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 풍경이 아름다운 '개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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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 풍경이 아름다운 '개심사'
  • 이창희
  • 승인 2020.05.18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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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딩 이창희의 산수풍물]
- 아름다움을 업그레이드 시키는 사각 연못
개심사 사각 연못
개심사 사각 연못

충남 서산에 위치한 개심사. 적송으로 울창한 숲의 돌계단을 천천히 올라서니 상왕산 너른 구비가 눈앞에 펼쳐진다. 절 아래에서 바라볼 때는 산자락이 크게 보이지 않더니 산 위로 올라와보니 절이 제법 크다. 솔숲이 끝나고 산모퉁이를 돌아 멀리 개심사가 낙엽 진 고목 사이로 연하게 모습을 보인다. 절에서 제일 먼저 마주하게 되는 곳은 장방형의 인공 연못이다. 폭이 좁고 긴 연못이 겨울 햇살에 눈부시다

개심사 연못 주변에 산벚나무·매화나무·느티나무·전나무·배롱나무·소나무 등 100년은 족히 넘음직한 아름드리나무들이 가득하다. 연못 안 한편에 경호라는 글자가 새겨진 자연석이 놓여 있다. 거울처럼 맑은 호수라기보다는 수행하는 구도자나 절을 찾는 참배객 모두 마음을 열어 비추어 보라는 의미이리라.

이 연못에 봄비가 내리고 봄눈이 녹아 물이 가득 고이면 산매화가 피고 산벚꽃이 피어 온 산이 꽃 천지가 된다. 여름엔 수련과 백일홍(배롱나무)이 연못을 수놓고, 가을에는 적단풍과 떡갈나무 낙엽이 정취를 더하며, 겨울에는 소나무에 내린 눈꽃의 화음으로 아름답게 채색된다. 연못을 가로지른 외나무다리를 건너 절에 올랐다.

개심사 연못은 직사각의 기하학형 연못으로 전형적인 백제계 연못이다. 일본 나라의 동대사 옆 정창원 가는 길목에도 똑같은 것이 있는데 모두 부여 정림사지 백제 직사각형 연못이 그 원형이다. 연못가에 있는 경지라는 표석은 마음 비추고 마음 닦으라는 의미다. 가로로 걸친 외나무 다리를 건너면 곧바로 개심사 영역이다.

백제계 사찰의 진입 공간에는 한석봉체의 동국진체로 쓰인 투박한 글씨로 거친 듯하면서도 굳센 조선의 미감이다.근대 명필인 해강 김규진이 대자 전서로 쓴 상왕산개심사현판이 달린 안양루를 돌아 해탈문을 들어서니 개심사 대웅보전 안마당이 한눈에 들어온다. 개심사는 백제 말기 654년 혜감선사가 창건했다. 대웅보전을 중심으로 심검당과 무량수전, 안양루를 에워싼 중정은 사방 20여 미터 내외의 정방형으로 사찰의 중심 역할을 하며, 그 옆으로 명부전과 해우소·종각·산신각·연못이 자연스럽게 배치돼 있다.

이러한 건축 구조는 대부분 한국산지 가람에서 보이는 것으로, 자연을 거스르는 일 없이 자연을 경영한 조선 정원 미학의 본보기이다. 절의 진입 방식은 영주 부석사나 경주 불국사와 같이 누각 아래를 거쳐 올라가는 것이 아니고, 호남의 부안 내소사나 승주 선암사와 같이 누각을 끼고 돌아서 진입하는 백제계이다. 안양루 옆에 해탈문을 두어 대웅전의 측면을 보면서 진입하여 대웅전과 중정의 아름다운 어울림을 시각적으로 볼 수 있게 한 것이다.

대웅보전은 조선 초기 과도기적 건축물로 단정한 장대석 기단에 자연석을 주초로 하여 1484년에 짓고 1644년과 1710년에 개수한 건물로 정면 3, 측면 3칸의 앞뒤로 조금 긴 장방형 9칸 다포건물이다. 이는 몇 채 남지 않은 조선 초기 건물로, 주심포계에서 다포계로 이전해 가는 과정의 절충 형식이라는 데 높은 가치가 있다. 주심포계의 일반형인 맞배지붕으로, 구조 법식과 기법은 고스란히 주심포계를 따르지만 공포는 다포계로 만들어진 것이다. 고려 시대 건축처럼 단정한 맞배지붕을 간직하고 있다. 공포는 다포계이지만 건물 안쪽으로는 다시 주심포식 지붕 구조여서 천장 구조를 그대로 드러냈기 때문에 과도기적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보물 143).

대웅전의 불상은 여느 불상과는 사뭇 다른 푸근한 풍모에 인간적인 조형이어서 이웃집 아저씨를 보는 듯하다. 바라보고 예배하면 빙긋이 미소가 절로 난다. 불상의 조각을 담당한 불모의 심미안을 보는 듯하다. 이는 당시 불모장이 이 지역 사람으로 불상의 이해가 완전하게 이루어진 다음에 만들어낸 결과물이리라.

불단장엄의 대표적 방식은 화려한 닫집을 만들고 그 안에 청룡과 운학으로 장식하는 것이지만, 개심사 대웅보전 삼존불 위에는 따로 화려한 닫집을 만들지 않고 대신 운궁형의 소박한 보개를 만들었다. 들보 아래 매달린 학의 정교한 목조 조각이 법당 안에 생기를 불어넣으며 고색 단청과 함께 세월의 멋과 깊이를 한껏 보여준다.

개심사 전각 가운데 일반인들에게 가장 많이 회자되는 건물이 바로 심검당이다. 심검당은 해탈문을 지나자마자 왼쪽으로 비끼어 보이는 건물로 스님들이 거처하는 요사채이다. 자연스럽게 휘어진 나무를 기둥과 부재로 삼아 조선 건축에서 보이는 자연미를 한껏 간직하고 있다. 툇마루가 붙어 있는 심검당의 공포는 주심포 구조로, 쇠서(소의 혀와 같이 생긴 장식)가 상당히 날카롭고 강직해 조선 초기의 건축적 특성을 보여준다.

1962년에 해체 수리할 때 발견된 상량문에 따르면, 14773중창했고 영조 때까지 6번이나 중창을 거쳤다고 되어 있으니 이 절집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기둥 사이의 길이와 기둥 높이의 비례가 3.5 1로 평활한 구성을 보이는 것은 수덕사 대웅전과 마찬가지로 충청도 지역 가옥의 넉넉한 모습을 보여준다. 단청을 하지 않아 깊은 맛이 오히려 좋다. 심검당에 이어 다듬지 않은 나무를 그대로 살려 부재로 삼은 건축은 심검당의 부엌으로, 후대에 지어 이은 것이다. 개심사 심검당은 전남 승주 송광사의 하사당, 경북 경산 환성사의 심검당과 함께 조선 초기 요사의 모습을 보여주는 귀중한 건축물들이다.

개심사 전경
개심사 전경

 

개심사에는 조선 후기 영·정조 문화의 절정기에 그려진 아름다운 괘불이 전해져 오고 있다. 조선 영조 48(1772)에 제작된 이 괘불은 삼베 바탕에 석채와 당채로 채색된 불화로 길이 10.1미터에 폭 5.87미터나 되는 거대한 그림이다. 석가모니 영산회상 장면을 그린 것인데, 화면을 꽉 채우는 석가모니상에 견주어 둘러싸고 있는 보살과 시중들은 매우 작게 묘사돼 있다. 색조는 전체적으로 녹색과 연지, 청색과 붉은빛이 어우러져 있어 밝고 장엄한 맛이 일품이다. 괘불은 원래 초파일이나 백중날 같은 불가의 큰 행사나 대중 법회 때 옥외에 걸리는 걸개그림을 말한다.

조선의 전통 건축에서 민가나 서원·사찰 마당에는 꽃과 나무를 심지 않으며 불필요한 석물은 놓지 않았다. 마당엔 마사토를 깔고 깨끗하게 쓸어 정갈한 맛을 즐겼다. 텅 빈 공간의 절제미를 즐겼던 것이다. 조선 사대부는 내면에 흐르는 금욕의 절제미를 마당에 표현했던 것이다. 담 너머 수목을 감상하고 시야를 넓혔으며, 내당 후원에 화계를 두어 답답한 여인들의 마음을 풀어내었다. 분재나 꽃꽂이가 없는 이유도 자연의 아름다움을 즐겼던 선비들의 유교적 정신세계와 깊은 연관이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개심사 대웅보전 앞마당에 심어져 있는 꽃나무를 모두 걷어내 반듯하고 정갈한 절집 풍경을 되살릴 필요가 있다. 더욱이 대중 법회에 내걸리는 괘불을 지지하는 철재 괘불 지지대도 철거하고 원래대로 돌로 된 지지대만 두어 전체적인 조화를 깨트리지 않는다면 개심사의 아름다움은 더욱 빛날 것이다.

개심사의 진면목은 무량수전을 지나 명부전 뒤 산신각에 올라 송림과 고목 사이로 바라보는 풍경이다. 한옥의 미는 멀리서 바라볼 때 찾을 수 있다. 한 폭의 그림과 같다. 사찰 전각의 지붕선이 푸른 자연과 어울려 보는 이의 마음을 푸근하게 한다. 대웅보전을 중심으로 전각들이 가족처럼 어우러져 있다. 한국은 대부분 산지로 구성돼 있어 건축을 구성하는 공간이 크지 않다. 조선의 정궁인 경복궁만 해도 그렇다. 청나라의 자금성과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이다.

그러나 세상의 미감은 크기로만 결정되는 게 아니다. 건물이 들어서는 인문·지리적 환경과 어울린다면 그것만으로도 훌륭한 미감을 보여줄 수 있다. 작은 아름다움이 그것이다. 한국의 미는 작고 단아한 아름다움이다. 사찰 건축도 마찬가지여서, 선종 사찰에 어울리는 명산의 명당, 승경에 아담한 건축이야말로 한국미의 또 다른 전형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개심사의 건축적 아름다움은 의의가 크다.

서역인 상의 한 쌍의 인왕상은 부리부리한 눈망울과 힘준 근육에서 무서움을 느끼기보다는 해학미가 돋보인다. 흙으로 빚었다. 육체적 위협이 아니라 정신적 감계의 의미이다. 아름다운 한국의 미이다. 봄이 무르익는 4, 온 산이 산벚꽃으로 뭉게구름처럼 피어오를 때 개심사 명부전 앞 왕벚나무 꽃망울이 부풀어 오르면 봄 산의 싱그러움과 설렘으로 절집이 술렁인다. 연둣빛이 은은히 감도는 토종 왕벚꽃이 만발해 참배객의 마음을 흔들고 천지만물의 조화에 푸른 납자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때문이다. 참으로 진풍경이다.

우리네 상식으로는 벚나무가 일본산이라 여겨 와서 토종 벚나무가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런데 개심사 왕벚나무가 순수 자생종이라니 반갑고 보고 싶은 마음이 앞선다. 말로만 듣던 개심사 연둣빛 벚꽃송이를 바라보았을 때 감개무량했다. 아이 주먹만 한 소담스러운 하얀 꽃 바탕에 연한 연둣빛이 살짝 오른 그 신선함이 순수하고 처연하다.

어느 해 봄. 봄비에 산벚꽃이 꽃비 되어 경호 연못에 내리니, 물 아래 물고기가 꽃잎 물고 이리저리 헤엄쳐 다니는 풍경을 보았다. 선경 그 자체였다. 무심히 바라다본 연못 물 위로 흰 구름 한 조각이 서쪽으로 비끼어 가고 있었다. 사월 명부전 앞 왕벚꽃나무 연둣빛 꽃망울이 터지면 온 산이 술렁인다. 명부전 단청은 화사한 인도의 색채가 고스란히 조선에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아름다운 우리 문화유산이다.

개심사 라이딩 중 한 컷
개심사 및 가야산 임도 라이딩 중 한 컷


시민기자 이창희 lee9024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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