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한 밤과 무서운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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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한 밤과 무서운 시선
  • 김선
  • 승인 2020.04.28 07: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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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당과 고전읽기 도전하기]
(2)이방인- ⑮영감의 상실감과 레몽의 불안감

인천in이 송도국제도시에 있는 복합문화공간 서유당과 함께 어렵게만 느껴지던 동·서양의 고전 읽기에 도전합니다. ‘서유당의 고전읽기모임인 하이델베르크모임Jacob 김선(춤추는 철학자), 김현(사회복지사), 최윤지(도서편집자), 서정혜(의류디자이너), 소순길(목사), 이광남(칼럼니스트)’ 등이 원서와 함께 번역본을 읽어 내려가며 삶의 경험을 나누고 있습니다.

 

두 번째 고전읽기- 알베르 카뮈(김화영 역), 이방인 L’Etranger, 민음사.

: Jacob 김 선

Pour la premiére foisdepuis que je le connaissais, d'un geste furtif, il m'a tendu la main.

그와 알게 된 이래 처음으로 그는 슬그머니 나에게로 손을 내밀었다.

 

   뫼르소가 하품을 하자 살라마노 영감은 가겠다고 한다. 뫼르소는 좀 더 있어도 된다고 말하고 영감의 개가 그렇게 된 것이 딱하다고 말하니 영감은 고맙다고 한다. 영감에게 친교적 대화를 하는 뫼르소가 낯설다. 분명 영감을 안쓰럽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좀 더 말을 건넨다. 뫼르소는 엄마가 개를 몹시 귀여워했다고 말하니 영감은 '가엾은 자당님'이라고 말한다. 상심하고 있을 뫼르소를 위해 한 말이지만 뫼르소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는다. 엄마이야기에는 뭔가 냉담하다. 그러자 영감은 어색한 낯을 보이며 어머니를 양로원에 보냈다고 동네에서 뫼르소를 좋지 않게 생각하고 있지만 자신은 뫼르소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며 얼마나 엄마를 사랑했는지 안다고 말한다. 보이는 현상과 내밀한 현실의 괴리다. 지금도 그 까닭을 알 수 없지만 뫼르소는 자신이 엄마 때문에 악평을 받고 있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으며 엄마를 간호할 사람을 둘 돈이 없어 양로원에 넣은 것이 마땅한 처사로 생각된다고 대답한다. 영감이 전하는 평판은 뫼르소에게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느낌이다.

   영감은 그만 가서 자려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이제 자신의 생활이 바뀌게 됐는데 앞으로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알 수가 없다고 말한다. 반려견의 상실은 영감에게 엄청난 변화일 것이다.영감은 슬그머니 뫼르소에게 손을 내민다. 위로를 받고 싶은 것이리라. 사람들은 손을 통해 마음을 전달한다.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ÜRER)의 '기도하는 손'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ÜRER)의 '기도하는 손'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urer)‘'기도하는 손’'을 보면 신에게 기도하는 간절함이 보인다. 영감이 내민 손에는 상실감을 위로받을 뫼르소의 손이 필요했던 것이다. 뫼르소는 영감의 손에서 비늘같이 거슬거리는 부분을 느낀다. 손에서 영감에 대해 알지 못했던 지난 굴곡진 삶의 패인 흔적을 발견한 기분인가? 영감은 약간 웃음을 보이고 방을 나서려다가 오늘 밤 개들이 짖어서 자신의 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나지 않도록 개들이 짖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개들이 영감의 마음을 알는지 참으로 무심한 밤이 될 것 같다.

   일요일은 마리가 와서 그의 이름을 부르기 전까지 뫼르소도 일어나기가 힘든 날이다. 두 사람은 일찍부터 해수욕을 하고 싶어서 아침도 먹지 않았다. 해수욕과 식욕의 반비례는 사람을 힘들게 하는 법이다. 뫼르소는 속이 텅 빈 것 같고 머리도 아팠다. 담배를 피워도 맛이 썼다. 마리는 뫼르소가 초상 치르는 사람 같다며 놀려 댔다. 빈속에 수영은 자칫 초상을 치를 수도 있다. 마리는 흰색 옷에 머리를 늘어뜨린 차림이다. 초상집 차림인가? 예쁘다고 말하니 그녀는 좋아서 웃는다. 힘들어도 본능은 살아 있어 무의식적으로 나온 말이 분위기를 살리고 있다.

   내려오는 길에 레몽의 방문을 두드렸다. 레몽은 곧 내려온다고 대답한다. 길에 나서자 퍼질대로 퍼진 뜨거운 햇살에 뫼르소는 따귀라도 얻어맞은 것 같았다. 햇살에 항상 약한 뫼르소는 오늘도 힘들다. 이 사실을 모르는 마리는 기뻐서 깡충거리며 날씨가 좋다고 되풀이해 말한다. 그런 그녀 덕분에 뫼르소는 기분이 좀 나아져서 배가 고픈 것을 느낀다고 말하니 마리는 두 사람의 수영복과 수건이 든 가방을 열어 보이며 기다려야함을 알게 한다. 배고픔을 느끼는 사람에게 기다림을 암시하는 상황이 우습다. 이윽고 레몽이 푸른 바지와 소매 짧은 흰 셔츠를 입고 밀짚모자를 쓰고 나온다. 제대로 차려입은 것 같은데 마리는 우습다고 야단이다. 팔목은 허연데 검은 털로 덮여 있는 것이 뫼르소에게는 역겨웠다. 두 사람이 이상한 건지 레몽이 이상한 건지 알 수 없다. 레몽은 휘파람을 불면서 내려왔는데 만족스러운 눈치다.

   전날 경찰서에 함께 가서 뫼르소는 레몽에게 맞은 여자가 레몽에게 버릇없이 굴었다고 증언했다. 증인의 역할에 충실히 임하는 뫼르소는 레몽에게 고마운 친구다. 레몽은 경고를 받고 나왔고 뫼르소의 진술을 트집 잡는 사람은 없었다. 문 앞에서 레몽과 경찰서에 갔다 온 이야기를 하고 나서 모두 버스를 타기로 결정한다. 바닷가는 그다지 멀지 않았으나 그렇게 하면 더 빨라 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레몽의 친구도 그들이 일찍 오는 것을 기뻐하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셋이 막 길을 떠나려는 참이었는데 갑자기 레몽이 맞은 쪽을 보라는 눈짓을 한다. 한 패의 아랍인들이 담배가게 진열창에 기대어 서 있는 것이 보인다. 그들이 묵묵히 레몽 일행을 바라고 있는데 죽은 나무에 지나지 않는다는 듯한 태도였다. 정말 그런지는 알 수 없지만 느끼는 쪽은 그렇게 느낀 것이다. 왼쪽으로부터 두 번째 녀석이 그놈이라고 레몽은 말하는데 신경 쓰는 눈치였다. 누군가의 지속적인 시선은 불안감을 준다.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Rainer Werner Fassbinder)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Rainer Werner Fassbinder)의 대표작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의 영화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1974년작품의 독일인 여성과 모로코 남성처럼 사랑하는 사람들의 시선과 달리 레몽과 아립인들은 서로에게 불안감을 조성하는 시선을 주고 받고 있다. 그 불안을 떨쳐버리고 싶어서 레몽은 다 끝난 이야기라고 덧붙인다. 끝이길 바라는 마음인 것이다. 마리는 무슨 영문인지 잘 알 수 없어서 그가 왜 그러느냐고 묻는다. 아랍인들이 레몽에게 원한을 품고 있는 것이라고 뫼르소는 대답한다. 미래를 알지 못하는 담담한 답변의 방향이 궁금해 진다. 마리는 곧 출발하기를 원했다. 레몽은 몸을 젖히고 서둘러야겠다고 말하며 곧 웃음을 터뜨렸다. 불안을 품은 웃음은 무겁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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