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륭한 선생님을 만난 학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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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선생님을 만난 학생은
  • 최원영
  • 승인 2020.05.11 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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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영의 행복산책] (104) “그거요, 선생님 손이에요!"

풍경 #141. “그거요, 선생님 손이에요!”

곧 스승의 날이 다가옵니다. 요즘엔 스승의 날이 달력에나 표기되어 있을 뿐, 고마움의 눈물을 흘리던 예전의 풍경을 찾아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많이 안타까운 생각도 많이 듭니다.

뉴욕타임스 2012년 1월 6일자에 하버드대학교와 컬럼비아대학교 경제학 연구팀의 연구결과가 실렸습니다. 무려 20년에 걸쳐 250만 명의 학생들을 관찰한 결과, 초등학교나 중고등학교 때 훌륭한 선생님을 만난 학생은 10대에 임신할 확률이 낮고, 대학 진학률도 높았으며, 성인이 되어서는 돈도 더 잘 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차갑부, 『예화로 푸는 공감교수법』)고 합니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면 매 학기마다 강의실 분위기가 많이 바뀌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이런 현상은 무엇보다도 학생들 개개인의 개성이 다양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교사는 늘 새로운 것을 배워야 하고 배운 그것을 학생들에게 전해야 합니다. 그래야 학생들의 개성을 키워줄 수가 있을 겁니다.

위에 소개한 책에는 이솝 우화를 소재로 교사의 자질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음악에 재능이 있는 어부가 고기를 잡으러 피리와 그물을 갖고 해변으로 갔다. 바위에 서서 자신이 부는 피리 소리에 현혹되어 고기가 아래쪽에 쳐놓은 그물로 춤추며 들어오길 기대하며 피리를 멋지게 불었다. 하지만 고기가 잡히지 않자, 피리를 바위 위에 놓고 그물을 던져 고기를 많이 잡았다.”

맞습니다. 학생 개개인의 특성과 개성을 알아야 좋은 교사가 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점은, 선생님들은 자신이 맡은 학생들을 자식처럼 아낀다는 사실입니다. 저 역시도 20대에 초등학교 교사를 했었습니다. 어느 해, 제 반에 말썽꾸러기가 한 명 있었는데, 아무리 꾸중을 해도 아이의 태도가 바뀌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이었습니다. 아이가 복도에서 뛰어다니다가 옆 반 선생님에게 붙들려 벌 받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제 마음이 몹시 불편해졌습니다. ‘아니, 왜 남의 반 아이를 벌을 줘?’라는 불쾌감이 불쑥 올라온 것이지요. 아무리 말썽을 부려도 그 아이는 제 아이이거든요. 꾸지람도 제가 해야 한다고 저는 생각을 했던 겁니다. 이제 세월이 한참 흘러 지금도 그때 그 일을 겪는다고 상상해보면, 똑같은 마음이 들었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인터넷에서 본 자료 중에 헬렌 켈러를 가르쳤던 ‘설리번’ 선생님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도 잘 알고 계시듯이 헬렌은 듣지도 보지도 못했고 말하지도 못하는 아이였습니다. 헬렌의 입장이 되어보면 무척 답답했을 겁니다. 그래서 성격도 매우 거칠었을 겁니다. 불만과 불평이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었을 겁니다.

그래서 그녀를 가르치려고 왔던 많은 선생님들은 며칠도 견디지 못하고 떠났습니다. 그러나 설리번 선생님은 헬렌의 집에 처음 도착하던 날, 그 거친 아이를 꼭 안아주었다고 합니다. 헬렌이 설리번 선생님에게 마음의 문을 연 어느 날이었습니다. 선생님이 헬렌에게 물었습니다.

“헬렌, 사랑이 무얼까?”

그랬더니 헬렌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선생님이 이곳에 처음 오시던 날, 저를 꼭 안아주신 것이지요.”

사실은 설리번 선생님 자신이 심각한 망막 질환으로 실명 직전까지 갈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 정도로 큰 아픔과 고통을 겪은 설리번이었기에 그런 고통 속에서 평생을 살아야 하는 헬렌을 진심으로 안아줄 수가 있었을 겁니다. 그리고 그 사랑이 거친 야수와도 같던 헬렌을 살려낸 것입니다.

『따뜻한 영혼을 위한 101가지 이야기』에도 선생님의 사랑에 관한 글이 있습니다.

“어느 신문은 추수감사절 사설에서 어느 초등학교 1학년 담임선생님이 학생들에게 각자 감사하다고 느끼는 대상을 그림으로 그려보라고 했다는 얘기를 전했다. 선생님은 가정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이 과연 감사하게 여기는 대상이 있는지 걱정했다. 짐작대로 많은 아이들이 칠면조나 음식이 차려진 식탁 등의 그림을 그렸다.

하지만 선생님은 더글러스라는 아이가 그린 그림을 보고 놀랐다. 그것은 어린아이답게 단순하게 그려낸 평범한 손의 모습이었다. 과연 누구의 손일까? 학급 전원이 이 추상적인 그림에 정신을 온통 빼앗기고 있었다.

‘우리에게 음식을 주시는 하나님 손이야.’

‘아니야, 농부야. 농부는 칠면조를 기르잖아.’

마침내 선생님이 더글러스에게 물었다. 아이는 더듬거리며 말했다.

‘그거요, 선생님 손이에요.’

선생님은 휴식시간에 종종 더글러스를, 이 초라하고 외톨박이인 그를 손으로 쓰다듬어 준 일을 떠올렸다. 그녀는 다른 아이들에게도 종종 그랬다. 하지만 더글러스에게 그것은 아주 큰 의미를 지녔다. 아마 이날은 누구나 감사를 드리는 날이리라. 우리에게 뭔가 물질적인 걸 주셨음을 감사하기보다는,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타인에게 무언가 줄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하신 데 대해 감사하는 날이리라.”

잊고 있었지만 제가 이렇게 죄를 덜 짓고 살아갈 수 있었던 것도 저런 선생님들의 보살핌이 있었다는 사실을 어른이 되고서야 알았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어디에 계시는지, 어쩌면 벌써 이 세상을 떠나셨을 그분들에게 감사함과 죄송함이 교차합니다. 그렇게 교만했던 제 머리를 쓰다듬어 주신 그분들에게 단 한 번도 감사하다는 말조차, 아니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살았던 저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아이들을 위해 헌신하고 계시는 이 땅의 모든 선생님들에게도 감사함을 전합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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