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사라진 여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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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사라진 여자들
  • 권근영
  • 승인 2020.05.13 07: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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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림1동 181번지, 수도국산 달동네를 기억하며]
(10) 남숙의 막냇동생, 인순

2020년 새 기획연재 <송림1동 181번지, 수도국산 달동네를 기억하며>는 1954년부터 1998년까지 수도국산 달동네 송림1동 181번지에 살던 정남숙님과 그의 가족들의 구술을 바탕으로 격주 연재합니다. 어린 시절을 송림동에서 보낸 남숙의 손녀 영이가 가족들을 만나 그 시절, 그 이야기를 듣고, 글로 옮깁니다. 어렵고 가난했던 시절, 서로를 의지해 살아가던 가족들의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보려고 합니다.

 

남숙의 둘째 동생 혜숙은 동인천 역전에서 남편과 여인숙을 했다. 1950년대 동인천역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봄이면 구경한다고 경상도 전라도 같은 먼 데서 구경꾼들이 많이 몰려왔기 때문이다. 고향에서 암만 일찍 출발한대도 차를 타고 서울을 거쳐 인천에 도착하면 시간이 늦었다. 하루 만에 구경을 마치고 돌아가기는 시간이 빠듯하고 아쉬워서 숙소를 잡아야 했다.

그런 손님들을 꼬이려고 동인천역 광장에 여인숙 여자들이 왔다 갔다 했다. 혜숙은 여인숙 이름을 크게 적은 박스를 목에 걸고, 광고했다. 손님을 뺏기지 않으려고 악착같이 달려들었다. 광장에는 요깃거리를 파는 장사꾼들도 있었다. 혜숙은 빵떡 장수와 친하게 지내며, 가끔 술을 같이 마셨고, 그가 혼자라는 걸 알게 되었다. 빵떡 장수에게 스무 살을 갓 넘긴 막냇동생을 소개해주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둘은 혼인했다.

인순은 남숙이 애지중지하는 막냇동생이다. 25년생인 남숙과는 13살 차이로, 한국전쟁 때도 어린 인순의 팔과 자신의 팔에 끈을 묶어 잃어버리지 않도록 꼭 붙들고 다니던 동생이다. 남숙은 빵떡 장수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둘이 서로 좋아해서 어쩔 수 없었다. 동인천 축현파출소와 철길 사이로 난 골목길 끝에 신혼집을 마련했다. 여관이 두 세 채 정도 있었고, 밀주 만드는 곳도 있었다. 나라에서는 사람이 먹을 쌀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누룩을 제조하는 것을 금지했지만, 사람들은 몰래 막걸리를 만들었다.

남자는 빵떡 파는 일을 그만두고, 농기구 수리하는 일을 시작했다. 농약을 뿌리는 분무기 따위의 도구들을 집 앞에 늘어놓고 손님을 기다리기도 했지만, 주로 촌에 찾아다니며 일감을 구했다. 딸 하나, 아들 하나를 낳아 식구가 늘었다. 남자는 술을 많이 마셨고, 술을 마시지 않은 날에도 인순을 때렸다. 남숙은 아들 인구더러 가끔 인순이 이모를 살펴보고 오라고 했다.

인구는 학교가 끝나면 집에 가방을 내려놓고 바닷가로 놀러 나갔다. 수도국산 달동네에서 걸어서 동인천으로 갔다. 자유공원으로 올라갔다가 하인천역 쪽으로 내려가면 인구의 놀이터가 나온다. 하인천역에서 올림푸스 호텔 언덕 밑으로는 고깃배가 드나드는 부두가 있었다. 배가 정박해 있으면, 아이들은 어선 끄트머리에서 바다로 다이빙을 했다. 헤엄쳐서 바로 다시 배 위로 올라와서 또 온갖 기괴한 포즈로 다이빙을 하고 노는 거다.

물 때가 조금, 무시, 일물, 이물 정도일 때는 고기 배들이 바다에 잘 나가지 않았다. 바닷물이 들어가지도 나오지도 않고 가만히 있으면, 물고기들도 가만히 있다. 그런 날에는 그물을 던져도 고기가 잘 잡히지 않기 때문에 어부들은 물 때에 따라 바다를 드나들었다. 인구는 물 때가 무엇인지 잘 알지는 못했지만, 바다의 상태에 따라 어선 위에서 다이빙하며 놀 수 있는 시간이 달라진다는 건 알았다. 그래서 놀 수 있을 때 최선을 다해서 바다에서 놀았다.

햇볕에 옷을 말리며, 다음으로 인구가 가는 곳은 만석동이다. 인천 판유리 공장에 가서 모래를 퍼가기 위해서다. 모래는 아주 고왔다. 입으로 “후-”하고 불면, 후루룩 날아갈 정도로 아주 고왔다.

그 모래를 신발주머니 같은데 퍼담아 집에 가지고 가면, 남숙은 그걸로 그릇을 닦았다. 지푸라기를 꾸깃꾸깃 동그랗게 만들어서, 빨간색 말표 이뿐이 비누에 문지른 다음 모래를 찍는다. 양은이나 스테인리스 그릇을 모래와 비누를 찍은 지푸라기로 박박 문질러 닦으면 반짝반짝 광이 났다. 동네 여자네 집에 놀러 가 부엌 선반 위에 반짝반짝 빛나는 그릇이나 냄비를 보면, 인천 판유리 공장에 다녀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인구는 무겁지 않을 만큼의 모래를 담아 들고 집으로 되돌아가다 동인천 인순 이모네를 들른다. 인순의 얼굴과 몸에는 자주 멍이 들어 있다. 인구는 오래 머무르지 못하고, 서둘러 집으로 갔다.

한동안 인순의 소식이 들리지 않자 남숙은 불안했다. 걱정돼서 동인천으로 찾아갔다. 문 밖에서 불러도 기척이 없었다. 들어가 보니 인순의 손과 발이 묶여 있었다. 남숙은 눈이 뒤집혔다. 너무 화가 났다. 끊을 수 있는 모든 도구를 꺼내와 인순을 풀어주었다. 온몸에 피멍이 들고, 상처투성이였다. 남숙은 인순을 송림동 자신의 집으로 데려와 씻기고 죽을 해 먹였다.

너무나 아끼는 막냇동생이었다. 전쟁 때 잃어버릴까 봐 노심초사하며 보살피고 같이 피난 다녀온 아이였다. 이럴 거면, 어릴 때 미국에 입양을 보내는 게 나았을 걸 하는 후회도 밀려왔다. 너무 속상해서 다시 그 집으로 되돌려보내고 싶지 않았던 남숙의 마음과 달리, 인순은 몸을 추스르고 동인천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몇 년을 더 그 남자와 같이 살았다.

어느 날 인순이 사라졌다. 동인천 집, 골목의 한 여관에서 조바로 있던 여자도 같이 사라졌다. 남자는 수도국산 남숙의 집을 찾아와 마구 뒤졌다. 내 마누라 내놓으라며 소리를 지르고 물건을 헤집어놓았다. 그곳엔 당연히 인순이 없었다. 남자는 남숙이 와룡 회사에서 퇴근하는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갑자기 나타나 욕을 퍼붓기도 했다. 술이 잔뜩 취해서 제 몸도 못 가누고 인순이 어디 있는지 말하라고 했다. 남숙은 정말 몰랐다. 인순이 어디로 갔는지, 같이 사라진 여자와 어떤 사이인지 남숙은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 어디에 있든지 아프지 말고 건강하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인구는 남숙 몰래, 동인천 인순 이모네를 찾아갔다. 다행히 남자는 집에 없었다. 초등학생인 딸 윤희와 두 살 터울의 동생 윤철만 집을 지키고 있었다. 인구는 윤희에게 공책을 건넸다. 공부 열심히 하라고, 모르는 거 있으면 언제든 자기한테 물어보라고 말했다. 그것 말고 다른 어떤 위로의 말을 해야 할지 인구는 잘 알지 못했다.

인순이 사라지고 20년 정도 시간이 흐르고 난 뒤. 왼쪽부터 같이 사라졌던 선애, 인구의 부인 연희, 인순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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