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명을 기억하는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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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명을 기억하는 친구
  • 권근영
  • 승인 2020.04.2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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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림1동 181번지, 수도국산 달동네를 기억하며]
(9) 도영의 어린 시절

2020년 새 기획연재 <송림1동 181번지, 수도국산 달동네를 기억하며>는 1954년부터 1998년까지 수도국산 달동네 송림1동 181번지에 살던 정남숙님과 그의 가족들의 구술을 바탕으로 격주 연재합니다. 어린 시절을 송림동에서 보낸 남숙의 손녀 영이가 가족들을 만나 그 시절, 그 이야기를 듣고, 글로 옮깁니다. 어렵고 가난했던 시절, 서로를 의지해 살아가던 가족들의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보려고 합니다.

 

남숙과 도영

1966년 남숙과 형우의 둘째 아이 도영은 송림초등학교에 입학했다. 1학년은 한 반에 66명씩 총 10개 반이 있고, 오전과 오후로 나뉘어 수업이 진행되었다. 1반부터 5반까지 오전에 수업하면, 6반부터 10반까지는 오후에 수업했다. 그 다음 주가 되면 6반부터 10반까지가 오전에, 1반부터 5반까지가 오후에 수업하는 식이었다. 일주일마다 등교 시간이 바뀌었고, 도영은 가끔 헷갈렸다. 오후 수업인 줄 알고 학교에 갔는데 수업이 끝나 있어서 숙제만 확인하고 돌아온 적도 있었다. 아직은 학교생활이 낯설고 어려운 도영을 위해, 같은 학교 5학년인 인구가 도영을 곁에서 챙겼다.

도영은 학교가 재밌었다. 콩나물시루처럼 한 반에 바글바글한 아이들도, 여자아이들과 고무줄놀이를 하는 것도, 1학년 1반 김명희 담임선생님도 좋았다. 교과서를 읽는 것도 좋았다. 영희야 철수야 숨바꼭질하자 머리카락 보인다. 옷자락이 보인다. 큰 목소리로 노래도 불렀다. 송알송알 싸리잎에 은구슬 조롱조롱 거미줄에 옥구슬. 친구들과 어울려 한창 즐겁게 배울 때, 도영은 갑자기 아프기 시작했다.

도영은 법정 감염병을 동시에 앓았다. 백일해, 성홍열, 홍역 그리고 천연두까지. 어떤 병이 먼저 생기고, 낫고를 들여다볼 틈도 없이 여러 달 동안 쉼 없이 아팠다. 형우는 참외전거리에서 일을 마치면 바로 집으로 와, 도영을 등에 업고 만석동 의원을 오갔다. 의원은 가정집이 딸려있어서, 늦은 시간까지 진찰할 수 있었다. 도영은 주사를 하도 많이 맞아 엉덩이가 딴딴했다. 간호사는 도영의 작은 엉덩이에서 그나마 말랑말랑한 곳을 찾아가며 주사를 놓았다. 형우는 마르고 작은 도영을 업고 큼지막한 외투로 감쌌다. 체구가 큰 형우가 걸을 때마다 쿵쿵쿵쿵 진동이 느껴졌다. 말수가 적고, 매사 흥분하는 일 없이 순한 사람이지만 도영을 걱정하는 마음만큼은 숨기지 못했다. 찬바람을 조금이라도 덜 쇠이려고 형우는 걸음을 재촉했다. 도영은 형우의 넓고 따뜻한 등에서 그 마음을 느꼈다. 그리고 그 진동을 오래도록 기억할 것 같았다.

남숙은 도영에게 흰 쌀죽을 쑤어 먹였다. 멀건 죽에 간장과 김치 쪼가리만 겨우 얹어 먹는 도영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안쓰러웠다. 도영이 차도가 있고 몸을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하자 남숙은 이제 죽은 그만 먹자고 했다. 그리고 남숙은 도영을 데리고 설렁탕집으로 갔다. 배다리 문화극장 옆에는 설렁탕 가게들이 있었다. 가끔 도영이 인구와 함께 냄비를 들고 심부름 오는 곳이기도 했다. 설렁탕을 한 냄비 포장해서 집에 가져가면 온 가족이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 남숙과 도영은 가게 안으로 들어가 앉았다. 남숙은 도영에게 설렁탕 한 그릇을 다 먹을 수 있겠냐고 물었다. 도영은 뜨끈한 설렁탕 국물과 쌀밥을 보자 입맛이 돌았다. 어른용 설렁탕 한 그릇을 전부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도영은 정말 밥 한 공기를 설렁탕 국물에 말아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 그 모습을 보고 남숙은 놀랐다. 세상에 그 많은 걸 다 먹었다고, 그동안 못 먹어서 몹쓸 병에 걸렸다고 말하며 미안해했다.

건강을 회복한 도영이 다시 학교에 가게 된 날, 남숙은 도영에게 꽃을 쥐여줬다. 선생님 교탁 앞에 꽃을 놓아두고, 아이들과 잘 지내라고 당부했다. 도영은 1학년 1반으로 돌아왔다. 담임선생님과 친구들을 만나서 정말 좋았다. 고무줄놀이도 하고, 노래도 부르고, 영희와 철수 이야기를 읽으며 1학년을 잘 마칠 수 있었다.

창영초등학교에는 ‘전설’이 하나 있다. 옛날에 학교를 지을 때 커다란 구렁이가 한 마리 나왔는데, 용이 되기까지 하루가 남은 구렁이였다. 학교 소사가 그 구렁이를 죽이는 바람에 ‘저주’를 받게 되었고, 창영초등학교 아이들이 소풍 가는 날에는 어김없이 비가 내린다는 것이다. 인구는 이 전설을 도영에게 알려주며 말했다. 절대 창영초등학교가 소풍 가는 날과 겹치면 안 된다고. 자신도 송도 조개고개에 소풍 가는 날, 날짜가 겹치는 바람에 비가 와서 쫄딱 젖었다고. 도영은 이것과 비슷한 소문을 이미 학교 친구들에게 열 번 이상 들었다. 도영은 제발 창영초등학교와 같은 날에 소풍 가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송림초등학교 도영네 학년 학생들은 김포 장릉으로 소풍 가게 되었다. 도영은 첫 소풍에 가슴이 설렜다. 소풍 때마다 몸이 아프거나 비용 마련이 어려워 참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도시락으로 김밥을 싸고, 사이다 유리병에 물을 담았다. 신문지를 똘똘 말아서 물이 새지 않도록 유리병 입구를 틀어막았다. 사과도 세 개 챙겼다. 출발할 땐 분명 날씨가 좋았다. 장릉에 도착하고 몇 시간 지나지 않아 하늘이 까매지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민가로 달려 추녀 끝에 다닥다닥 붙어 비를 피해 보려고 했다. 하지만 600명이 넘는 아이들에게는 어림도 없었다. 선생님들은 장릉 일대를 돌아다니며 집을 빌렸다.

담임 선생님의 안내에 따라 도영네 반 아이들은 어느 집 안으로 들어갔다. 안방과 마루, 건넌방까지 아이들로 꽉 들어찼다. 옹기종기 붙어 앉아 가져온 도시락을 꺼내 먹었다. 간식까지 다 먹어도 비가 그치지 않았다.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돌아가며 노래를 부르자고 했다. 지루한 분위기를 띄워보려는 거다. 아이들은 흥이 나지 않았다. 비가 와서 소풍을 망친 기분이었다. 이게 모두 창영초등학교가 소풍 가서 그런 거라며 투덜댔다. 도영은 가만히 앉아 졸았다. 오후 세 시쯤 비가 그쳤고, 버스를 타고 학교로 돌아갔다. 도영이 잔뜩 기대했던 첫 소풍이 이렇게 허무하게 끝났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도영은 합창부에 들어갔다. 소프라노 음색이 곱고, 노래도 잘해서 인기가 좋았다. 한 번은 학예회를 하는데 합창부 모두 교복을 입고 무대에 서야 한다고 했다. 송림초등학교는 원래 교복이 없었다. 그해에 갑자기 생긴 거다. 세라복 카라에 넥타이가 있고 여자는 원피스, 남자는 반소매에다 반바지였다. 학교 앞 문방구에서 교복을 팔았는데, 가난한 집 아이들은 살 수 없었다. 도영은 친구에게 교복을 빌렸다. 품과 길이를 줄이려고 실로 살짝 떴다. 엉성한 차림으로 노래를 불렀다. 학예회를 마치고, 교복을 돌려줬다. 도영은 졸업할 때까지 교복을 사지 않았고, 그다음 해에 교복이 폐지되었다.

송림초등학교를 졸업하고 40년도 더 지나, 도영은 졸업생 온라인 카페를 알게 되었다. 앨범 게시판에는 졸업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교복을 입은 아이도 있고, 입지 않은 아이도 있었다. 사진을 보며 기억을 더듬어 본다. 도영은 동창회 모임에 나갔다. 어릴 때 얼굴이 어렴풋이 남아있어서 알아보긴 하겠는데, 도저히 반말이 나오지 않았다. 다른 애들도 마찬가지였다. 보다 못한 회장이 앞으로 나가 마이크를 잡고 말했다. “야! 존댓말 하지 마!” 그랬더니 다른 누군가가 13살에 보고 50살이 넘어서 만났는데 그게 되냐며, 웃고 떠들었다. 그때 도영의 눈에 정훈이 들어왔다.

“야!! 꼬마 신랑!!”

도영이 부르자 정훈이 깜짝 놀라서 쳐다봤다. 정훈은 송림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가족이 캐나다에 이민했다. 캐나다에서 생활하다가 문득 초등학교 친구들이 보고 싶어서 인터넷으로 검색을 했다. 졸업생 온라인 카페를 발견하고 정훈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같은 기수 졸업생들이 동창회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정훈은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날아왔다. 송림초등학교 다닐 때 피부가 하얗고 눈이 똥그랬던 정훈은 <미워도 다시 한번>, <꼬마 신랑>에서 아역배우로 출연한 김정훈과 이름이 같다는 이유로 별명이 꼬마 신랑이었다.

정훈의 별명을 아는 사람은 초등학교 친구들뿐이었다. 도영이 어릴 때로 돌아간 듯이 “야!! 꼬마 신랑!!”이라고 부르자 정훈은 순간 감격의 눈물을 뚝뚝 흘렸다. 정훈은 자기를 기억해주는 인천 친구들을 만나서 너무 기뻤다. 캐나다에서 한 번도 불린 적 없던 별명이었다. 40년 넘게 잊고 있던 별명을, 13살 때처럼 장난스럽게 불러주는 친구들을 만나서 정말 좋았다. 세상에 꼬마 신랑이라는 별명을 아는 사람들이 지금 이곳에 같이 있는 거다. 머리가 허옇게 늙어버린 남자가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고 재밌어서 도영은 계속 장난을 했다.

“그래 꼬마 신랑 왔다. 다 늙어서 왔다! 입분아”

“야 나 이름 바꿨어! 입분이라고 부르지 마!!”

친구들은 정훈과 도영을 보고 배꼽을 잡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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