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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규
  • 승인 2011.05.01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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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 나들이 6] 인천 배다리 〈아벨서점〉

헌책방 책꽂이에는 저마다 긴 역사가 담깁니다. 오래도록 책을 꽂아 놓아야 하기 때문에 아무 책꽂이나 함부로 쓰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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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 나들이 7] 인천 배다리 〈아벨서점〉 / 032) 766-9523

 (1) 제물포고등학교와 조흥상회와 골목집

 서울 신촌이라는 곳은 대학교가 여럿 모인 곳이기도 하지만, 사람들이 먹고 마시거나 노는 가게가 잔뜩 모인 곳이기도 합니다. 술집이며 고기집이며 줄줄이 늘어선 골목 한쪽 귀퉁이라 할 만한 자리에 초등학교 한 곳이 울타리를 마주합니다. 이곳 초등학교 아이들은 아침에 학교 가는 길에 밤새 술에 절어 해롱거리는 아저씨나 아주머니를 볼 뿐 아니라, 술에 절어 비틀거리는 이들이 곳곳에 웩웩거린 빈대떡을 밟지 않도록 에돌며 다녀야 합니다. 서울 신촌이라는 데가 처음부터 이렇게 술집과 고기집이 줄줄이 모였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곳에 초등학교가 있다 한다면, 퍽 예전부터 여느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살던 동네라는 뜻이고, 초등학교를 애써 다른 데로 옮기지 않는다 한다면, 이 둘레에서 살아가는 여느 사람이 많다는 뜻이라고 느낍니다.

 인천 동인천이라는 곳은 초·중·고등학교가 많이 모인 곳이기도 하지만, 사람들이 먹고 마시거나 노는 가게 또한 잔뜩 모인 곳이기도 합니다. 이제는 다른 곳으로 옮겼지만 역사가 오래되었다는 축현초등학교가 술집이며 고기집이며 줄줄이 늘어선 골목 한쪽 모퉁이라 할 만한 자리에 울타리를 마주했지요. 축현초등학교 오래된 건물은 말 그대로 오래되었다 해서 하루아침에 싹 허물었습니다. 금세 새 건물을 올렸습니다. 그런데 새 건물을 올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학교를 송두리째 옮겼습니다. 그러고 나서 이웃한 인천여고도 꽤 묵은 건물을 내버린 채 다른 동네로 옮겼습니다. 이곳에 초등학교가 있다 했다면, 또 여러 학교들이 있다 한다면, 이 둘레에서 살아가는 여느 사람이 많다는 뜻이라고 느낍니다. 차츰 사람들 숫자가 줄어든다 하지만, 이 둘레 동네인 내동·전동·신포동·송학동·인현동·경동·용동·사동·신흥동·답동·율목동·신생동·화평동·송현동 들에 사람이 안 살지 않습니다. 학교를 파 옮긴다 할 때에는 ‘예부터 익히 살아온 사람들’을 ‘없는 사람’으로 보듯 한다는 뜻입니다.

 학교에 학생 숫자가 줄어드는데 학교를 어찌 건사하느냐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도시에서 줄어든다는 학생 숫자란 얼마나 적을까요. 나는 생각합니다. 학교마다 학생 숫자가 줄어든다면, 학교 우두머리나 교육행정가로서 몹시 반겨야 하지 않겠느냐고. 학생 숫자가 줄어 한 반에 열다섯이나 스물 아이쯤만 남는다면, 담임교사이며 과목교사이며 더 알차게 공부를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아이마다 더 마음을 쏟아 사랑과 믿음으로 가르치거나 배울 수 있으리라고.

 새로 아파트를 잔뜩 올려세운 동네에서는 새 학교를 세우면 됩니다. 옛도심이 된다는 동네에서는 작은 학교 작은 학급으로 꾸리면서 한결 깊고 알찬 배움터로 다스리면 됩니다. 왜 모든 학교가 수십 학급 수천 학생이 바글거리도록 해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한 학년에 두서너 학년에 한 학급에 스무 아이라 해도 좋을 뿐 아니라, 이렇게 작은 학교가 되도록 하면서, 교실이 빈다면 비는 교실은 넉넉한 도서관으로 삼거나 또다른 시설로 돌보면 돼요. 어머니 학교를 마련한다든지, 마을 어린이집으로 꾸린다든지, 장애 어린이가 함께 배우는 학급을 연다든지, 마을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글을 가르치거나 마을 할머니 할아버지한테서 옛이야기를 듣는 교실을 이끌 수 있습니다. 학교 공방을 차릴 수 있고, 실내놀이터를 꾸밀 수 있어요.

 생각하는 힘이 있을 때에 빈 교실이나 빈 집을 예쁘게 돌봅니다. 옛도심이라 하는 데에서 살아가는 골목동네 작은 이웃들은 ‘재개발을 한다며 헐어 돌무더기만 잔뜩 남은 빈터’가 있으면, 이 빈터 돌을 금세 골라내어 조그맣게 텃밭을 일굽니다. 재개발로 새 집을 올리기 앞서까지 예쁘게 텃밭을 일궈요. 텃밭 가장자리에는 여러 가지 꽃을 심습니다. 굳이 꽃을 안 심어도 들꽃 씨앗이 바람결에 날리며 온갖 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집니다.

 인천 중구와 동구 언저리에 오래도록 뿌리내리며 남은 학교들을 송도니 어디니 옮기려 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퍽 궁금합니다. 학교를 왜 옮겨야 할까요. 새로 마련한 도심지라면 새로운 학교를 세워야지, 왜 ‘사람들이 버젓이 살아가는 동네 한복판에 있는 학교’를 빼앗으려고 할까요. 새로운 도심이 좋으면 새로운 도심에 이것도 짓고 저것도 지으면서 살 노릇입니다. 가난한 살림이든 가멸찬 살림이든 예전 도심에서 오래도록 뿌리내리며 살아가는 사람은 이들대로 예전 도심을 예쁘며 알차게 돌보며 살아가면 될 노릇입니다.

 어쩌면, 축현초등학교 오래된 건물을 허물 때부터 인천시는 문화행정이 젬병이었는지 모릅니다. 청소년문화회관은 흙운동장을 메워 시멘트바닥으로 만들면서 새 건물을 짓는다고 청소년문화회관이 되지 않습니다. 동구청은 조흥상회 옛 건물 하나 사들일 돈이 없다 하고, 인천시는 마을사람 살림자락이나 살내음 묻어난 터전이나 보금자리를 고이 건사할 마음이 없다 합니다.

 두 다리로 천천히 거닐 수 있을 뿐인 골목 한켠 텃밭이나 꽃밭 자리에, 또 꽃그릇으로 꾸민 골목 담벼락 한켠에, 해마다 봄부터 겨울까지 백 가지가 넘는 꽃이 피고 집니다. 꽃 가짓수가 백 가지뿐이겠습니까만, 사람들은 사람 숫자대로 다 다르며 어여쁜 삶이고, 골목꽃은 수많은 꽃 가짓수대로 다 다르면서 아리따운 목숨입니다. 사람은 성적표나 돈주머니로 잴 수 없습니다. 꽃이나 나무는 꽃크기나 열매크기로 따질 수 없습니다.

흙바닥 하나 없지만, 흙내음을 나누려는 골목사람들이 꽃그릇에 꽃씨를 심어 예쁜 삶을 나눕니다. 인천은 이런 도시입니다.
 (2) 배다리 헌책방거리 〈아벨서점〉 책시렁

 인천 배다리 헌책방거리 마실을 합니다. 인천 배다리는 일찍부터 헌책방거리입니다. 둘레에 다른 저잣거리가 있고 요즈음은 문구 도매상이 많이 들어섰지만, 이러거나 저러거나 인천사람한테 배다리는 ‘배다리 헌책방거리’입니다.

 청주는 중앙로에 헌책방이 세 군데 남았을 뿐이지만, 세 군데 작은 헌책방으로도 ‘중앙로 헌책방거리’입니다. 전주는 홍지서림 앞거리에 헌책방이 너덧 군데 남았을 뿐이어도, 너덧 군데 헌책방으로도 ‘홍지서림 헌책방거리’예요. 대전은 ‘원동 헌책방거리’입니다.

 헌책방으로 참고서나 자습서를 사러 찾아가는 발걸음이 아직까지 꽤 많습니다만, 예나 이제나 참고서나 자습서만 다루는 헌책방이란 없습니다. 헌책방에는 사람이 사람으로 살아가며 읽을 책을 갖춥니다.

 다만, 헌책방이든 새책방이든 책을 팔아 살림을 꾸려야 하는 만큼, ‘사람들이 찾는 책’을 많이 갖출밖에 없습니다. 사람들 스스로 ‘인문책’이라 할 만한 책보다는 ‘처세책’이라 할 만한 참고서붙이를 더 많이 찾기 때문에 교보문고 같은 큰 책방에서도 참고서붙이 자리가 대단히 넓습니다. 사람들 스스로 내 삶을 북돋울 아름다운 인문책을 더 바란다면, 교보문고부터 책꽂이 짜임새가 확 바뀌겠지요. 헌책방 책시렁 또한 사람들 손길과 눈길이 어떻게 달라지는가에 따라 책시렁 매무새가 사뭇 달라질 테고요.

 배다리 헌책방거리 〈아벨서점〉도 예전에는 참고서붙이가 꽤 넓게 차지했지만, 해가 갈수록 참고서붙이 자리보다 다른 책 꽂는 자리가 늘어납니다. ‘시다락방’ 자리 1층에는 사진책과 건축·그림책하고 문학책으로만 가득 꽂힙니다. 〈아벨서점〉 셈대 안쪽 어린이책 자리는 퍽 시원하게 트입니다. 헌책방을 일구는 일꾼들이 틈틈이 책꽂이를 새로 짜고 옮기면서 하루하루 새 모습으로 선보입니다. 참고서붙이만 바라본다든지 어쩌다 한 번 들르는 사람들은 책시렁이며 책시렁에 꽂힌 책이 어떻게 거듭나는지를 못 느끼리라 생각합니다.

 가방을 내려놓고 책을 휘 둘러봅니다.

 ‘청소년을 위한 노래모음’이라는 이름이 붙는 《푸른나무 이야기모임 엮음-황금구슬과 종이비행기》(푸른나무,1989)라는 책을 봅니다. 1980년대 끝무렵 민중노래를 조금 싣고, 여느 대중노래 가운데 청소년과 즐기면 좋겠다 싶은 노래를 살짝 담습니다. 손으로 그린 악보에 활자로 찍은 책입니다. 문득 생각합니다. 오늘 2011년 푸름이를 헤아리며 이러한 노래책 하나 만들어 나누려는 어른은 얼마나 있으려나요. 아이들하고 노래책 하나 살가이 나누려는 어른은 얼마나 되려나요. 초등학생 때에는 동요로 끝이고, 중학생부터는 대중노래만 들으면 되는가요.

 《만화창작》(만화창작사)이라는 만화잡지 1호(1999.10.)를 봅니다. 이런 만화잡지가 다 있었다고 이제서야 알아봅니다. 첫호에서는 〈옛날만화가 엄청난 값에 팔리고 있다〉 같은 글이 보입니다. 이 글을 읽으니 “취재 도중 만난 한 양심적인 만화 전문 수집상은 ‘현대 수집상들이 주장하는 소장 만화나 권수, 가격은 대부분 뻥튀기로 부풀려져 있거나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일반인들에 의해 과대포장되고 있다’고 시인했다. 또 뒤늦게 만화수집에 나선 일부 브로커들에 의해 옛날만화의 가격이 턱없이 높게 책정되는 투기현상에도 우려를 표시했다(40쪽)”는 대목이 있습니다. 《만화창작》이 처음 나오던 때에도 그러했다지만, 요즈음이라 해서 그리 나아졌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외려 더 깊어진다고 느낍니다. 사람들은 책을 책으로 여기며 찾아나서지 않습니다. 물건으로 다루고 상품으로 여깁니다. 돈으로 사들여서 웃돈 붙여 팔아치우려고 생각합니다.

 헌책방에서든 새책방에서든 책을 사서 읽어야 할 텐데, 책이 아니라 ‘돈 될 만한 물건’을 헤아립니다. 처세와 경제를 다룬다는 책이란 책이 아니라 ‘돈굴리기’일 뿐이나, 이런 처세와 경제 다룬 책을 읽으면서 마치 스스로 ‘책읽기’를 하는 줄 여깁니다.

 창간 기념 토론회라면서 〈한국만화, 이대로는 안 된다〉라는 이름으로 이두호·이현세·원수연·강성수 네 만화쟁이가 모여서 나눈 이야기가 실립니다. 만화잡지가 아니고서는 만화쟁이가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란 거의 없겠지요. 네 사람 말마디에서 한 대목씩 옮겨적어 봅니다.

[강성수] 저는 지금 부정적 시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림부터 모조리 일본화되어 있고, 국적이 없어져 가고 있어요. 이미지마저 차용하고 있습니다. 이것저것 잡종으로 변하는 듯하면서도 크로스오버하기도 하고 말입니다. 정작 그네(젊은 작가)들이 부족한 건 탄탄한 시나리오인데, 이 부분을 보강하려는 생각은 별로 없이 캐릭터만 구축하려 한다는 느낌이 들거든요.
[원수연] 만화작가들은 출판만화를 ‘만화산업의 중심’으로 여기고 있는데, 아직도 만화와 에니메이션을 구분 못하는 독자들이 많아요.
[이현세] 근본적으로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인식에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공무원들도 만화보다는 에니메이션에 투자하는 것이 가시적인 효과가 있다고 생각하고, 이건 그 사람들이 스스로 밝힌 건데, 만화영화라는 단어보다 애니메이션이라는 용어를 더 선호하고 있어요. 뭐냐하면 만화라는 것 자체에 대해 비하하고 싶은 감정은 그대로 가지고 있다는 거죠.
[이두호] 아직 (만화학과) 4년제 대학의 졸업생은 배출이 안 됐어요. 그러나 졸업생이 쏟아지는 내년부터는 문제가 크게 불거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회화나 순수예술 계통의 학과는 졸업 후 진출에 그리 큰 걱정을 않습니다만. 제가 강단에 서고 있지만, 졸업생 진로 같은 문제는 아직 생각 못하고 있습니다.

 《지젤 프로인트/성완경 옮김-사진과 사회》(눈빛,1998)를 들여다봅니다. 《사진과 사회》가 한국말로 나온 지는 꽤 되었습니다. 사진으로 읽는 사회라 할 만하고, 사회를 보는 사진이라 할 수 있는데, 이제 한국땅에서도 한국사람 나름대로 한국사진으로 한국사회를 읽는 이야기가 태어날 만하지 않으랴 싶습니다.

.. 사진에 관한 특수한 법칙을 인식하는 것이 문제다. 빛 자체를 형태의 창조자로 보아야만 한다 … 사진 덕택에 인류는 새로운 눈으로 그의 존재와 환경을 알아볼 수 있는 힘을 획득했다. 진정한 사진가는 커다란 사회적 책임을 지고 있다. 그는 자신이 택할 수 있는 기술적 방법을 택해 작업해야 한다. 그 작업은 왜곡과 변경이 없는 일상사의 정확한 복사이다. 사진의 가치가 단순히 미적 관점에서만 측정되어서는 안 되며 그가 표현하는 시각의 사회적·인간적 강도에 의해 측정되어야 할 것이다. 사진은 단지 현실을 발견하는 수단이 아니다. 카메라를 통해 보는 자연은 인간의 눈으로 본 자연과 다르다 … 오늘날 수천의 화가가 있다. 역사상 수많은 걸작들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기죽어 있지 않다. 그들은 새로운 형태들을 창조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들은 옳다. 수천의 직업사진가들이 있고 그들 중의 많은 수가 새로운 길을 찾으려 애쓰고 있다. 그들 또한 옳다 ..  (210, 211, 213쪽)

 새로운 사람들은 새로운 삶을 일구고 새로운 이야기를 빚습니다. 새로운 나날을 맞이하며 새로운 사랑을 꽃피웁니다. 새로운 꿈을 키우고 새로운 길을 걷습니다. 새로운 책을 읽고 새로운 글을 씁니다.

 손바닥책 《딘 헬러,데이빗 헬러/양흥모 옮김-베를린장벽》(탐구당,1964)을 봅니다. 남녘과 북녘이 앞으로도 오래오래 갈린다면 ‘남북 군사분계선’ 이야기가 자꾸자꾸 나오리라 생각합니다.

 《문여송-주역은 못난이》(미소출판국,1979)라는 수필책을 들여다봅니다. 문여송 님은 영화감독이라고 하는군요. 영화감독으로 일하는 분이 어떤 수필을 쓰는가 궁금하기도 하지만, 이보다 ‘아이를 키우는 어버이’로서 쓴 글에 눈길이 멎습니다.

 수필이라면 이렇게 내 둘레 ‘가장 가깝거나 사랑스러운 곳’을 밝히는 글일 때에 더없이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시일 때에도, 소설일 때에도, 연극일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책일 때에도, 사진일 때에도, 만화일 때에도 매한가지라고 느껴요. 멀디먼 나라에서만 찾을 이야기가 아니라, 내 곁에서 내 마음에서 길어올릴 고운 이야기라면 넉넉하리라 생각해요.

.. 엄마의 젖꼭지를 만진 것보다는 외할머니가 밤잠을 안 자면서 생선과 고기와 야채를 갈아서 만들어 준 죽을 먹고 자란 녀석들이고 보면 당연하겠지만 애비의 권위보다 외할머니의 사랑을 더 소중히 여기는 녀석들을 이러쿵저러쿵 따질 생각조차 버린 지도 이미 오래다. 이토록 나에게는 불만이 많고, 남편이며 애비로서는 정말 무능한데도, 남들이 우리 집을 보기에는 행복하고 부러운 가정이라고 한다 … 그러나 행복은 내가 행복하다고 느꼈을 때 행복한 게 아닐까 … 셋째는, 부엌을 나에게 개방시켜 주지 않기 때문이다. 제발 내가 자유스럽게 부엌을 드나들고, 맛있는 음식, 마음대로 만들어 먹게끔 해 주었으면 하는 게 나의 소원이기도 하다. 가령 실수해서 그릇을 깨뜨렸으면 어떤가. 양념간장을 쏟았으면 어떤가. 다 내가 벌어 온 것일 텐데. 내 딸도 자라서 시집을 갈 거다. 단언을 해선 안 되지만 나는 훗날 딸집에 가서 사위한테 신세는 안 질 거다. 그러나 내가 이 세상에 없어서 아내 혼자 남았을 때 아내가 의지할 곳은 딸이라고 생각된다. 아내도 보나마나 자기의 어머니 닮아서 사위집을 손아귀에 넣을 게 아닐까. 바로 그때를 나는 염려하고 있다. 사위가 바로 날 닮아서 자기의 장모에게 불만과 불평을 가질까 봐서다 ..  (10∼11쪽)

 《육명심-세계사진가론 1900-1960》(열화당,1987)과 《이양지-나비타령》(삼신각,1989)을 골라듭니다. 재일조선인으로 문학길을 걸었던 이양지 님 책을 하나하나 그러모읍니다. 아직 사 놓기만 하고 펼치지는 못합니다. 어느 책은 책방에 선 채로 다 읽은 뒤 장만하고, 어느 책은 신나게 장만해 놓으면서 제때 못 읽습니다. 그렇지만, 제때란 늘 책을 사는 때이지는 않겠지요. 한두 해가 지난 뒤이든 열 해나 스무 해가 지난 뒤가 제때일 수 있어요. 나중에 읽으려고 미리 사 두는 책도 많으니까요. 시골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도시로 책방마실 나오기는 힘들기 때문에, 앞으로 두고두고 읽을 책을 요모조모 눈에 뜨이는 대로 장만합니다.

 (3) 책·삶·말이 걸어가는 길

 《20세기민중생활사연구단-어제와 오늘》(현실문화연구,2004)이라는 책을 쥡니다. 책장을 넘깁니다. 책에 실린 사진이 내 눈길을 그닥 사로잡지 못합니다.

 이런 사진들은 늘 흑백으로 찍기 일쑤인데다가 ‘사람들 살림살이’를 제대로 짚지 못합니다. 사진을 찍어도 ‘얼굴사진’으로 그치고, ‘삶을 보여주는 사진’이나 ‘보금자리를 밝히는 사진’으로는 나아가지 못합니다. 아마 빛깔사진으로 담았어도 내 눈길을 조금도 사로잡지 못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처음부터 흑백이냐 빛깔이냐 하는 테두리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 삶을 어떠한 눈매와 가슴으로 담아내느냐 하는 테두리이기 때문입니다.

 《제리 율스만,커크 커크패트릭/이복희,박종우 옮김-사진기술개론》(해뜸,1987)이라는 책을 집어듭니다. ‘책 감수’를 맡았다는 김영수 님은 머리말에서 “현대 사회에서 사진을 찍을 줄 안다는 것은 글씨 쓸 줄 알고 노래 부를 줄 안다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국문과 졸업생에게 글쓰는 방법을 배우기 위하여 몇 년 동안 대학을 다닐 가치가 있었나요, 또는 음대생에게 노래 잘 부르려고 그 많은 시간을 소비했나요라고 묻는 사람은 무식하다는 소리를 듣는 것과 같이, 사진 교육에 대한 이야기도 마찬가지이다” 하고 말합니다. 덧붙여 “나 또한 학교에서 준비해 준 지식들을 습득하기 위하여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였었다” 하고 말합니다. 참말, 대학교가 사진을 가르쳐 줄 수 있는 듯 잘못 아는 셈인데, 대학교는 사진을 가르치지 못합니다. 《사진기술개론》 또한 사진을 가르쳐 주는 책이 아니에요. 이 책을 쓴 제이 율스만 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 이 책의 목적은 단지 사진의 기본적 기술을 안내하는 것으로, 개인의 재능과 상상력은 그 속에서 스스로가 보다 향상시켜야 될 것이다. 그것이 또한 그래픽미디어에 관심과 흥미를 가짐으로써 도움을 기대할 수 있다. 진지한 사진가가 되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의 작품을 통해서 더 많은 것을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로부터 디자인의 기본과 공간의 사용법, 컬러의 의미를 배우게 되고, 더 나아가 영감까지 얻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  (18쪽)



 대학교는 그저 ‘밑기술’을 알려주는 곳입니다. 밑기술을 다룬 책이 어디에 있는지 알리고, 밑기술을 익히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이끄는 곳입니다. 《사진기술개론》 또한 이러한 밑기술 일러주기에서 그칩니다. 왜냐하면, 사진을 하고 싶은 이들한테는 아무것도 가르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나 스스로 살피고 나 스스로 깨우치며 나 스스로 생각해야 비로소 할 수 있는 사진입니다. 내가 찍는 사진이니까 내가 스스로 가르치며 배우고, 내가 쓰는 글이기에 내가 스스로 가르치며 배웁니다. 누가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다만, 둘레에서 일깨워 줄 수 있습니다. 건드려 줄 수 있어요. 그러나 ‘가르치지’는 못합니다. 왜냐하면 가르침이란 삶이거든요.

 《로저 힉스,프란시스 슐츠/정영혁 옮김-란제리 사진》(시공사,2000) 같은 책은 그야말로 기술책입니다. 속옷을 입은 여자 모델을 사진으로 찍을 때에 불빛을 어떻게 마련하고 비춤거울을 어디에 몇 놓아야 하는가를 알려주는 기술책입니다. 이 책은 어떠한 장비를 갖추어 어떻게 손질해야 하는가를 알려줍니다. 그러나 여자 모델이든 남자 모델이든 또 사진기이든 어떤 속옷이든, 또는 겉옷이든 알몸이든 어떻게 무엇을 찍어야 하는가는 나 스스로 찾아야 합니다. 기술책을 읽는 까닭은 기술은 나 스스로 깨달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브라이언 피터슨/김문호 옮김-뛰어난 인물사진의 모든 것》(청어람미디어,2007) 같은 사진책도 기술책입니다. 사람사진을 뛰어나게 보이도록 찍자는 책이 아닙니다. 나 스스로 내 사진을 어떻게 껴안아 나 스스로 내 사진을 얼마나 사랑해야 좋을까를 밝히는 책입니다. 나 스스로 내가 마주하는 사람을 얼마나 사랑하거나 아끼며 껴안을 줄 아느냐에 따라 내 사람사진이 달라집니다.

 그러니까, 이러거나 저러거나 스스로 깨달아야 하는 사진입니다. 누가 깨우쳐 주지 않습니다. 살짝 건드려 주기만 합니다. 글을 쓸 때이든 노래를 부를 때이든 똑같습니다. 지식으로는 글을 못 쓰고, 지식으로는 노래를 못 부릅니다. 내 삶으로 쓰는 글이요, 내 삶으로 부르는 노래입니다.

 《김태준/박희병 교주-증보조선소설사》(한길사,1990)는 1933년에 처음 나오고 1939년에 고쳐쓴 책을 요즈음 말에 맞게 손질해서 다시 내놓은 책입니다. 어렵사리 되살린 책이니 양장도 하고 책값도 꽤 세게 매길 만합니다. 그렇지만, 어렵사리 되살리는 책인 만큼, 이러한 책들을 자그마하면서 값싼 판으로 엮어, 오래도록 사랑받을 수 있도록 마음을 기울이면 얼마나 고마우랴 싶습니다. 인쇄와 제본에 들이는 돈은 크게 줄여서 ‘되살리는 책들’을 꾸준히 작게 내놓는다면 한국땅 책마을은 차츰 넉넉해지리라 봅니다.

.. 이와 같이 자유스럽지 못한 경로를 밟아 온 조선소설은 척토에 자라난 풀뿌리와 같이 완전한 발육을 하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대풍 같이 불어오는 중국 대륙의 고도 문명을 무비판적으로 수입하는 동시에 그의 문예를 모방하며 그의 생활을 동경하게 한 형세를 지어 조선 문예의 기형적 진보를 이루고, 이에 따라서 모든 문제를 만들었다 ..  (19쪽)

 굳이 《증보조선소설사》를 들추지 않더라도 지난날 글쟁이들은 중국을 섬기며 글을 썼습니다. 애써 오늘날 영어 미친바람 얘기를 꺼내지 않더라도 오늘날 글쟁이들은 미국을 섬기며 글을 씁니다.

 오늘날 글쟁이 아닌 여느 어버이들은 두서너 살밖에 안 된 아이들한테 영어를 가르치느라 땀을 쏟습니다. 영어 그림책을 잔뜩 장만하고, 영어 교재를 잔뜩 쥐어 주며, 영어 비디오를 끝없이 틀어댑니다. 어린이집이든 보육원이든 유치원이든, 아이들한테 영어를 가르칩니다.

 영어를 일찍부터 가르친다지만, 막상 무엇으로 영어를 가르치고 왜 영어를 가르치는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영어로 된 어떤 훌륭한 그림책이나 문학책을 아이들한테 읽히는지 알쏭달쏭합니다. 훌륭한 그림책에는 어떤 넋이 담길까요. 훌륭하다는 그림책이나 문학책을 천 권이나 만 권쯤 읽으면 훌륭한 사람이 될까요. 훌륭하다는 책을 열 권이나 한 권쯤 읽으면 멍청한 사람으로 나뒹굴까요.

 옛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 나라에서 책이 걷는 길이란 무엇일까 궁금합니다. 이 나라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어떤 삶길을 걷고 어떤 말길을 가다듬는지 궁금합니다. 우리가 걷는 길이란 사랑길이 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우리가 걸을 길이란 오로지 돈길뿐인지 궁금합니다.

.. 문예라는 것은 어떠한 설화적 소재를 예술적으로 문자상 표현을 한 것이니 표현 이전에 문예가 성립하지 못함과 같이 표현에 사용하는 문학적 규약이 없이는 더구나 국민의 사상 감정을 표현하는 유일한 도구인 국어를 떠나서는 도저히 국민문학이니 향토예술이니 하는 것이 완성될 수 없다. 그러므로 정말 조선문학은 한글 창정 후로부터 출발하였다고 함이 가하다 ..  (63쪽)

 옆지기가 좋아할 만한 뜨개책을 몇 가지 고릅니다. 이웃 헌책방에서 장만한 책을 가방에서 꺼냅니다. 시골집으로 이 책들을 택배로 부쳐 주십사 하고 말씀을 여쭙니다. 낑낑거리며 짊어지자면 짊어질 수 있을 테지만, 무거운 책짐은 택배로 맡깁니다. 책을 빼내어 홀쪽해진 가방에는 집식구 먹일 밥거리로 채울 생각입니다. 마침, 배다리 헌책방거리 한켠에 유기농 먹을거리를 파는 〈작은가게〉가 문을 열었거든요. 책값을 셈한 다음 슬슬 걸어서 책쉼터 〈나비날다〉로 갑니다. 〈작은가게〉는 〈나비날다〉 일꾼이 함께 꾸립니다.

 날이 조금 더 따뜻해지면 시골집에서도 봄나물이며 새봄 잎사귀이며 신나게 뜯습니다. 이제 텃밭에 거름을 내고 씨앗을 심어 집 앞에서 푸성귀를 얻어야지요. 멧자락 살림집에서는 마련할 수 없는 멸치라든지 청국장이라든지 비누라든지 초콜릿이라든지 볶은땅콩이라든지 고릅니다. 예전에 배다리에서 살아가던 때에도 〈작은가게〉 같은 곳이 있었으면 좋았으련만 하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요즈음 시골에서 살며 때때로 헌책방마실을 나올 때에 이렇게 가방에 여러 먹을거리와 착한 물건을 차곡차곡 담을 수 있는 일도 반갑습니다. ‘헌책방거리’ 한켠 ‘유기농 물건 가게’는 퍽 잘 어울립니다.

 책을 되살리면서 마음을 되살립니다. 몸을 살찌우면서 생각을 살찌웁니다. 책 하나에 오래도록 묵는 빛줄기를 보듬으며 내 마음밭 사랑이 무엇인가를 돌아봅니다. 먹을거리와 살림살이 건사하는 꾸덕살을 쓰다듬으며 내가 걸어갈 삶길이란 어디에 어떤 모양으로 있는지 돌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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