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시골에서 책방을 하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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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시골에서 책방을 하는 건가요?
  • 안병일
  • 승인 2020.03.27 10: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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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방, 그 너머의 기록]
(1) 안병일 / '책방시점' 책방지기

<작은책방, 그 너머의 기록>은 인천과 강화 지역에서 작은 책방을 꾸려가는 사람들이 전하는 이야기입니다. 요즘 세상에 책방을 열어서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텐데, 그들은 왜 굳이 작은책방을 열고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문화를 말하는지 질펀하게 수다떨려고 합니다. 좁은 골목길에서 우연히 맞닥뜨린 작은책방, 그 길모퉁이에서 책방 사람들이 들려주는 소소한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세요. 책방시점, 책방산책, 우공책방, 딸기책방, 나비날다책방 순서로 일주일에 한 번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책방시점'. 강화군 길상면 소담마을에 있다.
'책방시점'. 강화군 길상면 소담마을에 있다.

책방시점은 강화도 길상면 소담마을에 있는 작은 시골 동네 책방이다. 2019년 4월 문을 열었으니 채 1년도 안 된 새싹 책방인 셈이다. 서울이나 인천 등 다른 곳에서 책방을 찾아 온 사람들은 왜 “시골에 책방을?”이라고, 강화도 사람들은 “왜 강화읍이 아닌 이곳에?”라고 묻는다. 서울이건 강화읍이건 사람이 많이 다니는 도심 한복판에서 해도 될까 말까한 책방을 왜 이 시골에서 하냐는 말이다. 그러게나 말이다.

우리가 이 작은 시골 마을에 책방을 연 이유는 사실 특별히 없는 동시에 아주 명확하다. ‘살고 싶은 곳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어서’다. 이 말을 쉽게 표현하면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고 조금 고상하게 말하면 ‘지속 가능하게 살기 위해서’다.

잘 살려고 책방 열었다니까요

작은 책방이 하루에 책 많이 팔아야 열 권 남짓이다. 심지어 손님이 한 명도 안 올 때도 많다. 계산 빠른 사람들은 이쯤 되면 대번에 물어본다. “책 팔아서 생활이 돼요?” 떼돈을 벌려고 책방을 연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지만 자선사업을 하려고 연 사람도 없다. 사정을 뻔히 알면서도 책방을 열었는데, 그 말은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오랫동안 책방으로 살아남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더 의아할 거다. 책방을 오래 잘 하고 싶은데 그게 시골 섬이라고?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그렇다”이다. 우리 책방은 책과 책이 팔리는 장소를 조금 다른 관점에서 보기로 했다. 이제 사람들은 궁금한 게 있으면 포털 사이트가 아닌 유튜브를 열고 ‘how to~’를 검색한다. 포털 사이트마저 시들한 마당에 사람들은 더 이상 책을 통해 답을 찾지 않는다. 하지만 여전히 책은 질문과 성찰, 공감과 위로 등 다른 매체가 대체하기 어려운 본질적인 장점을 보유하고 있다. 책의 쓰임과 의미는 변해도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공간 역시 그렇다. 책방을 비롯한 대부분의 공간은 흔히 접근성과 규모를 중요시하는데 접근성 좋은 곳은 상상을 초월할 임대료를 감당해야 한다. 규모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규모가 크다고 해도 세상의 모든 책을 담을 순 없다. 우리는 목 좋은 곳에 있지만 분주한 책방보다 찾아가기 불편하더라도 여유 있게 책에 집중할 수 있는 동네 책방에 주목했다.

북스테이를 선택한 까닭

우리 책방은 북스테이 방식을 선택했다. 북스테이는 책방과 게스트하우스를 합한 개념으로 잠을 잘 수 있는 책방이라고 보면 된다. 이런 방식을 취한 이유는 책과 공간을 다른 관점으로 봤기 때문이다. 책에서 정답을 찾을 순 없지만 지금 내게 가장 필요한 질문 하나를 만들거나 발견할 수 있다고 봤다. 그러기 위해선 물리적인 시간과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강화도는 수도권 대부분에서 2시간 안에 도착할 수 있지만 대신 책방 한 번 둘러보러 오려고 선뜻 나서긴 어려운 곳이기도 하다.

북스테이를 통해 하루 정도 머물면서 책을 보고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다면 물리적, 심리적 거리는 충분히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 오히려 책을 좋아하지 않지만 북스테이를 하며 뜻밖의 인생 책을 만날 수도 있고 책과 가까워질 수도 있으니 일반 책방보다 더 잠재고객이 많을 것으로 예상했다. 이렇게 구상한 책방을 알리기 위해 팟캐스트를 2년간 운영했고, 매일 블로그에 우리 소식과 책 관련 콘텐츠를 올렸다. 우리의 콘텐츠는 어설프고 유치했지만 꾸준히 지속한 결과, 차츰 빛을 보고 있다.

'책방시점' 개업식 날.
'책방시점' 개업식 날.

책방의 진짜 주인에 대해

한 가지 질문을 하겠다. 이중 책방의 진짜 주인공은 누구일까?

①책방지기 ②책 ③손님

미안하지만 이 질문엔 정답이 없다. 아마도 책방을 찾는 사람들의 취향에 따라 다르지 않을까? 내 경우는 이렇다. 책방을 열기 전엔 책방지기라고 답했을 것이다. 책방을 일궈 나가고 책을 선별하는 사람이니 당연히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책방을 준비하면서부턴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공간과 그 공간을 빛내는 책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책방을 열고 나서 또 한 번 바뀌었다. 그 공간을 살아 있게 만드는 손님이 진짜 주인공이라고.

책방은 다분히 손님의 반응에 민감한 공간이다. 책 한 권도 사지 않고 휙 둘러 보고 나가는 손님을 만나면 ‘우리 책방이 그렇게 별로인가?’ 하는 자괴감에 빠질 때도 많다. 반대로 결이 통하고 통까지 큰 손님이 올 때가 있다.

제일 인상적인 손님이 있는데, 이 분은 우리가 책을 소개하고 진열하는 방식이 마음에 들었다며 그 자리에서 거의 서른 권을 구입했다. 책을 팔면서 손님 지갑 사정을 걱정하긴 처음이었다. 책을 많이 팔아 기쁜 것보다 우리의 운영 방식에 공감하는 사람을 만나 기뻤다. 한 주에 그런 손님 한 명만 만나도 자존감은 꽤 오래 유지된다.

깜빡이도 안 키고 감동 훅 들어오면

간혹 힘든 손님이 오기도 하지만, 책방지기는 정말 행복한 일이다. 좋은 손님이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이다. 책 좋아하는 사람치고 악인 없다는 말이 맞긴 한 모양이다. 책을 사랑하고 책방을 아끼는 사람들이다. 적극적인 사람들은 책값을 계산할 때 “마음에 쏙 드는 책방을 열어줘 고맙다, 응원한다”고 이야기한다.

말을 못해도 방명록에 ‘오랫동안 이 소중한 공간을 지켜주세요’라고 정성스럽게 글을 남긴다. 요즘엔 동네 분들이 많이 찾는다. 시골에 책방이 생겨 좋다며 우리를 끔찍히 아낀다. 프로그램을 마련하면 혹여나 손님이 안 올까봐 친구를 데려 오고 다른 모임에도 소개한다. 이분들 덕분에 책방은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이런 손님이 있기 때문에 책방을 대충 할 수 없다. 우선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책이 아닌, 이곳이기 때문에 만날 수 있는 책을 소개하려는 우리의 다짐을 잊지 않게 한다. 손님들이 이곳에서 좋은 책을 만났을 때 그 순간을 소중히 여기고 감사해하는 것을 목격한다. 좋은 책의 기준은 저마다 다르기 때문에 시중의 베스트셀러, 스테디셀러라는 기준으로 획일화할 수 없다.

또 일부러 이곳까지 오는 분들은 책방지기보다 수준이 높으면 높았지 절대 낮은 사람들이 아니다. 꼼수를 부리면 대번에 알아차린다. 책방은 단순히 책 한 권을 팔아 커피 한 잔 값의 돈을 버는 상업 공간이 아니다.

하지만 현실적인 부분 때문에 잘 팔릴 것 같은 책을 진열하고 싶은 욕심도 든다. 그럴 때마다 이곳이기 때문에 만날 수 있는 책, 말을 거는 책을 만난다는 손님들의 가르침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때문에 어떤 활동보다 책을 고르고 진열하는데 많은 시간을 쏟는다.

또 손님과 공유하는 가치를 계속 고민하게 한다. 책방과 스테이 공간, 생활 공간이 함께 있다보니 찬찬히 따져보면 불편함이 많은 공간이다. 간혹 호텔이나 펜션 같은 공간을 상상하고 예약 문의를 했다가 실망해 취소하는 사람도 있다.

그럴 때마다 책방을 운영하는 입장에선 뭔가를 계속 꾸미고 바꿔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든다. 블로그와 sns에 그럴 듯한 사진을 찍고 꾸며서 올려 손님을 꼬셔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욕심도 생긴다. 하지만 그건 정말 잠깐이다. 이 책방을 아끼는 사람들은 기꺼이 작은 불편을 감수한다. 이분들 덕분에 한 눈 안 팔고 우리 결대로 공간을 이어가고 있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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