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도(短刀)와 권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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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도(短刀)와 권총
  • 김선
  • 승인 2020.06.09 0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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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당과 고전읽기 도전하기]
(2)이방인-⑱아랍인들과의 결투
인천in이 송도국제도시에 있는 복합문화공간 서유당과 함께 어렵게만 느껴지던 동·서양의 고전 읽기에 도전합니다. ‘서유당의 고전읽기모임인 하이델베르크모임Jacob 김선(춤추는 철학자), 김현(사회복지사), 최윤지(도서편집자), 서정혜(의류디자이너), 소순길(목사), 이광남(칼럼니스트)’ 등이 원서와 함께 번역본을 읽어 내려가며 삶의 경험을 나누고 있습니다.
 

두 번째 고전읽기- 알베르 카뮈(김화영 역), 이방인 L’Etranger, 민음사.

 

Non, aije dit à Raymond. Prends-le d’homme à homme et donne-moi ton revolver.

쏘면 안돼, 사나이답게 맞상대를 해야지. 그리고 그 권총은 이리 줘

 

  마송과 뫼르소는 걸음을 늦춘다. 레몽은 곧장 그의 상대에게로 다가간다. 결투가 시작된 것이다. 아랍 녀석이 머리로 레몽을 받는 시늉을 한다. 레몽은 먼저 한 대 때려 놓고 마송을 부른다. 마송은 미리 지목한 녀석을 두 번 후려 갈긴다. 예상한 대로 흘러간다. 아랍인들이 물속으로 엎어지면서 얼굴을 물 바닥에 처박는다. 잠시 그러고 있는데 머리통 주위로 거품이 부글거리며 올라왔다. 레몽 쪽에서도 후려쳐서 아랍 녀석은 온통 피투성이가 되었다. 예상대로 가는 듯하다. 레몽은 뫼르소를 보고 아랍인 꼬락서니를 보라고 말한다. 방심은 금물이라 뫼르소는 아랍인이 단도를 들었으니 조심하라고 소리쳤으나 레몽은 이미 팔에 칼을 맞고 입이 찢겼다. 예상하지 못한 전개다. 

영화 조커, 2019.
영화 조커, 2019.

사고로 다친 찢긴 입술과는 다르지만 조커의 웃는 듯한 찍어진 입술이 떠울르는 것처럼 괴상한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앞으로 일어날 일이 섬뜩하다.

  마송이 후다닥 몸을 날려 내달았으나 다른 아랍 녀석도 일어서 칼을 가진 녀석 뒤로 붙어 선다. 긴장이 감돌아 서로 움직이지 못했다. 아랍인들은 눈을 떼지 않은 채 단도로 위협을 하면서 천천히 뒷걸음 친다. 충분히 떨어졌을 때 그들은 부리나케 달아나 버렸으나 마송과 뫼르소는 햇볕 아래 우두커니 서 있었고 레몽은 피가 흐르는 팔을 움켜쥐고 있다. 싸움은 상흔을 남기고 끝났다.

  마송은 일요일마다 위쪽 별장으로 와서 지내는 의사가 있다고 말한다. 레몽은 즉시 가자고 한다. 다급해 보인다. 레몽의 입속에서 피가 거품을 일으키자 그를 부축하고 셋은 오두막으로 돌아온다. 레몽은 상처가 가벼우니 의사에게 갈 수 있다고 말하며 마송과 함께 의사에게 가고 뫼르소는 남아서 여자들에게 사건 이야기를 해 준다. 마송 부인은 울고 마리는 파랗게 질려 있다. 즐거워야 할 하루가 버거운 하루로 변했다. 뫼르소는 그들에게 설명하는 것이 귀찮아 이야기를 그치고 담배를 피우면서 바다를 바라본다. 잠잠한 바다처럼 마음도 잠잠해지길 바라는 것 같다.

  130분쯤 레몽이 마송과 함께 돌아왔다. 그는 팔에 붕대를 감고 입가에는 반창고를 붙이고 있었다. 레몽은 침울해 한다. 침울한 가운데 생각도 침잔해진다. 마송이 웃기려 해도 레몽은 여전히 말이 없다. 말할 입상태가 아니기도 하다. 그래도 바닷가로 간다고 말하니 뫼르소는 어디로 가느냐고 묻는다. 그는 바람을 쐬고 싶다고 대답한다. 마송과 뫼르소도 함께 가겠다고 하자 레몽이 화를 내며 욕을 한다. 레몽의 분노가 보인다. 그의 비위를 거스르지 말자고 마송이 말해서 뫼르소도 조용히 레몽의 뒤를 따른다.

  세 사람은 오랫동안 해변을 걷는다. 태양은 세차게 내리쪼인다. 햇빛은 모래와 바다 위에 부저지고 있다. 생각이 많을 것 같은 무언의 흐름이다. 뫼르소는 레몽이 자신이 가는 곳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잘못 생각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들은 바닷가 끝까지 가서 커다란 바위 뒤에서 바다로 향해 흐르는 조그만 샘 가에 이르렀다. 이곳으로 발걸음이 인도된 것은 불운이다. 거기서 그들은 아랍인 둘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아랍인들은 기름기가 밴 푸른 작업복을 입고 누워 있었다. 마음은 거의 가라앉은 듯 아주 느긋한 빛이었다. 아랍인들은 만족한 싸움이었나 보다. 레몽 일행을 보고도 전혀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레몽을 찌른 녀석은 아무 말 없이 레몽을 바라본다. 또 한 녀석은 갈대 피리를 불고 있었는데 곁눈으로 바라보며 계속 소리를 내고 있었다.

차이코프스키, 발레 "호두까기 인형" 중 갈대피리의 춤
차이코프스키, 발레 "호두까기 인형" 중 갈대피리의 춤

차이코프스키의 호두까기 인형 중 '갈대피리의 춤'에 나오는 그런 소리는 아닐지라도 피리 소리 속 시선의 교차가 무겁게 느껴진다.

  그곳에는 태양과 침묵, 그리고 졸졸 흐르는 샘물소리와 피리 소리뿐이다. 이윽고 레몽이 호 주머니의 권총에 손을 댔으나 아랍인들은 움직이지 않았고 서로 마주 바라보고 있었다. 권총의 위력을 체감하고 있는 것일까? 뫼르소는 피리를 불고 있는 녀석의 발가락들이 몹시 벌어져 있다는 것을 보았다. 레몽은 상대편으로부터 눈을 떼지 않고 해치워 버리자고 묻는다. 답이 정해진 질문이다. 안된다고 하면 제풀에 화를 내어 기어코 쏘고 말 것이라고 뫼르소는 생각했다. 그래서 뫼르소는 아랍인들은 아직 아무 말도 안했는데 쏘아 버린다는 것은 비겁하다고 말해 주었다. 뫼르소는 싸움의 심판처럼 임하고 있는 것 같다.

  침묵과 무더운 열기 속에서 여전히 물과 피리의 호젓한 소리가 들린다. 이윽고 레몽이 아랍인들에게 욕을 해 줘서 말대답을 하면 쏘아 버리자고 말하자 뫼르소는 단도를 뽑지 않으면 쏠 수 없다고 대답한다. 싸움의 룰을 알려 주는 듯하다. 그런 룰을 알리 없는 레몽은 좀 화를 내기 시작한다. 상대편은 여전히 피리를 불고 있고 레몽의 일거일동을 살피고 있었다. 뫼르소는 사나이답게 맞상대를 하라고 말하며 권총을 자신에게 달라고 한다. 만약에 녀석들이 뛰어들든지 단도를 뽑으면 자신이 쏘아 버릴거라고 말한다. 암시적 상황이 벌어질 것 같아 음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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