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때만 되면 당 이름 바뀌는 한국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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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때만 되면 당 이름 바뀌는 한국 정치
  • 고재봉
  • 승인 2020.04.02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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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칼럼] 고재봉 / 자유기고가
21대 총선 비례대표 정당 투표용지
21대 총선 비례대표 정당 투표용지

국회의원 선거가 이제 코앞으로 다가왔다. 국회는 민의(民意)의 장이고, 선거는 이러한 시민들이 ‘오랜만에’ 나라의 주인 노릇을 하는 날이기에 가장 큰 축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번 국회의원 선거는 여느 때와 달리 조용한 것 같다. 돌이켜보건대 20대 국회가 보여준 지난 4년은 시민들에게 정치적 염오(厭惡)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였다.

물론 코로나19의 유행이라는 뜻밖의 사태로 말미암아 모든 정치적 이슈들이 묻혀버린 탓이 가장 클 것이다. 하지만 선거를 앞둔 유권자의 입장에서 이번 선거는 탐탁지 못한 점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선거일 하루만 나라 주인 행세를 한다는 말이 무색하게, 이번 선거는 유권자가 푸대접받는 선거가 아닌가 생각이 든다.

기실 이번 국회의원 선거의 흥행 저조는 20대 국회가 자초한 바가 크다. 특히 선거법을 개정하면서 사상 초유의 ‘위성 정당’ 출현이라는, 상식 밖의 사건으로 인하여 과연 이번 선거가 민의를 제대로 반영해낼 수 있을지조차 의문이다. 50센티가 넘는 기이한 투표용지를 사진으로 보며 아연 두루마리 휴지가 떠오른 것은 비단 나뿐일까?

가짓수는 많은데 어디 젓가락 갈만한 음식은 하나도 없는 밥상의 형국이다. 이것이 모두가 나쁘고 그르다는 양비론적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오히려 여기서 지적하고 싶은 것은 선거철만 다가오면 고질적 병통이 되어버린 우리나라 정당들의 그릇된 행태이다. 바로 정당들의 ‘이름 바꾸기’가 그것일 것이다.

과거에도 선거에 유불리를 따져가며 선거가 다가오면 신당이 창당되곤 하였다. 하지만 그 알맹이를 살펴보면 신당이라는 말이 낯뜨거울 정도로 기존의 인사들로 채워지기가 일쑤였다. 까닭에 당이 새로 만들어진다고 하여 사람들이 그 당을 진짜 액면 그대로 신당으로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이는 이번 위성 정당 사태에서도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으니, 정치인들 스스로가 신당은 없고 단지 기존 정당에 간판만 바꾼 것임을 자임하는 꼴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이러한 행태는 명백히 비도덕적이다. 선거는 앞으로의 4년을 위해 시민이 권력을 위임하는 ‘미래’ 지향적인 일이지만, 과거가 없는 미래 역시 결코 있을 수 없기에, 지난 4년을 평가하는 ‘반성’의 시간이기도 하다. 그런데 선거철만 되면 정당들이 자신들의 몸을 나누고 합쳐가며 대놓고 간판을 바꾸기 일쑤이니 유권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지난 4년을 평가할 기회를 빼앗아 가버린 셈이다.

말하자면 유권자들만 늘 적자를 보는 장사가 된다. 지난날에 받아야 할 평가는 쏙 빼버리고 앞으로 쥐게 될 권력을 표로써 요구하고 있으니, 말 그대로 시민들은 선거일 하루만 나라 주인 행세를 하는 꼴이 되어버렸다.

정치인들이 권력을 쥐기 위해 합종연횡(合縱連衡)을 일삼는 것이야 유구한 역사를 지녔다고 할 수 있지만, 이토록 자주 이름을 바꾸는 한국의 정당 문화에 대해 이의제기를 해야만 한다. 표를 받아 4년이나 권력을 행사하였다면 그 공과를 반드시 다음 선거에서 평가받아야 마땅하다. 이렇게 해야 최소한의 계산이 성립된다.

그러므로 정당은 자신들의 당명을 무겁게 생각하고 그 ‘이름값’을 하기 위해 노력해야만 한다. 권력이 본디 국민에게서 나온다고 헌법에 명시되어 있으니, 권력을 쥐었던 정당의 간판을 붙이고 떼는 것 역시 국민의 선택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 시민의 준열한 평가를 받아들이기는커녕 피하기 위해 카멜레온처럼 능란하게 변신을 한다면 이를 공당(公黨)이라 할 수 있을까?

그러한 점에서 이번 선거 또한 유감이 크다.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특히 평소 정치에 큰 관심이 없는 경우, 정당의 이름이 혼란스러워 어떻게 투표를 해야할지 난색을 표하고 있다. 20대 국회는 이번 선거로 말미암아 우리 사회에 만연한 정치적 혐오를 더욱 심하게 부채질하였다는 큰 과오를 남기고 말았다. 시민들이 정치를 혐오하게 만드는 것은 소수의 특권층이 권력을 쥐기 위해 사용한 가장 진부하면서도 확실한 방법이었다.

그러니 어쩌랴. 염증이 나더라도 선거일에 투표를 할 수밖에 없다. 저쪽에서 지난 4년간의 계산서를 온통 복잡하게 만들어 내놓았지만, 밀린 빚을 받는다는 기분으로, 코로나바이러스를 뚫고라도 꾸역꾸역 투표소에 가야겠다. 앞으로의 4년을 위한 투표이기도 하지만, 해가 갈수록 권력의 빈부 차가 더욱 커져만 가는 것 같아, 쥐꼬리 같은 내 몫의 권력이라도 오랜만에 확인해볼 겸 투표하러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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