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 더 높이 세우기 위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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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더 높이 세우기 위한 것
  • 최원영
  • 승인 2020.04.13 0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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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영의 행복산책](102) 아홉 살 소년이 시베리아 벌판에 서 있는 이유

 

풍경 #137. 아홉 살 소년이 시베리아 벌판에 서 있는 이유

김형수 선생의 <긍정의 생각>이란 책에 시베리아 유목민이 아이를 가르치는 방법이 나옵니다. 영하 50도의 시베리아 벌판입니다. 밤입니다. 9살 소년은 오늘 처음으로 늑대로부터 가축을 지키는 임무를 아빠에게서 부여받고 밤을 꼬박 새우며 눈보라와 두려움에 맞서고 있는 겁니다.

험준한 시베리아 유목민들은 아이가 만9세가 되면 혼자 생존하는 법을 이렇게 가르친다고 해요. 늑대와 싸우고, 어둠과 싸우며, 칼날 같은 눈보라와 맞서며, 두려움과 마주하며…. 이 경험을 통해 유목민의 긍지를 자신의 삶으로 받아들여 가는 청년으로 자랍니다. 그들은 언제나 자식의 인생 주변을 맴돌며 저 멀리서 기다리고 있는 불행을 끌어다가 9살 소년 앞에 무릎을 꿇려놓고서 사죄를 받아냅니다. 눈앞의 행복을 가르치는 것은 멀리 있는 불행을 데려다가 먼저 굴복시키는 것임을 알기에 말입니다.

제가 그 소년이라고 상상해 봅니다.

끔찍합니다. 아홉 살밖에 되지 않아서 내가 살아 있는 이유가 ‘유목민 전체를 위해 존재해야 한다’라는 것을 이해하기엔 너무 어린 나이입니다. 응석이나 피울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아홉 살 소년은 홀로 시베리아의 추운 겨울밤, 언제 나타날지 모를 늑대와 홀로 마주해야만 합니다. 마주하는 것뿐만 아니라 늑대가 마을로 내려가는 것을 막아야만 합니다.

얼마나 외롭고 무서웠을까요.

한편 아들을 그렇게 위험한 추운 벌판에 홀로 보낸 부모의 마음은 또 어땠을까도 상상해봅니다. 무척 안쓰러웠을 겁니다. 그래도 전통으로 내려오는 것이라 보내긴 했지만 밤새 한숨도 자지 못했을 겁니다. 아들에게도 부모에게도 잊지 못할 고통입니다.

그러나 그 고통을 견뎌내야만 합니다. 그래야 아들이 살아 있는 동안 자신이 왜 살아 있는지 그 이유를 터득할 수 있을 테니까요. 공동체의 생존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고독과 두려움과 외로움을 물리쳐야만 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엄청난 그 고통을 이겨낼 수 있어야 비로소 공동체에 유익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풍경 #138. 벌레가 된 고치, 나비가 된 고치

정채봉 시인의 <나는 너다>에 나비와 벌레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이는 나비를 보고자 했었네. 고치 하나를 구해 방 윗목에 두고 관찰하고 있었네. 어느 날 아침, 아이는 보았네. 슬며시 벌어진 고치. 그 속에서 꿈틀거리는, 아아 그것은 나비이지 않은가. 나비는 고치 속에서 빠져나오고자 몸부림을 치고 있었네.

아이는 고치 속에서 퍼덕이고 있는 나비가 안타까웠네. 나비를 도와주어서 어서 바깥으로 나오게 하고 싶었네. 아이는 고치에 대고 호호, 따스한 입김을 불어 넣었네. 그러자 나비는 보다 빨리 고치를 헤집고 밖으로 나왔네.

그러나 그것은 성한 나비가 아니었네. 망가진 날개를 가진 벌레에 불과했네. 결국 그 나비는 창공을 한 번도 날지 못하고 한동안 기어 다니다가 죽고 말았네.”

 

맞습니다. 고통을 경험하지 못하면 온실에서 자란 화초처럼 작은 추위나 작은 가뭄에도 쓰러져버리고 맙니다. 사람도 같습니다. 안쓰럽지만 그래서 시베리아 유목민들은 어린 아들을 벌판으로 보내는 건지도 모릅니다.

고치는 꿈이 있었을 겁니다. 아름다운 하늘을 마음껏 누비는 나비가 되는 꿈 말입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딱딱한 껍질을 깨고 나와야 합니다. 그런데 그게 그리 쉽지 않습니다. 너무나 딱딱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좁은 틈을 벌리려고 발버둥 치는 그 고통의 과정이 있어야만 날개에 근육이 만들어집니다. 그렇게 생긴 근육으로 나비는 비로소 하늘을 나는 나비로 부활하는 겁니다.

안쓰럽다고 틈새를 벌려주면 그래서 근육이 생기지 않는다면 나비가 아니라 벌레로 죽어버리는 겁니다. 고통은 말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으로 터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스스로가 반드시 버텨내야만 합니다. 고통이 없는 고치는 벌레가 되지만, 고통을 마주한 고치는 나비가 될 테니까요.

고통은 우리를 쓰러뜨리고 망가뜨리기 위한 악마가 아니라 우리를 더 높이 세우기 위한 천사의 선물이라고 믿습니다. 시베리아의 아홉 살 소년이 겪은 그 두려움과 추위, 그리고 외로움이라는 고통은 소년이 어른이 되어 살아가면서도 그를 지켜주는 힘이 되어줄 겁니다.

코로나19로 인해 모든 국민이 힘들어합니다. 이 아픔에서 벗어나면 이어서 경기회복을 위한 고통이 우리를 또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그러나 영하 50도의 시베리아 벌판에 한밤중에 나가 마을을 지켜야만 했던 소년의 고통처럼, 그리고 나비가 되어 하늘을 훨훨 날아다니고 싶은 나비가 자신의 날개에 근육을 붙이기 위해 처절한 고통을 감내하는 것처럼,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그리고 앞으로 겪게 될 우리의 고통 역시 더 나은 성장을 위한 몸부림이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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