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책방 단골손님, 단호의 동전 모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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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책방 단골손님, 단호의 동전 모으기
  • 김시언
  • 승인 2020.05.15 14: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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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방, 그 너머의 기록]
(8) 손님 기다리는 책방지기 - 김시언 / '우공책방' 책방지기

<작은책방, 그 너머의 기록>은 인천과 강화 지역에서 작은 책방을 꾸려가는 사람들이 전하는 이야기입니다. 요즘 세상에 책방을 열어서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텐데, 그들은 왜 굳이 작은책방을 열고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문화를 말하는지 질펀하게 수다떨려고 합니다. 좁은 골목길에서 우연히 맞닥뜨린 작은책방, 그 길모퉁이에서 책방 사람들이 들려주는 소소한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세요. 책방시점, 책방산책, 우공책방, 딸기책방, 나비날다책방 순서로 일주일에 한 번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우공책방' 원경
'우공책방' 원경

 

책방 문을 열고 본격적으로 활동한 지 일 년이 다 돼간다. 우리 책방이 워낙 사람 발길이 뜸한 고려산 산자락에 깊숙이 있다 보니 허구한 날 손님이 없다. 위치가 그러면 부지런을 떨어 홍보를 열심히 하면 좋을 텐데, 생각만 그러할 뿐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터라 그저 알음알음 소문이 나서 손님이 오길 바라고 있었다. 감나무 아래서 감 떨어지길 기다리는 격이랄까.

엎친 데 덮친다고 코로나19 여파는 왜 이리 오래가는지 슬슬 초조하고 불안했다. 대부분의 가게가 그렇듯이 우리 책방도 손님 없는 날이 이어져 힘이 쪽 빠졌다. 하지만 책방을 열기 전에는 도무지 알 수 없던 일과 단상이 얼마나 많은지, 고매한 철학자가 되는 건 시간문제일 것 같다.

 

책방을 한다는 것은 손님을 기다리는 일

옆집 진도 산이가 컹컹 짖을 때면 반사적으로 창밖을 보게 된다. 산이는 마을에 낯선 사람이 나타나면 영락없이 짖기 때문이다. 낙조대 적석사로 올라가는 등산객을 봐도 산책하는 아랫마을 사람을 봐도 용맹스러운 산이가 짖을 때, 우리 책개 둘리가 벌떡 일어나면 십중팔구 책방으로 오는 손님이다. 산이 짖는 소리를 듣고 둘리는 책방 손님을 알아차리는 것 같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산이가 짖으면 둘리를 쳐다보는 버릇이 생겼다.

책방을 한다는 것은 곧 기다림에 익숙해지는 일이다. 하루하루가 온통 ‘기다리는 일’의 연속이다. 오전 열 시 반에 책방 문을 열 때부터 오후 여섯 시에 문을 닫을 때까지 그저 기다리고 기다린다. 책방 문을 닫는 오후 여섯 시, 때마침 적석사에서 울리는 종소리는 마치 하루의 기다림을 미련 없이 접으라는 신호 같다. 온종일 창밖을 내다보면서 손님을 기다리는 마음도 접고, 책을 주문하거나 북스테이를 예약하는 전화를 기다리는 일도 접으라는 두드림 같다.

사실 책방을 열 때는 돌쩌귀에 불날 정도는 아니더라도 하루에 한두 명은 오겠거니 했다. 아닌 날이 많아지면서 웬일인지 시시때때로 웃음도 새어나온다. 그래, 내일은 한 명이라도 오겠지, 아니면 모레, 글피에? 사실 이러구러 시간이 그냥 흘렀구나 싶지만, 따지고 보면 손님이 꽤 늘었다. 손님이 오지 않아 큰일이다 싶어 끌탕할 때가 많지만 마음 한 자락 접고 보면 그럴 일도 아니다.

알음알음 책방을 찾아오는 손님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손님들 가운데는 예전부터 알고 지내는 사이도 있고 처음 찾아오는 손님도 있다. 절반가량씩 되는 것 같다. 지인이나 친구들은 책방을 열었다는 소식을 듣고 멀리서 달려오는 사람이 많다. 그야말로 어디선가 책방 소식을 듣고 오는 분들은 다양하다. 낙조대와 적석사에 왔다가 가는 길에 들른 손님, 산책하다가 책방 이정표를 보고 손님, 대추계피차가 마시고 싶어 온 손님 등 시간이 지나면서 자주 찾아오는 손님이 생겼다. 책을 한 권이라도 사든 빈손으로 가든 책방이 궁금해 오는 손님을 보면 무조건 반갑다.

 

 

우리 책방 단골손님, 단호

단골손님 가운데 특히 반가운 손님이 있으니, 바로 여섯 살 된 단호다. 책방에서 단호네까지 걸어서 십분 남짓 걸린다. 직장을 다니는 엄마가 쉬는 날이면 단호는 엄마 손을 잡고 씩씩하게 책방에 들어선다. 우리 책개 둘리도 단호를 보면 엄청 반가워하고, 단호도 둘리한테 무척 다정하다.

지난 연휴 때는 단호가 외상값을 갚으러 왔다. 전에 외상으로 사 간 《도깨비와 범벅 장수》 책값을 갚으러 온 것이다. 엄마와 누나, 이모네와 함께 책방에 와서 동전으로 9천원을 냈다.

외상값을 갚으러 오다니? 그전 주 일요일이었다. 단호가 엄마와 함께 책방에 들어섰다. 바구니에는 나무꽃과 풀꽃이 가득 들어 있었다. 우리 책방에서 산 《사계절 생태놀이》를 들고 엄마와 마을 안길을 어슬렁어슬렁 걸으면서 나무와 풀 공부를 놀이 삼아 하는 중이라고 했다. 산책하다가 느닷없이 들어오게 된 모양이었다.

단호는 간식을 먹고는 책을 구경했다. 그러다가 잡은 책은 《도깨비와 범벅 장수》.

"엄마, 이 책 사자."

"우리 돈 없이 나왔잖아. 다음에 사자."

단호는 엄마 말에 시무룩해서는 책을 다시 읽었다. 읽고 또 읽고. 도깨비 그림이 정말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엄마, 이 책 정말 사고 싶어."

책을 사고 싶은 단호와 돈 없이 나온 단호 엄마가 잠시 실랑이를 벌였다. 안 되겠다 싶어 내가 나섰다.

"단호야, 책이 마음에 드는구나. 그럼 갖고 가서 보고, 돈은 다음에 가져와."

"정말 그래도 돼요!"

단호 엄마는 단호에게 일주일 동안 돈을 열심히 벌라고 했다. 할아버지, 할머니 심부름을 해서 돈을 벌어 오자고 했다. 그 말에 단호는 무척 즐거워했다. 그러면서도 책방을 나설 때는 살짝 걱정이 되는지 엄마한테 말했다.

"엄마, 나 돈 갚는 거 잊어버리면 어떡하지? 엄마는 잊지 마!"

"알았어, 꼭 기억할게."

​그러고 일주일 뒤, 단호는 책 외상값을 갚으러 온 것이다. 돈주머니를 열고 동전을 꺼냈다. 와르르 동전을 꺼내고는 먼저 오백원짜리를 두 개씩 포개놓고 그다음에 백원짜리를 나란히 놨다. 동전을 꺼내어 돈을 세는 단호 표정이 무척 진지했다. 돈 버는 일이 힘들었다는 단호, 《도깨비와 범벅 장수》를 볼 때마다 단호는 얼마나 흐뭇할까. 배꼽인사를 하고는 헐거워진 돈주머니를 흔들며 책방 문을 나서는 단호가 언제든지 찾아오는 동네책방이 되면 좋겠다.

 

책은 동네책방에서 산다

“책방이 없어질까 봐 걱정돼요.”

우리 책방에 자주 책을 주문하는 이웃이 한 말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잘해야지, 잘해야 하는구나를 되새겼다. 작은책방이다 보니 책 주문하는 일이 그리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신간을 들여놓아야 마음이 편하다. 팔리지 않는 책을 들여놓는 일이 얼마나 용감한 일인지, 그래서 자제하려고 무척 애쓴다. 그래봤자 금세 또 신간 검색을 하고 주문을 한다. 그러고는 새 책을 전시할 때 힘을 팍팍 받는다.

동네 사람이 주문하면 아주 잽싸게 막 주문을 끝낸 다음이라도 또 주문을 넣는다. 주문한 사람의 마음이 고맙기 때문이다. 인터넷으로 주문하면 10% 할인된 가격으로 책을 살 수 있고 더 빨리 받을 수도 있을 텐데, 굳이 우리 책방에 주문하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여기저기 책방들이 문을 닫거나 닫았다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가슴 한편이 아리다. 책을 주문하고 더디 받더라도 정가를 내더라도 동네책방을 찾아가는 사람이 많아지는 한 곳곳에 자리 잡은 작은책방은 굳건하게 제자리를 지킬 것이다.

 

◇우공책방 : 인천광역시 강화군 내가면 연촌길 77-10

010-2217-0989

네이버 블로그 : ‘강화도 우공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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