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감하고 무모한 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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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감하고 무모한 혜숙
  • 권근영
  • 승인 2020.06.10 07: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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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림1동 181번지, 수도국산 달동네를 기억하며]
(12) 송림동에 살게 된 남숙의 동생, 혜숙

2020년 새 기획연재 <송림1동181번지, 수도국산 달동네를 기억하며>는 1954년부터 1998년까지 수도국산 달동네 송림1동 181번지에 살던 정남숙님과 그의 가족들의 구술을 바탕으로 격주 연재합니다. 어린 시절을 송림동에서 보낸 남숙의 손녀 영이가 가족들을 만나 그 시절, 그 이야기를 듣고, 글로 옮깁니다. 어렵고 가난했던 시절, 서로를 의지해 살아가던 가족들의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보려고 합니다.

 

“성!!!”

혜숙은 남숙을 항상 ‘성’이라고 불렀다. 그 목소리가 크고 우렁찼다. 겁 많고 걱정이 많은 남숙과 달리 혜숙은 대범하고 당찬 구석이 있었다. 가끔은 용감하고 또 가끔은 무모했다. 특히 사랑에 대해서.

혜숙은 스무 살 무렵 한 남자를 사귀었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이를 가졌고, 이름을 호성이로 지었다. 남자는 한국전쟁에 나가 돌아오지 못했다. 혜숙은 아이를 혼자 키울 생각에 막막했다. 그러던 중 영종 출신 남자를 알게 되었다. 남자네는 집도 으리으리하게 크고, 마당에 저수지가 두 개나 있을 정도로 넓은 땅을 갖고 있었다. 남자의 가족과 친척들은 서울에서 대학을 나왔고, 머리가 좋았다. 영종 남자는 면 사무소에서 서기를 하고 있었는데 착하고 유식했다. 혜숙은 이 남자를 놓치기 싫었다. 아이가 있다는 사실도 숨기고 싶었다. 혜숙은 남숙에게 호성을 키워달라고 부탁했다. 남숙은 형우와 혼인하고 아이가 생기지 않던 터라 혜숙의 부탁을 들어주고, 호성을 수양아들 삼았다.

영종 남자와 혼인한 혜숙은 동인천역 앞에 여인숙을 차렸다. 성격이 싹싹하고 말솜씨가 좋아 손님이 끊이지 않았다. 1955년에는 아들 해성을 낳고, 3년 뒤에 딸 해인을 낳았다. 네 식구의 행복한 삶이 영원할 것 같던 그즈음 남자가 피를 토했다. 피를 쏟고 나면 얼굴이 하얘졌다. 의원이 여인숙을 찾았다. 주삿바늘을 꽂고 늑막(가슴막)에서 물을 뽑아냈다. 물을 빼내면 숨이 고르다가 며칠 지나면 다시 물이 차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몸을 가눌 수 없었고, 밥도 혼자서 먹을 수 없었다. 사람을 써서 뱀을 잡아 고와 먹였다. 좋다는 건 다 해 먹였지만, 차도가 없었다. 집안 대대로 폐가 좋지 않아, 조상들이 폐병으로 죽었다는 말만 할 뿐이었다.

혜숙은 지쳤다. 남자고 아이고 내팽개쳐둔 채 술에 취해 누워 있는 날이 많아졌다. 남숙은 매일 혜숙을 찾아갔다. 잠이 든 혜숙의 빈 젖통을 물고 있는 해인을 달래고, 해성에게 죽을 쒀 먹였다. 남자가 죽고, 혜숙은 여인숙을 정리했다. 새로운 삶을 시작해보겠다며, 혜숙은 해성과 해인을 데리고 주문진으로 갑자기 떠났다.

혜숙이 인천을 떠나고 4년 만에, 송림동 집 대문을 열고 들어오며 외쳤다.

“성!!! 나왔어!!!”

예전의 크고 우렁찬 목소리로 남숙을 불렀다. 식구가 늘어 있었다. 키가 쑥 자란 해성과 해인이 옆으로 몸집이 크고 퉁퉁한 남자 하나와 네 살짜리 아이 하나가 같이 있다. 새 남편이란다. 주문진 시장에서 오징어 말리는 일을 하면서 남자를 만났고, 아이도 하나 낳았다고 했다. 남숙은 기가 찼다. 혜숙은 당분간 신세 좀 지자며 보따리를 마루에 내려놓고, 오징어를 꺼냈다. 주문진에서 가져온 반건조 오징어다. 며칠 더 말려서 먹으면 더 맛있다고 말하며, 마당 빨랫줄에 한 마리씩 널기 시작했다.

다음 날 혜숙은 하인천으로 갔다. 고기 부두에서 생선을 떼다가 다라(대야)에 담아 이고, 동네를 돌아다니며 팔기 시작했다. 여인숙을 할 때도 사람을 꼬이는 재주가 남달랐는데, 주문진에 가서도 오징어 말리고 바다 사람들과 어울리며 장사를 꽤 해 본 모양이다. 혜숙은 생선을 금방 다 팔고, 번 돈으로 소주를 사 먹었다. 그러고는 얼큰하게 취해서 송림동 집으로 되돌아왔다.

혜숙의 새 남편은 창호 목수였다. 나무로 창문을 짜는 기술이 아주 좋았는데, 마땅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며칠째 집에만 있었다. 처형네 식구들에게 얹혀 지내기가 민망했던 차에 마루를 손보겠다고 했다. 흙과 시멘트만 발라놓아 꺼끌꺼끌한 마루 위에 나무를 놓겠다고 했다. 직접 나무를 사다가 대패질을 시작했다. 개비끼(그므개)라는 기술로 한쪽은 볼록하게 나오고, 한쪽은 쏙 들어가게 홈을 파 서로가 딱 맞도록 끼워 맞췄다. 나무로 된 마루가 틈새가 없이 딱 알맞았다. 남자는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차분하게 정성을 들여 작업을 해내는 성실한 사람이었다.

남숙은 해성을 데리고 송림초등학교에 갔다. 교장 선생을 찾아가 전학증을 보였다. 학급마다 인원이 많아, 아이 책상 하나 더 놓기 싫었던 선생들이 교장을 피했다. 성적표와 생활기록부를 본 교장은 해성을 가까이 오라고 했다. 머리를 쓰다듬고 등을 두드려 주었다. 공부를 어쩜 이렇게 잘했냐고 물었다. 우는 하나도 없었다. 전부 수였다. 교장의 행동을 본 담임들이 서로 자기네 반으로 데리고 가고 싶다고 했다. 교장은 그 자리에 없던 여자 선생네 반에 해성을 배치해주었다.

남숙의 아들 인구는 해성과 같은 송림초등학교 2학년이다. 인구도 공부를 제법 잘하는데, 전부 수는 아니었다. 인구는 해성이 공부를 어떻게 하는지 궁금했다. 항상 펼쳐보는 표준전과가 보고 싶기도 했다. 자신도 표준전과를 보면, 다 외워서 100점을 맞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차마 남숙에게 사달라고 말할 수 없어서, 딱 한 번만 빌려달라고 부탁했다. 해성은 싫다고 했다. 인구는 자존심이 상하고 성질이 나서 방에 웅크려 앉아 울었다. 남숙이 인구를 보고 왜 우느냐고 물었다. 인구가 씩씩대며 해성이 표준전과를 안 빌려줘서 화가 났다고 했다. 남숙은 방비(빗자루)를 들었다. 사촌이랑 사이좋게 지내지는 못할망정 다툰다며 혼을 냈다.

인구는 평소에 어른들 말을 잘 들어서 맞을 일이 없었다. 학교에서 공부도 열심히 하고, 친구들과 사이도 좋았다. 형우가 일을 마치고 밤늦게 집에 들어와 돈을 주며, 쌀을 사 오라고 시켜도 군말 없이 쌀을 사러 뛰어갔다 왔다. 보름날 초가지붕 근처에서 쥐불놀이하는 아이들도 다 쫓아내고, 공동수도에서 물을 길어 오는 일도 도맡아 했다. 표준전과를 빌려주지 않은 건 해성인데, 오히려 자신이 혼나고 있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이 모든 상황이 혼란스럽고 어려운 건 인구도, 남숙도 마찬가지였다.

다음 날 해성이 인구를 불렀다. 인구는 부은 얼굴로 마당으로 나갔다. 해성은 어쩐지 미안하기도 하고 멋쩍어서, 빨랫줄에 널어놓은 오징어를 하나 떼어냈다. 오징어가 꾸둑꾸둑 잘 말라서 지금 먹어야 맛있다고 말했다. 해성은 연탄불에 오징어를 살짝 구웠다. 다리와 몸통 끝이 안쪽으로 조금 쪼그라들었다. 인구에게 오징어를 건넸다. 몸통을 찢어서 씹어보았다. 따뜻하고 맛있었다. 이렇게 맛있는 오징어는 처음이었다. 인구는 자기가 화가 났다는 걸 까먹고, 오징어를 맛있게 씹어 먹었다. 혜성도 같이 웃으며 오징어를 씹어 먹었다. 송림동 집 마당의 빨랫줄에는 오징어가 하나 사라졌고, 인구와 해성은 둘만의 비밀을 갖게 되었다.

 

 자유공원에서 남숙과 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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