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상에서 별을 올려다보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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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에서 별을 올려다보던 집
  • 최일화
  • 승인 2020.07.17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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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시단]
이선영 시집 『60조각의 비가』를 읽고

이번엔 문학상 수상 시집에서 시 한 편 골라 보았다. 내가 연재하고 있는 [금요시단]은 평론이 아니다. 한 독자로서 읽어 감동 받고 내 취향에 맞는 작품을 골라 독자와 함께 소통하고 감상하자는 취지다. 나는 시를 논할 능력도 자격도 없다. 시를 읽고 누구든지 나름대로 감상하고 평할 수는 있지만 잘못 이해하여 독자에게 잘못된 정보를 제공한다면 시인에게 누가 될 수도 있다. 무턱대고 과대 포장하여 소개하는 것도 금물이고 진면목을 이해하지 못하고 과소평가하여 누를 끼칠 수도 있다. 오래 시를 써왔고 많은 시집을 읽은 체험을 바탕으로 [금요시단]에 시를 소개하고 있다.

나는 될 수 있으면 소통이 잘 되고 많은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을 선정하려고 노력한다. 큰 문학상을 탄 작품집이어서 기대를 안고 샀다가 접근 조차 어려운 난해시로 가득하여 난감했던 적이 있다. 내 읽기 능력에 한계를 느끼고 절망을 느꼈었다. 그러나 근래 우수한 문학상을 탄 시집이 모두 쉽고 재미있는 작품들로 채워져 있어서 마음이 한결 가볍고 우리 문단과 문학상에 대한 신뢰를 되찾고 있다.

2020년 제 3회 김종삼 문학상을 수상한 길상호 시인의 오늘의 이야기는 끝이 났어요 내일 이야기는 내일 하기로 해요 (걷는 사람, 2019), 17회 이육사 시문학상을 수상한 이재무 시인의 시집 데스밸리에서 죽다(천년의 시작, 2020). 그리고 제 2회 김종철 문학상을 탄 이선영 시인의 시집 60조각의 비가(민음사, 2019)등 올해 수상 시집이 모두 가독성이 좋아 소통이 잘 된다는 점을 매우 긍정적으로 본다.

전에 길상호 시인의 시 한 편 소개한 적 있는데 오늘은 이선영 시인의 시 두 편을 함께 읽어 본다. 이선영 시인은 1964년 생으로 1990현대시학을 통해 등단하여 시력 30년이 넘는 중견 시인이다. 그러나 그의 이력엔 수상 경력이 없다. 프로필에 많은 수상 내역이 적혀 있는 다른 시인들의 시집과는 달리 이선영 시집엔 수상 내역이 없다. 시집을 읽으면서 나는 이 사실에 주목했고 우리 문단의 그릇된 한 단면을 보는 듯했다.

여태 한 번의 수상 경력이 없다는 것은 그만큼 혼자 묵묵히 시인의 길을 걸어왔다는 증거가 될 것이다. 남이 주목하지 않고 박수치지 않아도 꾸준하게 시인의 길을 걸어왔다는 것은 자신의 시에 대한 확신을 갖고 있다는 증거가 된다. 또 시 본래의 사명에 충실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작품 활동을 해왔다는 증거도 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번 이선영 시인의 김종철 문학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시인의 시를 읽어보자.


 집

                                            이선영

 

 

남은 집은 몇 채이려나, 나 여러 채의 집들을 거쳐 왔네
크거나 작거나 높거나 낮거나 했지만
들어앉으면 달리 나설 때도 없는 나의 집이었다네
옥상에서 별을 올려다보던 집
계몽사 50권 세계문학전집이 반겨 주던 집
할아버지가 벼루에 먹을 갈아 다리 가는 학을 그리던 방이 있던 집
할머니가 큰솥에 개떡을 찌던 부엌이 있던 집
키우던 고양이가 갓 낳은 새끼들을 숨기려다 목줄에 걸려 죽고
나는 멍하니 창틀에 올라앉아 마당의 후박나무만 바라보던 집
저녁 어스름 귀갓길에 문득 노을빛 조등이 걸렸던 집
아버지에게 대들다 한동안 치마 아래로 종아리가 시퍼렇던 여대생이 살던 집
후두둑 빨간 딱지가 붙고 빚쟁이로 몇날며칠 눅눅하던 집
퇴직하고 이빨 빠진 아버지가 낡은 소파와 함께 음침한 정물화가 되어 가던 집
그 집이 싫어 한 남자와 도망쳐 나온 집
커다란 모기장을 사면 벽에 걸고 아이들과 한 방에서 자던 집
아이들이 자라면서 식탁이 소란스러워지고
기어코 같이 놓일 수 없게 된 수저들이 생긴 집
네 식구가 제 귀퉁이에서 각자 자기 식의 평화를 지키는 집
때로 네 식구 마음 따라 문짝은 어그러지고 변기가 막히고 천장이 얼룩지는 집
제 손바닥에 옹송그리는 식구들을 하나라도 놓쳐서는 안 되는 지상의 단 한 칸
어쩌다 예전 살던 곳들을 지나칠 때면
어떤 집은 뭐하러 또 왔냐 묻고 어떤 집은 들렀다 가라 하는데
제 들보를 갉아먹는 슬픈 벌레를 키우지 않는 집은 어디 있으려나


한 번 읽으면 금방 내용을 알게 되고 깊은 공감의 느낌이 올라온다. 나는 좋은 시는 해설 없이 시인과 독자가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시라고 생각한다. 이 시엔 평범한 시어 속에 깊은 성찰과 아름다운 시심이 감춰져 있다. 보편적인 삶의 모습을 시인만의 개성적인 목소리로 담아냈다. 시 속엔 시인의 성장의 내력이 있고 가난한 서민의 삶의 풍경이 있고 모든 독자와 소통하려는 소박한 진정성이 있다.
 

시 쓰는 여자

                                         이선영

 

 

시를 쓰기 전에
쓰레기를 버리러 가는 여자
시를 쓰기 전에
이불을 깔았다 개고 걸레질을 하는 여자
시를 쓰기 전에
밥을 안치는 여자
시를 쓰기 전에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고 오는 여자
상한 음식을 손으로 쓸어 담으면서
음식이 상하는 만큼 나날이 상해 간다고 느끼는 여자
시를 쓰기 전에
아이를 키워야 하는 여자
아이 실내화를 빨고
숙제와 준비물을 챙겨야 하는 여자
시를 쓰기 전에
돈을 벌고 돈을 내야 하는 여자
시를 쓰기 전에
시를 읽어야 하는 여자
읽으면서 시란 정말 알 수 없다고 푸념하는 여자
읽으면서 시를 써왔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 여자
읽으면서 써 온 반생과 써야 하는 여생을 후회하곤 하는 여자
푹푹 한숨 쩌 내는 여자 퉁퉁 불어 투덜거리는 여자
이윽고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여자
하루가 저물면
시는 쓰지 않고
식탁 의자 위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여자
어디다 시를 두고 온 사람 모양
골똘히 아래만 보고 있는 여자
머릿속은 가득하지만 시만 들어 있지 않은 여자
뒤숭숭한 세간들 사이로 시만 실뱀처럼 빠져나간 여자
차 있으나 늘 텅 비어 있는 여자


30년 시력의 중진 시인의 시이지만 시를 놓지 못하고 일상을 시와 함께 하는 시인의 면모를 볼 수 있다. 모든 살림을 도맡아 하는 평범한 가정주부이지만 한 가지 다른 점은 그가 시를 쓰는 시인이라는 점이다. 바쁜 일과 중에도 언제나 시를 가슴에 품고 있는 일상생활 속 시인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다. 유수한 출판사에서 계속 시집을 출판했는데 한 번도 수상의 기회를 얻지 못했다는 것에 나는 시인을 더 신뢰하게 되었다. 시는 본질적으로 상을 타기 위해서, 돈을 벌기 위해서 혹은 유명해지기 위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 것에 익숙해지면 어느새 시 본래의 사명이 희석되고 본인도 모르는 새 시인 본래의 모습에서 멀어지게도 되지 않겠는가.

물론 시는 우수해야 한다. 그 우수성이 어떤 것인지 현명한 독자들은 알 것이다. 삶에 긍정적인 에너지를 공급하고 깊은 감동을 안겨주어 인생에 대한 새로운 각성을 얻게 되는 시가 좋은 시다. 미처 깨닫지 못한 진실을 접하게 하고 언어의 마력에 넋을 잃게 만드는 시가 좋은 시다. 세상에 수많은 시 창작 선생이 있다. 그들이 가르쳐 줄 수 있는 것은 객관적인 기본원리와 방법론을 가르쳐 줄 뿐이다. 시 창작 수업을 받고 시에 대한 편협한 인식을 갖게 되어 개성 없는 틀에 박힌 시를 만들어낼 위험성도 있다. 한 번 잘못 배우면 얼른 헤어나는 일이 쉽지 않다.

시는 혼자 읽고 쓰고 수없이 시행착오를 겪으며 자기의 시세계를 스스로 구축해가야 한다. 지름길로 가려다가 길을 잃고 헤매다가 흥미를 잃을 수도 있다. 내가 이선영 시인을 신뢰하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오랜 시력에도 문학상 수상 전력이 없다는 데 있다. 그러면서도 꾸준하게 시를 쓰고 시집을 펴냈다는 것은 그만큼 시를 사랑하고 시를 신뢰했다는 증거다. 시에 대하여 그 가치를 확신하고 그 확신에 입각하여 시인의 삶을 살아왔다고 볼 수 있다. 시집에서 시인의 개성적인 표현을 발견하게 된다. 그 개성적이고 독창적인 표현 중의 하나라면 천의무봉의 자연스러운 시의 흐름이다. 그 흐름 속에 시의 가장 큰 미덕인 진정성이 함께 흐르고 있다.

최일화 / 시인

 

*이선영: 1964년 서울 출생. 1990현대시학등단. 시집 , 가엾은 비눗갑들 』 『글자 속에 나를 구겨 넣는다』 『평범함에 바치다』 『60조각의 비가시론집 시 쓰기의 분뇨학과 엮은 책으로 박용래 시선이 있다. 시집 60조각의 비가2020년 제 2회 김종철 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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