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아낙들이 궁둥이 실룩대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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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아낙들이 궁둥이 실룩대고 간다
  • 최일화
  • 승인 2020.04.17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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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시단〕 박홍 시집 《나의 옥상 와이너리》를 읽고 - 최일화 / 시인

코로나19가 세계를 꽁꽁 얼어붙게 했다. 언론에 보도되는 그 참상을 어떻게 일일이 나열할 수 있겠는가. 이 엄청난 재앙이 언제 끝날지 지금으로서는 짐작할 수조차 없는 상황이다. 지나친 걱정은 금물이라니 방역본부가 제시하는 개인위생 관리에 철저히 하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날마다 갱신되는 세계의 상황을 지켜보며 감염자 통계에 실로 경악을 금치 못한다. 어서 인류의 지혜가 모아져 이 참극을 극복하고 한층 성숙된 지구촌 건설에 모두 나서게 되기를 바란다. 한국의 경우 비교적 방역망이 잘 구축되고 정부와 국민들의 신뢰와 협력으로 매우 효과적으로 대처하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다.

4.15
총선도 무리 없이 성공적으로 치렀다는 평가와 함께 세계 언론으로부터 부러움 섞인 찬사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언제 대규모로 다시 확산될지, 잠복해 있던 바이러스가 언제 다시 창궐할지 모른다니 백신과 치료제가 개발되기 전까지는 안심할 수 없다. 항상 방역본부가 권하는 생활 방역에 최선을 다하여 코로나 바이러스가 완전히 퇴치될 때까지 긴장을 늦추어선 안 된다.

오늘은 인천 시인의 시 몇 편 함께 읽는다. 노년에 이르러 첫 시집을 냈지만 그 한 권의 시집이 인천의 시문학을 견인할 수 있는 역량을 지닌 시인이다. 2015년에 출간된 박홍 시인의 나의 옥상 와이너리. 어떤 페이지를 펼쳐도 개성이 빛나는 시로 가득하다. 먼저 시 한 편 읽는다.


 

만석부두 가는 길

 

늙은 아낙들이 김장용 새우를 사러 간다

인천역 뒤쪽 수하물 창고 옆으로 우우 몰려간다 쿵쾅쿵쾅 굉음 울리는 고가도로 아래로 시끌시끌 떠들면서 간다 바닥에 깔려 있는 폐기물도 그냥 밟고 간다

오후 3시 물때를 맞춰 늙은 아낙들이 김장용 새우를 사러 간다

끌개를 하나씩 끌고 궁둥이 실룩대고 간다 엉거주춤 허리를 펴지 못한 채 한쪽 팔만 사납게 휘젓고 간다 누구는 짧은 보폭으로 펭귄처럼 뒤뚱대고 간다 무릎관절이 성치 못한지 꽁무니의 아낙은 절뚝거리며 따라간다

썰물이 휑하게 빠져나간 개펄을 끼고 우우 몰려간다 녹슨 닻과 폐타이어와 밧줄과 깡통이 설치미술품처럼 삐죽삐죽 솟은 만석부두 개펄을 끼고 간다 어선은 보이지 않고 다닥다닥 붙은 횟집들만 보인다

대한사료 공장 굴뚝과 제철소 담벼락 사이에서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저 풍경은 인천 동구의 똥구멍이다 폐수에 절은 개펄은 시궁창 색이다

늙은 아낙들이 김장용 새우를 사러 간다

알맹이가 빠져나간 껍질처럼 소리가 요란하다 무릎 연골이 빠져나가고 부끄럼도 빠져나가고 오르가즘도 빠져나가고 만석부두 길바닥 같은 아낙들이 몰려간다

개펄고랑 따라 밀물이 들어오고 새우잡이 배들이 멀리서 종이배처럼 뒤뚱거린다

늙은 아낙들 울림통 소리를 내고 몰려든다

 

만석부두의 풍경이 실감나게 그려져 있다. 처음 이 시를 접하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인천에 이렇게 시를 재미있게 쓰는 분을 여태 내가 모르고 있었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았다. 내가 인천문단에서 활동한 지 30년이 넘었지만 성함도 낯설고 작품도 처음 접하는 시인이어서 경이로운 마음으로 작품을 읽어갔다. 오래 전 한 모임에서 옆 자리에 앉아 식사를 같이 한 적이 있지만 시인의 작품세계는 시집을 받고서야 알게 된 것이다.

 

이 시는 인천의 조그만 부두를 소재로 하고 있다. 서민의 생활상이 무척 활기차고 재미있게 그려져 있다. 인천을 소재로 한 작품집을 낸다면 반드시 수록되어야 할 인천의 대표적인 시 목록에 들어갈 수 있는 작품이다. 그럼 이 시를 어떻게 읽을까. 포스트모더니즘, 낭만주의, 주지주의, 초현실주의 등등 문예사조는 현대에 와서 의미가 없다. 요는 이 시가 어떤 재미가 있느냐 어떻게 미적 감동을 안겨주고 있느냐 혹은 알게 모르게 독자에게 어떤 긍정적인 에너지를 생성시켜 주느냐 하는 것이 관건이다.

 

첫째 이 시는 서민적이다. 첫 구절 김장용 새우를 사러 가는 도입부부터 서민적이다. 나머지 시행 모두 그런 소박한 구조로 짜여 있다. 시각적인 이미지로 현장을 생생하게 눈앞에 재현시켜주고 있다. ‘시끌벅적 떠들면서 바닥에 깔려 있는 폐기물도 그냥 밟고 가는모습, ‘폐타이어와 밧줄과 깡통이 설치미술처럼 삐죽삐죽 솟아 있는모습, ‘궁둥이를 실룩대며 엉거주춤 허리를 펴지 못한 채 한쪽 팔을 사납게 휘저으며 가는모습을 마치 현장 중계라도 하듯 묘사하고 있다.

이 작품에 어떤 사상성이나 한 시대 이념이나 정치에 대한 비판의식은 찾아볼 수 없다. 정형화된 시의 어떤 형식을 찾아볼 수도 없다. 서민들의 애환이 깃든 대도시 한 모퉁이 조그만 포구 풍경을 그림을 그리듯 사실적으로 그려냈을 뿐인데 읽는 이에게 매우 흥겹고 정다운 아날로그적 정서를 환기시키고 있다.

 
 

 

윤회를 꿈꾸다

 

망둥이가 3초 정도만 기억한다는 것은 행운일 수도 있다

그러니까, 그들은 3초마다 미지의 세계로 떠나고 있는 것이다

구질구질하게 갔던 길을 다시 가고

왔던 길을 다시 오는 것이 아니다

호기심 가득한 어린아이가 되어

그 큰 눈을 두리번거리고 있는 것이다

얽인 실타래처럼 풀리지 않는 삶도 삶이지만

싸늘하게 식은 사랑을 확인하고 돌아다니는 나의 그림자가

외포리 바닷가의 전봇대보다 길게 뻗어 있지는 않을 것이다

사랑했던 장소를 찾아 바람처럼 떠돌고 있지도 않을 것이다

아늑하게 녹아내리는 사랑의 입맞춤이 그리워

밤마다 느낌의 주위를 맴도는 불면의 밤도 없을 것이다

마음 속 높은 곳에 수시로 뛰어올라 올라

목 놓아 이름을 부르는 일도 없을 것이다

내가 사랑의 업보를 짊어지고

사랑의 흔적을 찾아 떠돌아다니다가 어느 날

외포리 앞바다에서, 문득

3초 정도만 기억하는 생에 스며든다면

툭 불거진 눈과 커다란 입으로 텀벙거리는 망둥이가 된다면

그건 공평하게 한 번 씩 나눠 가지는

행운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생물학자들이 물고기의 기억력을 실험도 하는 걸까. 낚시 바늘에 혼줄 난 붕어가 3초면 다시 바늘을 문다고 하니 망둥이 역시 그럴 것으로 가정하여 시를 썼을 것이다. 그러나 이 시의 주체는 망둥이가 아니다. 망둥이의 그런 망각 능력을 부러워하는 한 시인의 회한 가득한 생이 그려져 있다. 시인은 3초 정도만 기억하는 망둥이가 행운이라며 망둥이를 부러워하고 있다. 부러워하는 근저엔 자신의 지나간 삶을 되돌아보는 회한이 자리 잡고 있다. 실타래처럼 풀리지 않는 삶과 싸늘하게 식은 사랑에 대한 회한이다. 시인은 70대의 노시인이다. 그가 돌아보는 인생은 가까운 과거의 일이 아닐 것이다. 사오십년 아니 오륙십년 전 일을 회상하며 회한에 젖는다면 그것은 총체적인 삶의 전반에 대한 회한이 되고 가장 울림의 폭이 큰 장염하고 장중한 의미를 내포한 회한이 될 것이다.

바로 사랑이다. 시인은 마치 한 청년이 사랑의 문제에 골몰하듯 사랑을 떠올리고 있다. 짐작컨대 그 사랑은 실패한 사랑일 개연성이 높다. 시가 되고 예술이 되는 사랑은 십중팔구 실패한 사랑이기 때문이다. 성공한 사랑은 일상으로 돌아간 평범한 사랑이지 더 이상 예술의 소재가 되진 못한다. 시인은 외포리 바닷가를 떠돌며 싸늘하게 식은 사랑을 확인하고 있다. 사랑했던 장소를 찾아가고 사랑의 입맞춤을 그리워하고 있다. 불면의 밤을 맴돌며 목 놓아 이름을 부르기도 한다. 그러다가 문득 3초 정도만 기억한다는 망둥이를 떠올리며 망둥이의 생에 스며들기를 염원한다. 사랑의 문제는 젊어서 한때 일과성의 문제가 아니다. 그 사랑이, 비록 실패하여 기억에만 존재하는 사랑이라 해도 그 회한으로 하여 삶의 내면세계를 풍요롭게 하고 이처럼 훌륭한 한 편 시의 소재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사탕수수밭을 가다

 

가령, 내가 사진작가 김익수처럼 뒤뚱대는 비행기를 타고

세계테마기행을 떠난다면

새벽 두 시에 횃불을 들고 집을 나서는 볼리비아 사람들을 따라

맨발로 촉촉하게 젖은 황톳길을 걸어간다면

바람을 등지고 사탕수수밭에 불을 놓고 불길이

들불처럼 번진다면, 산타크루스 근처 사탕수수단지의 밤을 훤히 밝힌다면

뜨거운 열기가 화면 밖으로 훅, 훅 번져 나온다면

아침 햇살 속에

줄기만 앙상한 사탕수수가 아직 연기를 피우고 있는데

인부들이 말없이 연기 속으로 스며든다

내가 그들처럼 사탕수수 밑동을 낫으로 찍으며 검탱이 노동자가 된다면

옮긴 사탕수수를 압착기에 올려놓고 압착기를 돌리면서

검탱이와 땀에 범벅이 된다면

그곳 원주민들처럼 사탕수수 색깔로 피부가 바뀐다면

채널을 돌렸다

마스터스 골프대회에 구름처럼 몰려다니는 갤러리들

또 채널을 돌린다

화면 가득 야구를 구경하는 사람들

다시 돌린다

아직도 사탕수수밭에 눌어붙어 설탕을 만들고 있는 사람들

누런 액체가 땀처럼 흘러내리는 압착기

지구의 아랫도리 같은

 


이 시는 EBS 텔레비전 프로그램 <세계테마기행>을 보면서 그 화면 속 풍경을 스냅사진을 찍듯 언어로 잡아낸 작품이다. 사진작가 김익수가 볼리비아를 찾아가 사탕수수단지 인부들의 일과를 사진에 담듯 가감 없이 언어로 그 풍경을 잡아내고 있다. 그러나 TV화면 속 풍경보다는 시 속의 풍경이 더 감칠맛이 있는 것은 단지 화면을 바라보는 일차원의 풍경이 아니라 두뇌 속에서 마음껏 상상력을 발휘하며 그 상황을 재구성하고 있기 때문에 더 흥미 있고 더 풍요로운 풍경이 생성되는 것이다. 화자는 마치 화가가 화폭에 변화를 추구하듯 TV 채널을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다가 다시 또 사탕수수밭 일꾼들에게로 돌아온다. 마치 지루한 풍경의 구도에 변화를 주어 화폭에 생기를 부여하듯 TV화면에 변화를 주어 단조로움을 해소하는 것 또한 언어의 묘미를 살린 것이라 할 수 있다.

단지 객관적 묘사에 그치지 않고 화자 자신을 여행 당사자인 김익수로 대체하는 상황을 설정함으로써 생동감을 살리고 있다는 점도 특기할만하다.모든 예술이 그렇지만 시도 역시 시인만의 시선이 살아있어야 하고 그 언어나 표현에서 독특한 개성이 반영되어야 신선함을 갖게 된다. 다른 어떤 시인의 시와도 닮은 데가 없다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시인의 덕목을 갖추었다는 것이다. 시에 억지가 들어가면 감동은 실종된다.  또 고도의 은유를 도입한다고 해도 일관되게 흐르는 자연스러운 내적 운율이 있어야 한다. 종종 낯설게 하기를 잘못 이해하고 쓰인 시가 있다. 낯설게 하기가 예술적 장치가 아니라 혼란만 가중시킨다면 재고해볼 일이다. 시인의 시는 일관되게 흐르는 내적 운율이 일품이다.

 

粉紅을 놓치다

개망초 꽃봉오리에 남아 있는 粉紅을 보셨는지요 예비군 사내들이 땀내 푹푹 풍기면서 포복하고 있는 훈련장 둔치에 우우 몰려드는 꽃들 사이에 숨어 있는 粉紅 꽃망울들을 보셨는지요 똑같이 흰색으로 피어나기 싫은 듯 사라지는 粉紅의 끝자락을 붙들고 있는 안간힘을 보셨는지요 촌스런 순정이지요 가장자리로만 살짝 남은 집착이지요 흰색으로 만개하는 개망초꽃의 한살이가 싫은 거지요 그러는 사이에도 粉紅은 시나브로 빠져 나가고 있어요 꿈이 떠나고 남은 흔적처럼 누렇게 바래는 흰색이 싫어서 기를 쓰고 매달리는 거지요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삶의 한 순간을 붙들고 있는 안타까움이겠죠 粉紅은 슬프네요 다른 생을 찾아 헤맨 일탈의 흔적 같네요 예비군 훈련장 둔치에서 개망초꽃들이 하얗게 제식훈련을 받고 있어요

 

나는 이 시를 읽으면서 인터넷으로 개망초꽃 사진을 면밀하게 관찰했다. 개망초꽃은 보통 흰빛인데 어떤 꽃은 꽃봉오리가 분홍이

고 꽃이 피면 흰빛이 되는데 꽃잎 끝부분에 조금씩 분홍이 남아 있다. 개망초꽃과 꽃봉오리가 색깔이 다르고 꽃잎 끝 부분에 희미하게 분홍빛깔이 남아 있는 걸 발견하는 일은 시인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그만큼 시인은 자연 속에 감춰져 있는 섬세한 부분까지 포착해낼 수 있는 것이다.

독자들은 이 시만 보고는 얼른 맥락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꽃봉오리에 남아 있는 분홍, 꽃잎 끝에 희미하게 남아 있는 분홍을 실물이나 사진으로 확인하지 않고는 온전히 이해되지 않는다. 그러나 내용 자체는 난해한 것이 아니라 휴대폰으로 개망초꽃 이미지 검색을 하여 그 실제 모습을 확인하고 나면 시의 비밀은 금세 풀린다. 모호하기만 했던 한 편의 시가 인식 가능한 영역으로 들어올 때 느끼는 희열감, 그것이 시를 읽는 즐거움 중의 하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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