갯가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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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가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면
  • 권근영
  • 승인 2020.04.16 07: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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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림1동 181번지, 수도국산 달동네를 기억하며]
(8) 남숙의 동생, 경수

2020년 새 기획연재 <송림1동 181번지, 수도국산 달동네를 기억하며>는 1954년부터 1998년까지 수도국산 달동네 송림1동 181번지에 살던 정남숙님과 그의 가족들의 구술을 바탕으로 격주 연재합니다. 어린 시절을 송림동에서 보낸 남숙의 손녀 영이가 가족들을 만나 그 시절, 그 이야기를 듣고, 글로 옮깁니다. 어렵고 가난했던 시절, 서로를 의지해 살아가던 가족들의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보려고 합니다.

 

인구는 경수에게 낚시를 배워 인천교와 낙섬, 북성포구, 송도 등에서 낚시를 했다.
인구는 경수에게 낚시를 배워 인천교와 낙섬, 북성포구, 송도 등지에서 낚시를 했다.

1930년대 후반에서 1940년대 초, 남숙이 아주 어렸을 적이다. 남숙네 식구는 월미도에서 살았다. 월미도는 벚나무가 섬 전체를 둘러싸고 화초가 많아서, 봄이 되면 구경 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월미도에서 해수욕하고, 꽃나무도 즐기고, 사슴과 염소 같은 귀한 동물을 보러 외국 사람들이 많이 왔다. 어떤 귀경꾼(구경꾼)은 남숙네 집을 보고 부러워했다. 집 뒤에 벚나무가 두 그루, 집 앞에도 벚나무가 두 그루 있어서, 봄이 되면 벚꽃 투성이였다. 벚꽃에 가려 집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꽃 속에서 사니까 얼마나 좋냐는 부러움이 가득한 말을 들었다. 남숙은 벚나무도 물론 멋있지만, 월미도의 으뜸 자랑은 뭐니 뭐니 해도 우물물이라고 생각했다. 월미도는 사면이 바다라 물이 짤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았다. 월미산에서 내려오는 물이 아주 달고 맛있었다. 월미도를 구경 오는 사람들은 우물에 놓인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 꼭 한 모금씩 시원하게 마시고 떠났다.

해방 후, 월미도에 미군 부대가 들어오고, 남숙은 미군의 옷을 빨아주고 돈을 받았다. 남숙이 꼼꼼하고 야무진 손으로 옷을 깨끗하게 빨래하니, 한 번 옷을 맡긴 미군은 계속 맡겼다. 미군의 옷을 빨아주고 돈을 받는 다른 여자들은 남숙이 꾸준하게 일거리를 받고 돈을 버는 꼴에 배가 아팠다. 왜 너 혼자 일감을 얻고 독차지를 하느냐며 손가락질을 하고 욕을 했다. 남숙은 억울했지만, 꾹 참고 빨래를 했다. 그러다 한 번씩은 뒤집어엎고, 여자들과 한바탕했다. 남숙이 당하고만 있을 성격은 못 되었다. 남숙은 장녀였고, 밑으로 동생이 셋이나 있었다. 남숙은 어떻게든 돈을 벌어야 했다.

남숙이 미군의 옷을 빨아주고 돈을 버는 동안, 셋째 경수와 넷째 인순이는 미군 부대를 들락날락했다. 미군 부대가 집 앞에 있어서 밥만 먹으면 나가서 그 앞에서 뛰어놀더니, 높은 지위의 미군 눈에 들어 이쁨을 받았다. 경수와 인순이는 지프차(지프)를 타고 미군 부대 안에 들어가 신나게 먹고 놀다가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높은 지위의 미군이 집으로 찾아왔다. 미군은 양복 해 입는 옷감 두 필을 가져왔다. 미국에서 보내온 것이라고 했다. 경수에게 남자아이 신사복을, 인순에게 예쁜 원피스를 해 입히고 미국으로 데려가고 싶다고 말했다. 남숙의 엄마는 펄펄 뛰며 절대 안 된다고 했다. 하늘이 두 쪽이 나도 아이를 줄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경수와 인순에게 앞으로는 절대 미군 부대에 얼씬도 하지 말라고 했다. 경수와 인순은 엄마 앞에서는 알았다고 말해놓고 자주 거짓말하며 미군 부대 근처에서 놀았다. 달고 맛있는 사탕과 과자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들을 입안에 가득 넣고 녹여 먹는 사이, 경수와 인순은 미국 말도 제법 잘하게 되었다.

한국전쟁으로 월미도가 난리가 난 통에 가족이 뿔뿔이 흩어졌다가 전쟁 후, 인천으로 다시 돌아오니 월미도 들어가는 길이 막혀있었다. 남숙은 율목동 사촌 언니네 집으로 갔다. 그곳에서 가족들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남동생 경수는 부산까지 피난을 갔다. 그리고 우연히 미군 부대에 들어가 통역 일을 하게 되었고, 인천에 돌아와서도 계속 미군 부대에서 일하고 있었다. 남숙은 초콜릿 먹겠다고 미군 부대 앞에서 놀다가 영어를 익히고, 미군 부대에서 돈을 벌고 있는 경수가 신기하고 기특했다. 그때 경수의 나이가 스물하나였다. 어려서부터 미군을 무서워하지 않던 경수는 미군 부대에서 일하면서 돈도 제법 벌고, 결혼해 아이도 얻게 되었다.

경수는 한가하면 낚시를 하러 갔다. 처음에는 혼자 다니더니, 남숙의 큰 아이 인구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는 데리고 다니기 시작했다. 경수와 인구는 낙섬으로 갔다. 낙섬에 옷을 다 벗어두고 팬티만 입고 갯벌에 들어가 걷기 시작했다. 연안부두 방향으로 한 시간을 걸어 들어가는 거다. 갯벌에는 조개 구멍이 나 있다. 콧구멍처럼 작은 구멍 두 개가 보이는 곳을 파면 상합조개가 나왔다. 조개껍데기가 반짝반짝하고 비단처럼 예뻤다. 갯벌에서 조개도 캐고, 망둥이 미끼로 쓸 갯지렁이도 구했다. 갯지렁이는 갯벌을 푹 파서 뒤집기만 해도 서너 마리씩은 꿈틀거리며 나왔다. 갯지렁이는 쉽게 구할 수 있지만, 물고기가 몇 번 씹으면 금방 흐물흐물해져서 자주 갈아줘야 했다. 때로는 갯지렁이 대신에 민챙이를 구해서 미끼로 쓰기도 했다. 사람 엄지손가락만 한 민챙이는 질겨서 바늘에서 잘 안 빠지고, 계속 사용할 수 있어서 좋았다.

연안부두 쪽으로 갯벌을 한참 걸어갈 때는 고랑을 확인해야 했다. 사리 때는 물이 멀리까지 빠져 멀리 나가서 물고기를 잡을 수 있지만, 물때가 바뀌어 빠졌던 물이 들어오면 순식간에 고랑부터 물이 차기 시작한다. 고랑에 물이 찬 줄 모르고 계속 낚시를 하면 결국은 잡은 고기는 다 버리고, 고랑을 헤엄쳐서 넘어가거나 물속으로 들어가서 걸어 나와야 한다. 어떤 경우든 아주 위험한 순간이다. 낚싯대를 물속에 넣기만 하면 망둥이가 나오니까 더 잡고 싶은 마음에 욕심을 부리면 큰일이 나는 거다.

한 번은 경수가 낚시하다가 인구에게 심부름을 시켰다. 인구는 들어온 갯벌을 되돌아나갔다. 한참 열심히 걸어가고 있는데, 뒤에서 경수가 소리를 지르며 달려왔다. 경수는 인구의 머리를 사정없이 쥐어박으며 어디로 가는 거냐고, 뒤지려고 환장했냐고, 그쪽은 송도 가는 길이라고 말하며 욕을 했다. 들어온 길의 반대쪽이었다. 계속 가다 보면 물이 들어와 죽는 거라고 말했다. 경수는 놀라서 낚싯대도 바다에 집어 던지고 맨손으로 쫓아왔다. 인구도 그날 매우 놀랐다.

경수는 인구에게, 바다에 들어가는 사람은 자기가 출발할 때 뭐가 있는지 잘 봐둬야 한다고 단단히 일렀다. 들어온 길을 되돌아보며 자기 등 뒤에 뭐가 있었는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고 말이다. 바다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면 그 방법밖에 없다고 했다. 눈앞에 망둥이가 잘 잡혀서 신나더라도 늘 뒤를 보고 고랑에 물이 차진 않았는지 확인하며 움직여야 한다고. 낙섬에 벗어두었던 옷을 주워 입으며 경수가 인구에게 말했다.

“오늘 일은 누이한테 말하지 마라. 나 혼난다.” 인구는 삼촌의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갔다.

 

경수에게 낚시를 배운 상규. 종종 인구와 낚시를 하러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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