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의 죽음, 알면서도 '깊은 침묵' 한 그알... 시청률을 위한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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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의 죽음, 알면서도 '깊은 침묵' 한 그알... 시청률을 위한 정의?
  • 윤종환 기자
  • 승인 2020.05.18 16: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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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알고싶다 ‘깊은 침묵-사제들의 죽음 그리고 한 사람’ 16일 방영
"아무 연관없는 사제들의 죽음 왜 끌어들여" 누리꾼 비판 일색
인천교구 "자살로 밝히지 않은 것은 유가족들의 원의(願意), 신도들의 충격 최소화 위해"

 

16일 저녁 그것이 알고싶다서 방영된 ‘깊은 침묵-사제들의 죽음 그리고 한 사람’

‘인천가톨릭대학 성추행 사건’(인천in 5월17일자 보도)을 방영한 지상파 프로그램이 시청률을 위해 사건과 연관이 없는 고인이 된 사제를 끌어들여 자극적인 내용의 방송을 내보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SBS 그것이 알고싶다(그알)는 16일 저녁 ‘깊은 침묵-사제들의 죽음 그리고 한 사람’이란 제목의 방송분을 내보냈다.

30대 초반의 나이로 극단적인 선택을 했던, 그러나 알려지지 않았던 인천교구 사제 2명의 죽음 뒤에 있는 의혹을 쫒는다는 것이 해당 방영분의 설명 내용이었다.

그알은 ‘이들 사제 2명의 죽음이 22년전 인천카톨릭대학에서 벌어졌던 총장신부의 성추행과 관계가 있을 것이다’라는 식으로 방송을 진행시켜 나갔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사제 2명의 죽음과 인천카톨릭대에서 벌어졌던 성추행 사건은 전혀 연관이 없었을뿐더러, 방송의 주 내용도 사제 2명의 죽음이 아닌 ‘인천가톨릭대 성추행 사건의 전모’를 밝히는 것에 가까웠다.

예고 영상부터 제목, 본 방송의 진행 구성까지 사제들의 죽음을 반복적으로 언급하고 연상시킨 것과는 달리 이들에 대한 내용은 사실상 없던 것이다.

 

그것이 알고싶다 게시판 댓글 캡쳐

이에 대해 누리꾼들은 ‘시청률만을 위한 악의적인 편집이 불쾌하다’라는 입장이 대다수다.

정확히는 당시 인천가톨릭대 소속 성추행 총장의 만행과 인천교구의 미온적 조치를 알린 것은 잘 한 일이지만, 왜 아무 상관도 없는 고인들을 끌여들어 유가족들의 가슴에 못을 박느냐는 것이다.

이같은 비판은 죽은 사제의 유가족들이 그알 취재팀과 만나 이야기한 내용, 전후사정 등이 알려지며 더욱 거세지고 있다.

17일 그알 홈페이지 게시판에 죽은 사제의 유가족임을 밝히고 장문의 글을 게재한 시민은 “그알은 젊은 사제의 죽음과 인천카톨릭대 성추행 사건이 연관되지 않았음을 미리 알고 있었다”고 폭로했다.

이 글에 따르면 그알은 “관계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굳이 사제들의 죽음에 관한 내용은 방송에서 거둬달라”는 유가족의 요청에 “방송을 보면 이해가 되실 것이다. 이렇게라도 죽음을 밝혀 오해를 갖지 않게 하는 것이 옳지 않겠냐”고 회유하고 있다.

그러나 사제 2명의 죽음이 성추행과 관계 없다는 내용은 방송 말미에 잠깐 언급됐을 뿐이다. 제목과 방송 초반부, 예고편 등만 본다면 오히려 오해가 가중될 여지가 있는 것이다.

유가족은 “유서까지 공개했던 것은 동생(사제)의 죽음이 성추행과 관련 없음을 이해시키기 위한 것인데, 유서내용 중 일부만을 앞 뒤 맥락없이 내보내면 시청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일까요”라며 “그리 장담하던 방송이 겨우 이거였습니까”고 비판했다.

이어 사제들이 '비밀을 감추려는 듯' 촬영을 거부하는 것처럼 보이는 방송 내용에 대해서도  “무엇하나 이상할 것 없는 죽음을 무언가 있는 것처럼 취재하고, 당신들 입맛대로 사제의 죽음을 이용하니 동기 신부들도 화를 낸 것”이라며 “가톨릭이 말 못할 비밀을 숨긴 것이 아닌 동생의 명예, 유가족들의 마음이 다치는 것을 우려해서 그랬던 것”이라고 정색했다.

그는 “연관도 없는 죽음을 이용해 방송을 만든 당신들은 누구를 위한 정의입니까”라며 “유족으로서 결코 그냥 넘어가지 않겠다”고 경고했다.

 

유가족이라고 밝힌 이가 게재한 글 일부 캡쳐

 

인천교구도 입장을 내놓았다.

인천교구 사무처장인 김일회 신부는 “두 사제의 사인을 자살이 아닌 심장마비로 밝힌 것은 유가족들의 원의(願意) 때문”이라며 “또 그들을 사랑했던 사람들과 신자들에게 가해질 충격이 클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 신부는 인천in과의 통화에서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이들을 다시 성추행 사건의 피해자로 만드는 방송 내용에는 동의할 수 없다”며 “방송이 고인들의 삶과 죽음을 모독하는 것에 깊이 우려한다”고 말했다.

이어 "비록 다른 이유로 세상을 떠났으나, 사제들이 정신적, 육체적 어려움으로 아파하는 것을 챙기지 못한 교구도 책임이 있다"며 "아픔과 고통을 겪고 있는 사제들을 상담하고 돌보는 부서와 전담사제를 임명해 활동하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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