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구 오류동, 온수동의 경인로(京仁路)
상태바
구로구 오류동, 온수동의 경인로(京仁路)
  • 이권형
  • 승인 2020.04.27 09: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청년칼럼] 이권형 / 음악가
구로구 온수동 경인로. 제물포와 한양을 잇는 중간 지점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인 경인선이 가설된 1899년보다 먼저 이곳을 통과하는 자동차 길이 개설됐다.(사진=디지털구로구문화대전)

- ‘오류골’ 인천 개항지와 한양의 경계

지난해 11월 구로구 오류동으로 이사 온 게 벌써 반년이 넘었다. 한번은 옆 동네 온수동에 갔다가 그 동네 도로명 이정표가 눈에 띄었다. ‘경인로’라고 쓰여있는 파란 도로명 간판이었다. ‘경인로’라는 지명을 처음 본 건 아니었는데 그 날 유독 그 간판이 눈에 띄었다.

‘경인로(京仁路)’ 그 이름 그대로 뜯어보면, 서울과 인천을 오가는 길. 그중에서도 앞서 언급한 도로명 ‘경인로’, 정확히 말해 ‘46번 국도’의 경우 숭의로터리로부터 시작해 여의도 교차로까지 이어진다.

제물포가 개항 이후 문물의 관문이었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오류동의 지명은 옛 ‘오류골’에서 찾을 수 있다. 제물포와 한양 사이를 오가며 쉬어가던 곳이라 한다. 경인간(京仁間), 그러니까 한양의 서쪽 끝, 인천 개항지역의 시작 지점(현재 온수역 부근)에 형성된 숙박 시설과 주막거리가 성행했던 ‘오류골’에는 현재 ‘주막거리 객사비’만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서울과 제물포의 중간 지점으로 청일전쟁 이전에는 청국 사신이나 고위 관리가 쉬어가던 객사였으며, 이 근처에 주막거리가 형성되어 있었던 자리임.’

오류동으로의 이사는 강남으로의 출퇴근 길, 인천과의 교통을 모두 고려한 선택이었다. 여기에서 ‘인천’이라 함은 주로 도화동 본가과 주안의 음악 작업실이 위치한 1호선 라인이다. 실제로 이사 후 본가엔 더 많이 들르게 됐으며, 작업도 더 자주 하게 됐다. 서울 도심을 왕래하기에도 나쁘지 않아서 교통 조건만큼은 꽤 만족스럽다. 알고 이사한 건 아닌데, 하여간 역사적으로도 오류동이 서울과 인천을 왕래하기엔 최적의 입지였던 셈이다.

 

- 서울로 오가는 길, 일상이 오가는 길

경인로, 46번 국도는 개항 이후 제물포와 서울 사이를 왕래하기 위해 형성된 길의 현재 모습이라고 봐도 무리가 없다. 인천에서 서울로, 목적지를 향해 최대한 빨리 가기 위해 생겨난 길이다.

인천에서 수도권 1호선 지하철을 타고 서울로 가려면 온수역을 거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특별한 계기가 있지 않은 이상 지하철에서 내려 온수 지역을 직접 가볼 일은 잘 없다. 급행을 타고 도심을 향해 곧장 달리는 게 보통이다.

급행이 정차하지 않는 온수역이나, 오류동역을 지날 때 저기엔 뭐가 있을까 하고 궁금하긴 했었다. 내가 유독 온수에 처음 방문한 그 날 경인로라는 지명에 신경이 사로잡혔던 건, 익숙한 듯하지만 사실 그냥 지나치기만 했던 온수라는 지역에 대한, 익숙함과 생경함이 뒤섞인 인상 때문이었다.

오류 지역의 역사적 이야기들을 알게 된 것도 그날 이후 경인로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기 때문인데, 그때 개인적으로 신기한 사실을 하나 발견했었다. 경인로가 인천 도화동 본가에서부터 오류동까지도 연결돼 있더라는 거다. 처음 와보지만 익숙한 곳, 그 묘한 느낌의 실체를 잡은 느낌이었다.

같은 인천에 살아도 마음의 거리는 서울보다 먼 경우가 많다. 그건 생각해보면 경인로는 오랫동안 인천에서부터 서울을 향하는 관문 역할을 해온 셈이지만, 인천이라는 도시는 그동안 위아래로 길쭉하게 팽창했으므로, ‘서울로 오가는 길’이라는 역사적 정체성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차라리 인천 지역 간의 유사성보다 인천-경기-서울을 거치며 동서 방향으로 이어지는, 경인로를 따라 형성된 지역 간의 문화적 유사성이 더 깊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서울이라는 거대한 중심을 두고, 인천 내에서는 문화적/지리적인 이유로, 경인로 라인 지역 간에는 행정적인 이유로 그들 각각의 문화와 일상은 단절되어 가는 건지도 모른다.

“오류골 주막거리는/ 제물포 가는 길목/ 한 잔 술에 쉬어가는 나그네길/ 정선옹주 내력 서린/ 수궁동길 더듬어가니/ 그 영화 어디 가고/ 궁궐터 호수가엔/ 태공만이 한가롭다.”

1995년 구로의 향토 역사가 김정진의 기행시 ‘오골개(梧高開) 여운(餘韻)’의 구절이다.

25년 전 구절이 마음에 남는다는 건 ‘서울로 오가는 길’이라는 오래된 정체성으로부터 비롯되는 도시 역학이 여전히 우리의 일상 속 영화를 보장해주진 못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우리의 도시에 일상을 정말로 풍요롭게 이어줄 새로운 길이 필요한 건 아닐까 생각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