달한 것이 아닌지 우려스럽기까지 하다.

 

언론이 사실을 침소봉대하여 공포를 조장한다면 문제이지만, 이럴 때일수록 언론이 나서 사실과 정보를 제공해줘야 한다. 기실 불안과 공포는 인류가 생존하기 위해 진화시킨 매우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사람은 불안과 공포를 통해 조심성을 갖게 되고 미처 알지 못하는 사고로부터 자신을 지켜왔다. 이러한 불안을 종식시킬 수 있는 것은 용기가 아니다. 불안을 잠재울 수 있는 최선의 수단은 지식과 정보이다. 지식과 정보가 없이 행동하는 것은 용기가 아니라 만용(蠻勇)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태가 벌어질수록 제일 발 빠르게 움직여야 할 사람은 언론관계자들이다.

 

뉴스의 댓글란을 보면서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지금 정부가 잘하고 있다라는 말이다. 나 역시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감염상황에 대처하는 정부당국의 노력을 지지한다. 하지만 그런 말들이 기사의 댓글들을 도배해버린다면 뉴스 자체가 무용해지고 힘을 잃게 된다. 보고 싶은 사실들만 보겠다고 한다면 편식을 하는 입맛 나쁜 어린아이와 무엇이 다를까. 말하자면 언론 편식주의인 셈이다.

그런데 이러한 언론편식주의가 정부에 대한 찬성이나, 찬성을 넘어선 예찬과 이어진다면 그것은 단순한 입맛 나쁜 편식증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식탁의 음식들을 한 사람 입맛에 맞추는 것마냥 언로가 천편일률이 되어버리면 민주주의의 기로는 이미 결판나버린 것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필연적으로 구심의 역할을 하는 정부의 말이 다양성을 대변해주기란 어렵다. 그래서 욕을 먹더라도 언론은 필요한 것이다.

 

기실 이러한 언론혐오는 단지 편식증을 가진 대중의 취향 때문만은 아니다. 무엇보다 신뢰를 잃어버린 언론사들의 책임이 우선일 것이다. 비판의 목소리가 진실과 엇나가버리거나 그 공평무사함에 조금이라도 치우침이 있다면 신뢰란 돌이킬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이것이 맥빠진 저널리즘을 옹호하는 말은 아니다. 날카로운 비판의 잣대를 자기자신에게 우선적으로 적용하여야 비로소 신뢰를 획득할 수 있다는 진부한 말을 되풀이한 것뿐이다.

 

하지만 이러한 건강한 언론을 위해서라도 뉴스나 보도 자체를 일방으로 매도해서는 안 될 일이다. 어느 한구석에서 제방의 구멍을 막고 있는 소년이 있다고 누군가는 빨리 알려줘야 할 것이 아닌가. 그래야 소년도 구하고 제방의 둑이 터지는 것도 막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