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눈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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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눈부심!
  • 정민나
  • 승인 2020.05.2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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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나의 시 마을]
저 눈부심! - 조창환
마늘밭

 

저 눈부심!

                                           - 조창환

 

마늘밭에 마늘 싹들이 파랗다

저 연하고 여린 것들 어디에도

맵고 아린 오기가 숨겨져 있을 리 없다

독한 불길을 품은 악마에게 뜨거운 회초리질을 당한 후

마늘은 비로소 마늘다워질 것인가

아니다

흙을 밀어 올리던 어린 천사의 살이 닿아

따뜻해진 목숨의 상형문자가 뭉쳐

맵고도 아린 흔적을 땅속에 감추는 것이다

병아리 털 같은 마늘 싹들이 실눈 뜨고 내다보는

저 눈부심!

 

시인은 마늘밭에서 마늘 싹들을 바라본다. 그 연한 어린 것들 어디에 맵고 아린 오기가 숨겨져 있을까? 살짝 드는 의문에서 이 시는 시작된다. 병아리 털 같은 어린 마늘 싹들은 자라면서 땡볕에 씨알이 굵어지고 우리가 흔히 먹는 매운 맛의 마늘로 커간다. 시인은 그 과정을 “독한 불길을 품은 악마에게 뜨거운 회초리질을 당”하는 모습으로 묘사한다. 그 과정을 거쳐야만 맵고 아린 마늘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시인은 마늘밭에 하늘거리는 마늘 싹들을 바라보다가 다른 또 하나의 생각을 하게 된다. “독한 불길을 품은 악마에게 뜨거운 회초리질을 당”해서 매운 마늘이 된 것이 아니라 “흙을 밀어 올리던 어린 천사의 살이 닿아/따뜻해진 목숨의 상형문자가 뭉쳐” 맵고도 아린 마늘이 된 것이다. 라고

사람이 된 웅녀는 자신을 배필로 맞이한 환웅과 그 사이에서 태어난 단군의 가족이 되어 행복한 삶을 살게 된다. 인간의 원조인 웅녀는 그리하여 “따뜻해진 목숨의 상형문자”같은 상징적인 존재가 되고 그것이 이 시에서 보듯 마늘이라는 구근에 실려 지금까지 내려오는 것이다.

사실 우리 인간의 인자 속에는 저 100일간 햇빛을 보지 않고 쑥과 마늘로 견뎌낸 웅녀의 ‘참을성’이 대대로 새겨져 내려오는지 모른다. 사회에 나온 초년의 젊은이들은 거친 세상과 대면하여 점차 맵고, 아리고, 오기를 가진 거친 생활인으로 변해가지만 세상과 부딪히고 달구어지면서 독해진 마음을 세상을 향해 흩뿌리거나 뒤흔드는 것만은 아니다. 땅 밑 구근이 쓸모있게 커가는 동안 땅 위 세상에서 그 줄기와 잎이 푸르고 상냥하게 자라는 마늘처럼. “맵고도 아린 흔적을 땅 속에 감추”는 마늘처럼 참고 인내하며 세상을 내다보기도 하는 것이다.

 

시인 정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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